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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의 주님이 여신 것

본문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기독교 사상의 중심이며, 기독교만의 독특한 진리입니다. 만약 부활의 사건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존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사건이 없었다면, 믿는 이들의 신앙이 필요 없으며, 성도들의 헌신이나 경건의 생활도 아무런 능력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전15:14-19절 말씀에 이런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며...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사건은 구약시대 때부터 이미 예언된 사실입니다.
시16:10절에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하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살아 생전에 마16:21절에서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부활의 사건은 사복음서의 저자들이 증거했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보기도 했으며, 체험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더우기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복음을 증거한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개종된 사실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가운데 부활을 믿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교주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무덤을 잘 돌보며, 무덤을 장식하고, 그를 향하여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도 무덤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은 열린 무덤이요 빈 무덤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시 사셔서 그 무덤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군데에서 부활의 사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만하더라도 부활의 주님이 사람들에게 나타난 사실을 5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약에만 무려 열 네번이나 부활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그리고 500여명의 많은 무리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던 것입니다(고전15:6).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여러 번 부활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까
요20:31에 보면 그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이 부활의 여러 번 나타난 사실을 기록함은 너희에게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외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믿음의 권속들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세주로 확실히 영접하고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부활을 통하여 주님이 여신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첫째로, 부활의 주님은 죽음의 무덤을 여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무덤을 향해 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무덤을 지키는 로마의 병사들이 있었고, 무덤의 입구를 큰 돌로 막아 놓았기 때문에... 그 큰 돌을 어떻게 옮겨 놓을 것인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 앞에 가서 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무덤 앞에는 아무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무덤을 막아 놓았던 큰돌이 옆으로 제켜져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였을까... " 그들은 무섭고 떨린 마음으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 안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여인들은 더욱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곧 천사가 곁에 서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예수님이 평소에 하신 말씀, "죽은후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하는 말씀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주님이 다시 살아 나셨다!" 하면서 이 모든 되어진 일들을 열 한 사도들과 사람들에게 고할 때에.... 저녁이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희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주님의 손을 만져보고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던 도마에게는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하시면서 도마에게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여 올라가시기 전 까지 40일 동안 이 땅에 더 유하시면서 열 두 제자에게, 게바에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500여명의 많은 무리들에게, 그리고 바울과 그외에 많은 무리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실로 주님은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활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늘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진실로 사망 권세를 이기셔서 죽음의 무덤을 여시며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전15;55절 말씀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망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영어로 된 성경을 보면 한 번은 death(데스), 즉 죽음을 말하고, 한 번은 grave(그레이브), 즉 무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도 무덤도... 주님을 이기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죽음의 무덤을 여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요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전15:20절 말씀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구약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그 땅의 수확물 중 첫 열매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레23:10-14).
이것은 모든 수확물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지만 첫 열매를 받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다 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첫 열매'란 대표성의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 것은 이같은 구약적인 배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대표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열매는 첫 열매가 맺히고 나서 이어서 연속적으로 열매가 맺어 추수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활의 첫 열매를 맺히셨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은 당연한 이치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의 문을 여시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아무 공로 없고 능력도 없지만, 주님이 다시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다시 살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롬6:4-5).
 둘째로,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있는 사람은 결코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도마는 자기의 손으로 손과 발에 못자국을 만져보지 않고서는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전해 주었지만... 그러나 도마는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기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느니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눅24:45절에 보니까, 이에 저희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24:16절 이하에서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명의 제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주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낙심한 나머지 예루살렘을 등지고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을 때에는 이미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주님이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낙심에 빠져 엠마오로 간 것입니다.
낙심과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성경에 나타난 여러 증거의 말씀들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 분이 예수님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부활의 주님인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그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 주시면서 굳게 닫힌 자신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와같이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닫혀진 마음을 열어서... 부활의 놀라운 사실을 믿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 외에 다른 제자들도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면서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지어다!" 하고 말씀하시며 나타나셨습니다. 조급하고, 두렵고, 불안한.... 저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저들이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닫혀진 사람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도 못하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감동도 없고,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에 잡다한 것들을 다 던져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속에 어지러운 것들을 다 던져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을 활짝 열고, 오직 부활하신 주님만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의심과 걱정은 모두 벗어 버리고 마음을 활짝 열 때, 부활의 놀라운 은혜와 기쁨이 나에게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다른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담대함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삶의 활력을 얻으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으면 되는 일이 없고, 실패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두 명은 예수님의 몸에 향유라도 부어 드리려고, 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아직은 어두운 이른 새벽에 남자들의 도움도 없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간 것입니다.
어두운 새벽에 공동묘지를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무섭고 두렵겠습니까....
그리고 이 여인들이 찾아간 무덤은 장사된지 이틀 밖에 안되는 무덤입니다. 장사된지 이틀 밖에 안된 무덤은 낮에 찾아가도 무섭습니다. 장정이라도 진땀이 날 지경인데 이 여인들은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무덤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들이 놀라서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인들은 두려움에 싸여 무덤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서 두려움에 떠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전하는 부활의
 첫번째 메세지는 "두려워 말라!" 하는 사랑의 메시지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째로 전해 주신 말씀도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려워 말라!"(따라한다)
이 부활의 아침에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두려움의 시대입니다. 인간은 두려움속에 떨고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가는 것 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는 처음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시작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을 부르셨을 때, 그가 말한 최초의 고백은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모든 인생들은 죄로 인하여 두려움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가인아 가인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때 가인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낯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 방황하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일 것입니다!" 하면서 그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습니다(창4:4).
이와같이 범죄한 이후, 이 세상의 역사는 두려움의 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각자... 저마다 뭔가의 두려움에 다 떨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악으로 인하여 두려워 떠는 자들이 있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는 자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물질의 문제로 인하여 두려워 떨고 있고, 어떤 이는 사람과의 관계로 인하여, 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떠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려워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천사가 최초로 전한 메세지는 "두려워 말라!" 하는 말이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전하신 최초의 말씀도 "두려워 말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에 떨고 계십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한 천사들의 메세지를 듣고, 모든 두려움을 다 떨져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ex) 복음을 전하다가 공산주의 치하에서 많은 박해를 당했던 '범 브란트'라는 목사님은 옥중에 있으면서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세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말이 무려 365번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1년은 365일이 아닙니까!....
그 때 그는.... "이것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1년 365일 내내 두려워 말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다" 하는 것을 깨닫고... 공산주의 치하의 옥중에서도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마귀, 사단이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이 몸이 아프거나, 삶이 곤고하고 불행해 지거나, 마음이 나약해 지는 것, 비굴해 지는 것,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마음들.... 이런 것들은 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가져다 주는 것이요, 세상이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요14:27절 말씀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이 세상의 종말이 오기까지.... 원수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벧전5:8절에 보면,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아침에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증거하여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14:27).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도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느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행 27:24) .
그러므로 오늘 이처럼 복된 부활의 새 아침에.....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부활의 소망과 확신 가운데 서서... 날마나 날마나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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