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의 기쁨으로 새로운 세상을!
본문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 중에서 '십자가'는 그 으뜸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 의미 또한 기독교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이 편이 죽음과 허무의 세계라고 한다면, 십자가 저 편은 부활과 기쁨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죽음의 끝이자 부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이 세상의 종착역인 '죽 음'과 새로운 세상인 '부활'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다리(橋)입니다.
예수께서 그 다리가 되어주셨습니다. 환난과 고통 속에서 한평생 헛 수고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저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영원한 세계로 이끌어들이기 위하여, 주께서 '십자가' 다리를 놓 아주셨습니다. 사실은 주께서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몸소 그 다리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일 '십자가'라는 다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이 세상에서 인 생의 모든 것을 마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면, 우리 인간처럼 불쌍한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죽도록 고생만 하다 가 한평생을 마쳐야 했다면, 그처럼 가련하고 불쌍한 일이 또 어디 있겠 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어떤 아이가 요즘 들어서 통 말이 없고 우 울하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는 원래 명랑하고 밝게 지내던 아이였습니 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달라지게 되니, 어머니가 걱정하게 되었습니 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너 요즘 무슨 고민이 있니" 그러자,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인생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하 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아이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학교 다니 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인데, 과외공부와 태권도까지 해야 하기 때문입니 다. 그 어머니는,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가 걱정되어서 과외도 시키고, 그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태권도 도장도 다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 나, 그 아이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벅찼던 것입니다.
그 아이뿐이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극히 일부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의 사람들이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힘들고 괴로 운 인생을 살다가 그저 죽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끝나고 만다면, 이 얼마 나 허무하고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 상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가 죽고 만다니 말이나 됩니까
그런고로,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말하기를 '기독교인이 이 세상에만 소망을 걸고 산다 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비참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전15:19)'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 를 믿고 따를 아무런 가치나 의미가 없을 줄 압니다.
어떤 산모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제왕절개가 아니라 자연분만이었습니다. 산모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진통을 겪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저런 미련한 사람 같으 니, 아니 그 무서운 산통을 겪으면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가" 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진통을 겪고 있던 산모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보세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가 비록 이런 고통을 겪고는 있지만 새 롭게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기쁘답니다. 지금 나는 내 아기 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고통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일랑 아예 하지 마시고 저리 가십시오. "
하지만, 그 산모가 낳으려는 아기가 이미 배속에서 죽어 있다고 합시 다. 그래도, 그 산모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죽은 아이를 낳게 되었다면, 그 산모는 좌절과 낙심에 빠지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살 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인생이 끝나고 만다면, 그 누구라도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미래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거칠고 험한 인생도 잘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가 파멸인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인생을 희희낙락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처럼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참 많습 니다. 세상사람들뿐이겠습니까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 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활의 영적인 의미만 받아들이고, 예수의 역사적 인 부활과 믿는 자의 사후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두 가지 다 믿어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믿을 경우에는, 다른 한 가지도 무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부활에 대한 확신 없이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해서 죽음도 있게 되었다'고 말 합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죄가 있는 곳에는, 그 결과로 죽음이 있게 마 련이다(고전15:22)'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없어질 경우에는 죽음 도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과거의 모든 죄를 고백하면, 주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며 없애주신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당연히 부활 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부활은 그 믿 음의 핵심입니다. 믿는 자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 믿는 바가 다 헛된 것 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15: 25에서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이란성 쌍둥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 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난 말이지, 태어난 후에도 삶이 있 다고 믿어. " 오빠는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여기가 세상의 전부야. 여긴 어둡지만 따뜻하지. 우리를 먹여주고 살려주는 탯 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딴 일을 할 필요도 없단 말이야"여동생도 굽히 지 않았습니다. "이 캄캄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거야. 맘껏 움직 일 수도 있고 환한 빛이 비치는 곳이 반드시 있을 거야. " 그렇지만, 여 동생은 쌍둥이 오빠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 여동생이 다시 말했습니다. "오빠는 안 믿겠지만, 난 엄마 가 있다고 생각해. " 쌍둥이 오빠가 화가 났습니다. "엄마라구 무슨 뚱딴 지같은 소리야 난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떤 놈이 그런 생각 을 자꾸 불어넣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여기가 전부라니까. 이곳도 그 리 나쁜 곳이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으니까. 그러니, 여기 에 만족하도록 해야 해!"
성도 여러분! 누구의 말이 옳은 것입니까 사실은 우습기 짝이 없는 대화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 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 의 제자들조차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 을 말한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20:9)'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기록하 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은 죄와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진리를 믿고 따르는 이가 소수이기 때문에, 부활을 말하고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으면 그 뿐인 줄로 알고 땅에 속한 것들만 부지런히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 부활을 말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도, 그들은 좀처럼 귀를 기울 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죽음의 세력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넘어 뜨려서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렇게 애쓴들 무슨 소용 있나 죽으면 다 그뿐인 것을! 그처럼 성실하게 살려고 고생만 할 게 아니라, 되는 대로 살자꾸나!'하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에 속지 말아야 합 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 니다. '구원의 날이 이르면, 그 때에는 환난과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65:17)'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이 가 득하게 될 것이며, 그 수고한 만큼 혜택을 누리게 된다(사65:22)'고 했습 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는 헛수고만 하거나 고생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죽은 이후에만 가게 되는 것이 아 닙니다. 이미 그 세상은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창조하 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을 체험하 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하 는 것입니다. 물론, 육의 부활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고전15:23)이나, 이미 우리는 영적인 부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이 주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는 육신에 치우쳐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뵙게 된 이후에는, 그들도 부활신앙을 갖고 부활의 삶을 살았습 니다. 오늘 우리도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부활의 삶을 열심 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 모두, 부활의 예수를 믿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겠습니 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새 나라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우대와 존경을 받 는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들이 평화스럽게 살도록 보살 펴주신다고 했습니다. 땀흘려 수고한 만큼 기쁨을 거두는 정의로운 나라 를, 우리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의로운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께서 마련해놓으신 다리입니다. 그 십자가는 희생과 헌신을 통한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 다리를 건너가야만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바로 깨달음으로써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부활의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의 세상살이는 참으로 고달프고 괴롭기만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코 죄와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인생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 음으로써 그 죽음의 세력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십자가를 진다는 것과 동일함을 알아 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가볍습니다. 우리가 능히 질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져야 부활을 체험하게 되고, 부활을 체 험해야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나는 진실하게 나를 섬기는 백성 을 보고 기뻐하리라(65:19)고 말씀하셨습니다.
②우리 모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겨 살 도록 합시다.
주님의 부활은 진실이 승리한 사건입니다. 주께서는 거짓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 마음에 있 는 거짓된 세력, 곧 미움과 원망, 다툼과 시기와 질투를 물리쳐야 합니 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과 인내가 내 마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 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살 면 손해가 나고 욕을 먹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핑계를 대면서 그 일을 회피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조차 십자가를 피하고자 했으니, 우린들 오 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부활의 영광을 누리 셨습니다.
우리도 용기를 내어 우리의 십자가를 지도록 합시다. 날마다 거짓을 물리치고 진실하게 살도록 합시다. 그래서,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물리 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새 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토록 기쁨 과 평화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그 다리가 되어주셨습니다. 환난과 고통 속에서 한평생 헛 수고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저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영원한 세계로 이끌어들이기 위하여, 주께서 '십자가' 다리를 놓 아주셨습니다. 사실은 주께서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몸소 그 다리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일 '십자가'라는 다리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락없이 이 세상에서 인 생의 모든 것을 마감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면, 우리 인간처럼 불쌍한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죽도록 고생만 하다 가 한평생을 마쳐야 했다면, 그처럼 가련하고 불쌍한 일이 또 어디 있겠 습니까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어떤 아이가 요즘 들어서 통 말이 없고 우 울하게 보였습니다. 그 아이는 원래 명랑하고 밝게 지내던 아이였습니 다.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달라지게 되니, 어머니가 걱정하게 되었습니 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너 요즘 무슨 고민이 있니" 그러자,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인생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하 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아이는 요즘 여러 가지 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학교 다니 는 것만 해도 힘든 일인데, 과외공부와 태권도까지 해야 하기 때문입니 다. 그 어머니는,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가 걱정되어서 과외도 시키고, 그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태권도 도장도 다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 나, 그 아이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 벅찼던 것입니다.
그 아이뿐이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극히 일부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의 사람들이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힘들고 괴로 운 인생을 살다가 그저 죽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끝나고 만다면, 이 얼마 나 허무하고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 상사람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가 죽고 만다니 말이나 됩니까
그런고로,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말하기를 '기독교인이 이 세상에만 소망을 걸고 산다 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비참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전15:19)'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 를 믿고 따를 아무런 가치나 의미가 없을 줄 압니다.
어떤 산모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제왕절개가 아니라 자연분만이었습니다. 산모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진통을 겪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저런 미련한 사람 같으 니, 아니 그 무서운 산통을 겪으면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가" 하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진통을 겪고 있던 산모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여보세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내가 비록 이런 고통을 겪고는 있지만 새 롭게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기쁘답니다. 지금 나는 내 아기 를 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고통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일랑 아예 하지 마시고 저리 가십시오. "
하지만, 그 산모가 낳으려는 아기가 이미 배속에서 죽어 있다고 합시 다. 그래도, 그 산모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죽은 아이를 낳게 되었다면, 그 산모는 좌절과 낙심에 빠지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살 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인생이 끝나고 만다면, 그 누구라도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미래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거칠고 험한 인생도 잘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가 파멸인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인생을 희희낙락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처럼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참 많습 니다. 세상사람들뿐이겠습니까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 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활의 영적인 의미만 받아들이고, 예수의 역사적 인 부활과 믿는 자의 사후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두 가지 다 믿어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믿을 경우에는, 다른 한 가지도 무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부활에 대한 확신 없이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해서 죽음도 있게 되었다'고 말 합니다. 바울도 말하기를 '죄가 있는 곳에는, 그 결과로 죽음이 있게 마 련이다(고전15:22)'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없어질 경우에는 죽음 도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과거의 모든 죄를 고백하면, 주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며 없애주신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당연히 부활 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부활은 그 믿 음의 핵심입니다. 믿는 자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 믿는 바가 다 헛된 것 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15: 25에서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이란성 쌍둥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 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난 말이지, 태어난 후에도 삶이 있 다고 믿어. " 오빠는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여기가 세상의 전부야. 여긴 어둡지만 따뜻하지. 우리를 먹여주고 살려주는 탯 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딴 일을 할 필요도 없단 말이야"여동생도 굽히 지 않았습니다. "이 캄캄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거야. 맘껏 움직 일 수도 있고 환한 빛이 비치는 곳이 반드시 있을 거야. " 그렇지만, 여 동생은 쌍둥이 오빠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 여동생이 다시 말했습니다. "오빠는 안 믿겠지만, 난 엄마 가 있다고 생각해. " 쌍둥이 오빠가 화가 났습니다. "엄마라구 무슨 뚱딴 지같은 소리야 난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떤 놈이 그런 생각 을 자꾸 불어넣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여기가 전부라니까. 이곳도 그 리 나쁜 곳이 아니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으니까. 그러니, 여기 에 만족하도록 해야 해!"
성도 여러분! 누구의 말이 옳은 것입니까 사실은 우습기 짝이 없는 대화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 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 의 제자들조차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 을 말한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20:9)'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기록하 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은 죄와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진리를 믿고 따르는 이가 소수이기 때문에, 부활을 말하고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으면 그 뿐인 줄로 알고 땅에 속한 것들만 부지런히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 부활을 말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소개해도, 그들은 좀처럼 귀를 기울 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죽음의 세력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넘어 뜨려서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렇게 애쓴들 무슨 소용 있나 죽으면 다 그뿐인 것을! 그처럼 성실하게 살려고 고생만 할 게 아니라, 되는 대로 살자꾸나!'하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에 속지 말아야 합 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 니다. '구원의 날이 이르면, 그 때에는 환난과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65:17)'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이 가 득하게 될 것이며, 그 수고한 만큼 혜택을 누리게 된다(사65:22)'고 했습 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는 헛수고만 하거나 고생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죽은 이후에만 가게 되는 것이 아 닙니다. 이미 그 세상은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창조하 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을 체험하 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하 는 것입니다. 물론, 육의 부활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것(고전15:23)이나, 이미 우리는 영적인 부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의 제자들이 주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까지는 육신에 치우쳐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뵙게 된 이후에는, 그들도 부활신앙을 갖고 부활의 삶을 살았습 니다. 오늘 우리도 다시 한 번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부활의 삶을 열심 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 모두, 부활의 예수를 믿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겠습니 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새 나라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우대와 존경을 받 는 나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들이 평화스럽게 살도록 보살 펴주신다고 했습니다. 땀흘려 수고한 만큼 기쁨을 거두는 정의로운 나라 를, 우리를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의로운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께서 마련해놓으신 다리입니다. 그 십자가는 희생과 헌신을 통한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 다리를 건너가야만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바로 깨달음으로써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부활의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의 세상살이는 참으로 고달프고 괴롭기만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코 죄와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인생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 음으로써 그 죽음의 세력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십자가를 진다는 것과 동일함을 알아 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가볍습니다. 우리가 능히 질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져야 부활을 체험하게 되고, 부활을 체 험해야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나는 진실하게 나를 섬기는 백성 을 보고 기뻐하리라(65:19)고 말씀하셨습니다.
②우리 모두,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겨 살 도록 합시다.
주님의 부활은 진실이 승리한 사건입니다. 주께서는 거짓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 마음에 있 는 거짓된 세력, 곧 미움과 원망, 다툼과 시기와 질투를 물리쳐야 합니 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과 인내가 내 마음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 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살 면 손해가 나고 욕을 먹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핑계를 대면서 그 일을 회피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조차 십자가를 피하고자 했으니, 우린들 오 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부활의 영광을 누리 셨습니다.
우리도 용기를 내어 우리의 십자가를 지도록 합시다. 날마다 거짓을 물리치고 진실하게 살도록 합시다. 그래서,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물리 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새 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과 영원토록 기쁨 과 평화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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