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부활절] 부활

본문

이 세상에 있는 많은 불신자들은 사람들이 죽으면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사람들이 내세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어떤 종교도 내세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힌 종교가 없습니다.
며칠전 평택중앙교회에서 이선희 집사님이 전도간증집회를 가졌는데 여기에서 이선희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성철'스님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라"는 법어를 쓰셨는데 그 다음에 또다른 글을 썼는데 그것에 보면 우리 불교에서는 극락을 가르치고 있지만 석가모니는 이런 내용을 가르쳐본일이 없다. 불교에서 극락을 이야기 하는 것은 기독교를 염두에 둔 낭설일 뿐이다. 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렇듯 타종교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독 기독교만은 당당하게 부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죽으신지 삼일만에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과 어둠의 권세를 격파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장차 모두 다 살아날 것이요, 주의 재림후 주께서 이 세상을 완전히 낙원으로 복구하여 주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이 세상을 버림이 아니요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을 정복하고 이 세상을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하에 두는 위대한 승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 개인과 국가와 사회속에 불굴의 희망과 용기를 부어 줍니다. 즉 현실적인 환경을 볼 때 죄악과 절망이 소용돌이 치는 것 같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부활의 생명적 역사가 모든 존재의 바탕에서 새 세계의 질서를 창조해 나갈 것이며 종국적인 승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미 기약되어 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죽음으로써 이 세상을 하직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매 모두 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으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적인 세계와 이 우주를 상속받아서 주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게 될 것을 언약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마귀와 죄와 저주와 죽음의 지배하에 있게 된 세계에 대한 영원하고도 결정적인 승리와 회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가장 큰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만일 기독교에 부활이 없다면 타종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참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신앙을 기둥으로 삶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예수님께서 부활신앙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4 가지 영적축복에 대하여 살펴보며 함께 부활의 축복을 누리며 은혜안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첫째: 평안의 복입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하신
 첫번째 일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만나신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제자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골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들은 두려워서 문을 꼭 잠그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문을 꼭 잠그었다'는 것은 그때 제자들의 마음을잘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문을 잠그는 것은 무엇인가 두려움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제자들은 사람이 무서웠습니다. 길거리도 무서웠습니다. 햇빛도 무서웠고 바람소리 조차 무서웠습니다. 마음이 온통 두려움으로가득 찼습니다. 이 자리에 웃음이 있었겠습니까 감사가 있었겠습니까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평안도,여유도,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새벽에 놀라운 소식이 왔었는데 그것은 무덤에 갔던 베드로와 요한이 전해준 예수님의 무덤에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과 막달라 마리아가 전해 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소식을듣고도 그들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믿어지지가 않았기때문입니다. 마음은 여전히 굳게 닫혀져 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미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밤이 다 되도록 무서워하고만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굳게닫힌 문을 뚫고 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고 또 감격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얼었던 얼음이 녹듯이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거짓말같이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도 마음을 여십시오. 오늘 이자리에도 표정이 문을 걸어 잠그고 숨은 제자들과 같으신 분들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마치 형사같은 분들도 계시고 구술시험보는 시험관 같은 분들도 계십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계십니다. 설교하는 제가 아주 힘이 듭니다. 마음이 닫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지금 이시간부터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하셔서, 정말 놀라웁게 얼굴이 활짝 펴지고 몸의 긴장이 풀려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기쁨의 복입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아직도 많은 성도들이 자신도 모르는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에 환한 생명의 빛, 기쁨의 빛, 은혜의 빛, 능력의 빛이 들어 오게 하십시오. 신선한 공기가 마음 마음을 통하게 하시고, 가정 가정을 통하게 하십시오. 부활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찾아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제자들에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제자들의 심령에도 부활의 역사가 일어 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말씀, 곧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요 11:25)는 말씀이 헛 말씀이 아니라 진짜 약속의 말씀이었구나 하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의 진리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쁨의 새 소식입니다.
우리는 복음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인데 무엇을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쁜 소식이라고 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기쁜 소식은 예수의 부활입니다. 이 땅은 죽음이 지배하고 왕노릇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 죽으려고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후 목적지는 죽음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입니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지구상에서 아무도 부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에 대한 학문도 없었고 전설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인간이 다시 산다는 진리가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사는것이 우리의 최후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부활이란 놀라운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전심전력으로 얻으려고 노력하던 육신에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상앞에 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구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때문에 그 나라를 사모하고 그 때를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즐겁다고 하는 것들을 다 초월하고 포기할수 있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순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이 있기때문에 남에게 믿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무덤을 찾은 여자들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활 신앙은 사람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버리는 생명의 열쇠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님께서 '달리다굼'명령하시니 죽었던 자들이 일어났고, 앉았고, 말했으며, 음식도 먹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움과 기쁨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소리높여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을 일으키시며 생기넘치는 은혜의 삶 기쁨의 삶을 살도록 축복해주십니다.
 셋째 :소망의 복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무덤에 있어야 할 시신조차 보이지 않자 모두가 절망에 빠졌습니다. 더욱이 누가복음 24장 13절부터 27절에 보면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깊은 실의와 실망감에 빠져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활의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곤고할 때에 나타나십니다. 우리가 슬픔의 짊을 지고 있을 때 나타나십니다.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마11:28)고 말씀해 주십니다.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두 제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부으러 무덤에 올라갔던 여자들에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아니하고 낙심가운데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않아 계신 여러분중에서도 오늘이 부활절이라고는 하는 사실은 다 알지만 그 부활의 주님을 직접만나본 경험이 없는지라 낙심과 절망과 근심과 염려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까지 찾아오셔서 대화와 말씀의 풀이를 통해 그들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게 하시고 회복되어진 심령의 뜨거움을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지 못한 남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자 달음박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때 이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죄악을 청산하고 부활하신 것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려주시고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심으로 영혼 부활의 소망을 채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의 부활하심으로 인간 부활의 소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또한 저주를 청산하고 부활하심으로 축복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으며,용서와 화해의 잔의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절망적인 존재였으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아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잇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인간의 가슴 속에 영원한 소망을 부활시키셨습니다.
6절에 "와서 그의 누우셨던 것을 보라. "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셔서 그 무덤속에 계시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실제로 여자들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모든 성도들도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믿음의 복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의 사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으며 두 사람이 가서 제자들에게 일렀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도마라는 제자는 실제로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이런 도마에게도 직접 몸을 보이심으로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말씀하시면서 부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더욱견고히 해주셨습니다.
만약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세상에 가장 바보일 것입니다. 부활이없다면 고전 15:13-19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로슈 멕도르씨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여 오던 일중에서 악랄하고 비 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위선중에 최대의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기적적인 사건일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오늘 이시간 우리가 여기모여 예수님께 예배를 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연락을 끊을 필요도 없습니다. 억울함을 참을 필요도 없고 원수를 용서할 필요도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방종하고 타락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어차피 영원히 죽을 것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과 우리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우리 신앙생활이 이렇게 되어도 괜찮은지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 보다 지혜롭고 귀가 밝은 사람들입니다. 먼저 소식을 들은 사람입니다. 지구상의 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이 소식을 듣지 못햇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고 부활이 진리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것과 같이 나도 산다는 약속을 가졌기에 누구에게나 담대히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식이 발달하고 과학문명이 고도화 되는 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문명화되어 종말이 가까왔다고 할 만큼 과학문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어도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견고히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핍박하는 자들은 부활의 소식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이천년 동안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래도 그 소식은 그침없이 전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전해준 소식이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길을 막고 죽일 수 있었지만 성령이 하시는 일은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도 성령을 제한하지 못합니다. 성령은 이 사람이 쓰러지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소식을 전하게 하십닉다. 그래서 그 소식은 계속해서 전해지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예수 재림하는 날에 주님이 부활하심 같이 우리도 부활할 줄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지구상에 죽음이 아무리 격렬하고 당연해도 주님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강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위안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살아나시고 부활은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우리를 죽일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를 고소할 자가 결코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억압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승리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어디서나 이 부활의 능력으로 실질적인 이기는 경험을 계속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