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본문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새 생명으로 충만하여 영육간에 강건케 되고, 소망으로 충만케 하여 모든 고통과 절망을 딛고 일어나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고전 15:3-4)셨다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든 사건이고, 예수님 자신도 그의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미리 말씀한바가 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이와 같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건이었으나 그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것을 느끼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저들에게 자신의 부활은 선지자들의 예언이며, 메시아가 거쳐야 할 과정임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27).
이 말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눅 24:25)고 힐책한 부분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이미 오래 전에 들었고, 빈 무덤을 보고 온 여인들이 전하는 말도 듣고 있었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힐책을 받았습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믿지를 못했고 오늘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믿을 만하고 또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도전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사건이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믿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인 사건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간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뒤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뒤지면서 기독교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지만 이를 반대하고 파괴하려는 마귀의 세력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벌써 기독교는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19세기 합리주의 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이 조작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규명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은 부활을 부인하는 글을 쓰려고 시도하였으나 마지막결론은 부활을 시인하고 말았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세 가지 부분에 주목을 합니다. 첫 번째는 그의 빈 무덤이고, 두 번째는 부활하신 그분이 나타났다는 부분이고, 세 번째는 상식적이거나 과학적인 입장에서 반대를 합니다.
그의 빈 무덤에 대하여 주목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교묘하게 변조하여 인간의 지성으로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제기한 이론 중에 제일 처음으로 나온 것은 기절설입니다. 기절설이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기절을 하셨을 뿐인데 이것을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장사를 하였더니, 잠시 후에 깨어나서 무덤 문을 열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주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이게 내어 줄 때, 로마 군인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하였고 더 확실하게 죽도록 하기 위해 심장에 창을 던졌습니다. 그러니 기절만 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시체를 도적질해 갔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도적질 해 간 것은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고, 시신을 옮겼다는 것은 홀즈만(O. Holtzman)이란 사람의 주장인데,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무덤에 장사를 지냈으나, 다음 순간 생각을 바꾸어 밤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측한 제사장들이 로마 군인들을 동원하여 3일간 무덤을 굳게 지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적질 해 갈 수 있었겠습니까
대개 이런 주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흔들고 오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공언합니다. 그의 부활을 부인할만한 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결코 제자에 의하여 조작되었거나, 그를 신격화하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화도 우화도 아닙니다. 이런 확실하고도 분명한 역사적 사건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의 힐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활하신 것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고 칭찬을 하십니다. 보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성경을 믿고 부활을 믿음으로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창찬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기초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째 날 곧 지금의 주일에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붓기 위하여 그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순히 시체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서 찾아갔을 뿐입니다. 만일 이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면 그들은 무덤으로 가지 않고 갈릴리로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부활하여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지 못하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뜻밖의 사건과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말과 이것을 확인시켜주는 빈 무덤입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눅 24:5).
이것은 너무도 뜻밖의 사건이었습니다. 저들은 놀라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는데 이 소식을 듣고 놀란 것은 제자들도 매 일반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급히 달려가 보았는데, 역시 빈 무덤만을 보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이때 달려갔던 요한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 20:9).
이렇게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몇 일 후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큰 확신을 갖고 이것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 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이 사실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합니다. 어떻게 자기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지상에서 말살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부활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고, 그를 위해 순교까지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까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사도들이 보고 전한 부활을 지금까지 믿고 있습니다. 이것에서 이탈하면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수 천년 기독교 역사에는 과학자도 있고, 철학자도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있고 경제인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시중의 깡패우두머리도 있었고, 사형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제자들이 목격하고 전한 그의 부활을 믿고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신앙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뿐 아니라 마음이 변하고 사상이 변하고 인격이 변합니다. 부활의 신앙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변화의 신앙입니다. 이런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보장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결과는 구원과 영생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육신도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까 그런 믿음이 어디에서 유래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부활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첫 열매란 다음에 그와 똑같은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죽음이 온 것은 첫째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속량 해 주실 뿐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는냐고"(요 11:25-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보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것을 확인시키고, 말씀을 통하여 썩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실 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부활도 믿고 이 소망을 굳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유의 선언
인간을 최후까지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며, 절망감을 주는 것은 죽음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권력가도, 재벌도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은 이것을 극복하게 합니다. 부활을 믿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살아지고 자유를 얻습니다. 죽음에 대한 자유는 죄에 대한 자유이며, 죄에 대한 자유는 영적 만족과 평안과 기쁨의 근원입니다.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합니다.
맺는 말
오늘 여러분은 십자가 밑에 어렵고 고달픈 인생의 짐을 내려놓으실 뿐 아니라 부활의 신앙으로 자유를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여러분도 죽음까지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후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 생명을 체험하며 감사와 찬송 중에 기쁘고 평안의 생활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고전 15:3-4)셨다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든 사건이고, 예수님 자신도 그의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미리 말씀한바가 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
이와 같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건이었으나 그의 제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것을 느끼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는 저들에게 자신의 부활은 선지자들의 예언이며, 메시아가 거쳐야 할 과정임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6-27).
이 말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눅 24:25)고 힐책한 부분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이미 오래 전에 들었고, 빈 무덤을 보고 온 여인들이 전하는 말도 듣고 있었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힐책을 받았습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 2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믿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믿지를 못했고 오늘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믿을 만하고 또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도전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사건이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믿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인 사건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때부터 지금까지 수천 년간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뒤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뒤지면서 기독교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지만 이를 반대하고 파괴하려는 마귀의 세력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벌써 기독교는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19세기 합리주의 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이 조작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규명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은 부활을 부인하는 글을 쓰려고 시도하였으나 마지막결론은 부활을 시인하고 말았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세 가지 부분에 주목을 합니다. 첫 번째는 그의 빈 무덤이고, 두 번째는 부활하신 그분이 나타났다는 부분이고, 세 번째는 상식적이거나 과학적인 입장에서 반대를 합니다.
그의 빈 무덤에 대하여 주목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교묘하게 변조하여 인간의 지성으로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이들이 제기한 이론 중에 제일 처음으로 나온 것은 기절설입니다. 기절설이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기절을 하셨을 뿐인데 이것을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장사를 하였더니, 잠시 후에 깨어나서 무덤 문을 열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주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이게 내어 줄 때, 로마 군인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하였고 더 확실하게 죽도록 하기 위해 심장에 창을 던졌습니다. 그러니 기절만 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는 시체를 도적질해 갔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도적질 해 간 것은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고, 시신을 옮겼다는 것은 홀즈만(O. Holtzman)이란 사람의 주장인데,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무덤에 장사를 지냈으나, 다음 순간 생각을 바꾸어 밤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측한 제사장들이 로마 군인들을 동원하여 3일간 무덤을 굳게 지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적질 해 갈 수 있었겠습니까
대개 이런 주장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흔들고 오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공언합니다. 그의 부활을 부인할만한 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결코 제자에 의하여 조작되었거나, 그를 신격화하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화도 우화도 아닙니다. 이런 확실하고도 분명한 역사적 사건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의 힐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활하신 것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고 칭찬을 하십니다. 보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성경을 믿고 부활을 믿음으로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창찬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기초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째 날 곧 지금의 주일에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붓기 위하여 그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단순히 시체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서 찾아갔을 뿐입니다. 만일 이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면 그들은 무덤으로 가지 않고 갈릴리로 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부활하여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지 못하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뜻밖의 사건과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말과 이것을 확인시켜주는 빈 무덤입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눅 24:5).
이것은 너무도 뜻밖의 사건이었습니다. 저들은 놀라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는데 이 소식을 듣고 놀란 것은 제자들도 매 일반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급히 달려가 보았는데, 역시 빈 무덤만을 보고 돌아왔을 뿐입니다. 이때 달려갔던 요한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 20:9).
이렇게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몇 일 후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큰 확신을 갖고 이것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 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이 사실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합니다. 어떻게 자기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십시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지상에서 말살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부활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고, 그를 위해 순교까지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까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사도들이 보고 전한 부활을 지금까지 믿고 있습니다. 이것에서 이탈하면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수 천년 기독교 역사에는 과학자도 있고, 철학자도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있고 경제인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시중의 깡패우두머리도 있었고, 사형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제자들이 목격하고 전한 그의 부활을 믿고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신앙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뿐 아니라 마음이 변하고 사상이 변하고 인격이 변합니다. 부활의 신앙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변화의 신앙입니다. 이런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보장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결과는 구원과 영생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육신도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까 그런 믿음이 어디에서 유래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부활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첫 열매란 다음에 그와 똑같은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죽음이 온 것은 첫째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속량 해 주실 뿐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는냐고"(요 11:25-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보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이것을 확인시키고, 말씀을 통하여 썩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실 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부활도 믿고 이 소망을 굳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유의 선언
인간을 최후까지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며, 절망감을 주는 것은 죽음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권력가도, 재벌도 죽음 앞에서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은 이것을 극복하게 합니다. 부활을 믿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살아지고 자유를 얻습니다. 죽음에 대한 자유는 죄에 대한 자유이며, 죄에 대한 자유는 영적 만족과 평안과 기쁨의 근원입니다.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합니다.
맺는 말
오늘 여러분은 십자가 밑에 어렵고 고달픈 인생의 짐을 내려놓으실 뿐 아니라 부활의 신앙으로 자유를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여러분도 죽음까지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후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 생명을 체험하며 감사와 찬송 중에 기쁘고 평안의 생활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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