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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왜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본문

"주일 하루의 예배가 한 주간을 거룩하게 하고, 부활절 예배가 한 해를 거룩하게 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우리 신앙인의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는 말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을 빼어버린다면 아마 껍데기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는 복음이란 상상할 수가 없습니 다. 전해야 할 복음도 부활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복음은 잘못된 복음이거나 거짓된 복음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는 가정을 하면서 부활이 없을 경우 우리의 신 앙도, 교회도, 구원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다 헛될 수밖에 없음 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역설을 통하여 바로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진수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시간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기쁨과 감격 이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부활 하신 몸으로 이 예배가운데 함께 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우리에 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새로운 위대한 시작이 있음을 우리에 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손을 탁탁 털면서 이제는 다 종결되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으랴는 태도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인류 최대의 적

모든 인류가 이 죽음 앞에서 오랫동안 지배를 당했습니다. 죽음이라는 무서운 세력 앞에 온 인류는 벌벌 떨며 굴종하다시피 그 앞에 엎드렸던 것 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죽음은 무서운 위협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인류 최대의 적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죽 음은 우리의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 헛수고로 만들어 버립니다. 죽음 앞에서 나는 안 죽는다고 반항하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죽음 앞에 두손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란 어쩌면 무덤을 향해 진행하는 역사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 입니다. 그 때는 우리의 모든 활동이 끝날 것이고 그 동안 우리가 쌓아올린 모든 가치도 무용지물로 변해버리고 말 거예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얻으 려고 했던 지위와 명예와 물질 이 모든 것도 다 쓰레기처럼 그 앞에서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위세만큼 크고 당당한 것이 또 어디 있습니 까

그러나 이 죽음 앞에서 '아니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죽음너 머에 영생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신앙 속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무서운 죽음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공포 에 떨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이 상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죽음을 향하여 "죽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사망 너!" 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누구나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호령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독화살이 어디 있느냐 모든 것을 일체 무로 돌려버리는 죽음아, 너의 위협이 어디 있느냐 모든 것을 강탈해 가는 죽음아, 너의 찌르는 것이 어 디 있느냐"

그렇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 바로 그것이 죽었다 는 것을 선포하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인류는 죽음 앞에 맥 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부 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생명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 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 11:24-25) 믿습니까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은 죽음 너머에 새로운 생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ale기 때문입니다.

죽음 너머로

괴테가 쓴 '파우스트'의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인공 파우스 트가 인생의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인생을 깨끗이 청산할 결심을 합니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독배를 마시려는 그 순간, 길 건너편 교회당으로부터 부활절을 알리는 새벽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를 듣자 파우스트의 가 슴속에 묘한 감동이 일기 시작합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 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면 지금 나에게도 새 생명을 주어 능히 부활하도 록 하시지 않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교회로 발 걸음을 옮깁니다. 그 종소리가 자기를 부르는 주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들 자 주저없이 독배의 잔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시도합니다. 예 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무덤을 넘어서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죽음이나 무덤이 더 이상 나 자신의 삶을 방해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무덤을 뒤로하고 부활의 그 날을 위해 전진하는 삶만이 남아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못입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쉼표에 불과합니다. 죽음은 마 지막 페이지가 아닙니다. 새로운 장을 열어놓는 위대한 사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영생의 문을 향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까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약속을 소망하며 나갈 때에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 주님이 약속하신 영생을 향하여 나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더 이상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앞에서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선언을 들어보십시오. "어찌하여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 고 살아나셨느니라"

이 시간도 죽음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는 자들에게 가서 천사들처럼 담대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 셨음으로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심 으로 죽음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소망의 미래를 열어주고 계십 니다. 그 분은 죽음으로 파멸에 이르신 것이 아니라 사망을 발아래 굴복시 키시고 영원히 살아 왕노릇하시는 줄 믿습니다. ' 이 시간 여러분의 눈이 열 려 죽음너머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시며 소망가운데 부활신앙으 로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최후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최후의 승리가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것을 보 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날,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 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온갖 거짓과 속 임수, 배신과 증오, 교만과 불의가 총동원되어 주님을 저주하고 비난의 화 살을 쏘아댑니다. 이 기회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서 악한 세력들은 온통 십자가로 집결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끊어 놓 으려고 발악을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의 생명을 끊는데 성공 을 거둡니다. 그들이 의도한대로 속임수가 진리를 이겼고 증오가 사랑을 몰 아내었으며 불의가 정의를 짓밟고 어두움이 빛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죽음 이 생명을 이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무덤에 가두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소리높여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당신과 우리의 부활

그러나 그들의 환호성은 잠시뿐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 들의 입을 막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온 천하에 증거하십니다. 생명 의 주님을 묶어둘 법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생명을 파괴 할 수가 없습니다. 거대한 무덤의 돌문도 그의 부활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 던 것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끝나버린 자리에서 주님은 부활을 통해 반드시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생명이 죽음을 이기며 사랑이 증오를 이기며 진리가 불의를 이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은 마치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짓된 것들이 횡행하 면서 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 전체가 어둠의 세력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그들의 죄와 불의 앞에 무릎 을 꿇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고 혼란케 하고 멸망으로 이끄는 악한 세력들이 더 이상 활개치고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일거에 모든 거짓과 불의가 사라지고만 것입 니다.

구상 시인 쓴 부활 송 가운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라는 아름다운 시 가 있습니다.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정의는 반드시 이기는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헛되지 않은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의 고통은 매우 값진 것이 되는 것이며 당신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이 있으므로 인해서 우리의 삶은 허무의 수렁이 아닙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더 이상 거짓이 진실로 행세할 수가 없 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불의가 힘을 잃고 정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되 었던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이 거짓과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최후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 여줍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시신을 마지막 정리하기 위해서 무덤을 찾은 제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5절, 6절입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 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할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기억하라는 천사들의 음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천사들 이 예수님이 평소에 너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를 기억하라고 합니 다. 이 부활사건이 주님께서 평소 우리에게 예언해 주신 말씀대로 성취되었 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주님은 살아계실 때, 평소 자신이 어떤 고난을 받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인자는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하셨 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시면 주님이 하신 말씀의 내용이 무엇임을 가르쳐주 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신 대로 고난을 받으셨고 말씀하신 대로 이 세 상의 죽음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 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중요한 약속 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어겼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사람이 또 다른 약속을 해올 때 그 사 람의 약속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속으로 그러지 않겠어요 '내가 한 번 속으면 됐지 두 번 다시 속을줄 알아. ' 그 사람이 아무리 철썩 같이 약속을 한들 반신반의하고 치워버릴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 어지지 않았다고 해보세요. 예수님은 거짓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 의 증언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모든 제자들의 증언도 엉터리로 판명이 날 수밖 에 없습니다. 제가 여기에 서서 하는 설교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 지 거짓으로 청중을 우롱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믿 는 것은 주님의 말씀은 진실하기에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 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 건은 바로 이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죽음도 그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이 말 씀이 성취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권력자 라도, 아무리 힘이 강한 자라도, 아무리 지혜가 있는 자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 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기억하라

주님의 부활은 주님이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 람들에 의하여 예언된 말씀,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하신 약속의 말씀이 예 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는 자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실 뿐만아 니라 장차 재림주로 오셔서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 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부활이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논하기 전에 말씀으로 돌아가 주님의 약속이 어떻게 선포되고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깊이 살펴 보아야할 것입니다. 내 생 각대로 주님의 부활을 판단하고 분석하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돌아가십시 오.

부활이 아직 의심되는 분이 계십니까 부활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부활을 어떻게 하든지 부인하고 싶은 마음의 충동을 느끼 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의 수난과 부활을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를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 니다.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바르게 묵상하고 받 아들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러분의 부활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 다. 8절 9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천사들의 말을 통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순간, 빈무덤의 의미를 비로소 발견하고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 해 다른 제자들을 찾아갑니다. 말씀을 깨닫는 순간 그들의 믿음이 회복되어 깊은 신앙의 경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으십시오

부활은 우리에게 믿음을 강요합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인간의 짧은 경험 으로 이 부활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 다. 왜냐하면 이 부활의 사건이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여 이루신 사건이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단지 이성으로 분석하고 이 성으로 판단하려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신 사 건이기에 이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인간이 이성으 로 이해가 안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 사실이 부정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이성에 맞지 않는다고 모조리 거부해 버 린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간이 판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이 자리에 부활하신 몸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부활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의심하는 제자 도 마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손과 발에 난 못자국을 보여주심으로 부활이 어떤 인간의 환영이나 공상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 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주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여기서 조심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무 조건 믿으라고 한다고 해서 있지도 않은 일을 무조건 믿는 일은 대단히 위 험한 일입니다. 주님은 막무가내 식으로 믿을 것을 강요하신 적이 없습니 다. 분명한 것은 믿음에 앞서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일으키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건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먼저가 아니라 부활의 사실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부활사건이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믿음이 부활사건을 만든 것이 아 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부활을 만든 것이 아니라 부활이 기독교를 태동 시킨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서울에 집회 차 오셨을 때에 많은 신문방송기자 들이 몰려와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 예수 님이 오늘도 살아 계십니까" 이 때 목사님의 한마디 대답이 그들의 말문 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주 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그 죽음의 빗장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언 제라도,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도록 해 주십니다. 부 활의 주님은 그 죄와 죽음의 위력을 단숨에 소멸시켜 주심으로 최후의 승 리를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누구나 더 이상 죽음을 두려 워하지 않고 영생의 소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을 통해 주시는 새생명, 새소망, 새능력으로 이 어둠과 불의와 거짓과 증오의 세력을 물리 치며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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