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수의 부활과 우리의 믿음
본문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메섹에 모여서 복음화 성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제자들의 집회를 방해하고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공문을 갖고 일당들과 함께 다메섹으로 가던 중,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큰 충격을 받고 새롭게 변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7~19)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사망의 비극을 당한 인간들의 유일한 희망의 증거요 확신을 갖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깨뜨린 생명의 승리를 인간에게 보여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큰 기적입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죄와 더불어 태어나서, 죄와 함께 살면서 죄에게 시달리다가 마지막에는 죗값을 치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의 대가는 사망인 동시에 마귀가 가장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가장 큰 기쁨은 모든 인간을 지옥에 보내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마귀가 공로표창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죄의 대가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지옥과 사망의 문을 영원히 잠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광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개선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을 얻게 하는 첫출발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삶의 희망과 평강의 새로운 길이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하여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하면서 허둥지둥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하여 이처럼 불안하고 초조하던 인간의 마음은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며 앞을 볼 수 있는 희망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러한 부활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도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도 안식과 영광을 얻게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가인 솔제니친이 저술한 책 가운데 “암병동”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솔제니친은 그 소설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조물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설에 의하면 조물주가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의 수한(壽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조물주는 다른 피조물에게 전부 수한을 준 후, 맨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수한을 주었는데 25년의 수한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만족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인간의 수한(壽限)이 적은 것에 대해서 조물주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왜 25년 밖에 살 수가 없습니까”
이에 대해서 조물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더 줄 수 있는 수한이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수한을 너희에게 전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 스스로 방법을 찾아서 수한을 구하도록 해라. ”
그때부터 인간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목숨을 더 얻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제일 먼저 말에게 찾아갔습니다.
“나에게 목숨을 25년만 빌려다오. ”
그러자 말은 25년을 그냥 가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인간이 25년을 더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를 찾아갔습니다.
“목숨을 25년만 빌려다오. ”
개는 25년을 가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인간은 7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인간은 이번에는 원숭이를 찾아갔습니다.
“나에게 수한을 25년만 빌려다오. ”
원숭이는 기쁜 마음으로 인간에게 25년의 수한을 주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100세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조물주를 찾아가서 “내가 75년을 얻어 왔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조물주는 “이제부터 75년을 더 살아라. ”하면서 비웃듯이 말하였습니다. 눈치 빠른 인간은 조물주에게 왜 비웃느냐 하고 말하였습니다. 조물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답게 25년을 살고, 말처럼 25년을 살고, 개처럼 25년을 살고, 원숭이처럼 25년을 살게 될 것이다. ”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25세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희망에 부풀어서 삽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슬하에서 편안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25세가 넘으면 남자는 여자만 보아도, 여자는 남자만 보아도 좋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합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제주도 혹은 태국 혹은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갑니다. 그러나 그 날부터 싸움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행복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 생기게 되면 벌어 먹이기 위해서 말처럼 뛰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25년 동안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삯월세 방에서 전세로 옮기고, 전세에서 18평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25평으로, 32평으로, 45평으로, 62평으로 마지막에는 고대광실(高大廣室) 멋있는 저택을 구입해서 자랑스럽게 삽니다.
친구들이 부러워합니다. “어쩌면 집이 이렇게 멋있냐”
친척들이 부러워합니다. “야! 너무나 좋은 집이다. ”
하지만 이제는 지금까지 벌어 놓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세퍼트처럼 살다보니, 어느덧 75세가 되어서 눈은 침침하고, 귀는 먹어지고, 치아는 하나 둘씩 빠지고 척추는 휘어서 마치 원숭이처럼 구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100세도 되지 못해서 죽는 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암병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마치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암병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의 암과 같은 죽음을 뽑아내서 영생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5장 24절과 열왕기하 2장 11절은 에녹과 엘리야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승천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일단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해서, 사십일 동안 세상에서 활동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한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고 소문만 있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큰 의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 말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1見)이란 말, 다시 말해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부활하신 실체,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해서 죽고 영생에 대해서 살아나신,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계속해서 의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여드레가 지났을 때 예수께서 도마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6)하고 말씀하시면서 도마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이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은“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믿음을 굳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큰 충격을 받고 새롭게 변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7~19)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사망의 비극을 당한 인간들의 유일한 희망의 증거요 확신을 갖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권세를 깨뜨린 생명의 승리를 인간에게 보여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큰 기적입니다.
누구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죄와 더불어 태어나서, 죄와 함께 살면서 죄에게 시달리다가 마지막에는 죗값을 치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의 대가는 사망인 동시에 마귀가 가장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가장 큰 기쁨은 모든 인간을 지옥에 보내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 마귀가 공로표창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죄의 대가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지옥과 사망의 문을 영원히 잠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광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의 개선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을 얻게 하는 첫출발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삶의 희망과 평강의 새로운 길이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하여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하면서 허둥지둥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하여 이처럼 불안하고 초조하던 인간의 마음은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며 앞을 볼 수 있는 희망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러한 부활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도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도 안식과 영광을 얻게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가인 솔제니친이 저술한 책 가운데 “암병동”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솔제니친은 그 소설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조물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설에 의하면 조물주가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의 수한(壽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조물주는 다른 피조물에게 전부 수한을 준 후, 맨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수한을 주었는데 25년의 수한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만족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인간의 수한(壽限)이 적은 것에 대해서 조물주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왜 25년 밖에 살 수가 없습니까”
이에 대해서 조물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더 줄 수 있는 수한이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수한을 너희에게 전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 스스로 방법을 찾아서 수한을 구하도록 해라. ”
그때부터 인간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목숨을 더 얻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제일 먼저 말에게 찾아갔습니다.
“나에게 목숨을 25년만 빌려다오. ”
그러자 말은 25년을 그냥 가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인간이 25년을 더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를 찾아갔습니다.
“목숨을 25년만 빌려다오. ”
개는 25년을 가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인간은 7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인간은 이번에는 원숭이를 찾아갔습니다.
“나에게 수한을 25년만 빌려다오. ”
원숭이는 기쁜 마음으로 인간에게 25년의 수한을 주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100세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조물주를 찾아가서 “내가 75년을 얻어 왔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조물주는 “이제부터 75년을 더 살아라. ”하면서 비웃듯이 말하였습니다. 눈치 빠른 인간은 조물주에게 왜 비웃느냐 하고 말하였습니다. 조물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답게 25년을 살고, 말처럼 25년을 살고, 개처럼 25년을 살고, 원숭이처럼 25년을 살게 될 것이다. ”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25세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희망에 부풀어서 삽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슬하에서 편안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25세가 넘으면 남자는 여자만 보아도, 여자는 남자만 보아도 좋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합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제주도 혹은 태국 혹은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갑니다. 그러나 그 날부터 싸움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행복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 생기게 되면 벌어 먹이기 위해서 말처럼 뛰어 다니기 시작합니다.
25년 동안 열심히 뛰어 다니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삯월세 방에서 전세로 옮기고, 전세에서 18평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25평으로, 32평으로, 45평으로, 62평으로 마지막에는 고대광실(高大廣室) 멋있는 저택을 구입해서 자랑스럽게 삽니다.
친구들이 부러워합니다. “어쩌면 집이 이렇게 멋있냐”
친척들이 부러워합니다. “야! 너무나 좋은 집이다. ”
하지만 이제는 지금까지 벌어 놓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세퍼트처럼 살다보니, 어느덧 75세가 되어서 눈은 침침하고, 귀는 먹어지고, 치아는 하나 둘씩 빠지고 척추는 휘어서 마치 원숭이처럼 구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100세도 되지 못해서 죽는 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암병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마치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암병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의 암과 같은 죽음을 뽑아내서 영생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5장 24절과 열왕기하 2장 11절은 에녹과 엘리야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에서 승천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 같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일단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해서, 사십일 동안 세상에서 활동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한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고 소문만 있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큰 의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 말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1見)이란 말, 다시 말해서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부활하신 실체,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해서 죽고 영생에 대해서 살아나신,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계속해서 의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여드레가 지났을 때 예수께서 도마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6)하고 말씀하시면서 도마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이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은“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믿음을 굳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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