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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믿어지지 않는 부활

본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다.
오늘은 우리가 부활주일로 지키며,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쁨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한계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 우리 다같이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리기를 원한다. 할렐루야!
아울러 예수님께서 그 놀라운 능력과 권세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한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의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를 하는 일이 아니면 일단 그것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들은 자기가 배운 지식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 이상의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인간들에 의하여 불신을 받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그것은 부활이라고 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살펴보아도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활을 말하면 그들은 전생과 내세를 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윤회하지요"
전생에 왕이었던 사람이 이 생에서는 개로, 다음 생의 바퀴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활로 이해를 하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틀 밖에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사고 영역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만 팔을 벌리면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굶어죽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자신의 사고 영역 안에서만 사고하려고 했던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 어떻게 그 폐쇄된 사고의 틀을 벗어버릴 수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자.
1. 불신으로 근심하는 여인들과 사도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저녁에 무덤에 장사되셨다.
이틀이 지난 주일날, 이른 새벽에 여인들 몇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다.
여인들 중에는 예수님에게 무척이나 사랑을 받았으며, 예수님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 있었다.
이들이 무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무덤을 막아두었던 돌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여인들은 근심에 사로잡혔다.
이들이 근심에 사로잡혔다는 말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당황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사랑했던 예수님이 죽임 당한 것만 해도 억울하고 슬픈 일인데 시신까지 도둑질 당했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다.
단지 그들은 예수님이 당한 처지가 인간적으로 너무나 안되어서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비록 무덤까지 가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운명하신 뒤에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근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11절)
그동안 믿고 따르던 스승이 없어졌으니 제자들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믿었던 예수님이 자기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혼자 먼저 가버리셨다는 것 때문에 마음에 실망이 컸던 모양이다.
여러분, 이들은 한결같이 인간적인 면에서만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고 슬퍼하고 있다.
왜 이렇게 인간적이며, 감정적으로 근심에 사로잡혔을까요
부활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수난 당하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다. (눅 9:22, 눅 17:25, 눅 18:32)
이들은 빈 무덤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며, 부활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분, 부활이 무엇인가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못 자국이 난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며 만져보라고 하셨다.
제자들과 함께 구운 생선을 드셨다. (눅24:42)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육체를 가졌으면서도 순간이동도 하시는 이런 모습은 불가사의이다.
그러면서도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시며,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이 복음 증거에 대한 명령을 하셨다. 이것이 부활한 육체의 모습이다.
여러분이라도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여인들과 제자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 형제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퍼하는 것처럼 그저 인간적이고 감정적으로만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식 선에서만 이해하려고 하였다.
자신들의 사고 영역 밖의 것에 대하여서는 생각하거나 믿을 엄두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여인과 제자들처럼 오늘 현대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상식 밖의 것에 대하여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이 되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고증을 하여도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식 선에서만 이해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이렇게 상식 선에서만 이해하므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우를 범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은 성인들과 같은 부류에서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조금은 도덕적이고 선구자적인 분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살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불행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도 상식 선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큰 은혜를 결코 맛볼 수 없으며, 쓸데없는 근심만 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2. 근심을 극복하려면
여러분, 여인들이 서 있는 빈 무덤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분명히 슬픔의 현장임에 틀림없다.
슬픔의 현장을 어떻게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여인들은 빈 무덤이라는 슬픔의 현장 앞에서 이렇게 인간적이고 감정적 반응으로 근심하였지만 종국에는 큰 기쁨을 회복하였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슬픔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게 되었다.
"여인들로 하여금 빈 무덤이라는 슬픈 사고 현장에서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면서 부활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부활을 사실로 믿게 되기를 기대한다.
여러분, 여인들로 하여금 빈 무덤에서 슬픔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로 달려가게 한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여인들이 근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무덤을 지키던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말했다.
5절을 보자.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순간 여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억해 냈다.
8절을 보자.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여인들이 빈 무덤에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 돌아간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여러분, 여기 기억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첫 번째는 단지 그 말씀을 기억해 냈다는 뜻이다.
여인들은 엊그제 예수님이 당하는 고통의 십자가 앞에서 이성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옛 이야기에 이런 말이 있다.
종이 주인의 심부름으로 집을 나서면서 분명 오늘 할 일을 계획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개울을 건너는 중에 돌다리에 미끄러져 물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만 그 충격으로 종은 자신의 할 일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주인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 분명 삼일 후의 부활을 들었지만 그들은 십자가라는 충격의 현장에서 동정심과 같은 인간적인 마음 때문에 그 말씀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빈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빈 무덤을 지키던 천사가 그 사실을 깨우쳐 주자 여인들은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기억한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뜻은 부활이라는 사건 현장을 직접 보면서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실 여인들은 부활 현장을 보기 전에는 부활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빈 무덤이라는 실제적인 현장에서 부활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부활이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으며, 믿게 되었던 것이다.
"아하, 그게 이런 말이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바로 기억해 낸다는 말의 뜻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빈 무덤이라는 사건 현장에서 그 사건에 맞는 말씀을 천사들을 통하여 해 주심으로 여인들의 마음에 잠자던 믿음을 일깨워 주셨다.
그리고 여인들에게 근심을 변하여 기쁨을 얻게 하셨으며, 근심으로 인하여 닫혔던 입술을 열어 부활을 소리쳐 외치게 하셨다.
여러분, 근심의 현장에 있는가
죽음의 현장에서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어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던 것을 기억하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믿어지지 않는 부활 때문에 근심에 사로잡혔던 여인들을 찾으시고 기쁨을 회복하게 해 주셨다.
이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찾으시고 근심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확신 주시기를 원한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는 이런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여서 빈 무덤이라는 슬픔의 현장에서도 기쁨을 회복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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