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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산 자를 만난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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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파릇파릇한 봄기운이 확연한 자연 변화의 달이며, 어디서든지 생명의 약동을 호흡할 수 있는 축복의 달이 기도합니다. 4월에는 청명, 한식, 곡우 등이 끼여있어 많은 사람들이 성묘하기 위하여 조상들의 묘소를 찾아가며, 농부들은 씨를 뿌리기 위한 준비는 물론 가정마다 정원 가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해군의 항구 진해에서는 벗꽃 군항제가 시작되어 많은 관광객이 몰리기도 합니다. 금년에도 식목일에는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기관, 학교, 회사, 가정까지도 산과 정원에 많은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역사를 보면 4월은 많은 희비애락이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4월 6일은 향토예비군의 날이요, 7일은 보건의 날이고, 19일은 4·19 학생의거 혁명을 생각할 수 있으며, 15일은 세종대왕의 생일이고, 21일은 과학의 날이요, 22일은 체신의 날, 28일은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이며, 13일은 임시정부 헌법공포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4월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이 있으며, 부활주일과, 렌트사순절, 즉 부활절 40일 전에 막바지 날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엔 본문을 통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자를 만난 무리들"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살아 우리 속에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면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시어 여러 번 여러 곳에 나타나시어 낙심자를 부르시고, 타락자를 돌아오게 하시며, 박해자를 회개시키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 몇 군데를 생각함으로 감추어진 진리와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예수님 시신에 향유나 발라드릴까 하여 무덤에 참배 갔다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산 자를 만난 여인을 생각해 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곁이 그리워 적막한 무덤을 애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여 찾아갔다가 살아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찬송가에서 마리아의 심정을 표현하라면 아마 이랬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뿐일세"(찬송 82장 5절)
마리아는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불안이 평안함으로 변했으며,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바꾸어 졌습니다. 또한, 힘잃은 발걸음이 용기를 얻었고, 회의적인 믿음이 구원의 확신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7절의 말씀대로 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가 되었고, 내 여호와 하나님이 곧 너희 여호와 하나님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둘째, 무덤과 같은 현실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무덤과 같은 현실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죽은 예수의 무덤에 참배를 온 마리아가 아니고 살아계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만나자 부활의 주님은 여러 차례 여러 곳에서 만나주셨는데, 지금은 여기서 우리가 주님을 만날 차례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만나면 은총과 천국으로 변합니다. 찬송가495장 1절에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는 고백의 찬송이 있습니다.
이 타락된 풍조, 경제의 불황, 사상의 위기, 정치의 혼란,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죄악의 무덤에서 방황하여 서성거리지 말고 산 자를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놓는 은총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 교회는 빈 무덤과 같이 느껴지며, 가정은 불안의 독 안 같고, 일터는 교도소와 같이 느껴지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마시고 기대하십시오. 마리아는 빈 무덤이라도 주님의 곁이 그리워 찾아갔다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기쁨으로 변화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천국에 대하여 오해하는 이가 있습니다. 천국은 그 어디나 주님 모신 곳입니다. 어떤 호조건에서도 주님이 안계시면 지옥이요, 어떤 악조건에서도 주님 모신 곳이 천국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도 주님께 찬송했을 때 천국이 되었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모습으로 변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쁠 때는 사랑하는 이에게 존경을 받을 때와 승진과 출세가 있을 때입니다. 또한, 선물을 받을 때와 잊어버린 사람이나 물건을 되찾았을 때 일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만난 기쁨의 순간을 그의 평생 에 제일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기쁨이 우리에게도 충만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엠마오 도상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 가던 길 에서 돌아섰습니다 (눅 24 : 13-35)
 첫째, 절망의 길에 선 두 청년을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압박과 굴욕과 가난에서 해방시켜 살 길을 열어주는 정치적인 메시야로 믿다가 그가 십자가에서 죽어가자 크게 실망하여 절망감을 안고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를 향하여 가다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절망과 낙심과 허탈의 상태에서 맥빠진 발걸음을 힘들게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 살아나신 메시야를 만났을 때는 그들의 생각과 태도가 180°도로 바꾸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말씀이 깨달아졌으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또한 눈이 밝아서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했으니 성전과 사명지를 찾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용기와 기쁨을 가지고 확신있는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예수의 제자나 부활 주님을 목격한 자들이 거짓말이라면 이 거짓말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치고 자기 자손들까지 희생시키려고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신앙의 도상(道上)이나 노중(路中)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청년처럼 방황하고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지금 이 시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 하면 그 발걸음은 곧 용기와 확신과 축복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여호와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며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으며, 니체는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죽어서 없어진 듯이 기독교인이 믿고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지적한 말이지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히 죽을 수가 없는 분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개념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보십시오. 눈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말씀이 새로와집니다. 실패와 저주의 발걸음이 생명의 발걸음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3. 죽은 예수를 멀리하고 옛 직업으로 되돌아간 베드로와 일곱 제자는 디베랴 바다에서 살아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요 21 : 1-11)
옛 직업을 따라 다시 디베랴 바다로 돌아간 베드로는 물 속에 고기도 여전했고 어구도 갖추었으며 기술도 변치 않았으나 고기는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인간의 계획과 노력이 사람의 뜻을 자유자재로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베드로 일행에게는 주님을 잃어버린 허탈과 고기를 잡지 못한 짜증이 최고도로 상접했을 때 살아나신 주님을 바다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디베랴 바다로 물고기 잡으러 되돌아간 베드로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몇 가지 삶의 모습이 변화했습니다.
 첫째, 아무리 재간이 뛰어나고 배경이 좋고 가진 것이 많아도 선택함을 받은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 없이 살면 실패할 수밖에 없고 헛수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개서 2장 8절에 보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여호와 하나님 없이 살아 얻은 것이 무엇이며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잃게 되자 디베랴 바다로 가서 다시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둘째,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베드로는 살아나신 주님을 만나자 곧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것이 선민들의 생활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 무엇은 잃어도 주님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살아야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선민은 주님을 떠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최후에 가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셋째, 주님 만난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은 것으로 족하지 않고 사람 낚는 어부로 변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자세요, 신앙인의 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만나고 믿음을 가지면서 어떻게 변하셨습니까
결 론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상 사는 것이 고해(苦海)라고 합니다. 험난준령이라 합니다. 이러한 험난한 세상에서 신앙에 실패하셨습니까 건강에 실패하셨습니까 경제생활에 실패하셨습니까 사업에 실패하셨습니까 모두가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소망과 희망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살아나신 주님을 만난 곳은 마리아처럼 적막한 무덤이며, 글로바처럼 실의에 찬 엠마오의 도상입니다. 베드로처럼 실패에 찬 디베랴의 바다입니다. 그 어디서나 주님 만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지금 여기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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