[사순절] 사순절(2)
본문
수난절을 지나면서 십자가와 나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나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는 어떤 위치에 가 있는가 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주제가 되겠습니다. 이 주제 속에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의 축복,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셔서 율법과 죄의 법에서 해방시키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과 생명의 법 아래로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우리가 율법아래 있을 때에는 율법이 지적하는 대로 우리가 죄인이고 그 죄의 결과인 사망과 사망의 열매인 저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어서 결국 율법아래 있으면 사망과 저주아래 있게 되는 것인데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하신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가지 법을 가지고 계신데 하나는 율법이고 은혜의 법이고, 하나는 심판의 법이고, 긍휼의 법이고,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형벌과 저주를 낳는 계율의 법이고, 생명을 낳는 성령과 은혜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5월 16일에 연변에 희망복지원을 오픈했습니다. 큰 집을 짖고 예쁘게 단장하였습니다. 아이 한 명을 입원하였는데 그 아이를 보니 도무지 사람 꼴이 아니었습니다. 그럴것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다니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집사님이 선교 사업에 헌신하겠다고 하셔서 그 선교사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오려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1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 10을 키우는데 내 자식 1-2명도 힘든데 남의 자식에다 돌아다니던 아이들인데 얼마나 속이 터질까를 걱정하고 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선교사님 만나서 첫 번째 질문이 "아이들 속 많이 썩이지요" 했더니 선교사님이 "아니오 아이들이 참 잘하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속을 안 썩이고 말썽을 안부리나 했더니 자기들이 자기의 신분과 과거를 생각해 보니 먹을 것 걱정, 잠잘 것 걱정, 부모가 떠났으니 누가 돌보아 줄 것 등을 걱정하다가 고아원에 들어온 자체 때문에 그냥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은혜이고,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두 은혜와 사랑이 만났기 때문에 거기에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거지처럼 다니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입니다. 큰집에서 아침저녁 따뜻한 음식을 먹고 빨래 해주고, 공부 가르쳐 주고, 학교에 갔다 오면 영어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하면서 아이들이 감사를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과 값없이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려고 전부 속 안 썩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돕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만나는 장소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귀한 일군들이 되려면 관리가 잘 되어야 하는데 귀한 선교사님의 수고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아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양육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은혜 받는 것은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를 살려주시고, 십자가 피로서 구속하셔서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를 만드셨다는 것이 감사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를 살려주시고 십자가 피로서 구속하셔서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를 만드셨다는 것이 감사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이단은 특별한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무엇을 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나무아래 달린 자가 저주를 받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심은 저주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변화시켜서 새로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믿고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피 아래 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긍휼의 법 아래 있는 줄 믿습니다. 자식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마음이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 있고, 실수하고 부족하지만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마음이 찡하셔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그래서 성경에는 '그러므로' 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 받았으므로'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수주일, 십일조, 감사헌금, 봉사, 전도, 기도 이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줄 깨닫고 기쁨으로 그 뜻대로 살아드리려고 하는 특권이 있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저주와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거룩하신 분으로 저주 아래 있는 것은 저주받을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높으신 분이 낮아지신 것은 낮은 자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에 앉는 신분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좌를 드시고 내려오셔서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보좌를 드시고 오신 분은 낮고 천한 우리를 보좌에 앉히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려 하시기 위해서 그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가난하셨습니까 그는 여호와 하나님 본체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천지와 우주와 만물, 금과 은과 모든 권세와 영광과 존귀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 다 버리시고 종의 형체로 거지처럼 내려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금 낼 돈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걸렸습니다. 세금 안내면 큰일납니다. 오죽 답답하면 고기를 한 마리 잡아 팔았습니다. 배 한 척, 집 한 칸 없었습니다. 늘 "여우는 굴도 있고, 공중의 새는 보금자리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빈손이었습니다. 걸치고 있는 통 옷 하나 있었는데 그것도 빼앗겼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군사들이 제비뽑아 나누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nothing'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심은 그를 통해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부요를 주시고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그 가난이 선택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통한 사람은 부요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사람은 부요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완전히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가난과 저주의 형벌에서도 해방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난이 저주는 아닙니다. 예수 믿고 연단 받는 사람도 있고 물질의 연단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직한 훈련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때는 겸손의 훈련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때는 자아가 깨지는 훈련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고 축복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고, 그래서 가난할지라도 정직한 것이 축복이고, 부요할 때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져야 될 줄 믿습니다. 성경 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인물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입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십자가 안에, 주님의 보혈 안에 있는 사람은 그가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부요케 되어서 더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줄 믿습니다.
야고보서 2:5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주와 가난과 고통 속에서 지금도 수많은 백성들이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아직도 우상숭배와 죄와 악한 곳에 빠져서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았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하고 그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니 무엇을 해야 되는가 간단합니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소중합니다. 보석 같습니다. 앞으로 그들을 개발해서 큰 일꾼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냥 놓아두면 지구촌에 암 덩어리가 될 아이들이 변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사도들이 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혼두라스에 보니 선교지를 마련하는데 25에이커가 됩니다. 왜 그렇게 큰 땅이 필요한가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다 가서 선교사 하기 위해서 필요한 줄 믿습니다. 아이들 나은 경험이 있잖아요 아이들 키운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밥하는데 선수이고, 빨래하는데 선수이시고, 아이들 돌보는데 다 유경험자들이므로 좀 자유로울 때 선교사로 나아가서 1년이고 2년이고 봉사하는 선교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프리카에 가서도 1달 2달 3달 가서 도와주고 아이들 좀 씻겨주고, 먹여주고, 밥 퍼주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꿈을 가지십시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심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요, 저주 아래 있음은 저주 받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난해 5월 16일에 연변에 희망복지원을 오픈했습니다. 큰 집을 짖고 예쁘게 단장하였습니다. 아이 한 명을 입원하였는데 그 아이를 보니 도무지 사람 꼴이 아니었습니다. 그럴것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다니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집사님이 선교 사업에 헌신하겠다고 하셔서 그 선교사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오려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1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 10을 키우는데 내 자식 1-2명도 힘든데 남의 자식에다 돌아다니던 아이들인데 얼마나 속이 터질까를 걱정하고 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선교사님 만나서 첫 번째 질문이 "아이들 속 많이 썩이지요" 했더니 선교사님이 "아니오 아이들이 참 잘하고 있습니다"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속을 안 썩이고 말썽을 안부리나 했더니 자기들이 자기의 신분과 과거를 생각해 보니 먹을 것 걱정, 잠잘 것 걱정, 부모가 떠났으니 누가 돌보아 줄 것 등을 걱정하다가 고아원에 들어온 자체 때문에 그냥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은혜이고,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두 은혜와 사랑이 만났기 때문에 거기에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거지처럼 다니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입니다. 큰집에서 아침저녁 따뜻한 음식을 먹고 빨래 해주고, 공부 가르쳐 주고, 학교에 갔다 오면 영어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하면서 아이들이 감사를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과 값없이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려고 전부 속 안 썩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돕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만나는 장소에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귀한 일군들이 되려면 관리가 잘 되어야 하는데 귀한 선교사님의 수고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아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로 양육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은혜 받는 것은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를 살려주시고, 십자가 피로서 구속하셔서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를 만드셨다는 것이 감사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은혜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값없이 우리를 살려주시고 십자가 피로서 구속하셔서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를 만드셨다는 것이 감사요 축복인줄 믿습니다.
이단은 특별한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무엇을 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나무아래 달린 자가 저주를 받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심은 저주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변화시켜서 새로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믿고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피 아래 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긍휼의 법 아래 있는 줄 믿습니다. 자식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마음이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허물 있고, 실수하고 부족하지만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마음이 찡하셔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그래서 성경에는 '그러므로' 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 받았으므로'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수주일, 십일조, 감사헌금, 봉사, 전도, 기도 이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줄 깨닫고 기쁨으로 그 뜻대로 살아드리려고 하는 특권이 있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저주와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거룩하신 분으로 저주 아래 있는 것은 저주받을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높으신 분이 낮아지신 것은 낮은 자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에 앉는 신분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좌를 드시고 내려오셔서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보좌를 드시고 오신 분은 낮고 천한 우리를 보좌에 앉히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려 하시기 위해서 그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가난하셨습니까 그는 여호와 하나님 본체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천지와 우주와 만물, 금과 은과 모든 권세와 영광과 존귀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 다 버리시고 종의 형체로 거지처럼 내려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금 낼 돈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걸렸습니다. 세금 안내면 큰일납니다. 오죽 답답하면 고기를 한 마리 잡아 팔았습니다. 배 한 척, 집 한 칸 없었습니다. 늘 "여우는 굴도 있고, 공중의 새는 보금자리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빈손이었습니다. 걸치고 있는 통 옷 하나 있었는데 그것도 빼앗겼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군사들이 제비뽑아 나누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nothing'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심은 그를 통해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부요를 주시고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그 가난이 선택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통한 사람은 부요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사람은 부요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완전히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가난과 저주의 형벌에서도 해방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줄 믿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난이 저주는 아닙니다. 예수 믿고 연단 받는 사람도 있고 물질의 연단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직한 훈련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때는 겸손의 훈련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때는 자아가 깨지는 훈련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고 축복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고, 그래서 가난할지라도 정직한 것이 축복이고, 부요할 때도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져야 될 줄 믿습니다. 성경 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인물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입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십자가 안에, 주님의 보혈 안에 있는 사람은 그가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부요케 되어서 더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줄 믿습니다.
야고보서 2:5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주와 가난과 고통 속에서 지금도 수많은 백성들이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아직도 우상숭배와 죄와 악한 곳에 빠져서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았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잘 간직하고 그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니 무엇을 해야 되는가 간단합니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소중합니다. 보석 같습니다. 앞으로 그들을 개발해서 큰 일꾼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냥 놓아두면 지구촌에 암 덩어리가 될 아이들이 변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사도들이 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혼두라스에 보니 선교지를 마련하는데 25에이커가 됩니다. 왜 그렇게 큰 땅이 필요한가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다 가서 선교사 하기 위해서 필요한 줄 믿습니다. 아이들 나은 경험이 있잖아요 아이들 키운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밥하는데 선수이고, 빨래하는데 선수이시고, 아이들 돌보는데 다 유경험자들이므로 좀 자유로울 때 선교사로 나아가서 1년이고 2년이고 봉사하는 선교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프리카에 가서도 1달 2달 3달 가서 도와주고 아이들 좀 씻겨주고, 먹여주고, 밥 퍼주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꿈을 가지십시오.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를 보답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가난하게 되심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요, 저주 아래 있음은 저주 받은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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