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평강의 삶을 보장하는 부활신앙
본문
성도들에게는 미래적인 삶을 확신하는 부활신앙이 있다.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이란 미래적인 삶을 확신하는 “부활신앙”에 의해 나타나는 삶입니다. 성경 사전에서 “부활”은 “죽은 자가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것” 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지만, 구약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 “존재함”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가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처럼 나타납니다.
“하야”라는 단어는 “살다, 생명을 가지다, 산채로 있다, 생명을 유지시키다, 부유하게 살다, 영원히 살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질병, 절망, 심지어 죽음으로부터 소생하다, 되살아나다”의 뜻도 지닙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전체에서 “부활”은 그리스도를 통해 죽었던 사람의 몸과 영혼의 생명을 되살아나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고전 15:42-44에 의하면, 성도들의 장래의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현저하게 변화되었고, 그 결과가 쉽게 인식되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갑작스럽게 출현하실 수 있었고, 그럼에도 그것이 물질적이고 지극히 실제적인 몸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부활의 변화가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것으로서, 미래의 천국 환경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새로운 품성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롬 1:4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참 아들이셨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부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또한 영생의 사실성에 대한 최고의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구속 사역의 핵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추인이자, 그것을 열납하셨다는 공적 선언입니다.
이 선언을 받아들인 초대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승천하게 하여 “아버지의 우편에 앉게 하셨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확신이 신약 성경 신앙의 중심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 행 24:15에 보면, 바울도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자신의 “부활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바로 바울과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녔던 이러한 믿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을 믿는 것과 아울러 우리 자신도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믿음을 포함하는 신앙입니다. 롬 6:5의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리라는 믿음을 말합니다.
곧 “부활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과거적인 부활 사건을 믿음과 함께, 앞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지속될 우리의 미래적인 삶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본문인 창 22:1-19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속에 신약 시대 성도들이, 그리고 이 시대의 우리가 지니고 있는 “부활신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대한 부활신앙 속에 여러 신앙적 요소가 함축되어 나타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산 소망이 되어, 부활 후의 거룩하고 영광된 삶을 바라봅니다. 이 땅에서 바울이 고전 6:14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라고 외치며 살아갑니다. 바울의 이러한 고백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고백이 되기 위하여, 앞으로 여섯 번에 걸쳐서 본문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부활신앙을 알아가려 합니다.
2. 족장들의 역사는 믿음과 순종의 본질과 순종에 대한 약속을 보여준다.
창 11:27부터 보면, 본격적인 족장들의 역사가 기록됩니다. 주요 인물은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에서, 야곱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이삭을 전환점으로 하는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삭을 중심으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선택으로부터 12지파 이스라엘 공동체의 조상인 야곱의 선택까지 우리를 끌고 갑니다. 이삭은 두 족장의 전환점입니다. 이삭이 믿음의 조상과 지파의 조상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사건은 이삭을 고리로 하여 야곱의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에서와 대칭을 이룹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에 이르는 과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택한 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며, 이삭으로부터 야곱에 이르는 과정은 택한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의 전개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택함 받는 자에게 요구되는 믿음과 순종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믿음과 순종의 본질이 이삭에 이르러 전환되며, 야곱에 이르러 그 믿음과 순종의 결과들을 보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믿음과 순종의 본질 면에서 버려진 자이고, 에서는 믿음과 순종을 통한 약속의 전개 과정에서 버려진 자로서 대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본 구조에서 보면 약속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라는 부분과 믿음과 순종에 대한 약속의 전개 과정이라는 부분이 대칭을 이루며 우리들에게 이삭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 22:1-19는 이삭에게 정점을 두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3.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그에 반응하는 믿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만의 역사도 대칭 구조를 이룹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때의 기다림이 없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얻음으로써 그의 믿음이 최하의 상태로 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가 그의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은 86세(창 16:16)로부터 99세(창 17:1)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을 더 기다린 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 원점에서 언약의 갱신과 할례를 통한 약속을 확증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후 전환점에 이르는 기간인 창세기 12장-15장에서 겪은 모든 사건들이 전환점 이후 창세기 17장-20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유형의 반복적 사건이지만, 성격은 전환점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이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대칭 구조 속에 나타나는 사건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 표현하고자 하십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그에 반응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주어진 약속과 성취된 약속 사이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해 나가십니다. 약속을 주시고, 또 그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받은 자에게 요구하는 믿음과 순종의 성격을 구체화시켜 나가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믿음과 순종의 본질을 확정해 주는 본문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창 22:1-19는 믿음과 순종의 구체화 부분의 마지막이며, 결정적인결론 부분입니다.
4.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자의 순종을 통해 부활신앙을 체험케 하신다.
창 22:1-19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브엘세바”에 돌아와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본문의 앞 문맥에는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어 쫓는 사건이 나오고, 이어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상호 불가침 계약을 맺고, 우물 판 증거에 대한 확인의 맹세를 하며, 그 장소에 “브엘세바”라는 이름을 붙인 사건이 나옵니다.
창 21:3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인 창 22:1-19절에서, 아브라함이 되돌아 온 곳이 바로 그곳 “브엘세바”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하는 문맥에는 이삭의 아내로 등장할 리브가의 계보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전후 문맥의 사건들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제공합니다.
창 22:1-19도 전체적으로는 교차 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 22:1-2는 문제의 발단으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기이한 명령이 나타나며, 이에 교차되는 창 22:19는 종결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누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창 22:3-10은 전개 상황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에의 길이 설명되며, 이에 교차되는 창 22:13-18은 마무리 상황으로서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에의 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환점이며 중심 주제가 담긴 창 22:11-12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시험과 아브라함의 순종이 통합을 이루며,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는 주제가 되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말씀은 시험이라는 전환점을 통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명령-전환점-누림”의 구조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용의 흐름을 5 가지의 국면으로 국면 전환을 시키며 주제를 알려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나타나는 서론인 창 22:1-2에 제1국면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 부분인 본론은 세 가지의 국면으로 전환을 이룹니다. 아브라함의 준비의 모습이 나타나는 창 22:3-8의 제2국면에는 아브라함의 출발을 위한 준비의 모습과, 아브라함의 도착될 환경을 준비하는 모습과, 아브라함의 마음의 준비 모습이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개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나타나는 창 22:9-10의 제3국면에는 아브라함이 번제를 시행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는 창 22:11-13의 제4국면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순종을 받으시는 장면과 아브라함의 번제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는결론인 창 22:14-19에는 제5국면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고백되어지는 장면과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을 공포하는 장면, 그리고 아브라함의 “브엘세바” 귀환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구조는 본문 자체에서 나타나는 본문의 주제를 선명하게 알게 합니다.
본문의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도구로 사용된 분이 이삭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행하시는 사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위와 같이 5가지의 국면 전환을 이용하여 아브라함에게 작업을 하시며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히 알려주십니다. 그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고 있는 부분에 나타납니다.
그 연결 고리는 바로 이 사건 속에 담겨진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에 반응하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부활신앙의 확인과 체험을 위해 이삭을 등장시켰고, 부활신앙의 확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은혜의 누림으로 베풀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자의 순종을 통해 부활신앙을 체험케 하신다.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5. 부활신앙은 믿음도 확증되고 감사가 회복되며 지속될 수 있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적 요소를 확증해 나가는 마지막 과정인 본문에서 부활신앙을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이 믿음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알리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은혜로 누려지는 것이 되게 하는 믿음의 진보가 전환기적 인물인 이삭을 통한 사건에 의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삭은 믿음의 진보의 결정적 요소로서 약속 자체이며, 약속은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논증하는 성령 자신이 되십니다. 갈 3:14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에 의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이삭을 통해 나타나고 체험되어지며, 이로 인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확증되어,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견고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 이 땅에서 누릴 것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평강 가운데 지내기를 원합니다. 복 중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대적으로부터 안정된 삶을 살며,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강 가운데 살기 원합니다. 이 소원은 가정 대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원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고 이루어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그렇게 살게 하실까요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 22:1-19는 그러한 주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그 답입니다. 본문은 부활신앙이 있는 자가 평강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를 불러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내게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모르고, 나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런 환경을 주시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내게 무엇을 원하시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지, 그리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 알지 못하기에 감사가 사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을 확증함으로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6.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의 누리는 삶은 부활신앙에서 온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자의 순종을 통해 부활신앙을 체험케 하신다. ”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믿음도 확증되고, 감사가 회복되며,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이며, 본문의 사건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부활신앙은 믿음의 확증입니다. 부활신앙은 평강의 삶, 감사의 삶을 살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필수 요구입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의 회복을 통해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17-19에서 창 22:1-19의 사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 11: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저가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특히 히 11:9에서 “저가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말합니다. 부활신앙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또 이삭과 함께 브엘세바에 돌아 온 것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라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돌려받은 이후의 삶은 부활의 증거를 지닌 자의 삶이라는 설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신앙을 요구하십니다. 부활신앙이 있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부활의 증거를 지닌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부활의 증거로서 돌려받은 이삭과 함께 사는 것처럼, 우리들은 부활신앙을 통해 부활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은 곧 부활신앙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쉼, 예수님과 함께하는 안식, 예수님과 함께하는 평강과 기쁨,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즐거움,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사역은 부활신앙이 있는 자만의 특권입니다. 부활신앙은 평강의 삶을 보장합니다. 부활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평강과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우리의 부활신앙을 시험(test)하고 계십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나의 부활신앙을 확증해 나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활신앙 가운데 사랑하는 아들, 아내, 남편, 재산, 직업, 그 어떤 것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 제물로 올려놓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평강과 행복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사랑하는 자를 주께 드리는 부활신앙입니다.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이란 미래적인 삶을 확신하는 “부활신앙”에 의해 나타나는 삶입니다. 성경 사전에서 “부활”은 “죽은 자가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것” 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지만, 구약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 “존재함”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가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처럼 나타납니다.
“하야”라는 단어는 “살다, 생명을 가지다, 산채로 있다, 생명을 유지시키다, 부유하게 살다, 영원히 살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질병, 절망, 심지어 죽음으로부터 소생하다, 되살아나다”의 뜻도 지닙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전체에서 “부활”은 그리스도를 통해 죽었던 사람의 몸과 영혼의 생명을 되살아나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고전 15:42-44에 의하면, 성도들의 장래의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현저하게 변화되었고, 그 결과가 쉽게 인식되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갑작스럽게 출현하실 수 있었고, 그럼에도 그것이 물질적이고 지극히 실제적인 몸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부활의 변화가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것으로서, 미래의 천국 환경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새로운 품성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롬 1:4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참 아들이셨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부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또한 영생의 사실성에 대한 최고의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구속 사역의 핵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추인이자, 그것을 열납하셨다는 공적 선언입니다.
이 선언을 받아들인 초대교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승천하게 하여 “아버지의 우편에 앉게 하셨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확신이 신약 성경 신앙의 중심적인 내용이 되었습니다. 행 24:15에 보면, 바울도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자신의 “부활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은 바로 바울과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녔던 이러한 믿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을 믿는 것과 아울러 우리 자신도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할 것을 믿는 믿음을 포함하는 신앙입니다. 롬 6:5의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리라는 믿음을 말합니다.
곧 “부활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과거적인 부활 사건을 믿음과 함께, 앞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지속될 우리의 미래적인 삶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본문인 창 22:1-19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속에 신약 시대 성도들이, 그리고 이 시대의 우리가 지니고 있는 “부활신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대한 부활신앙 속에 여러 신앙적 요소가 함축되어 나타납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산 소망이 되어, 부활 후의 거룩하고 영광된 삶을 바라봅니다. 이 땅에서 바울이 고전 6:14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라고 외치며 살아갑니다. 바울의 이러한 고백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고백이 되기 위하여, 앞으로 여섯 번에 걸쳐서 본문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부활신앙을 알아가려 합니다.
2. 족장들의 역사는 믿음과 순종의 본질과 순종에 대한 약속을 보여준다.
창 11:27부터 보면, 본격적인 족장들의 역사가 기록됩니다. 주요 인물은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에서, 야곱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이삭을 전환점으로 하는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삭을 중심으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선택으로부터 12지파 이스라엘 공동체의 조상인 야곱의 선택까지 우리를 끌고 갑니다. 이삭은 두 족장의 전환점입니다. 이삭이 믿음의 조상과 지파의 조상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사건은 이삭을 고리로 하여 야곱의 사건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에서와 대칭을 이룹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에 이르는 과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택한 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며, 이삭으로부터 야곱에 이르는 과정은 택한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의 전개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택함 받는 자에게 요구되는 믿음과 순종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믿음과 순종의 본질이 이삭에 이르러 전환되며, 야곱에 이르러 그 믿음과 순종의 결과들을 보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믿음과 순종의 본질 면에서 버려진 자이고, 에서는 믿음과 순종을 통한 약속의 전개 과정에서 버려진 자로서 대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본 구조에서 보면 약속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라는 부분과 믿음과 순종에 대한 약속의 전개 과정이라는 부분이 대칭을 이루며 우리들에게 이삭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 22:1-19는 이삭에게 정점을 두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3.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그에 반응하는 믿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만의 역사도 대칭 구조를 이룹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때의 기다림이 없이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얻음으로써 그의 믿음이 최하의 상태로 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가 그의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은 86세(창 16:16)로부터 99세(창 17:1)가 될 때까지 13년 동안을 더 기다린 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 원점에서 언약의 갱신과 할례를 통한 약속을 확증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후 전환점에 이르는 기간인 창세기 12장-15장에서 겪은 모든 사건들이 전환점 이후 창세기 17장-20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유형의 반복적 사건이지만, 성격은 전환점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이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대칭 구조 속에 나타나는 사건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 표현하고자 하십니다.
즉, 아브라함의 역사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과 그에 반응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주어진 약속과 성취된 약속 사이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해 나가십니다. 약속을 주시고, 또 그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받은 자에게 요구하는 믿음과 순종의 성격을 구체화시켜 나가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 믿음과 순종의 본질을 확정해 주는 본문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창 22:1-19는 믿음과 순종의 구체화 부분의 마지막이며, 결정적인결론 부분입니다.
4.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자의 순종을 통해 부활신앙을 체험케 하신다.
창 22:1-19는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브엘세바”에 돌아와 거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본문의 앞 문맥에는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어 쫓는 사건이 나오고, 이어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상호 불가침 계약을 맺고, 우물 판 증거에 대한 확인의 맹세를 하며, 그 장소에 “브엘세바”라는 이름을 붙인 사건이 나옵니다.
창 21:3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인 창 22:1-19절에서, 아브라함이 되돌아 온 곳이 바로 그곳 “브엘세바”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하는 문맥에는 이삭의 아내로 등장할 리브가의 계보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전후 문맥의 사건들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제공합니다.
창 22:1-19도 전체적으로는 교차 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 22:1-2는 문제의 발단으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기이한 명령이 나타나며, 이에 교차되는 창 22:19는 종결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누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창 22:3-10은 전개 상황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에의 길이 설명되며, 이에 교차되는 창 22:13-18은 마무리 상황으로서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에의 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환점이며 중심 주제가 담긴 창 22:11-12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시험과 아브라함의 순종이 통합을 이루며,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는 주제가 되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말씀은 시험이라는 전환점을 통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명령-전환점-누림”의 구조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용의 흐름을 5 가지의 국면으로 국면 전환을 시키며 주제를 알려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하심이 나타나는 서론인 창 22:1-2에 제1국면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 부분인 본론은 세 가지의 국면으로 전환을 이룹니다. 아브라함의 준비의 모습이 나타나는 창 22:3-8의 제2국면에는 아브라함의 출발을 위한 준비의 모습과, 아브라함의 도착될 환경을 준비하는 모습과, 아브라함의 마음의 준비 모습이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전개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나타나는 창 22:9-10의 제3국면에는 아브라함이 번제를 시행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는 창 22:11-13의 제4국면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순종을 받으시는 장면과 아브라함의 번제를 받으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는결론인 창 22:14-19에는 제5국면이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고백되어지는 장면과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을 공포하는 장면, 그리고 아브라함의 “브엘세바” 귀환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구조는 본문 자체에서 나타나는 본문의 주제를 선명하게 알게 합니다.
본문의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의 도구로 사용된 분이 이삭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행하시는 사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위와 같이 5가지의 국면 전환을 이용하여 아브라함에게 작업을 하시며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히 알려주십니다. 그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고 있는 부분에 나타납니다.
그 연결 고리는 바로 이 사건 속에 담겨진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에 반응하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부활신앙의 확인과 체험을 위해 이삭을 등장시켰고, 부활신앙의 확증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은혜의 누림으로 베풀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자의 순종을 통해 부활신앙을 체험케 하신다.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5. 부활신앙은 믿음도 확증되고 감사가 회복되며 지속될 수 있게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본질적 요소를 확증해 나가는 마지막 과정인 본문에서 부활신앙을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이 믿음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부분이라고 알리고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은혜로 누려지는 것이 되게 하는 믿음의 진보가 전환기적 인물인 이삭을 통한 사건에 의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삭은 믿음의 진보의 결정적 요소로서 약속 자체이며, 약속은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논증하는 성령 자신이 되십니다. 갈 3:14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에 의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이삭을 통해 나타나고 체험되어지며, 이로 인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확증되어,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견고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 이 땅에서 누릴 것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평강 가운데 지내기를 원합니다. 복 중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대적으로부터 안정된 삶을 살며,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강 가운데 살기 원합니다. 이 소원은 가정 대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원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고 이루어 주실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그렇게 살게 하실까요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 22:1-19는 그러한 주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 그 답입니다. 본문은 부활신앙이 있는 자가 평강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를 불러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지속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내게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모르고, 나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런 환경을 주시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내게 무엇을 원하시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지, 그리고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 알지 못하기에 감사가 사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을 확증함으로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6.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의 누리는 삶은 부활신앙에서 온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은 준비된 자의 순종을 통해 부활신앙을 체험케 하신다. ”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믿음도 확증되고, 감사가 회복되며,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이며, 본문의 사건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부활신앙은 믿음의 확증입니다. 부활신앙은 평강의 삶, 감사의 삶을 살게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필수 요구입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의 회복을 통해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17-19에서 창 22:1-19의 사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 11: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저가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특히 히 11:9에서 “저가 여호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말합니다. 부활신앙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또 이삭과 함께 브엘세바에 돌아 온 것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라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돌려받은 이후의 삶은 부활의 증거를 지닌 자의 삶이라는 설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신앙을 요구하십니다. 부활신앙이 있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부활의 증거를 지닌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11:25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부활의 증거로서 돌려받은 이삭과 함께 사는 것처럼, 우리들은 부활신앙을 통해 부활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은 곧 부활신앙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쉼, 예수님과 함께하는 안식, 예수님과 함께하는 평강과 기쁨,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즐거움,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사역은 부활신앙이 있는 자만의 특권입니다. 부활신앙은 평강의 삶을 보장합니다. 부활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필수 조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평강과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우리의 부활신앙을 시험(test)하고 계십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나의 부활신앙을 확증해 나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활신앙 가운데 사랑하는 아들, 아내, 남편, 재산, 직업, 그 어떤 것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 제물로 올려놓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평강과 행복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 사랑하는 자를 주께 드리는 부활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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