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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주님이 주신 세 마디 말씀

본문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 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 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 라 하시니라. "
이 말씀은 우리 주님 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의 결론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세 마 디입니다.
"평안하라,"
"담대하라,"
그리고
"승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이 주신 이 세 마디 말씀 을 생각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 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자세히 보면
"내 안에서"라는 말씀과
"세상에서 는"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 사는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 리의 심령은 주 안에서 삽니다. 포 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사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 도 안에서 삽니다. 포도나무 가지 가 포도나무로부터 계속해서 생명을 받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 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 속해서 새로운 생명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이 세상에 서 삽니다. 물질 세계에서 살고 있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 도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 상에서 생업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생기는 갈등이 있습니다. 고민이 있습니다. 육신 따라 살 자니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영혼 이 외칩니다. 영혼 따라 살려면
"세 상에서는 그렇게만 살 수 없다"고 육신이 소리칩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 육신과 영혼 사이의 갈등이 많이 있었습니다. 로 마서 7장 15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 씀이 나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 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 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 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 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 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 람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 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이렇게 호소한 것 입니다. 영과 육의 갈등입니다.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 상 나라의 국민으로 삽니다. 그러므 로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와 책임 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우리 그리스 도인들도 이 세상 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일원 으로서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적인 모든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 상에서 살 때는 이와 같이 두 차원 에서 동시에 살아가다가 최후에는 이 세상의 차원을 벗어나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이 두 차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첫째로
"주 안에서 평안하라"
고 하셨습니다.
평안.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평안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만 날 때, 헤어질 때 꼭 평안을 빕니다. 히브리말로 평안을 '샬롬'이라고 하 는데 우리 서로 히브리말로 인사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평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주 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 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 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 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여기 보 니까 세상이 주는 평안이 있고 주님 이 주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이나 조건 이 주는 평안입니다. 육신적인 평안 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안은 완전한 평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 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이 주시는 평안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관계되지 않은, 심령의 평안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선 사죄 의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 때 큰 평 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 을 부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사죄의 평안을 맛보며 삽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죄악된 세상, 죄악된 육신에 끌려 다니며 고민하던 바울이 이렇 게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
주 안에 있는 사람을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 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을 때 평안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 안은 안식의 평안입니다. 시편 23절 에 있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 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 는"
안식의 평안을 우리의 심령이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안식 할 수가 없습니다. 풍파, 환난, 역경, 질고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안에만 있으면 늘 안식과 안전의 평 화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을 부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딴 근심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보면 예수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 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 니 또 나를 믿으라. "
주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근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애 는 걱정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어떤 경우에도, 아무리 위험한 곳을 지난다 해도 우리의 심령이 주 안에만 있으면 절대로 안전합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요 주님 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 보면 주 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 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 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예수님의 손이,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이중으로 보호하시기 때문에 주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미술학교에서 졸업반 학생 들에게 졸업 작품을 다 그려 오라고 하면서 그 주제를 '평안'으로 내주었 습니다. 졸업반 학생들이 그림을 다 그려 왔는데 그 가운데 두 개의 그 림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하나는, 산 간의 호수를 그렸습니다. 아름답고 푸른 산에 둘러싸인 잔잔한 호수가 있습니다. 호숫가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아름다운 꽃들이 여기저 기 피어 있습니다. 그리고 양과 소 가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거나 누워 쉬고 있습니다. 아주 평안해 보였습 니다. 호수 위에는 흰 오리가 미끄 러지듯 헤엄치며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그림은 그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 는 바닷가의 절벽을 그렸습니다. 집 채 같은 파도가 밀려와 절벽에 부딪 칩니다. 폭풍우에 절벽 위에 서 있 는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뇌성벽력 이 치고, 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절벽 위 바위틈에 갈매기 한 쌍이 집을 짓고 그 갈매기 둥지 에 갈매기 새끼 몇 놈이 바람이 불 건 말건, 비가 오건 말건, 벼락이 치 건 말건, 파도가 밀려오건 말건, 고 요히 눈을 감고 자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졸업 작품 심사 위원 선생님들이 이 두 가지 그림을 놓고 어느 그림 을 일등으로 할까 깊이 생각하다가 두 번째 그림을 일등으로 하기로 결 정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평안을 상징하는 그림이긴 하지만 일종의 상상적 평안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이런 평안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항상 풍파가 있습니다. 폭 우가 쏟아지고 벼락이 칩니다. 그런 가운데 큰 바위 속에 집을 짓고 사 는 것입니다. 이 갈매기 새끼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이런 평안이 참 평안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큰 바위는 만세반석 되시는 예수 그 리스도입니다. 성경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바위시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 합니다. 육신을 쓰고 있는 인간에게 는 반드시 환난이란 것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인생사고(人生苦)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로병사(生 老病死)라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는 것이 고통이요, 늙는 데 괴로움 이 있습니다. 병이 나서 괴롭고, 죽 는 데도 괴로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환난입니다.
그러나 여기 오늘 주신 말씀에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겠다"
는 것에는 이보다 더 깊은 뜻이 있 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육신 은 이 세상에 있지만 그 심령은 세 상에 속해 있지 아니합니다. 그러므 로 세상으로부터 핍박이 있겠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 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 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 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그렇기 때 문에 이런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 우 리 그리스도인을 세상이 비웃고, 비 난하고, 유혹하고, 모략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 보면 많 은 선지자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는 환난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심지어 순교까지 한 것입니다. 과거에만 그런 것이 아니 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이 세상 이 온전히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기 까지 이런 환난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 안에서 평안을 누 리라"고 하십니다.
 둘째로,
"주 안에서 담대하라"
고 하셨습니다.
"담대하라"는 말씀은 '안심하라' 또는 '용기를 내라'는 뜻이 있는 말 씀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이 아무리 크고 강하게 보인 다고 해도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에 게 정복당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시 고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공 생애가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 일간을 기도하셨는데 주님은 매우 배고프셨습니다. 배고플 때 시험이 옵니다. 에서도 배고플 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마귀는 배고프신 예수님에게 찾아와 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 니다.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을 예 수님은 잘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마 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워 놓고 뛰어내려 기적을 행하면 많은 사람이 놀라게 될 것이고, 기적을 행해서 무슨 뜻을 이루라고 시험했 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시험도 이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하만 국의 영광을 다 보이면서
"네가 나 에게 절만 하면 이것저것을 주겠다"
고 하는, 세상의 허영을 통한 시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이런 모든 유혹을 이기 셨습니다.
그뿐이었습니까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비난, 모략, 거짓 선전 같은 것을 다 받으셨지만 다 참으시 고 결국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권능을 행하시니까 그 때 사람 들은
"예수가 마귀 바알세불의 권능 을 빌어서 그런 일을 한다"고 거짓 선전을 했습니다. 그를 모략하려는 질문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기셨 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예수 님을 붙잡아 가지고 때리며, 침을 뱉고, 홍포를 입히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손에는 금홀 대신 갈대를 붙잡게 하고, 온갖 모욕과 희롱을 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 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도 다 참고 이기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세상 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인 십자 가의 고난도 참고 이기셨습니다. 그 리고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권세인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환난을 친히 당하 셨고 이기셨습니다.
세상의 이 모든 환난을 이기신 주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 람들을 향하여
"담대하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 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해야 하는 여호수아를 향해서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렵고 힘든 일 임을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만 을 향해 하신 약속은 아닙니다. 이 것은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 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 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동족 이스라엘을 구해 내라고 하셨 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양했습니다.
"저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세요. "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 을 기억하십니까
"모세야, 가라. 내 가 너와 함께하리라. "
여호와 하나님이 기 드온을 부르실 때도
"큰 용사여, 여 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움 많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담대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됩 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 님이 됨이니라"
하셨습니다.
소년 다윗이 어떻게 이스라엘 온 군대가 두려워하는 블레셋 장군 골 리앗과 대전할 수 있는 담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그의 전쟁 경험이 골리앗보다 앞섰습니까 골리앗의 무기보다 다윗의 무기가 우수했습니 까 골리앗보다 다윗이 키가 컸습니 까 아니면 철없는 소년의 만용이었 습니까 세상 눈으로 골리앗과 비교 하면 다윗은 모든 부분에서 열세였 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담대함에는 근거 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 할 때 한 말은 전쟁 역사상 유명한 말이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 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 스라엘 군대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또 여호와의 구원하 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 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
전쟁의 승리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편에 있 는 사람은 언제나 담대할 수가 있습 니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전 쟁과 평화라는 책에서 제정 러시 아 군대와 불란서 나폴레옹 군대가 싸울 때
"전쟁에 이기는 것은 훌륭 한 무기를 가진 것에 있지 아니합니다. 군인의 마음의 자세 문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담대 하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주 안에서 승리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당할 수 있 는 모든 환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데 이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기셨습 니다. 이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기 신 주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우리 그 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담대하라 내 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나만 믿고 따르면 너희도 세상을 이길 것 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은 우리 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 지체 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의 머리, 우리의 대표가 세상을 이 기었기에 우리도 영적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에 게 세상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었 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을 열 어 주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 서 5장 4-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저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 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 구뇨.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싸우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 그러니까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절 에
"내가…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했는데 이 말씀은 바울이 쓴 편지 의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쓴 다음에 곧 감옥에서 끌려나와 오스티안 웨이에서 순교했 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언제나 굳게 서서, 진실된 길을 가며, 박해 를 참고 견디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 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여러 번 받았 지만 이런 시련이 거듭될수록 믿음 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 살다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 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마다 바울처럼
"믿음을 지켰으니"라 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믿음을 지키며 생 활하게 되면 그 믿음이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노만 빈세트 필 박사가 이런 말 을 했습니다. 인간의 삶을 영어로 LIFE라는 네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데 앞의 글자 L과 뒤의 글자 E를 빼면 IF '만약' 이라는 글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표현하고 있는 네 글자 가운 데 절반이 '만약'으로 지칭되는 불확 실성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삶 속에서 '만 약' 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없애 버려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할 수 있거 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 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이 말씀에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시각각으로 도전해 오는 이 세상의 세력과 싸워 서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그 비결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실패를 지워 버리고, 힘을 북돋우며, 공포를 일축하고, 의심을 극복하는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든 성공적이고 승리적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이 말씀에는 세상을 이기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곧 빌립보서 4장 13절 말 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 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 라. "
이 말씀처럼 귀한 말씀이 없습 니다. 이 말씀을 꼭 외우시기 바랍 니다. 저는 누가 사인을 부탁하면 이 말씀을 써 드립니다.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어디에 있 습니까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면 세상을 이깁니다. 누가 세상을 이깁 니까 공부 많이 한 사람입니까 권력 있는 사람입니까 경험 많은 사람입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서 난 자가 세상을 이긴다"라고 했 습니다.
무엇으로 이깁니까 그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 무기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 믿 음입니다. 그만을 의지하는 믿음입 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 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 사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7 절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 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밖의 세상도 강하게 도 전하지만 사실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들어오는 공격은 더 어렵습니다. 믿 음밖에는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무기 가 없습니다. 사울 같은 왕도, 삼손 같은 장사도 세상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모세가, 다니엘 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그 밖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은 믿음으 로 세상을 이겼습니다. 선한 싸움에 승리한 사람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그 심령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유혹 도 이깁니다. 비난도 이깁니다. 환난 도 이깁니다. 고통도 이깁니다. 실패 도 이깁니다. 슬픔도 이깁니다. 죽음 도 이깁니다.
이 뜻깊은 사순절 기간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마디 말씀을 꼭 기억하셔서 주 안에서 평안하고, 주 안에서 담대하고, 주 안에서 승리하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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