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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죄인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심

본문

세상(世上) 사람들은 사회(社會)가 범법자(犯法者)들을 잘 교도(敎導)하여 사회(社會)의 일원으로서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기(自己) 주변(周邊)에 범법자가 사는 것을 싫어하며,
노골적으로 불편(不便)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社會的) 냉대(冷待)로 인해서 형기(刑期)를 마치고 출소(出所)한 자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이며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오늘은 죄인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의인(義人)으로 불의(不義)한 자를 대신(代身)해서 죽으십니다. 벧전3: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義人)으로서 불의(不義)한 자를 대신(代身)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引導)하려 하심이라 육체(肉體)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1)예수께서는 의인(義人)이십니다. 죄 있는 자가 죄(罪)사함을 받기 위해서 형벌을 당하며 피를 흘리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예수의 고난(苦難) 당하심을 범죄(犯罪)함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苦難)으로 치부해 버려서는 절대(絶對) 안 됩니다. 사53: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의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적(的) 죽음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무죄(無罪)성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자가 죽는 것은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타인(他人)을 위해 아무런 효력(效力)을 발휘(發揮)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무죄(無罪)하신 의인(義人)이셨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죄(罪)사함(謝函)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2)죄(罪)를 속하기 위해 불의(不義)한 자를 대신(代身)해서 죽으십니다. 예수께서 죄인(罪人)을 위해 고난을 당하심은 대리적인 차원의 고난입니다. 그분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인(罪人)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苦難)을 대신(代身) 받아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인(罪人)으로서 죽으셨던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意味)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의인(義人)이셨으며, 불의한 우리를 대신(代身)해서 죽으셨기에 그 죽음은 대속(代贖)적(的)일 수 있습니다.
2. 단번에 드리신바 되어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히9:28절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고 했습니다.
1)단번에 드리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죽으신 죽음은 단번에 드려진 것입니다. 주님은 요3: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반복(反復)될 필요(必要)가 없이 영원(永遠)한 효력(效力)을 발휘(發揮)하는 단번(單番)의 죽음이었습니다. 과거(過去) 구약(舊約) 시대(時代)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고 있는 짐승의 희생제사가 드려졌었습니다.
구약(舊約) 시대(時代)의 희생(犧牲) 제사(祭祀)는 일회적(1回的)인 효력(效力)만을 갖고 있어서 사람이 죄(罪)사함을 얻고자 할 때마다 희생(犧牲)제사(祭祀)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적(的) 죽음은 단번(單番)에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救贖) 사역(使役)을 성취(成就)한 사건(事件)으로 그 효력(效力)은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더 이상 반복되어 일어날 필요가 없는 영원한 구속력을 가진 대속 적 죽음이었습니다.
2)구원(救援)에 이르게 하기 위해 두 번째 강림(降臨)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리(代理)적(的)인 죽음을 통해서 인간(人間)의 죄를 사하셨으며, 구속(救贖)받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의,
대속(代贖) 적(的) 죽음의 공로(功勞)에 힘입어 죄(罪) 사함(謝函)을 받고 생명을 누리며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이 완전한 구원에 이르러 구속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다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再臨), 그것은 모든 구원(救援)의 종지부(終止符)를 찍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役事)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축복의 도래 이나 불신자들에게는 영벌에 들어가게 하는 심판의 도래(到來)입니다.
고전15:25,26절에 "저가 모든 원수(怨讐)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不可不) 왕(王)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滅亡)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온전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고난(苦難)의 본(本)을 보이십니다. 벧전2: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苦難)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自取)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1)그리스도의 고난(苦難)은 믿는 자들에게 보이신 본(本)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苦難)은 대리(代理)적(的) 죽음이라는 대속(代贖) 적(的) 의미(意味) 외에도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苦難)과 죽음은 그 안에서 생명(生命)을 누리는 자들의 삶 가운데 요청(要請)된 모범(模範)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自身)안에 거하는 자기 백성(百姓)들로 하여금 자기(自己)를 좇도록 하기 위해서 기꺼이 죽음의 고난(苦難)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고난(苦難)은 모든 믿는 자를 향한 모범(模範)일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方向)의 좌표(座標)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聖徒)는 현실(現實)에서 당하는 고난(苦難)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分別)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2)믿는 자들은 선(善)한 행위(行爲)의 고난(苦難)에 참여(參與)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난(苦難)과 죽음을 당하셨던 것처럼 믿는 자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은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 지어다. " 라고 했습니다. 죄가 있어 당하는 고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와는 달리, 선한 행위를 하고도 받는 고난을,
잘 참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는 가운데 견디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칭찬 받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하셨으며,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자신의 모범을 따라 이러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4.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두 가지 성격(性格)을 띠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속(代贖)적(的)인 죽음으로서 의인 되신 예수께서 인간(人間)의 죄(罪)를 사함 받도록 하기 위해 대리로 죽으신 것을 의미(意味)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보여 준 모범(模範)으로서,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본(本)을 따라 선(善)한 행위(行爲)로 말미암은 고난(苦難)에 참예(參預)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을 알게 되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도록 귀하게 쓰임 받는 하늘나라 복음의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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