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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의 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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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축복이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로마의 병정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카타고 출생자 테틀리아누스가 저술한 호교론에서 유대총독 빌라도가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예수 곧 유대인의 왕이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였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정복하기 위함입니다.
영원한 죽음의 저주를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회복하신 것입니다. 롬4:25절에는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공자도 석가도 소크라테스도 불사약을 찾아다니던 진시황도 아침안개의 이슬을 받아 마시던 한무제 까지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우리주님만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주지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주님이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자료 위에서 증거 하려함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의 부활을 이처럼 이미 말씀을 하셨고 그의 살아날 것을 말씀을 하셨기에 믿음으로 그 부활을 보며,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오늘은 그 부활하신 주님이 부활하신 후의 첫 번째 행동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분명히 주님의 부활은 요20:31절에 "너희로 믿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신 사건이 부활의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부활에 대한 더 큰 의미를 기억하기보다는 매년 맞이하는 부활절을 오늘의 나에게 주님이 부활의 몸으로 만나 주신다면 나에게는 어떤 모양으로 오셔서 말씀을 하실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에 대하여 종종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였는데 어느 순간에 보면 그렇지 않은 것 때문에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감람산으로 나아가시면서 예루살렘 안에서 일어날 일을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 목자를 칠 때가 왔다 그런데 그 목자를 치면 그를 따르던 양들은 다 흩어질 것이다. ' 그러자 그 곁에 있던 베드로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선생님 나는 적어도 주님을 위하여 3년을 주님의 수발을 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그래도 제가 나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은 주님을 혹시 부인하거나 떠날런지는 몰라도 나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나 내 생명을 담보 잡을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저는 주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죽을 것입니다"
이만한 충성에 열심을 보인 사람은 주님이 3년의 공생애 중에 그의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은 당연히 누구에게 제일 먼저 보이시면서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는 질문을 하여 봅니다. 당연하지요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분이 보이시면서 말씀을 하신 것은 그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의 막16;9절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 내어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시기를 주님의 12명의 제자들에게 아니고, 베드로가 아니고, 귀신이 들렸던, 그리고 주님에 의하여 고침을 받았던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얽매여서 참으로 곤고한 인생을 살아야만 하였습니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인격적인 인정을 받지를 못합니다. 사람마다 수군거리고 사람마다 손가락질을 받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에게 먼저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그에게 먼저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일까
1) 그가 은혜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주님이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사명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를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눅8: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인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들을 섬기더라"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고침과 은혜를 받은 다음에 주님을 위하여 그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의 막16: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두었다가" 이것은 그들이 무덤을 향하여 가다가 향품을 사서 그에게 바르기 위하여 인사 치례 형으로 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심을 선언한 순간에도, 그리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돌아가신 순간에 그분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이미 향유를 준비하여 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벌써 그의 선생인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고향으로 낙향을 하고 있었는데 이 여인들은 주님을 위하여 이미 오래 전에 그와 같은 것들을 준비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였습니까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배하고 있던 더러운 영의 세계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 것 때문에, 그 은혜를 간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우리들은 병고침의 은혜를 맛본 적이 없기에, 우리는 억눌린 귀신에게 자유 함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주님이 허락하신 그 은혜의 자리에서 멀어져도 되는 것입니까
나를 죄에서 해방을 선언케 하시고 영원한 저주와 죽음의 골짜기에서 건져주셨다는 이 놀라운 은혜를 생각을 하여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은혜에 감격을 하고 그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은혜는 없고 인간적인 모양들이 우리들의 가슴에 가득찬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은혜를 감격하기 위하여는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의 자리에는 어떤 모양이 드러나야 되는가
아직도 원망이고 아직도 불평이고 아직도 내 생각이고 아직도 내 평가입니까
오늘 우리는 마리아라는 여인들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것은 그들은 주님을 위하는 일에는 남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막15:40절 이후의 말씀을 보면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성경은 말씀을 하시기를 "이들은 예수께서 갈리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였을 할 때부터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돕던 자요, 그의 십자가를 지시고 마지막 사명을 다하시는 그 자리에까지 달려온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제일 먼저 그의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에게 나타나심은 아무런 항의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일을 할 때마다 기억을 하여야 할 것은 늘 기억이 나는 사람을 먼저 찾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충성을 하고 열심인 사람을 찾는 것에 아무런 이유를 달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은혜이상의 것을 더 얻으려 하지 말고 그 은혜에만 젖어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를 벗어나면 인간적인 모양만 들어내지 않습니까
여러분 부활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부활을 믿고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만을 기다리는 것이 부활신앙입니까
물론 그 부활신앙을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부활의 능력은 오늘의 우리들의 은혜의 자리로 증명되는 것임을 인정을 하고, 그 값비싸게 지불된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기억을 하면서, 주님을 다시 만나는 기쁨으로 환경과 처지를 극복하고 믿음으로 모든 것들을 보며 나 같은 것에게까지 은혜주신 것- 살려주신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감격스러워 그 은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합니다.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자가 되라-그럴 때에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
2. 주님의 부활을 믿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는 본래는 주님이 부활하심을 믿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덤에 가보니 그곳에는 주님의 시신은 없고 돌은 굴려져 있을 때에 누가복음은 이 마리아가 근심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없는 것이 당연함인데, 주님은 다시 살아나신다고 하셨기에 그 무덤 안에 없는 것이 당연하건만 마리아는 근심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본다면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한 청년이 앉아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6절을 보면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 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 지라"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주님의 시신을 찾아온 이 여인들은 이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믿음 없는 자리에서 믿음의 자리로 바꾸어져 갔으며 이 사실을 확신하며 그것을 증거하는 증인의 자리로 만들어져 갔습니다.
10절의 말씀을 보시면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그의 소식을 들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주저함이 없이 다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제 주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마리아에게 그 첫 소식을 전한 이유를 알겠습니까
천사가 그에게 전하여준 주님의 부활을 가감이 없이 다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쓰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는 믿었습니다. 그 사실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의문으로 삼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말씀 앞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오늘 이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의 순종의 사실을 기억 할 수 있습니까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그 길을 가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순종은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도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성경을 인정을 합니까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인다고 줄지어 앉게 합니까 그런 계산 없는 무모한 짓을 어떻게 받아드릴 수 있습니까
바탕이 있어야 하고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바탕이 있고 근거가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어도 어떤 사람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아무나 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주어지고 이야기되어질 때에 인정을 할 수 있습니까
천사가 말씀을 하여줄 때에 마리아는 인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천사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의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고, 그의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로 가신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입니다.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쓰임을 받기 시작을 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이 되기 시작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을 통하여 재림하실 주님의 모습을 드러내지며 그 사실을 증거하는 자로 쓰임을 받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순종하는 자리에서 기적을 맛보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자들이나가 두루 전파 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시니라"
오늘 봉독을 하지는 않았지만 20절의 말씀을 보시면 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그들은 순종을 하기로 합니다.
순종에는 표적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이 교회에도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 표적은 참으로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 가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는 자들을 통하여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지역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전에 한국의 한 선교사가 동구권에 성경을 전해주고 싶어서 기도하는 중에 하루는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제가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당당하게 성경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됩니까" 그랫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그래라' 하는 것 같았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가지고 들어가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가방에다 성경을 잔뜩 넣고 헝가리의 변경지대를 넘는데 세관원이 물었습니다.
'신고할것이 있습니까'
'네' '뭐가 있습니까'
'성경입니다. ' 그러면서 성경을 꺼내 보여주었답니다.
이 사람은 희한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이것이 왜 신고할 물품입니까'
그래서 말하기를 '워낙 비싸서요'. 그랬답니다.
'얼만큼 비쌉니까'
'이것은 값으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있는 말씀을 읽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마음이 불안하였던 사람은 평안을 얻고 죄 속에 있던 사람은 용서를 받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
그랬더니 세관원이 '그 책하나 주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를 주었답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자 그는 말하기를 '그냥 가지고 들어가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놀라운 기적을 오늘날에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순종은 필요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신앙의 자리가 필요합니다. 이만큼의 지식이 있다고, 이만큼 자랐다고 하는 것 때문에 이제는 성경은 성경이고, 우리의 지식이나 얄팍한 상식으로 해결하여 나간다고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만큼 살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제는 교회 안에 사람들의 방법이 난무하여도 된다는 발상은 참으로 위험한 일임을 우리는 늘상 기억을 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요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들을 우리는 앞질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증인들의 신앙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도 여호와 하나님은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교회가 주차장이 없어서 교회에 예배드리러오는 사람들이 참으로 불편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십시오! 그래도 이미 자동차 문화에 익숙하였기 때문에 자동차를 두고 오라고 한들 그것이 정말 씨가 안 먹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차장 대지를 물색을 하였지만 아무데도 없습니다.
다만 교회 아래쪽에밖에는 없습니다. 본래 그 땅이 4억이 넘는 땅입니다. 그 땅을 알아보았더니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땅입니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토개공에서 몇 일 전에 그 땅값을 재조정하여 2억9천으로 내렸고 입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 땅을 탐내어 기도 중에 입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쟁자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쪽을 우리교회의 집사님의 도움을 얻어보려고도 하였지만 그것은 불가능 한 것이었습니다. 금요일에 입찰을 하려고 그 장소에 들어갔습니다. 그 땅을 입찰 신청을 하였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교회가 산다면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 "하면서 신청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땅을 3억에 인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보면서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갈때에 선한 방법으로 인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순종하자!
지금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은 이루어 오셨는데 우리가 상상을 할 수 없는 방법이라도 선한 것이라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도 우리들 속에서 주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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