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하늘을 우러러 보라
본문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집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왔으나 아직까지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를 낳지 못함으로 늘 마음에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자기 집에 오래 같이 살고 있는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하겠다. "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고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망하는 아브라함에게 이상 중에 나타나 그를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낙심될 때에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서에 "땅에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절망과 고통과 아픔이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고 공허하고 혼돈한 세계를 육일 동안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도 지음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매번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시 8 : 1- 2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라고 감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는 세계와 눈에 보여지는 자연만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고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고 오염시키고 파괴시킴으로 자연의 재앙을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조화를 볼 수 있습니다.
찬송가 40장에 "주 여호와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 속이나 험한 골짜기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에는 조화가 있고 질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창 1 : 31에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가 무질서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비롯해서 자연만물은 뚜렷하게 질서를 유지하며 지구를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무소불능하시며, 거룩하시며, 사랑이 많으신가 하면 무척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무오하십니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고 기다리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무척 의심스럽고 불가능한 것 같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세의 구원과 부활, 미래의 축복과 번영은 전연 믿을 수 없는 일 같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조화와 질서를 보고 확신 할 수 있습니다.
(3) 창조의 여호와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전부 가능하신 것입니다. 사람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못하는 것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1)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자연의 법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능히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약속대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내 사라는 모두가 늙었기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50세만 되었어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100살, 사라가 90살이니 그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서 이삭을 낳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로 다시 젊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년에 네가 내년에 아기를 낳게 다고 하니 사라가 그 말을 듣고는 비웃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아기를 낳는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람을 통해서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라가 아기를 네 몸에서 낳는다고 말을 듣고 웃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나니 웃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간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써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앞에도 홍해바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뒤 따라 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바다를 갈라놓으시고 그리로 지나가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에서 굶주린 오천 명의 군중들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부르게 먹게 하고 남은 부스러기 열 두 바구니에 차게 한 일도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능치 못할 것은 없습니다. 빌 4 :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 고 했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는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무한대로 발전해 왔지만 완전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몸에 나는 질병을 완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완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행한 일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믿음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오 k여러분의 믿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자기확신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도 시련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오늘날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멀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착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도 부름 받고 25년 만에 아들을 품에 안은 것입니다. 그러고도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능력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길이 열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2. 하늘을 우러러 볼 때는 절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서 잡시나마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여호와 하나님은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 했습니다. "뭇별처럼 네 자손이 그러하리라. " 고 했습니다.
(1) 절망은 가장 큰 인생의 병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절망이란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 고 했습니다. 돈 많은 자도, 과학자도, 지식 있는 자도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가와바다 야스나리" 는 수 십 년 전에 절망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절망 중에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할 곳이 없습니다. 이력서를 수 십장을 내도 오라는 곳이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엉망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 자녀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절망 중에 있습니다. 나이 50대만 되면 회사에서 본인이 좋든 싫든 나와야 합니다.
사업하는 분은 사업이 안 된다고 절망합니다. 우리나라는 90년대에 이어서 21세기인 지금도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신자들은 절망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다 외국으로 나가 자녀를 교육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가 나쁘고 취직이 안 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기 힘들다고 다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절망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신자는 믿음만이 이러한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욥은 절망의 심연에서 위대한 재생을 보여준 모든 인생의 좌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다 잃고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자신은 병에 걸려 견딜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전보다 배나 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때때로 절망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그 때마다 우리는 믿음으로이기고 나가야 합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였던 베토벤은 귀머거리요, 가난하고, 여자에게 두 번이나 버림을 당하여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후에는 새로운 희망과 자신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로망 로랑은 "베토벤은 기쁨의 창조자가 되어 자기의 기쁨을 빼앗아간 세상에 도리어 기쁨을 나누어 준 자가 되었다. " 고 했습니다.
참으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고, 희망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약이 된 다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절망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늘을 우러러 바라 볼 때 네 자손이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 내 자손이 저렇게 많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절망된 일이 많고 심히 고통스러워도 절망하지 맙시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3, 하늘을 우러러 보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땅에 살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절망된 일이 있을지라도 절망을 이기고 살아야 합니다.
(1) 신앙은 높이 보고 멀리 보는 것입니다.
창 13 :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갈 곳을 몰랐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곳마다 자신의 땅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 볼 때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비록 낮은 땅에 살고 있어도 저 멀리 천성을 향하여 전진하고 나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학자 칼 발트(Karl Barth)는 "신자는 제 삼의 눈을 가져야 됩니다. " 라고 했습니다. 제 삼의 눈은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눈입니다. 신자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희망을 갖는 자는 설사 내일이 지상에 파멸이 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생각지 말고 멀리 내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설사 지금은 절망스러운 일이 있고 고통이 있어도 내일을 바라보고 이기고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이기고 높이 멀리 바라보고 인내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은 머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머리를 들고 하늘의 별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하나도 없고 낳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 하늘의 별을 세어보라고 하십니다.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썩어져 없어질 땅의 것을 추구하지 말고 날마다 새로운 하늘의 것을 찾아가기 위해 쉬지 않고 경주해야 합니다. 머리를 들면 하늘의 사닥다리가 보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교통이요, 평안과 기쁨입니다. 영적으로 교통하는 자는 언제나 쇠하지 않고 시들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쳐다볼 때 새로운 계시를 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을 쳐다볼 때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뜨거운 사명을 받아 능력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성령에 이끌려 계시에 접했습니다. 그는 그 때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준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머리를 들고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자기 동족의 위험을 깨우쳐 준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땅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쳐다보며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일어서는 신앙의 자세에서 승리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원대한 비젼을 가지고 전진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을 우러러 보는 믿음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떤 시련과 고통을 만나도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볼 때 절망을 이기고 나갑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신자는 높이 멀리 하늘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우러러 보는 믿음을 가진 신자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땅에 절망과 고통과 아픔이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을 바라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고 공허하고 혼돈한 세계를 육일 동안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도 지음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매번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시 8 : 1- 2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라고 감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는 세계와 눈에 보여지는 자연만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고 운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고 오염시키고 파괴시킴으로 자연의 재앙을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와 조화를 볼 수 있습니다.
찬송가 40장에 "주 여호와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 속이나 험한 골짜기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라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에는 조화가 있고 질서가 있다는 말입니다. 창 1 : 31에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가 무질서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비롯해서 자연만물은 뚜렷하게 질서를 유지하며 지구를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무소불능하시며, 거룩하시며, 사랑이 많으신가 하면 무척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정확무오하십니다.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고 기다리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무척 의심스럽고 불가능한 것 같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세의 구원과 부활, 미래의 축복과 번영은 전연 믿을 수 없는 일 같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조화와 질서를 보고 확신 할 수 있습니다.
(3) 창조의 여호와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전부 가능하신 것입니다. 사람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는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못하는 것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1) 100세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자연의 법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능히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약속대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내 사라는 모두가 늙었기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50세만 되었어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100살, 사라가 90살이니 그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서 이삭을 낳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로 다시 젊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년에 네가 내년에 아기를 낳게 다고 하니 사라가 그 말을 듣고는 비웃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아기를 낳는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람을 통해서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라가 아기를 네 몸에서 낳는다고 말을 듣고 웃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이 태어나니 웃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간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써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앞에도 홍해바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뒤 따라 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바다를 갈라놓으시고 그리로 지나가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에서 굶주린 오천 명의 군중들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부르게 먹게 하고 남은 부스러기 열 두 바구니에 차게 한 일도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능치 못할 것은 없습니다. 빌 4 :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 고 했습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는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무한대로 발전해 왔지만 완전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몸에 나는 질병을 완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완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행한 일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믿음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오 k여러분의 믿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자기확신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도 시련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신 분이십니다. 오늘날도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멀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착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도 부름 받고 25년 만에 아들을 품에 안은 것입니다. 그러고도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능력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길이 열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2. 하늘을 우러러 볼 때는 절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서 잡시나마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여호와 하나님은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 했습니다. "뭇별처럼 네 자손이 그러하리라. " 고 했습니다.
(1) 절망은 가장 큰 인생의 병입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절망이란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 고 했습니다. 돈 많은 자도, 과학자도, 지식 있는 자도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가와바다 야스나리" 는 수 십 년 전에 절망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절망 중에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할 곳이 없습니다. 이력서를 수 십장을 내도 오라는 곳이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엉망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 자녀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절망 중에 있습니다. 나이 50대만 되면 회사에서 본인이 좋든 싫든 나와야 합니다.
사업하는 분은 사업이 안 된다고 절망합니다. 우리나라는 90년대에 이어서 21세기인 지금도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신자들은 절망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다 외국으로 나가 자녀를 교육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가 나쁘고 취직이 안 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기 힘들다고 다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절망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신자는 믿음만이 이러한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구약의 욥은 절망의 심연에서 위대한 재생을 보여준 모든 인생의 좌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다 잃고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자신은 병에 걸려 견딜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전보다 배나 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때때로 절망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그 때마다 우리는 믿음으로이기고 나가야 합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였던 베토벤은 귀머거리요, 가난하고, 여자에게 두 번이나 버림을 당하여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후에는 새로운 희망과 자신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로망 로랑은 "베토벤은 기쁨의 창조자가 되어 자기의 기쁨을 빼앗아간 세상에 도리어 기쁨을 나누어 준 자가 되었다. " 고 했습니다.
참으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고, 희망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약이 된 다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절망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늘을 우러러 바라 볼 때 네 자손이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말씀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 내 자손이 저렇게 많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절망된 일이 많고 심히 고통스러워도 절망하지 맙시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3, 하늘을 우러러 보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땅에 살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절망된 일이 있을지라도 절망을 이기고 살아야 합니다.
(1) 신앙은 높이 보고 멀리 보는 것입니다.
창 13 :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갈 곳을 몰랐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곳마다 자신의 땅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 볼 때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비록 낮은 땅에 살고 있어도 저 멀리 천성을 향하여 전진하고 나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학자 칼 발트(Karl Barth)는 "신자는 제 삼의 눈을 가져야 됩니다. " 라고 했습니다. 제 삼의 눈은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눈입니다. 신자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희망을 갖는 자는 설사 내일이 지상에 파멸이 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생각지 말고 멀리 내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설사 지금은 절망스러운 일이 있고 고통이 있어도 내일을 바라보고 이기고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의 어려움을 이기고 높이 멀리 바라보고 인내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은 머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머리를 들고 하늘의 별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하나도 없고 낳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 하늘의 별을 세어보라고 하십니다. 네 자손이 그와 같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썩어져 없어질 땅의 것을 추구하지 말고 날마다 새로운 하늘의 것을 찾아가기 위해 쉬지 않고 경주해야 합니다. 머리를 들면 하늘의 사닥다리가 보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땅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교통이요, 평안과 기쁨입니다. 영적으로 교통하는 자는 언제나 쇠하지 않고 시들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쳐다볼 때 새로운 계시를 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을 쳐다볼 때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뜨거운 사명을 받아 능력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성령에 이끌려 계시에 접했습니다. 그는 그 때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겨준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머리를 들고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자기 동족의 위험을 깨우쳐 준 사실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땅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쳐다보며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일어서는 신앙의 자세에서 승리하는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원대한 비젼을 가지고 전진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을 우러러 보는 믿음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떤 시련과 고통을 만나도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볼 때 절망을 이기고 나갑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 신자는 높이 멀리 하늘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늘을 우러러 보는 믿음을 가진 신자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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