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 늦은 듯 한 기적
본문
우리 주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도 그 부활에 참여할 것을 믿습니다. 부활을 약속받고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될 우리들은 이 세상의 마지막 때 심판의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확신하십니까 부활의 약속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부활의 의미를 또한 행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우리들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부활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들은 늦은 듯하나 느긋하게 끝까지 견디며 살아가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은 가장 늦게 일어났으면서도 가장 큰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동의하시지요
예수님은 그의 생애 가운데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시기도 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손마른 자도 펴게 하셨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병자들이 치유기적을 요구하고 예수님이 고쳐주시고자 할 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 모든 기적들은 예수님의 생애동안 일어난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적도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기적보다 더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수님 곁에 끝까지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남자 제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부활기적의 첫 증언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 제자들만이 첫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가장 늦게 일어날 부활기적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남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어도 여자 제자들은 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늦은 기적이었지만 가장 위대한 기적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도 늦어지는 듯한 기적이지만 부활을 끝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크고 작은 기적으로 엮여있습니다. 병에서 기적처럼 낫기도 하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자신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둘도 없는 좋은 기회가 갑자기 자기에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적의 연속 속에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 좋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할 기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도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부활의 기적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끝났다 싶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환경은 우리로 기다리는데 매우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다리고 견디는 일을 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삶의 태도는 더욱 속도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기다리는 것이 약해집니다.
모든 것을 빠르게 이루려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느리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제시한 책이 있습니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사간에게 쫒겨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수 있는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한 능력은 바로 ‘느림’인데, 이는 우리에게 시간에다 모든 기회를 부여하라고 속삭인다는 것입니다.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자연발효를 통해 숙성시키는 음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늦더라도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점에서 부활의 신앙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환경과 지혜를 주신 것 같습니다.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늦어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로 이루도록 말씀한 명령과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기다립시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늦더라도 느긋하게 기다리며 살 줄 아는 사람은 필연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필연이라 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따라 살며 이루어지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필연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연관된 기적을 생각해 볼 때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사람들에게 행하여 주신 기적들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적들이었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한 것도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도 다 그때 그때 필요한 대로 고쳐주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기적은 달랐습니다. 이는 이미 세 번에 걸쳐 예언된 것이요 때가 되매 여호와 하나님이 성취시키신 기적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필연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남자 제자들은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필요를 우선으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필요 그 이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필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필요에 따라 사는 사람과 필연에 따라 사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장 당장 필요한 것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면 종국에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살아갑니다. 필요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양과 같습니다. 양은 눈 앞에 있는 풀과 나뭇잎을 좇아 따라갑니다.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따라 갑니다. 그러다보니 낭떨어지에도 떨어지게 되고 가시덤불에 걸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뜻대로 이루신다는 필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목표를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뒤를 잘 살펴보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 어디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면서 앞으로 어떠한 내용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피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좀 늦더라도 꼭 이루어야 할 당위성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치 더 좋은 풀밭과 맑은 물가를 찾아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와도 같습니다. 목자는 잠시 돌짝밭과 같은 어려움이 있어도 잠시 내려갔다 올라가야 하는 도랑이 있어도 이를 극복하며 양을 인도하여야 합니다. 부활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은 목자와도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고난을 극복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필요에 따라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필연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십니까 늦더라도 필연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는 좀더 믿을 수 있는 개인의 삶을 만들어 가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서로 예측할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꾸준하게 이겨나가는 삶을 살고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필연에 따라 살아간 한 사람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마라톤의 영웅 아베베를 잘 압니다.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뛰어 우승하였고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운동화를 신고 뛰어 우승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 차를 타고 다니다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4년 후 바퀴의자를 타고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나와 또 다시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 그 길을 끝까지 달렸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도 삶이 그러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공부를 해도 필요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과 필연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공부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당장 써먹을 것만을 공부합니다. 당장 대학에 들어가는 문제만 생각하고 공부합니다. 그러니 진정한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필연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생 전체를 걸쳐 공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인줄 알기에 계속 공부하고 그 무엇인가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공부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자세로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가 오늘 어려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필요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필연보다는 당장 눈앞에 필요한 필요에 따라 살아가다 보니 깊이가 없습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남의 기술을 빌어다 사용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빌려올 때가 없습니다. 기초과학과 기초학문이 발달하지 않아 새로운 필요에 따른 기술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제 후퇴하고 있습니다. 필연에 따라 나라가 움직이면 바로 꼭 필요한 기술과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의 것을 빌어다 베껴 먹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 나라에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부활의 정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부활이 전하는 필연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계속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음성을 들으며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들은 천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듣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남성 제자들은 이를 직접 듣지 못하였습니다. 여성 제자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늦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필연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여호와 하나님,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며 살게 됩니다. 하지만 부활의 기적을 믿고 늦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항상 ‘여호와 하나님, 제가 여호와 하나님 입장을 헤아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항상 그 길을 확신 가운데 가니 잘 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는 바로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점점 더 끝이 좋아집니다. 처음에는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됨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렇게 일어날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끝까지 견디는 삶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되어 있는데, 바로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까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부활의 의미를 좀더 정확히 이해하시고 살아가세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과 오늘 현실 속에서 필연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세요. 부활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과 정신이 우리의 삶을 유익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우리들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부활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들은 늦은 듯하나 느긋하게 끝까지 견디며 살아가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은 가장 늦게 일어났으면서도 가장 큰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동의하시지요
예수님은 그의 생애 가운데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시기도 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손마른 자도 펴게 하셨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병자들이 치유기적을 요구하고 예수님이 고쳐주시고자 할 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 모든 기적들은 예수님의 생애동안 일어난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적도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기적보다 더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예수님 곁에 끝까지 함께 하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남자 제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부활기적의 첫 증언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 제자들만이 첫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가장 늦게 일어날 부활기적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남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어도 여자 제자들은 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늦은 기적이었지만 가장 위대한 기적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도 늦어지는 듯한 기적이지만 부활을 끝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크고 작은 기적으로 엮여있습니다. 병에서 기적처럼 낫기도 하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자신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둘도 없는 좋은 기회가 갑자기 자기에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적의 연속 속에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 좋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할 기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도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부활의 기적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끝났다 싶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고 견디는 것이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환경은 우리로 기다리는데 매우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다리고 견디는 일을 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삶의 태도는 더욱 속도전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기다리는 것이 약해집니다.
모든 것을 빠르게 이루려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느리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제시한 책이 있습니다.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갑자기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사간에게 쫒겨다니지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로 알수 있는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한 능력은 바로 ‘느림’인데, 이는 우리에게 시간에다 모든 기회를 부여하라고 속삭인다는 것입니다.
빠르게 진행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자연발효를 통해 숙성시키는 음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늦더라도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점에서 부활의 신앙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환경과 지혜를 주신 것 같습니다.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늦어진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로 이루도록 말씀한 명령과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기다립시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늦더라도 느긋하게 기다리며 살 줄 아는 사람은 필연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필연이라 함은 여호와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을 따라 살며 이루어지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필연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과 연관된 기적을 생각해 볼 때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사람들에게 행하여 주신 기적들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기적들이었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한 것도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도 다 그때 그때 필요한 대로 고쳐주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기적은 달랐습니다. 이는 이미 세 번에 걸쳐 예언된 것이요 때가 되매 여호와 하나님이 성취시키신 기적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필연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남자 제자들은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필요를 우선으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필요 그 이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필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필요에 따라 사는 사람과 필연에 따라 사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장 당장 필요한 것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면 종국에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살아갑니다. 필요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양과 같습니다. 양은 눈 앞에 있는 풀과 나뭇잎을 좇아 따라갑니다.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따라 갑니다. 그러다보니 낭떨어지에도 떨어지게 되고 가시덤불에 걸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필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뜻대로 이루신다는 필연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목표를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뒤를 잘 살펴보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 어디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면서 앞으로 어떠한 내용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피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좀 늦더라도 꼭 이루어야 할 당위성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치 더 좋은 풀밭과 맑은 물가를 찾아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와도 같습니다. 목자는 잠시 돌짝밭과 같은 어려움이 있어도 잠시 내려갔다 올라가야 하는 도랑이 있어도 이를 극복하며 양을 인도하여야 합니다. 부활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은 목자와도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고난을 극복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필요에 따라 살아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필연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십니까 늦더라도 필연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는 좀더 믿을 수 있는 개인의 삶을 만들어 가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서로 예측할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고난이 와도 꾸준하게 이겨나가는 삶을 살고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필연에 따라 살아간 한 사람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마라톤의 영웅 아베베를 잘 압니다.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뛰어 우승하였고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운동화를 신고 뛰어 우승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 차를 타고 다니다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4년 후 바퀴의자를 타고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나와 또 다시 우승을 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 그 길을 끝까지 달렸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도 삶이 그러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공부를 해도 필요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과 필연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공부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당장 써먹을 것만을 공부합니다. 당장 대학에 들어가는 문제만 생각하고 공부합니다. 그러니 진정한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반면 필연에 따라 공부하는 사람들은 인생 전체를 걸쳐 공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인줄 알기에 계속 공부하고 그 무엇인가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공부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자세로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가 오늘 어려운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필요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필연보다는 당장 눈앞에 필요한 필요에 따라 살아가다 보니 깊이가 없습니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남의 기술을 빌어다 사용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빌려올 때가 없습니다. 기초과학과 기초학문이 발달하지 않아 새로운 필요에 따른 기술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제 후퇴하고 있습니다. 필연에 따라 나라가 움직이면 바로 꼭 필요한 기술과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의 것을 빌어다 베껴 먹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이 나라에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부활의 정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부활이 전하는 필연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계속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음성을 들으며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들은 천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듣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남성 제자들은 이를 직접 듣지 못하였습니다. 여성 제자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늦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필연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여호와 하나님,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하며 살게 됩니다. 하지만 부활의 기적을 믿고 늦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항상 ‘여호와 하나님, 제가 여호와 하나님 입장을 헤아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항상 그 길을 확신 가운데 가니 잘 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는 바로 우리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점점 더 끝이 좋아집니다. 처음에는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게 됨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렇게 일어날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끝까지 견디는 삶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되어 있는데, 바로 부활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까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부활의 의미를 좀더 정확히 이해하시고 살아가세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과 오늘 현실 속에서 필연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세요. 부활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과 정신이 우리의 삶을 유익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