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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절 새벽의 막달라 마리아

본문

오늘은 주님이 사망권세를 정복하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희망이 없던 인류에게 희망이 생긴 날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부활시키고, 여러분의 삶과 일의 부활을 위해
다시 한 번 희망과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출발해 보십시오.
부활절을 매년 치루는 기독교의 연례 행사로 보지 말고,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다짐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부활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1. 첫째, 주님을 가장 사모하는 자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는 교훈입니다.
저는 어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복된 일 중의 하나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만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하물며 주님을 믿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까
주님을 정말로 사모하는 자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실은 오늘 본문은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누가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났습니까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만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녀가 주님을 가장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무덤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이른 새벽 아직 어두웠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주님의 무덤을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은 주님 만나는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기를 만나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능력 있는 영매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그래서 능력 있다는 사람을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아야지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되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주님이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참으로 사랑하면
우리의 마음이 항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주님이 계신 곳에 가야 합니다.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물론 주님은 어디에나 다 계시지만
특별히 주님의 몸된 전으로 이 땅에 교회를 남겨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만나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인 일이 교회를 자주 찾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은
교회를 자주 찾는 것과 상당히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질적으로는 교회를 자주 찾는 것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무덤을 찾았다는 사실만큼
주님을 먼저 만나는 데 기여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주님을 먼저 찾았을 뿐만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찾고 사모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보니 처음 어떤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까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1절).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바로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즉시 돌아가서 베드로와 사도 요한을 불렀습니다.
결국 부리나케 달려온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갔는데
세마포가 놓여 있었고(5절),
예수님 머리를 싼 수건은 딴 곳에 개켜 있었습니다(7절)
그런데 무덤 안을 살핀 다음에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께서 없네. 혹시 부활하셨나"라고 생각한 것처럼
별 커다란 감동도 없이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10절).
아무리 남자라지만 정말 눈물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명색이 한명으로 수제자요, 한명은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는데 그렇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을 도저히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몸을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다(11절).
이 장면을 통해서 그녀가 주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유를 이 장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주님에 대해서 끝없는 관심을 표했습니다.
그녀는 제자들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여러분! 제자, 사도, 목사라는 타이틀이 주님의 손길을 체험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추구하는 자가
결국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교회를 자주 찾으시고,
예배 드릴 때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으로
주님의 크신 은총을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둘째,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는 교훈입니다.
안식 후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을 찾는 장면을 보십시오.
조금 늦게, 해가 조금이라도 뜬 다음에 찾으면 안 됩니까
얼마나 주님이 보고 싶었으면
어두울 때에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혼자 무덤을 찾습니까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랑 앞에서는 정말 무서운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요새 새벽에 겁이 나서 교회에 오지 못한다는 분이 있습니다.
정말 새벽 시간이 위험해서 못 나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새벽 시간이 위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참으로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몸을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녀는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한적한 아무도 없이 혼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속을 살피다가
갑자기 두 천사가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제자들이 있었을 때만 해도 없었던 천사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아마 웬만한 담력 있는 남자도 소름이 오싹 끼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놀란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천사와 대화를 합니다.
천사가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말하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내 주를 찾습니다. "라고 말합니다(13절).
이 장면을 보면서 다시 한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요일 4:18).
여러분! 진짜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해 보십시오.
삶의 모든 두려움이 한순간에 정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셋째, 부활의 삶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천사와 얘기를 마치고 난 후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얘기를 마치고 갑자기 막달라 마리아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몸을 돌이켜 보니 예수님이 서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는 예수님인 줄 모르고
그저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마리아야!"
평소에 자주 들었던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막달라 마리아는 즉시 주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반가워서 소리쳤다. "랍오니여(선생님이여)"(16절)
그렇게 소리치면서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행동을 취했습니까
너무 반가운 나머지 예수님 품에 안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나와 있지 않지만 17절 말씀으로 그렇게 추정됩니다.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만지지 말라고 하신 뒤 주님께서 어떤 명령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십니까
17절 말씀 하반부를 계속해서 보십시오.
"너는 네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여호와 하나님 곧 너희 여호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
주님의 부활하셨음을 형제들에게 전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 만나게 되면 항상 주님 품에 있고 싶을 것이다.
항상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고 주님과 대면하면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더 차원 높은 자세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만났거든 그 주님을 세상에 나가서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하려는 자세는 없고 만지려는 자세만 있으면
주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찬송가 499장이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까
"밤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결국 막달라 마리아는 신비주의적 삶을 포기하고
가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가면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 품에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살면서,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목적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어서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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