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하신 예수님의 축도
본문
복음 중의 복음은 요한복음 3장 16절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수난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주님의 부활은 지금까지 주님이 우리들에게 들려 주셨던 구속과 구원의 복음이 모두 진실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주님 자신이 부활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도 훗날 주님처럼 사망권세 이기고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사건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곧 바로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이 세상에 40일간 더 계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축도 하시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본문 말씀 50-51절에는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축복하신 내용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이 축복의 말씀을 깊이 새겨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직접적인 축복
1)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라고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진 한 죄인으로서 끝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음은 죄가 없는 의의 죽음이며 예정된 죽음임이 증명되었고 그 죽음의 효력이 성경말씀과 같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믿을 때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함받아 평화를 누리고 병에서 나음을 입으며 그 이름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실 증거로 죽은 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 또한 주님 자신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시 삶을 받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임해서 이 땅에서 숨을 거둘지라도 언젠가는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이 땅에서 늘 기쁨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주님이 부활하셔서 찾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으나 다시 사신 주님을 확인하고는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소망이 되었으며 사망이 생명과 부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의 어떤 환난과 죽음까지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되므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늘 기쁨이 충만해야 될 줄 믿습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축도
1) 평안을 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하뇨"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두려워 말고 기뻐하라 내가 다시 살았노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열 한 명의 사도들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도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0장에서 19절과 21절에 연이어 두 번씩이나 평강을 비셨는데 여기서 평강을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20:19절의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의 말씀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며 "사망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것을 이기고 이렇게 다시 살아났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도 평안하거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요20:21절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의 말씀은 "장차 너희들이 복음으로 인하여 환난과 고초를 당할지라도 초연할 수 있는 담대함과 기쁨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에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음의 평안이 없으면 지옥이며, 비록 가난할지라도 마음의 평안이 있으면 거기는 천국이기 때문에 이 평안은 축복 중의 축복인 것입니다(잠17: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이런 평강을 주셨으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세상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이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도들도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평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고 매맞고 나온 후에도 기뻐하였습니다. 이에 성경은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1-42)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이 없었다면 어떻게 능욕받고 매맞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겠습니까
그리고 핍박받으면서 어떻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평안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6:15절과 7:55-60절 말씀에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의 마음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온 지 두 달 정도 되는 성도 한 분이 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종업원들이 걸핏하면 그만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영업에 지장이 있을까 두려워서 그들을 달래서 무마시켰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마음에 평안함이 있고 담대함이 생겨 얼마 전에 종업원 6명이 나간다고 하기에 그냥 내보냈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며 남은 종업원들이랑 일을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사업이 더 번창한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평안으로써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끄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을 깨닫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깨달을 줄 알아야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을 받으며 주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말씀의 비밀이 얼마나 꿀 송이 같고 정금 같은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일까요
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기록이 주님을 위해 기록된 말씀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 성경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오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알았다면 구주되신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② 그리스도가 고난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제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찾아오셨는데도 제자들은 믿지 않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마음에 깨닫게 하심으로 그들은 세상에 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셔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는 회개의 역사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으로 전파될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으며(마28:19-20), 눅24:47절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와 회개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회개하면 세례를 받아야 하기에 세례와 회개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은 백성이라고 증거하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세례 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두려워하지 마시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감사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세례로 이어져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적인 변화요 세례는 내적인 변화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과 공생애 기간 동안, 그리고 공생애의 마지막까지 복음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은 '회개'에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회개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깨닫게 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족속들이 구원받을 것을 깨닫게 하신 후 제자들에게 한가지 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을 따랐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목격한 이 제자들에게 죄로부터 해방과 영생을 전파할 책임이 있다고 일깨워 주시고 그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이 지상명령을 따라 피와 눈물로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교회가 생기고 수많은 성도들이 구원받게 된 것이며, 이 수많은 성도 가운데 우리들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영생을 세상에 전하여 그들도 우리와 같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들을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는 말씀은 인생에 대해 "왜 세상에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분명히 깨닫게 해줌으로 굉장한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과 쾌락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사는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는 일이고 이 일을 하다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다는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참된 보람과 가치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3)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22-23)는 말씀은 교회의 탄생과 교회가 가질 수 있는 권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4:49절과 사도행전 1:4절 말씀에서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으며, 사도행전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주시는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1-4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에게 그대로 임하여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성령 받기를 사모하여 모두 성령충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과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언제나 "성령을 받으라"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세례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주님께서 숨을 내쉬면서까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성령을 받으라고 완성형으로 말씀하신 뒤 다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강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이 셋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요한복음 20:22절에서 숨을 내쉬며 "성령 받으라" 하신 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겔37:9)와 같은 의미로서 이 말씀은 약속된 성령을 주실 것에 대한 상징, 또는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심으로 사도들이 성령의 일부를 받았다는 의미가 되며 바로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완전하게 받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성령세례 받는 것은 크나 큰 축복이며 영광이기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사도들도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받기를 권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복음의 증거도 이 성령세례 받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갔을 때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어본 후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성령세례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많은 구제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의 기도와 선행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성령세례였다면 이 성령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능력도 함께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충만을 받으면 또한 마가복음 16:17-18절 말씀에서와 같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사도들이 성령 받은 다음에 이러한 능력과 권세가 그들에게도 실제로 나타나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주님은 축도하시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500여명의 성도들이 감람산에 모여 있을 때 주님은 성령을 받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시고 축복하시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구름 타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계속해서 제자들을 축도 하셨습니다.
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축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에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시며 말씀을 나누시던 주님께서 식사하실 때 떡을 떼어 두 제자에게 축사하셨습니다. 그때 그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눈과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깨달을 수 없기에 늘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잠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축도를 받은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듯이, 실망과 낙담으로 신앙이 내려가는 자들에게 주님이 축도 하시므로 신앙이 올라가 소망과 기쁨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②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축도 하셨습니다.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축도 하시므로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축도 하실 때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어 빈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 피곤하고 지친 제자들에게 아침식사로 생선과 떡을 먹게 하시면서 축도 하시므로 그들을 회복시키셨듯이 피곤하고 지친 영혼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고 축도 하시므로 베드로에게 교회를 통하여 양을 돌보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들은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축도가 없으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모든 약속은 다 이루어졌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만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알 수 없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항상 기름 준비, 등 준비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수난과 부활은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과 부활과도 직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훗날 우리도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성령 받고 능력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게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은 주를 믿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구원 계획이 있으며 그 엄청난 구원 사역의 한 부분을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가 쌓아올린 최고의 정상이며 역사가 행군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이며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소망과 꿈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수난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주님의 부활은 지금까지 주님이 우리들에게 들려 주셨던 구속과 구원의 복음이 모두 진실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주님 자신이 부활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도 훗날 주님처럼 사망권세 이기고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사건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 중의 복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곧 바로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이 세상에 40일간 더 계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축도 하시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본문 말씀 50-51절에는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축복하신 내용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므로 함께 은혜를 나누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이 축복의 말씀을 깊이 새겨서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직접적인 축복
1)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라고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진 한 죄인으로서 끝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죽음은 죄가 없는 의의 죽음이며 예정된 죽음임이 증명되었고 그 죽음의 효력이 성경말씀과 같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믿을 때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함받아 평화를 누리고 병에서 나음을 입으며 그 이름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실 증거로 죽은 지 사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 또한 주님 자신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시 삶을 받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도 임해서 이 땅에서 숨을 거둘지라도 언젠가는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이 땅에서 늘 기쁨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주님이 부활하셔서 찾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으나 다시 사신 주님을 확인하고는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소망이 되었으며 사망이 생명과 부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세상의 어떤 환난과 죽음까지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되므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늘 기쁨이 충만해야 될 줄 믿습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축도
1) 평안을 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하뇨"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두려워 말고 기뻐하라 내가 다시 살았노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열 한 명의 사도들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도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0장에서 19절과 21절에 연이어 두 번씩이나 평강을 비셨는데 여기서 평강을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20:19절의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의 말씀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며 "사망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것을 이기고 이렇게 다시 살아났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도 평안하거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요20:21절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의 말씀은 "장차 너희들이 복음으로 인하여 환난과 고초를 당할지라도 초연할 수 있는 담대함과 기쁨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에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음의 평안이 없으면 지옥이며, 비록 가난할지라도 마음의 평안이 있으면 거기는 천국이기 때문에 이 평안은 축복 중의 축복인 것입니다(잠17: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이런 평강을 주셨으며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세상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이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도들도 주님이 주시는 이러한 평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고 매맞고 나온 후에도 기뻐하였습니다. 이에 성경은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1-42)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이 없었다면 어떻게 능욕받고 매맞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겠습니까
그리고 핍박받으면서 어떻게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평안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6:15절과 7:55-60절 말씀에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의 마음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온 지 두 달 정도 되는 성도 한 분이 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종업원들이 걸핏하면 그만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영업에 지장이 있을까 두려워서 그들을 달래서 무마시켰지만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마음에 평안함이 있고 담대함이 생겨 얼마 전에 종업원 6명이 나간다고 하기에 그냥 내보냈답니다.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며 남은 종업원들이랑 일을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사업이 더 번창한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평안으로써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끄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을 깨닫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깨달을 줄 알아야 예수님을 만나고 축복을 받으며 주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말씀의 비밀이 얼마나 꿀 송이 같고 정금 같은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 내용이 무엇일까요
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기록이 주님을 위해 기록된 말씀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으며 그 성경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오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알았다면 구주되신 예수님을 배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② 그리스도가 고난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제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찾아오셨는데도 제자들은 믿지 않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마음에 깨닫게 하심으로 그들은 세상에 나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셔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는 회개의 역사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으로 전파될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성삼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으며(마28:19-20), 눅24:47절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와 회개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회개하면 세례를 받아야 하기에 세례와 회개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은 백성이라고 증거하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세례 받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두려워하지 마시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는 감사한 마음으로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요 바로 이것이 세례로 이어져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내적인 변화요 세례는 내적인 변화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과 공생애 기간 동안, 그리고 공생애의 마지막까지 복음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역의 핵심은 '회개'에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회개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깨닫게 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족속들이 구원받을 것을 깨닫게 하신 후 제자들에게 한가지 더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을 따랐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목격한 이 제자들에게 죄로부터 해방과 영생을 전파할 책임이 있다고 일깨워 주시고 그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이 지상명령을 따라 피와 눈물로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교회가 생기고 수많은 성도들이 구원받게 된 것이며, 이 수많은 성도 가운데 우리들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영생을 세상에 전하여 그들도 우리와 같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들을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는 말씀은 인생에 대해 "왜 세상에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분명히 깨닫게 해줌으로 굉장한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과 쾌락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사는 목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는 일이고 이 일을 하다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다는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참된 보람과 가치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3)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22-23)는 말씀은 교회의 탄생과 교회가 가질 수 있는 권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4:49절과 사도행전 1:4절 말씀에서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으며, 사도행전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주시는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1-4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에게 그대로 임하여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성령 받기를 사모하여 모두 성령충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과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언제나 "성령을 받으라"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령세례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주님께서 숨을 내쉬면서까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겠습니까
성경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성령을 받으라고 완성형으로 말씀하신 뒤 다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강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럼 이 셋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요한복음 20:22절에서 숨을 내쉬며 "성령 받으라" 하신 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겔37:9)와 같은 의미로서 이 말씀은 약속된 성령을 주실 것에 대한 상징, 또는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심으로 사도들이 성령의 일부를 받았다는 의미가 되며 바로 이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완전하게 받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성령세례 받는 것은 크나 큰 축복이며 영광이기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사도들도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받기를 권고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복음의 증거도 이 성령세례 받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에 갔을 때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어본 후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성령세례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많은 구제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의 기도와 선행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성령세례였다면 이 성령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능력도 함께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충만을 받으면 또한 마가복음 16:17-18절 말씀에서와 같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사도들이 성령 받은 다음에 이러한 능력과 권세가 그들에게도 실제로 나타나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주님은 축도하시는 가운데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500여명의 성도들이 감람산에 모여 있을 때 주님은 성령을 받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시고 축복하시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구름 타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제자들이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 계속해서 제자들을 축도 하셨습니다.
①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축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에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동행하시며 말씀을 나누시던 주님께서 식사하실 때 떡을 떼어 두 제자에게 축사하셨습니다. 그때 그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눈과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깨달을 수 없기에 늘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잠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축도를 받은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듯이, 실망과 낙담으로 신앙이 내려가는 자들에게 주님이 축도 하시므로 신앙이 올라가 소망과 기쁨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② 디베랴 바다에서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축도 하셨습니다.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축도 하시므로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축도 하실 때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어 빈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 피곤하고 지친 제자들에게 아침식사로 생선과 떡을 먹게 하시면서 축도 하시므로 그들을 회복시키셨듯이 피곤하고 지친 영혼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내 양을 먹이라"(요21:15-17)고 축도 하시므로 베드로에게 교회를 통하여 양을 돌보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들은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축도가 없으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모든 약속은 다 이루어졌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만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알 수 없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항상 기름 준비, 등 준비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수난과 부활은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죽음과 부활과도 직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훗날 우리도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성령 받고 능력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게 하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은 주를 믿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구원 계획이 있으며 그 엄청난 구원 사역의 한 부분을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가 쌓아올린 최고의 정상이며 역사가 행군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이며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아니하는 소망과 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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