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의 신앙
본문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기초이며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생명의 종교입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그런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 15장 12절 이하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믿음도 헛되고 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강력히 말씀했습니다.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짧은 세상에서 어떤 고생을 하고 실패를 했다고 해도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국 덜햄(Durham) 지방에 한 석탄 광산이 무너져 164명이 생매장되어 죽은 사실이 있습니다. 얼마 후 시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시체와 함께 몇 줄의 글이 쓰여진 판자쪽을 발견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이렇게 쓴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영생을 얻고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가장 무서운 원수인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2. 부활신앙의 확실성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우리는 자연의 삼라만상을 보아서도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육의 부활과 영의 부활을 합니다. 불란서에서 고고학자들이 2000년 된 고분에서 꽃씨를 발견했는데 의혹을 가진 식물학자들이 그 꽃씨를 땅에 심어 보았더니 여러 날 후에 굳은 땅을 뚫고 싹이 살아 올라오더랍니다. 에집트에서는 피라미드에서 3000년 묵은 콩을 발견해서 1844년 6월 4일에 시험삼아 심었더니 역시 땅 속에서 죽은 듯 하던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고 다시 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년생 식물도 몇 천 년 후라도 다시 사는 것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그보다 높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 왜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영생하는 존재로서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사람의 본능을 보아서도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식물과 달리 영생을 사모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는 본능을 가진 것은 여자가 있기 때문이요,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본능을 가진 것도 남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먹고 싶은 것은 어딘가 그것이 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만이 유독 영생, 내세를 사모하는 것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내세가 있고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영적 경험이 깊은 이들을 통하여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말하는 죽음 후의 세계,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와서 말하는 증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썬다싱 같은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기도하다가 영계의 신비한 세계를 들락날락하며 천사와도 대화하고 예수님과도 대화하곤 한답니다.
저의 엄친께서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3개월 이상 고생하시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한번은 아버님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모 교회에서 깊은 밤까지 기도하는 중 비몽사몽간에 우리 아버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주여, 저기가 우리 아버님 가실 곳이면 이 괴로운 장막을 벗고 어서 가시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다가 집에서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는 어서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 같아 다시 치료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넷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철저하게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부분마다 부활과 영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나의 입술이 주님의 부활을 간증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하면 웬일인지 신이 나는 것은 내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찬송하기 때문입니다.
3. 부활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습니다.
첫째, 과거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지금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15장 22절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불트만(Rudolf Bultman)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이나 재림, 천국, 지옥까지 모두 사실로 믿지 않고 비신화(Demythologyzation)라고 해서 그 의미만 찾자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학자들의 정의라 외쳐도 절대 믿으면 망합니다.
파스칼이란 과학자는 "예수의 제자나 부활 주를 목격한 자들이 거짓말이라면 이 거짓말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치고 자기 자손들까지도 희생시키려고 했을까" 했습니다.
둘째, 현재 성도들의 영적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이 순간이라도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내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나의 주님으로 믿을 때 그 영혼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는 반대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장 25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현재의 부활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요 3 : 3-5).
셋째, 미래에 주님 재림하실 때 주와 함께 잠자던 자들이 부활하며 백보좌의 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52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다 변화하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17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힘주어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후 최대의 소망입니다.
페터슨(Peterson Smith)이란 사람은 "인간에게 죽음이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윈터(David Winter) 씨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자세야말로 진정한 삶의 자세이며 또 모든 고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 과거·현재·미래의 부활을 확실히 믿었다가 주님 오실 때 부활과 휴거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날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줄 터이니 요청하라고 했더니 디오게네스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좋으니 영원한 것(The last portions of immortality)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알렉산더 대왕은 그런 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때에 디오게네스는 "그런데 왜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다 정복하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한순간의 보장도 없으면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알렉산더는 16살 때 마게도니아의 치리자가 되었고, 18살 때 승리의 장군이 되었으며, 20살 때 왕이 되었지만, 33살 때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시다가 푹 고꾸라져 며칠 후에 죽었다고 합니다.
결 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교수대 위에 있고 죄악은 언제나 왕좌 위에 있다. 그러나 미래의 역사는 교수대가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교수대 위에 있는 것 진리 부활의 말씀을 믿고 나가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배의 은총과 축복을 힘입게 됩니다.
역사가 끌린은 청교도 시대에 영국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도덕적 큰 변화가 온 때는 한 책의 국민이 되었으니 그 책은 곧 부활의 주님을 믿는 성서였다. 저들은 집과 교회에서 성경을 많이 읽을 때 새로운 변화의 세계 활기찬 영국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썩고 타락하며 그 오염이 자연에까지 이르러 산과 강과 바다까지도 썩어 들어가는 세상에서 이민족이 살 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유명한 파스칼은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나 자기의 생질이 눈병이 나서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 않자, 성전에서 성기를 만지는 순간 병이 나서 기독교 부활의 신비성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에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부활의 사건이 날마다 때마다 일어나서 은총과 새로운 사건 속에 사시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가 부활과 영생의 나라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기초이며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며, 생명의 종교입니다.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그런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 15장 12절 이하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믿음도 헛되고 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19절에서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강력히 말씀했습니다.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짧은 세상에서 어떤 고생을 하고 실패를 했다고 해도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국 덜햄(Durham) 지방에 한 석탄 광산이 무너져 164명이 생매장되어 죽은 사실이 있습니다. 얼마 후 시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시체와 함께 몇 줄의 글이 쓰여진 판자쪽을 발견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이렇게 쓴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영생을 얻고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가장 무서운 원수인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2. 부활신앙의 확실성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우리는 자연의 삼라만상을 보아서도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육의 부활과 영의 부활을 합니다. 불란서에서 고고학자들이 2000년 된 고분에서 꽃씨를 발견했는데 의혹을 가진 식물학자들이 그 꽃씨를 땅에 심어 보았더니 여러 날 후에 굳은 땅을 뚫고 싹이 살아 올라오더랍니다. 에집트에서는 피라미드에서 3000년 묵은 콩을 발견해서 1844년 6월 4일에 시험삼아 심었더니 역시 땅 속에서 죽은 듯 하던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고 다시 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년생 식물도 몇 천 년 후라도 다시 사는 것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그보다 높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 왜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영생하는 존재로서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사람의 본능을 보아서도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식물과 달리 영생을 사모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는 본능을 가진 것은 여자가 있기 때문이요,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본능을 가진 것도 남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먹고 싶은 것은 어딘가 그것이 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만이 유독 영생, 내세를 사모하는 것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내세가 있고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영적 경험이 깊은 이들을 통하여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말하는 죽음 후의 세계,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와서 말하는 증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썬다싱 같은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기도하다가 영계의 신비한 세계를 들락날락하며 천사와도 대화하고 예수님과도 대화하곤 한답니다.
저의 엄친께서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3개월 이상 고생하시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한번은 아버님이 너무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모 교회에서 깊은 밤까지 기도하는 중 비몽사몽간에 우리 아버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주여, 저기가 우리 아버님 가실 곳이면 이 괴로운 장막을 벗고 어서 가시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다가 집에서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는 어서 돌아가시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 같아 다시 치료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넷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철저하게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부분마다 부활과 영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나의 입술이 주님의 부활을 간증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네"하면 웬일인지 신이 나는 것은 내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찬송하기 때문입니다.
3. 부활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습니다.
첫째, 과거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지금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15장 22절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불트만(Rudolf Bultman)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이나 재림, 천국, 지옥까지 모두 사실로 믿지 않고 비신화(Demythologyzation)라고 해서 그 의미만 찾자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은 학자들의 정의라 외쳐도 절대 믿으면 망합니다.
파스칼이란 과학자는 "예수의 제자나 부활 주를 목격한 자들이 거짓말이라면 이 거짓말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치고 자기 자손들까지도 희생시키려고 했을까" 했습니다.
둘째, 현재 성도들의 영적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이 순간이라도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내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나의 주님으로 믿을 때 그 영혼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는 반대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장 25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현재의 부활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요 3 : 3-5).
셋째, 미래에 주님 재림하실 때 주와 함께 잠자던 자들이 부활하며 백보좌의 심판을 믿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52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다 변화하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17절에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힘주어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후 최대의 소망입니다.
페터슨(Peterson Smith)이란 사람은 "인간에게 죽음이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데이비드 윈터(David Winter) 씨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자세야말로 진정한 삶의 자세이며 또 모든 고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 과거·현재·미래의 부활을 확실히 믿었다가 주님 오실 때 부활과 휴거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어느날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줄 터이니 요청하라고 했더니 디오게네스는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좋으니 영원한 것(The last portions of immortality)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알렉산더 대왕은 그런 것은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때에 디오게네스는 "그런데 왜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다 정복하려고 하십니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한순간의 보장도 없으면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알렉산더는 16살 때 마게도니아의 치리자가 되었고, 18살 때 승리의 장군이 되었으며, 20살 때 왕이 되었지만, 33살 때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시다가 푹 고꾸라져 며칠 후에 죽었다고 합니다.
결 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교수대 위에 있고 죄악은 언제나 왕좌 위에 있다. 그러나 미래의 역사는 교수대가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교수대 위에 있는 것 진리 부활의 말씀을 믿고 나가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배의 은총과 축복을 힘입게 됩니다.
역사가 끌린은 청교도 시대에 영국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도덕적 큰 변화가 온 때는 한 책의 국민이 되었으니 그 책은 곧 부활의 주님을 믿는 성서였다. 저들은 집과 교회에서 성경을 많이 읽을 때 새로운 변화의 세계 활기찬 영국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위에서 아래까지 썩고 타락하며 그 오염이 자연에까지 이르러 산과 강과 바다까지도 썩어 들어가는 세상에서 이민족이 살 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길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유명한 파스칼은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나 자기의 생질이 눈병이 나서 아무리 약을 써도 낫지 않자, 성전에서 성기를 만지는 순간 병이 나서 기독교 부활의 신비성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에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부활의 사건이 날마다 때마다 일어나서 은총과 새로운 사건 속에 사시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가 부활과 영생의 나라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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