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과 공동체 회복
본문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사람에게만 부활을 가져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람에게만 아니라 만물에게도 부활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타락하였을 때 인간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전체가 병 들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 전체에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 인간만을 구원하신 것이 아 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전체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은 제2 의 창조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노래하는 것은 옛 하늘과 옛 땅 즉 처음 창조된 만물이 못쓰게 되어서 그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히 인간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 세계 전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너무 나 중심,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내 대신 고난 당하셨다고만 고백하여 왔습니다. 물론 나 개인적인 체험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 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개인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께 서 이루시려는 큰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 를 믿고서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그 역사를 보기보다는 여전히 나 자신의 구원과 행복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은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란 이 다음에 가는 '천당' 정도로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신 앙, 이런 생각은 이 세계를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 한 결과입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내 뜻을 이루 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때 이런 신앙은 잘못된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할 아버지는 손자가 귀여서 그의 요구라면 대체로 다 들어줍니다. 그런데 손자는, 할 아버지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여,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달라고 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자기의 요구 를 들어주지 않으면 마구 울면서 떼를 쓰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할아버지 수염을 마구 잡아 다니며 버릇없이 할아버지에게 기어오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크게 버릇없이 굴지 않으면 그대로 참고 그 재롱을 그대로 받아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손자가 그래도 결국 그 집안의 어른은 할아버지요, 그의 뜻과 법도를 따라 움직이 게 마련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응석을 받아 주는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하면 서 버릇없이 이것저것 달라고 하면서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법 도와 계명을 귀기울여 듣고 그것을 따라 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자신 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이것저것 해주시기를 기도할 것 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떻게 하든지 그 뜻을 내 생활 속에 받아드려 실천 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지으신 세계 전체를 돌보시면서 그 세 계가 조화를 이루도록 질서를 만드시고 다함께 평화를 누리도록 조정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을 내세우며 여호와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신앙의 자세는 잘못된 것이며, 어린아이 의 신앙임을 알고 이제는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야 할 것입니다. 나의 진정 한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 전체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평화의 실현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그 명령에 순종해야하며, 때로는 이를 위해 나 의 희생을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공동체적 신앙이며, 참 신앙 입니다.
만물과 화해하신 여호와 하나님
오늘 읽어 드린 골로새서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 골 1:20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면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을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다"고 하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 들이나 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간만을 위 한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있는 만물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 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런 만물과 기쁘게 화해하셨다는 사실은 그전에는 그 관계가 끊어져 있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그 만물과 화해하시므로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전체가 통일이 되고 하나의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부활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신음하며 고통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다시 연결이 되면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부활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깨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공동체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역사입니다. 따 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 공동체의 회복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이사야서 말씀도 우리가 잘 아는 구절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 사 11:9
이 그림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룰 평화의 날의 모습입니다. 그 때에는 사나운 짐 승들과 어린양이 함께 놀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전혀 상함이나 해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헤치거나 파괴하 는 일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 물고 뜯던 세계가 변하여 평화롭 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란 그가 지으신 모든 세계를 말합니다. 하늘과 땅이 통 일된 세계가 바로 "거룩한 산"입니다. 하늘 따로 땅 따로 나뉘어져 있던 세계가 이 제는 하나로 통일이 된 것입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동산입 니다. 거기에는 영과 육의 갈등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 세계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분쟁도 없기에 완전한 평화가 실현된 세계입니다. 그 때에 인간의 세계도 완전한 평화가 실현된다고 이사야서 2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민족들 사이에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 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사 2:4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에서 모든 해함과 분쟁과 갈등이 사라지고 완전한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 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신앙의 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 공동체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 공동체 회복까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하였다고 할 때 이 다음 예수님 재림 때에 다 시 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부활하였음을 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부활하였다는 것은 나의 옛날 생각, 옛날의 삶이 죽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구원을 따라 다시 살아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나를 중심으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패를 짓고, 당을 만들며, 국경선을 긋고, 이념의 장벽을 쌓던 옛날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문 호를 활짝 열고 모든 사람과 만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아무 문제없이 건 강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믿고 있기 쉽습니다만,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 가정들도 많은 갈등과 분쟁에 휘말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간의 갈등과 싸 움은 어쩌면 평생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 있기 쉽고,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다툼, 일가 친척간의 소원한 관계 등으로 사실상 가정들 은 온전한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큰 문제가 없을 때 는 그럭저럭 그 가정들이 지탱이 되지만, 요즈음처럼 실직 같은 큰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그 가정들은 격랑에 크게 요동을 치다가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평소에 사랑의 공동체로 이 가정을 가꾸어 놓지 않은 결과입니다.
저의 형제들이 많습니다만 명절이나 기일 같은 때 몇 차례 만나 밥을 같이 먹는 정도의 사귐밖에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서로의 속사정을 자세히 털어놓지 않으니 잘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가족 공동체를 진정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 겠습니까 그래도 저의 형제들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재산 분쟁은 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른 집에 사는 형제들은 고사하고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끼리 도 얼굴을 맞대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오늘 의 가정들이 아닙니까
이런 가족들이 부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어 가정을 소중히 여기면 서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가장 작고 가장 소중하며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을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정 다음의 우리의 관심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 들끼리 모인 신앙 공동체인 교회야말로 가정 다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사랑이 넘치 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은 오히려 갈등하면서 공동체를 만들 어가고 있지 못합니다. 교인들끼리 코이노니아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합니다. 서로 사귀고, 서로 대화하며, 서로 지향하는 목적을 확인하고 이를 다지며 함께 그 것을 추구해 가도록 노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부활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그 목적 을 다른 교인들과 함께 이루어가기 위하여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그 신앙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인데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 공동체 선교 공 동체가 되려면 뜻을 모으고 생각을 함께 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찾아 그것을 향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동교회도 아직은 온전한 신앙 공동체로 회 복되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써 부활의 체험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사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민족을 초월하고 사회 계층간의 차별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갈 3:28
바울이 말하는 교회 공동체란 민족을 초월하고 계층간의 차별, 남녀간의 차이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공동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있어서 대단히 급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할례 받은 유대인과 그렇 지 않은 헬라인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믿었던 시대에 그 둘이 그리스도 안 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이나 자유자가 하나며,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고 하는 것은 정말 혁명 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민족이면서도 이념으로 나뉘어 남북이 대치하면서 분쟁하고 있 으며, 지역 감정으로 나뉘어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 는 화해자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이 하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 도 안에서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 우주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는 보다 큰 생각을 가지고 나가 이 갈등을 치료해 가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그 어느 한편에 속하여 결국은 화해가 아닌 분쟁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사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바로 우리 부활한 그리스도인의 보다 큰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서신인 골로새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과 사회 계층간을 초월할 뿐 아니라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 니다. 우리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회복의 노력은 민족 공동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 공동체 회복에 나서야 하며 동시에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하늘의 세계인 영적 세계와도 관계를 회복하는 우주 공동체 회복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이를 때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 목표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것입 니다. 이런 생각, 이런 노력이 전혀 없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는 대단히 어 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머리 속에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대한 영상이 그려지도록 계속 성경 보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중심적 인 신앙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지만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화해의 역사를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정 공동체 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온전한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 며, 사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걸 음 더 나아가 세계 공동체의 회복과 여호와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우주 공동체 혹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여러분의 생각을 거기까지 넓혀 가시 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이고 그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늘과 땅에 있는 영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완성 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부지런히 참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너무 나 중심,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내 대신 고난 당하셨다고만 고백하여 왔습니다. 물론 나 개인적인 체험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 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개인적인 구원에만 관심을 집중시킨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께 서 이루시려는 큰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 를 믿고서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그 역사를 보기보다는 여전히 나 자신의 구원과 행복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은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란 이 다음에 가는 '천당' 정도로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신 앙, 이런 생각은 이 세계를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중심으로만 생각 한 결과입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르려 하기보다는 내 뜻을 이루 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때 이런 신앙은 잘못된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할 아버지는 손자가 귀여서 그의 요구라면 대체로 다 들어줍니다. 그런데 손자는, 할 아버지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여, 할아버지에게 이것저것 달라고 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자기의 요구 를 들어주지 않으면 마구 울면서 떼를 쓰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할아버지 수염을 마구 잡아 다니며 버릇없이 할아버지에게 기어오르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크게 버릇없이 굴지 않으면 그대로 참고 그 재롱을 그대로 받아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손자가 그래도 결국 그 집안의 어른은 할아버지요, 그의 뜻과 법도를 따라 움직이 게 마련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응석을 받아 주는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하면 서 버릇없이 이것저것 달라고 하면서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법 도와 계명을 귀기울여 듣고 그것을 따라 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자신 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이것저것 해주시기를 기도할 것 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어떻게 하든지 그 뜻을 내 생활 속에 받아드려 실천 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지으신 세계 전체를 돌보시면서 그 세 계가 조화를 이루도록 질서를 만드시고 다함께 평화를 누리도록 조정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을 내세우며 여호와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신앙의 자세는 잘못된 것이며, 어린아이 의 신앙임을 알고 이제는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야 할 것입니다. 나의 진정 한 행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 전체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평화의 실현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그 명령에 순종해야하며, 때로는 이를 위해 나 의 희생을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공동체적 신앙이며, 참 신앙 입니다.
만물과 화해하신 여호와 하나님
오늘 읽어 드린 골로새서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습니다. " 골 1:20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면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을 기쁘게 자기와 화해시키셨다"고 하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 들이나 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간만을 위 한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있는 만물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 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런 만물과 기쁘게 화해하셨다는 사실은 그전에는 그 관계가 끊어져 있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그 만물과 화해하시므로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전체가 통일이 되고 하나의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부활인 것입니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신음하며 고통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여호와 하나님에게로 다시 연결이 되면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부활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깨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공동체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역사입니다. 따 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이 공동체의 회복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이사야서 말씀도 우리가 잘 아는 구절입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 사 11:9
이 그림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룰 평화의 날의 모습입니다. 그 때에는 사나운 짐 승들과 어린양이 함께 놀고,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전혀 상함이나 해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헤치거나 파괴하 는 일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 물고 뜯던 세계가 변하여 평화롭 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란 그가 지으신 모든 세계를 말합니다. 하늘과 땅이 통 일된 세계가 바로 "거룩한 산"입니다. 하늘 따로 땅 따로 나뉘어져 있던 세계가 이 제는 하나로 통일이 된 것입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동산입 니다. 거기에는 영과 육의 갈등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 세계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분쟁도 없기에 완전한 평화가 실현된 세계입니다. 그 때에 인간의 세계도 완전한 평화가 실현된다고 이사야서 2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민족들 사이에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 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사 2:4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에서 모든 해함과 분쟁과 갈등이 사라지고 완전한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 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신앙의 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 공동체에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 공동체 회복까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하였다고 할 때 이 다음 예수님 재림 때에 다 시 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부활하였음을 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부활하였다는 것은 나의 옛날 생각, 옛날의 삶이 죽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구원을 따라 다시 살아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나를 중심으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패를 짓고, 당을 만들며, 국경선을 긋고, 이념의 장벽을 쌓던 옛날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문 호를 활짝 열고 모든 사람과 만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아무 문제없이 건 강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믿고 있기 쉽습니다만,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 가정들도 많은 갈등과 분쟁에 휘말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간의 갈등과 싸 움은 어쩌면 평생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 있기 쉽고,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다툼, 일가 친척간의 소원한 관계 등으로 사실상 가정들 은 온전한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큰 문제가 없을 때 는 그럭저럭 그 가정들이 지탱이 되지만, 요즈음처럼 실직 같은 큰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그 가정들은 격랑에 크게 요동을 치다가 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평소에 사랑의 공동체로 이 가정을 가꾸어 놓지 않은 결과입니다.
저의 형제들이 많습니다만 명절이나 기일 같은 때 몇 차례 만나 밥을 같이 먹는 정도의 사귐밖에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서로의 속사정을 자세히 털어놓지 않으니 잘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가족 공동체를 진정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 겠습니까 그래도 저의 형제들은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 재산 분쟁은 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다른 집에 사는 형제들은 고사하고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끼리 도 얼굴을 맞대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오늘 의 가정들이 아닙니까
이런 가족들이 부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어 가정을 소중히 여기면 서 아름다운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가장 작고 가장 소중하며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을 제대로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정 다음의 우리의 관심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 들끼리 모인 신앙 공동체인 교회야말로 가정 다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사랑이 넘치 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은 오히려 갈등하면서 공동체를 만들 어가고 있지 못합니다. 교인들끼리 코이노니아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합니다. 서로 사귀고, 서로 대화하며, 서로 지향하는 목적을 확인하고 이를 다지며 함께 그 것을 추구해 가도록 노력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부활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그 목적 을 다른 교인들과 함께 이루어가기 위하여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그 신앙이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인데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 공동체 선교 공 동체가 되려면 뜻을 모으고 생각을 함께 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찾아 그것을 향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동교회도 아직은 온전한 신앙 공동체로 회 복되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써 부활의 체험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사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민족을 초월하고 사회 계층간의 차별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갈 3:28
바울이 말하는 교회 공동체란 민족을 초월하고 계층간의 차별, 남녀간의 차이를 넘어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공동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있어서 대단히 급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할례 받은 유대인과 그렇 지 않은 헬라인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믿었던 시대에 그 둘이 그리스도 안 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이나 자유자가 하나며,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고 하는 것은 정말 혁명 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민족이면서도 이념으로 나뉘어 남북이 대치하면서 분쟁하고 있 으며, 지역 감정으로 나뉘어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 는 화해자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이 하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 도 안에서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 우주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는 보다 큰 생각을 가지고 나가 이 갈등을 치료해 가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그 어느 한편에 속하여 결국은 화해가 아닌 분쟁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사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바로 우리 부활한 그리스도인의 보다 큰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서신인 골로새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족과 사회 계층간을 초월할 뿐 아니라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 니다. 우리 부활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회복의 노력은 민족 공동체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 공동체 회복에 나서야 하며 동시에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하늘의 세계인 영적 세계와도 관계를 회복하는 우주 공동체 회복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이를 때 우리의 신앙의 궁극적 목표인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것입 니다. 이런 생각, 이런 노력이 전혀 없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는 대단히 어 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머리 속에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대한 영상이 그려지도록 계속 성경 보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중심적 인 신앙에서 벗어나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이루시지만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화해의 역사를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정 공동체 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온전한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 며, 사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걸 음 더 나아가 세계 공동체의 회복과 여호와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우주 공동체 혹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여러분의 생각을 거기까지 넓혀 가시 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이고 그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늘과 땅에 있는 영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완성 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부지런히 참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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