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하신 예수님( I )
본문
기독교 신앙은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종교"일지는 몰라도 "생명과 구원"은 아니며, 부활 신앙이 없는 기독교인은 "교인"일지는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닙니다. 이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은 스스로를 "부활"이라고 칭하셨고(요 11:25), 제자들도 자신들을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행 1:20).
성경에서 의미하는 부활은 단순하게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살리는 역사는 죽음 이후에 일어날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장차 영생할 뿐만 아니라, 만나는 그 순간 깨진 꿈이 회복되고, 지친 몸이 치유되며, 상한 마음이 위로 받습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날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 충만하면,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산 소망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봄으로, 부활의 주님의 만나고, 부활 신앙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급기야는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훈련된 사람이라도 일단 두려움에 빠지면, 그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두려움은 제자들로 하여금 부활에 대한 약속과 증거를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당하시기 전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막 9:31). 심지어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거했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요 20:18). 이처럼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은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모인 곳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요 20:19상).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배신하고, 부인하고, 믿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는 그곳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두려움과 절망으로 죽어가는 제자들을 살리시고, 삶의 소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눅 12:7)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아시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딤후 1:7)입니다. 혹시 지금 회사에서 퇴출당하고,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병으로 죽음의 위기에 있습니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문제 가운데 찾아오셔서 두려움을 쫓아내시고,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십니다(요일 4:4).
둘째,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은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요 20:19). 제자들의 지난 잘잘못을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으로 찾아오셔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인정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에 의한 '샬롬'입니다. '샬롬'은 어떠한 부분도 결여되거나 부족하거나 손상되지 않은, 모든 부분들이 완전한 조화와 질서, 그리고 통일을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나라간에 반목과 전쟁이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샬롬'의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뿐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넘쳐납니다.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시니 빛이 창조되고,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오는 그 말씀의 능력으로,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말씀하시니, 분명히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가 물러가고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샬롬"의 은혜를 누리는 최고의 방법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약속함과 동시에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의 신앙이 처음에는 불같이 타오르다가 곧 식어버리는 것은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면, 내가 누구이며,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항상 깨닫게 되며, 예수님을 향해 민감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면,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에 사로잡혀 평안합니다(롬 8:6).
셋째,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사명을 주신 주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천지창조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듯이, 부활의 주님은 그 숨을 내쉬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으며,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두려워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성도의 최우선 순위이자, 이 땅에 살면서 마지막까지 잃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것은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훈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령충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여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입니다(요 21:3).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내 십자가, 내 부활이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죽었던 "믿음"이 살아나고, 잃어버린 "소망"을 다시 꿈꾸게 되며, 무능력한 "사랑"이 생명의 능력으로 부활합니다.
넷째,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거부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요 3:18). 즉, 우리의 믿음의 기도와 입술의 선포에 "하늘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마 18:18).
세상은 죄를 두려워하고, 죄에 속고,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지만, 제자된 우리에게는 죄를 멸할 수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베풀고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영혼의 문제,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충만함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우리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날마다 부활의 주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살아가므로, 평강을 누리고,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는 부활의 일군이 됩시다. 부활의 주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사랑의 사역자가 됩시다.
성경에서 의미하는 부활은 단순하게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살리는 역사는 죽음 이후에 일어날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장차 영생할 뿐만 아니라, 만나는 그 순간 깨진 꿈이 회복되고, 지친 몸이 치유되며, 상한 마음이 위로 받습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날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 충만하면, 어떤 환경과 여건에서도 산 소망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봄으로, 부활의 주님의 만나고, 부활 신앙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급기야는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훈련된 사람이라도 일단 두려움에 빠지면, 그는 살았다 하나 죽은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두려움은 제자들로 하여금 부활에 대한 약속과 증거를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당하시기 전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막 9:31). 심지어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거했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요 20:18). 이처럼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은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모인 곳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요 20:19상).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배신하고, 부인하고, 믿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숨어 있는 그곳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두려움과 절망으로 죽어가는 제자들을 살리시고, 삶의 소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눅 12:7)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아시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딤후 1:7)입니다. 혹시 지금 회사에서 퇴출당하고,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병으로 죽음의 위기에 있습니까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문제 가운데 찾아오셔서 두려움을 쫓아내시고, 반드시 승리를 가져오십니다(요일 4:4).
둘째,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은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요 20:19). 제자들의 지난 잘잘못을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으로 찾아오셔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인정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여호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에 의한 '샬롬'입니다. '샬롬'은 어떠한 부분도 결여되거나 부족하거나 손상되지 않은, 모든 부분들이 완전한 조화와 질서, 그리고 통일을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나라간에 반목과 전쟁이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샬롬'의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뿐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넘쳐납니다. 빛이 있으라(창 1:3) 말씀하시니 빛이 창조되고,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오는 그 말씀의 능력으로,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말씀하시니, 분명히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가 물러가고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샬롬"의 은혜를 누리는 최고의 방법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약속함과 동시에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우리의 신앙이 처음에는 불같이 타오르다가 곧 식어버리는 것은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면, 내가 누구이며,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 항상 깨닫게 되며, 예수님을 향해 민감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면,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에 사로잡혀 평안합니다(롬 8:6).
셋째,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사명을 주신 주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천지창조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듯이, 부활의 주님은 그 숨을 내쉬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으며,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두려워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성도의 최우선 순위이자, 이 땅에 살면서 마지막까지 잃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것은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훈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령충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지 못하여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입니다(요 21:3).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내 십자가, 내 부활이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죽었던 "믿음"이 살아나고, 잃어버린 "소망"을 다시 꿈꾸게 되며, 무능력한 "사랑"이 생명의 능력으로 부활합니다.
넷째,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거부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요 3:18). 즉, 우리의 믿음의 기도와 입술의 선포에 "하늘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마 18:18).
세상은 죄를 두려워하고, 죄에 속고,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지만, 제자된 우리에게는 죄를 멸할 수 있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베풀고 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영혼의 문제,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충만함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우리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날마다 부활의 주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살아가므로, 평강을 누리고,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는 부활의 일군이 됩시다. 부활의 주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사랑의 사역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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