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신앙과 나의 삶....
본문
사람들은 누구나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거나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삶에 주인이 아닌 문밖의 손님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 (계3:20)
우리들이 할 일은 단지 마음의 문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열어주는 수고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것조차 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보니 누구 하나 주님을 만나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수고를 기꺼이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모든 세상의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는 주일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 염불을 외우듯이 그냥 우리들의 입술에서 그냥 흘려 나오는 날이 아닌 우리들의 삶의 고백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모든 의식에 있어서 마치 마술사가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가,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조가 그러합니다. 이런 기도와 신앙 고백은 우리들이 삶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합니다. 더더욱 오늘 이 부활주일이 일년에 한번 하는 주기적인 행사로 계란 하나 먹는 것쯤으로 생각해서는 더더욱 아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 받아 들여 질 때 가능합니다.
고대 동방의 왕자 네 명이 과학 기술을 익혀 이 세상 인류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첫째 왕자는 마른 뼈만 있으면 근육을 붙이는 방법을, 둘째 왕자는 뼈와 근육만 있으면 가죽과 턱을 입히는 방법을, 셋째 왕자는 뼈와 근육과 가죽과 털만 있으면 몸체를 만드는 방법을, 막내는 몸체만 있으면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왔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기술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른 뼈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먼저 첫째 왕자가 그 뼈에 근육을 붙이는 기술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다음은 둘째 왕자가 근육에 가죽과 털을 붙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셋째 왕자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막내가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넣는 순간 그 뼈가 사자의 뼈인터라 그들을 다 잡아 먹고 산속을 유유히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천년 전 동방의 선지자들이 과학이 발달할 미래를 내다보며 이런 이야기를 지어냈겠지만 과학의 극치를 이루는 요즘에는 이것이 공상과학이나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제동물에 이어 복제한 인간이 탄생 등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막을 수는 없겠지만 과학자들이 아무리 엄청난 업적을 쌓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과학자나 그 추종자들이 교만해져서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자신할 때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바벨탑 사건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은 권세가 최고의 시대였습니다. 그 권세와 악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차가운 돌무덤에 넣었습니다.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을 교만한 인간을 통해 죽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을 물리치시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분홍색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예수님 앞에서 "호산나 호산나"하며 외치고 그 앞에서 무릎을 끊고 경배할 때 제자들의 어깨는 저절로 활짝 펴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히고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예수님의 제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살길을 찾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슬픔과 실망과 절망에 빠져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을 때, 언제부터인가 누군가가 자신들의 옆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어디계시나이까 내가 지금 너무나 지쳐있습니다. " 이렇게 주님께 울부짖고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내가 너를 찾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또한 사 41:10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언제나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 가운데 계서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주님의 음성으로 강론하시데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많이 듣기는 들었지만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체가 없어진 것이 주님께서 다신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라고 생각하고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들만의 깊은 고민에 사로잡혀 아직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 주님을 보고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의 삶에 근심이 되어 주님과의 거리를 멀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허점 투성이요, 문제 투성인 그 제자들과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해 주시려고 동행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그 제자들이 고민했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주님은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드디어 주님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2000년 전의 한 이야기로 전해지는 내용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의 일상 속에 뛰어드셔서 나를 책망하시고, 믿음을 굳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혹은 설교를 통해서, 혹은 나의 가족을 통해서, 아니며 자연이나, 그 무엇인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들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을 가볍게 살아서는 않됩니다. 우리 주변의 어느 곳에나 주님의 음성과 가르치심과 깨우침이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그럼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는 우리의 삶에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 가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어다"라는 평안의 선포였습니다. 이 평화에 대한 선포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차원이 다르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주님은 당신을 제자된 우리들에게 언제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불안해 합니다. 우리들의 삶속에는 평안이 없는 듯 보입니다.
내일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오늘의 아픔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면 지금 나의 삶 가운에 있는 문제들이 아픔과 근심이 아닌 소망을 위한 기쁨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종점이 아닌 출발점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함부로 살아갑니다.
주님은 그런 마지막의 개념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셨습니다.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마지막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주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눅 24:33-35 말씀을 보면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They got upand returned at once to Jerusalem. There they found the Eleven and those with them, assembled together and saying, "It is true! The Lord has risen and has appeared to Simon. " Then the two told what had happened on the way, and how Jesus was recognized by them when he broke the bread.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새롭게 그 방향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출발들을 준비하게 됩니다.
22살의 일본 청년 오토다케가 쓴 '오체불만족'이란 수기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팔, 다리과 그의 없는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좌절해 버리고 포기해 버렸다면 그는 영영 그 생활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기에 그는 정상인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우리들의 어려운 상황이나 절망. 그리고 좌절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위해 도약하기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곧 부활하신 주님의 우리의 소망과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셋째는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라는 사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 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도 행전 1:8절 말씀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빨리 그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그리고 이 부활의 소식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소망이 된다면 우리들은 기뻐서 이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합시다. 이것은 주님의 부탁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행하여할 의무이며,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옵니까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우리들에게 평안을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는 날임을 분명히 기억합시다.
아멘.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삶에 주인이 아닌 문밖의 손님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Here I am!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and eat with him, and he with me. " (계3:20)
우리들이 할 일은 단지 마음의 문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열어주는 수고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것조차 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보니 누구 하나 주님을 만나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수고를 기꺼이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모든 세상의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는 주일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 염불을 외우듯이 그냥 우리들의 입술에서 그냥 흘려 나오는 날이 아닌 우리들의 삶의 고백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모든 의식에 있어서 마치 마술사가 주문을 외우듯이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가,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조가 그러합니다. 이런 기도와 신앙 고백은 우리들이 삶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합니다. 더더욱 오늘 이 부활주일이 일년에 한번 하는 주기적인 행사로 계란 하나 먹는 것쯤으로 생각해서는 더더욱 아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 받아 들여 질 때 가능합니다.
고대 동방의 왕자 네 명이 과학 기술을 익혀 이 세상 인류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첫째 왕자는 마른 뼈만 있으면 근육을 붙이는 방법을, 둘째 왕자는 뼈와 근육만 있으면 가죽과 턱을 입히는 방법을, 셋째 왕자는 뼈와 근육과 가죽과 털만 있으면 몸체를 만드는 방법을, 막내는 몸체만 있으면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 왔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기술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른 뼈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먼저 첫째 왕자가 그 뼈에 근육을 붙이는 기술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다음은 둘째 왕자가 근육에 가죽과 털을 붙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셋째 왕자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막내가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넣는 순간 그 뼈가 사자의 뼈인터라 그들을 다 잡아 먹고 산속을 유유히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천년 전 동방의 선지자들이 과학이 발달할 미래를 내다보며 이런 이야기를 지어냈겠지만 과학의 극치를 이루는 요즘에는 이것이 공상과학이나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제동물에 이어 복제한 인간이 탄생 등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막을 수는 없겠지만 과학자들이 아무리 엄청난 업적을 쌓아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만일 과학자나 그 추종자들이 교만해져서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자신할 때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바벨탑 사건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은 권세가 최고의 시대였습니다. 그 권세와 악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차가운 돌무덤에 넣었습니다.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을 교만한 인간을 통해 죽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것을 물리치시고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분홍색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예수님 앞에서 "호산나 호산나"하며 외치고 그 앞에서 무릎을 끊고 경배할 때 제자들의 어깨는 저절로 활짝 펴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히고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예수님의 제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살길을 찾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슬픔과 실망과 절망에 빠져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을 때, 언제부터인가 누군가가 자신들의 옆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어디계시나이까 내가 지금 너무나 지쳐있습니다. " 이렇게 주님께 울부짖고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내가 너를 찾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또한 사 41:10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So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be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언제나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 가운데 계서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주님의 음성으로 강론하시데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많이 듣기는 들었지만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체가 없어진 것이 주님께서 다신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라고 생각하고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들만의 깊은 고민에 사로잡혀 아직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 주님을 보고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여러분들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들의 삶에 근심이 되어 주님과의 거리를 멀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허점 투성이요, 문제 투성인 그 제자들과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해 주시려고 동행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그 제자들이 고민했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주님은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드디어 주님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2000년 전의 한 이야기로 전해지는 내용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의 일상 속에 뛰어드셔서 나를 책망하시고, 믿음을 굳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혹은 설교를 통해서, 혹은 나의 가족을 통해서, 아니며 자연이나, 그 무엇인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들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을 가볍게 살아서는 않됩니다. 우리 주변의 어느 곳에나 주님의 음성과 가르치심과 깨우침이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그럼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는 우리의 삶에 평안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 가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어다"라는 평안의 선포였습니다. 이 평화에 대한 선포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차원이 다르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주님은 당신을 제자된 우리들에게 언제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불안해 합니다. 우리들의 삶속에는 평안이 없는 듯 보입니다.
내일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오늘의 아픔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있다면 지금 나의 삶 가운에 있는 문제들이 아픔과 근심이 아닌 소망을 위한 기쁨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종점이 아닌 출발점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함부로 살아갑니다.
주님은 그런 마지막의 개념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셨습니다. 죽음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마지막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주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눅 24:33-35 말씀을 보면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They got upand returned at once to Jerusalem. There they found the Eleven and those with them, assembled together and saying, "It is true! The Lord has risen and has appeared to Simon. " Then the two told what had happened on the way, and how Jesus was recognized by them when he broke the bread.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새롭게 그 방향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출발들을 준비하게 됩니다.
22살의 일본 청년 오토다케가 쓴 '오체불만족'이란 수기를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팔, 다리과 그의 없는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좌절해 버리고 포기해 버렸다면 그는 영영 그 생활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았기에 그는 정상인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우리들의 어려운 상황이나 절망. 그리고 좌절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위해 도약하기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곧 부활하신 주님의 우리의 소망과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셋째는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라는 사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 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도 행전 1:8절 말씀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빨리 그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그리고 이 부활의 소식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소망이 된다면 우리들은 기뻐서 이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합시다. 이것은 주님의 부탁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행하여할 의무이며,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옵니까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우리들에게 평안을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는 날임을 분명히 기억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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