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의 증거와 증인들
본문
할렐루야! 부활절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과 가정 위에 우리주님의 평강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을 호화스럽게 단장해 놓고 자랑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무덤이 있었지만 그것은 빈 무덤입니다. 광림 수도원에 가면 산 위로 올라가면서 예수님의 일대기를 조형물로 떠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파른 언덕에 겟세마네 동산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맨 위쪽으로 올라가면 부활 동산이 있습니다. 거기에 빈 무덤이 있고 세마포가 개여 있습니다.
여기에 올라간 모든 목사님들은 감동을 하며 그 무덤 안에서 하나같이 기도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분들도 있고 손을 들고 감격하며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그 감격을 가슴에 새기며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마치 우리 몸의 심장과 같습니다. 심장을 통하여 온 몸에 피를 밀어 보내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부활은 복음의 심장으로서 진리의 전 영역에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지 아니하였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죄와 사망과 어두움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을 시켜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두 기초석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으십니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믿으십니까 여러 성도님들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 받았습니다. 더 이상 사망 권세가 나를 누르지 못합니다. 사탄 마귀 귀신의 세력에서 승리했습니다.
오늘은 부활장인 고전 15:1-11절 말씀을 통하여 부활의 증거와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예수 부활의 증거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이의를 제시합니다.
(1) 기절설
예수님이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2) 무덤을 찰 못 찾았다는 설
어두운 새벽길에 잘 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3) 도난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4) 환상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부활을 말하신 것을 굳게 믿고 머리 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단자들과 신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부활만 부인하면 기독교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이적 중에 이적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모든 이적을 못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으면 모든 이적을 믿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부활을 부정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부활은 너무 많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고전 15장은 부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베이커는 말하기를 "본 장은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에 대하여 기록된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1) 교회의 증거
01 형제들아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0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고린도 교회가 부활의 복음을 믿고 교회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을 받아드리고 교회가 서 있다는 그것만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린도 교회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2000년 역사동안 교회가 존재하고 부흥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한 두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을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도 세계에서 신 구교를 무론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그토록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교회는 부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므로 교회는 생겨졌고 발전하고 부흥을 가져옵니다. 예수님의 부활 없이 어떻게 오늘의 교회가 형성되어 졌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맞습니까
2) 성경의 증거입니다.
0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0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신구약 성경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구약의 예언
시 16:10-11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이외에 수많은 구약의 예언이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이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겠다고 14번이나 힘주어 예고해 놓았습니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천지는 변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한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3) 목격자의 증거(역사적인 증거)
0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0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0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0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습니다.
① 게바(베드로) ② 열 두 제자 ③ 오백여 형제 ⇒ 일시에 보이셨다.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다. ④ 야고보 ⑤ 모든 사도 ⑥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된 사실입니다.
에드워드 클라크 경이라는 유명한 법률가가 부활 사건에 대하여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법률가로서 오랫동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를 찾았는데 지금까지 법원에서 재판할 때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보다 더 강력한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믿을 만한 증거는 언제나 꾸밈이 없으며 결과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 복음서에 부활에 대한 증거가 바로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사 교수인 토마스 아놀드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연구를 깊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한 확신을 얻기 위해 부활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검토해 본 결과 부활의 증거보다 완전하고 충분한 증거가 없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합니다. 이것 외에도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찾으면 수없이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존속되고 있고 주일이 지켜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내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저도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의심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믿으시지요 성령님께서 확실하게 증거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2절에 보니까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히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생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의 태도
1) 겸손해야 합니다.
0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0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①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자
에크트로마티(ejktrwvmati) 유산된 태아, 조산아, 8삭 둥이 혹은 7삭 둥이, 7푼, 8푼이 같은 자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까
②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사도들 중에 제일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성도 중에 작은 자라 했다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③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할 자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다는 것이 늘 황송하고 부끄럽게 생각하여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부활을 믿는 자는 예수님 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프랑스 포항가리대통령에게 이런 아름다운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쏠버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대통령 재임시 쏠버 대학의 라비스 박사의 교육 5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대통령은 모교의 스승인 라비스 박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하였습니다.
식순에 따라서 라비스 박사가 답사를 하기 위하여 단상에 올라가 보니 대통령이 내빈석에도 아닌 학생 석의 맨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본 라비스 박사가 깜짝 놀라 황급히 달려 내려왔습니다. 그가 대통령을 단상으로 모시려하자 대통령은 끝내 사양을 하면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에게 배운 제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선생님입니다. 저는 오늘 대통령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오늘의 이 영광스러운 날에 선생님을 축하하러 온 것뿐입니다. "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자리를 메운 수많은 관중들은 선생님과 제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대통령의 겸손에 감복하여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입니다. 라비스 박사는 할 수 없이 단상으로 올라가 "저렇게 훌륭하신 대통령이 나의 제자라니 꿈만 같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훌륭하고 겸손하신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 나라는 부강해질 것입니다. "
겸손이 성도의 덕목 중에 으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구합니다. 겸손은 모든 구한 것을 지킵니다. 겸손은 Master Card 와 같습니다. Master Key 와 같습니다. 어디나, 누구에게나 통합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로서 바울처럼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의 나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더 많이 수고하게 됩니다.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핍박자인 자기가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이 전적으로 은혜인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힘을 다하여 수고했습니다. 수고해 놓고도 수고한 것이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는 이런 바른 은혜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나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열심히 땀흘려 봉사하는 것도 은혜인줄 압니다.
존 뉴톤은 10대 초반에 영국의 노예 선에서 승무원으로 탔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아프리카 백인 노예상의 흑인 아내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선장의 흑인 노예에게 온갖 학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음식을 주지 않아서 흑인 부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주워 먹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땅에서 얌이라는 감자 종류를 파내어 먹을 만큼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런 존 뉴톤이 노예 생활에서 풀려나고 현지 인들과 오래 같이 살다가 자신이 선장이 되었습니다. 선장이 된 이후로 그는 온갖 방탕한 생활을 다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생활을 다 동원하여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이 드디어 어느날 기적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회심한 후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나와 같은 난봉군, 여호와 하나님께 삿대질하던 자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삼아 준 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찬송가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라는 찬송입니다.
찬405
1절)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절)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그가 그 후에 런던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묘비를 썼습니다. 한 때 불신자이며 난봉꾼이던 나, 아프리카 노예들의 종인 내가 우리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긍휼로 인해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 때 그토록 오랫동안 파괴시키기를 원했던 그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세움을 입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감격스럽게 전파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자는 은혜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계속 수많은 일을 하고도 그 일을 한 것이 주의 은혜 인줄 알고 감사하며 받아 드립니다.
또 한 분을 소개합니다. 많은 시집을 낸 오혜령씨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혜령 씨가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책을 내 놓았습니다. 그는 교수의 딸로 이화여고 교편을 잡으면서 많은 시집을 내었습니다. 그는 아주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안 믿으려 하고 신앙생활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나 매달리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곁길로 갔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그물을 던지면 얼마든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라고 하는 자기 과신 때문에 오혜령 씨도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30대에 암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위암과 임파선 암을 진단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자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매주마다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50송이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반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순간 그는 정신없이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찾아 오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주님께서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에까지 따라 오시는 것입니까 그 말을 내 뱉고 나자 그 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며칠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십 개의 양초가 녹아 내릴 때까지 회개하고 또 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예배를 혼자 드리고 있었는데 온몸의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 왔구나. '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복수로 차 올랐던 배가 꺼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살아 계신 주님이 자기를 찾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는 경기도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버림받은 노인들을 돌보는 평화의 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는 하루 9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에 바친다고 합니다. 그가 쓴 글 중에 감동적인 내용을 소개합니다.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 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비록 저희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당신을 지금 당장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당신께 대한 신뢰 속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각오가 설 때 저희 행위에 방향과 성취가 부여됩니다.
당신은 가장자리에 계시지만 늘 저희에게 그물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던지라고 분부하고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날마다 호숫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
너무 영감 있고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므로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부활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그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도 전파했고 제자들도 전파했고 바울도 전파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사람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행4: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하였습니다. 베드로, 요한의 고백입니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부활을 체험한 자는 이 사실을 전하게 됩니다.
제자들을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까지 부활의 주님을 전했습니다.
기뻐하면서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순교의 제물로서 성령을 받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래서 박해를 받을 때에 끓는 가마솥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후에 밧모 섬으로 추방되었다가 에베소에 와서 마지막을 보내며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이스의 밧드라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교수형을 당했거나 돌로 쳐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서 살가죽을 벗기우고 참수를 당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칼로 살해를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탑에 던져져서 돌과 곤봉에 맞았으나 살아남아 있다가 톱으로 짤려 다시 죽었습니다.
유다 다대오는 시리아에서 칼과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셀롯인 열심당원 시몬은 페르시아 근처에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세상은 험난해지고 사악하고 음란하고 방탕합니다. 미움과 시기와 전쟁의 소문이 날로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참 필요한 분이 있다면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참 인류의 소망이요, 구세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활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며 이 부활하신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무덤을 호화스럽게 단장해 놓고 자랑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무덤이 있었지만 그것은 빈 무덤입니다. 광림 수도원에 가면 산 위로 올라가면서 예수님의 일대기를 조형물로 떠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파른 언덕에 겟세마네 동산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맨 위쪽으로 올라가면 부활 동산이 있습니다. 거기에 빈 무덤이 있고 세마포가 개여 있습니다.
여기에 올라간 모든 목사님들은 감동을 하며 그 무덤 안에서 하나같이 기도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분들도 있고 손을 들고 감격하며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의 부활하셨다는 그 감격을 가슴에 새기며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마치 우리 몸의 심장과 같습니다. 심장을 통하여 온 몸에 피를 밀어 보내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부활은 복음의 심장으로서 진리의 전 영역에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지 아니하였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죄와 사망과 어두움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을 시켜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두 기초석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으십니까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믿으십니까 여러 성도님들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 받았습니다. 더 이상 사망 권세가 나를 누르지 못합니다. 사탄 마귀 귀신의 세력에서 승리했습니다.
오늘은 부활장인 고전 15:1-11절 말씀을 통하여 부활의 증거와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예수 부활의 증거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이의를 제시합니다.
(1) 기절설
예수님이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2) 무덤을 찰 못 찾았다는 설
어두운 새벽길에 잘 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3) 도난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이다.
(4) 환상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부활을 말하신 것을 굳게 믿고 머리 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단자들과 신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부활만 부인하면 기독교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이적 중에 이적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모든 이적을 못 믿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으면 모든 이적을 믿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부활을 부정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부활은 너무 많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고전 15장은 부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베이커는 말하기를 "본 장은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에 대하여 기록된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1) 교회의 증거
01 형제들아 !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0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는 고린도 교회가 부활의 복음을 믿고 교회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을 받아드리고 교회가 서 있다는 그것만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린도 교회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2000년 역사동안 교회가 존재하고 부흥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한 두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을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도 세계에서 신 구교를 무론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그토록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교회는 부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므로 교회는 생겨졌고 발전하고 부흥을 가져옵니다. 예수님의 부활 없이 어떻게 오늘의 교회가 형성되어 졌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맞습니까
2) 성경의 증거입니다.
0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0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신구약 성경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구약의 예언
시 16:10-11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이외에 수많은 구약의 예언이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이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겠다고 14번이나 힘주어 예고해 놓았습니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천지는 변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한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3) 목격자의 증거(역사적인 증거)
0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0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0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0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습니다.
① 게바(베드로) ② 열 두 제자 ③ 오백여 형제 ⇒ 일시에 보이셨다.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다. ④ 야고보 ⑤ 모든 사도 ⑥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된 사실입니다.
에드워드 클라크 경이라는 유명한 법률가가 부활 사건에 대하여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법률가로서 오랫동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를 찾았는데 지금까지 법원에서 재판할 때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보다 더 강력한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믿을 만한 증거는 언제나 꾸밈이 없으며 결과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 복음서에 부활에 대한 증거가 바로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사 교수인 토마스 아놀드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연구를 깊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한 확신을 얻기 위해 부활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검토해 본 결과 부활의 증거보다 완전하고 충분한 증거가 없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합니다. 이것 외에도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찾으면 수없이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존속되고 있고 주일이 지켜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내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저도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의심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믿으시지요 성령님께서 확실하게 증거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2절에 보니까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 십자가와 부활을 확실히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생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의 태도
1) 겸손해야 합니다.
0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0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①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자
에크트로마티(ejktrwvmati) 유산된 태아, 조산아, 8삭 둥이 혹은 7삭 둥이, 7푼, 8푼이 같은 자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까
②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사도들 중에 제일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성도 중에 작은 자라 했다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③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할 자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다는 것이 늘 황송하고 부끄럽게 생각하여 사도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부활을 믿는 자는 예수님 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프랑스 포항가리대통령에게 이런 아름다운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쏠버 대학을 졸업하였는데 대통령 재임시 쏠버 대학의 라비스 박사의 교육 5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대통령은 모교의 스승인 라비스 박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하였습니다.
식순에 따라서 라비스 박사가 답사를 하기 위하여 단상에 올라가 보니 대통령이 내빈석에도 아닌 학생 석의 맨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본 라비스 박사가 깜짝 놀라 황급히 달려 내려왔습니다. 그가 대통령을 단상으로 모시려하자 대통령은 끝내 사양을 하면서 "선생님, 저는 선생님에게 배운 제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선생님입니다. 저는 오늘 대통령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오늘의 이 영광스러운 날에 선생님을 축하하러 온 것뿐입니다. "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자리를 메운 수많은 관중들은 선생님과 제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대통령의 겸손에 감복하여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입니다. 라비스 박사는 할 수 없이 단상으로 올라가 "저렇게 훌륭하신 대통령이 나의 제자라니 꿈만 같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훌륭하고 겸손하신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 나라는 부강해질 것입니다. "
겸손이 성도의 덕목 중에 으뜸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구합니다. 겸손은 모든 구한 것을 지킵니다. 겸손은 Master Card 와 같습니다. Master Key 와 같습니다. 어디나, 누구에게나 통합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로서 바울처럼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의 나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더 많이 수고하게 됩니다.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핍박자인 자기가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이 전적으로 은혜인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힘을 다하여 수고했습니다. 수고해 놓고도 수고한 것이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는 이런 바른 은혜를 받습니다. 지금까지 나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요, 열심히 땀흘려 봉사하는 것도 은혜인줄 압니다.
존 뉴톤은 10대 초반에 영국의 노예 선에서 승무원으로 탔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아프리카 백인 노예상의 흑인 아내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선장의 흑인 노예에게 온갖 학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음식을 주지 않아서 흑인 부인이 먹고 남은 음식을 주워 먹을 정도였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땅에서 얌이라는 감자 종류를 파내어 먹을 만큼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런 존 뉴톤이 노예 생활에서 풀려나고 현지 인들과 오래 같이 살다가 자신이 선장이 되었습니다. 선장이 된 이후로 그는 온갖 방탕한 생활을 다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생활을 다 동원하여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사람이 드디어 어느날 기적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회심한 후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나와 같은 난봉군, 여호와 하나님께 삿대질하던 자를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삼아 준 것이 너무나 감사하여 찬송가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이라는 찬송입니다.
찬405
1절)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절)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그가 그 후에 런던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묘비를 썼습니다. 한 때 불신자이며 난봉꾼이던 나, 아프리카 노예들의 종인 내가 우리 주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긍휼로 인해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 때 그토록 오랫동안 파괴시키기를 원했던 그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세움을 입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변화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감격스럽게 전파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자는 은혜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계속 수많은 일을 하고도 그 일을 한 것이 주의 은혜 인줄 알고 감사하며 받아 드립니다.
또 한 분을 소개합니다. 많은 시집을 낸 오혜령씨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혜령 씨가 '당신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오니'라는 책을 내 놓았습니다. 그는 교수의 딸로 이화여고 교편을 잡으면서 많은 시집을 내었습니다. 그는 아주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안 믿으려 하고 신앙생활은 인생의 실패자들이나 매달리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곁길로 갔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그물을 던지면 얼마든지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라고 하는 자기 과신 때문에 오혜령 씨도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30대에 암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위암과 임파선 암을 진단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자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매주마다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50송이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반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순간 그는 정신없이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찾아 오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주님께서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에까지 따라 오시는 것입니까 그 말을 내 뱉고 나자 그 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며칠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십 개의 양초가 녹아 내릴 때까지 회개하고 또 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예배를 혼자 드리고 있었는데 온몸의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 왔구나. '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아니하는 것이었습니다. 어깨에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복수로 차 올랐던 배가 꺼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살아 계신 주님이 자기를 찾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는 경기도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버림받은 노인들을 돌보는 평화의 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는 하루 9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에 바친다고 합니다. 그가 쓴 글 중에 감동적인 내용을 소개합니다.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 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비록 저희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당신을 지금 당장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당신께 대한 신뢰 속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각오가 설 때 저희 행위에 방향과 성취가 부여됩니다.
당신은 가장자리에 계시지만 늘 저희에게 그물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던지라고 분부하고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날마다 호숫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
너무 영감 있고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므로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부활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그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도 전파했고 제자들도 전파했고 바울도 전파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한 사람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행4: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하였습니다. 베드로, 요한의 고백입니다.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부활을 체험한 자는 이 사실을 전하게 됩니다.
제자들을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까지 부활의 주님을 전했습니다.
기뻐하면서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순교의 제물로서 성령을 받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아래서 박해를 받을 때에 끓는 가마솥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 후에 밧모 섬으로 추방되었다가 에베소에 와서 마지막을 보내며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이스의 밧드라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교수형을 당했거나 돌로 쳐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서 살가죽을 벗기우고 참수를 당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칼로 살해를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탑에 던져져서 돌과 곤봉에 맞았으나 살아남아 있다가 톱으로 짤려 다시 죽었습니다.
유다 다대오는 시리아에서 칼과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셀롯인 열심당원 시몬은 페르시아 근처에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세상은 험난해지고 사악하고 음란하고 방탕합니다. 미움과 시기와 전쟁의 소문이 날로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참 필요한 분이 있다면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참 인류의 소망이요, 구세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활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며 이 부활하신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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