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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여기 계시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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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비석에는 오직 한 종류의 표제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기 누워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죽은 자의 이 름과 임종연월일과 그의 선행에 대한 칭송이 쓰여 있습니다. 모 든 무덤에는 죽은 자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가 여기 누워 있 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가 여기 누 워 있지 않다'라고 한 무덤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입니 다. 저는 이스라엘에 갔을 때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무덤을 보았 습니다. 성지순례중 큰 깨달음과 은혜가 있었던 장소 중 하나가 예수님의 빈 무덤이었습니다. 빈 무덤을 보고 나올 때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허전하였다고 하는 것 이 정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 의 무덤을 보고 허전해야 옳지, 거기서 2000년된 주님의 시신을 보았다면 우리는 망한 것입니다. 이집트의 카이로 박물관에서 20 00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미이라들을 보고 나올 때는 뭔가를 본 것 같았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유물들을 많이 보았기에 상식과 지식이 쌓였고 허전하지 않았습 니다. 그러나 허망하였습니다. 2000년된 여자의 노란 머리카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 뭐합니까 죽었는데 말입니다.

성지에서 다른 곳에서는 오래 줄을 서서 관람하지 않아도 되었 지만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기 위해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 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에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서 본 것은 아 무것도 없는 빈 무덤이었습니다. 멀리 이스라엘까지 와서 오래 기다린 결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한 것이었습니다. 그 런데 제가 본 예수님의 무덤이 당시 예수님이 묻혔던 무덤이 아 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장소를 가리키 며 그곳이 진짜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고 이슬람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을 조롱합니다. 이유인즉 자기들은 선 지자들의 무덤을 잘 보존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어디 에 묻혔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그 리스도께서 어디에 묻혔는지 잘 모릅니다. 왜 모를까요 그 무덤 에서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죽어서 장사지낸 때부터 시신이 거기 있는 무덤은 잘 보존됩니다. 그러나 부활하여 시신이 없는 무덤 은 보존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덤은 시신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 니다. 따라서 예수가 사흘간 묻혔던 적이 있었던 무덤을 사람들 은 소흘히 여겼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무덤의 종교가 아니라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주를 따르던 몇 몇 여인들만이 그를 추억하고 그에 대한 마지막 사랑과 정성을 다하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본문 1절의 "안식 후 첫날 새벽"은 오늘로 하면 주일 새벽입니다. 첫 일요일이 되는 안식 후 첫날에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유향을 발라서 방부케 하기 위해 무덤으로 갔습니다. 예수 처형 후 안식일이 곧바로 왔기에 서둘러서 장사 지냈으므로 유향도 제대로 바르지 못해서 여인들 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찾은 것은 죽은 예 수님의 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는 무덤 을 막고 있는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 있는 자들이었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부활하셨구나라고 기뻐했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그 들은 시신이 없는 것을 인하여 근심하였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여인들은 예수께서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났다고 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무덤에 예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는 천사의 말입니 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서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는 한 사람의 위대한 스승이었 다고 멋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 사 람들입니다. 예수를 추켜세울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삶을 사셨던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습니 다. 제발 부탁이니 부처나 공자나 맹자와 같은 무덤에 예수님을 나란히 눕혀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촌스러워도 좋습니다. 예수님 은 무덤에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은 여인 들에게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면 서 복음을 전합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7절)" 그때 에야 비로소 여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가서 열 한 사도와 모든 사람들에게 빈 무덤을 증거 하였습니다. 여인들이 증거한 것은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다는 것입 니다.

화강암으로 된 이탈리아의 한 무덤에 어떤 남자가 여러해 전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는 믿음과 기독교에 대해 무례한 불가지론으 로 특히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부활 같은 일이 일어 나더라도 자신의 몸이 다시 나올 수 없도록 자기 무덤 위에 수 톤 되는 화강암 석판을 올려놓을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무덤에 장사지내고 그 위에 화강암 석판을 올려놓 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석판을 올려놓기 전에 하늘을 날던 새 가 씨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그것은 상수리나무 씨였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상수리나무가 수 톤이 되는 석판을 둘로 쪼겠 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큰돌로 막히고 인봉되고 병사가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무덤에 넣기 전에 이미 하나 님께서는 생명의 씨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그 씨가 사흘 뒤에 무덤 문을 연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 떻게 묻혔든지 그가 묻히기 전에 이미 생명의 씨가 그 속에 뿌려 졌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죽음의 세력 을 뚫고 부활 할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이 앞에 있는 성가대 연주대를 교회 식구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몇 개를 만들어 놓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관' 같다고 하였습니다. 10개를 모두 만든 후 니스를 칠하고 교회 앞 뜰에 세워 두었는데 다음날 새벽기도회에 가려고 밖으로 나오다 가 보니 정말 관들이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가대 여러분, 여 러분들은 오늘 관 위에 서서 부활의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여러 분들은 죽음 위에 서서 찬송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죽음을 딛고 그 위에 서서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부활의 찬송을 부른 여러분들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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