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의 신앙과 생명
본문
당신은 우유빛과 진홍빛으로 불타는 활짝 핀 뺨을 자랑합니까 장미를 죽고 시들어 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처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12)고 한 시인의 탄식은 지나친 표현 같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죽음으로 향해 가는 기나긴 죽음의 행렬에 뛰어듭니다. 부르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모든 인생의 길은 무덤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운 인생의 지리학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은 아주 깊은 심연이요, 미지의 것이요, 끝없는 공포요, 모든 것을 허무로 만들고 우리가 맺고 있는 일체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킵니다. 모든 인간의 불가피한 미래인 무덤은 무의미성의 총괄개념입니다. 우리 주님도 사실상의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부활절 예배는 환각적인 값싼 이로의 행사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성찬 예식은 사랑하는 선생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제사의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면 우리는 진노의 여호와 하나님, 무기력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고 부활을 못 미더워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부활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의 세력보다 더 강함을 가르칩니다.
판넨베르크는 “인간은 이 세계와 죽음을 넘어서 자기 운명의 최종적인 실현을 희망하는 미래를 향하여 열려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죽음은 분명히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부푼 희망과 가슴 설레이는 꿈들과 잘 짜여진 미래의 계획들은 죽음과 함께 끝납니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모든 의미와 가치를 빼앗아 가고 삶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창조적인 가능성을 무로 만들어 보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이 신자들의 마지막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죽음이 결코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단절시키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는 사람은 죽지만 홀로, 고독하게, 희망 없이, 허무하게, 저주스럽게 죽지 않습니다. 캄캄한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붙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보다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보다 죽음의 분리시키는 힘이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2. 부할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가능성을 부인하는 폐쇄적인 세계상을 깨뜨립니다.
바울 선생님은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에 지나가 버린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가르칩니다. 주님의 부활은 유일회적으로 마감된 사건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열려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참여하게 될 새로운 생명, 부활의 몸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는 한계일 수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한계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계 한 가운데 영원한 삶의 세계를 세우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잘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아시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 생명의 길이 열려 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사렛 예수를 살리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기업으로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빛이 꺼지고,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무덤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현존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보여줍니다.
3. 부활의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여금 부활의 소망을 가지 사람답게 살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알게 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해명하고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를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내세지향적인 소극적인 자세로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가능성을 부인하는 폐쇄적인 세계상에서 맞서서 복음을 전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선포하고 희망을 지닌 사람으로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신빙성 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부활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육체의 욕심 때문에 자신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되는 데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옛날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행하여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들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개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나가서 모든 사람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참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을 기억합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옛날 주님의 제자들처럼 잘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적대적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기억할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흙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진흙으로부터 우리를 부르사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생명, 영생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보내셨습니다. 어둡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부활절 예배는 환각적인 값싼 이로의 행사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성찬 예식은 사랑하는 선생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제사의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면 우리는 진노의 여호와 하나님, 무기력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고 부활을 못 미더워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 부활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의 세력보다 더 강함을 가르칩니다.
판넨베르크는 “인간은 이 세계와 죽음을 넘어서 자기 운명의 최종적인 실현을 희망하는 미래를 향하여 열려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죽음은 분명히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부푼 희망과 가슴 설레이는 꿈들과 잘 짜여진 미래의 계획들은 죽음과 함께 끝납니다.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모든 의미와 가치를 빼앗아 가고 삶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창조적인 가능성을 무로 만들어 보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이 신자들의 마지막이 아님을 선포합니다. 죽음이 결코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단절시키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는 사람은 죽지만 홀로, 고독하게, 희망 없이, 허무하게, 저주스럽게 죽지 않습니다. 캄캄한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붙드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보다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보다 죽음의 분리시키는 힘이 더 강할 수는 없습니다.
2. 부할 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가능성을 부인하는 폐쇄적인 세계상을 깨뜨립니다.
바울 선생님은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에 지나가 버린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가르칩니다. 주님의 부활은 유일회적으로 마감된 사건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열려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참여하게 될 새로운 생명, 부활의 몸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는 한계일 수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한계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계 한 가운데 영원한 삶의 세계를 세우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잘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아시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 생명의 길이 열려 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사렛 예수를 살리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기업으로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빛이 꺼지고,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무덤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현존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보여줍니다.
3. 부활의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여금 부활의 소망을 가지 사람답게 살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알게 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해명하고 전달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를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내세지향적인 소극적인 자세로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가능성을 부인하는 폐쇄적인 세계상에서 맞서서 복음을 전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선포하고 희망을 지닌 사람으로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신빙성 있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부활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육체의 욕심 때문에 자신의 몸을 불의의 무기로 사용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되는 데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옛날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며 복의 근원이 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행하여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들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개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나가서 모든 사람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참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을 기억합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옛날 주님의 제자들처럼 잘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칭찬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적대적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기억할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흙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진흙으로부터 우리를 부르사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생명, 영생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생명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보내셨습니다. 어둡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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