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수님의 부활
본문
거짓말은 한 세대를 넘지 못하며 아무리 길어도 1백년을 가지 못합니다. 그 사실은 공산주의의 몰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막스 레닌의 공산주의 철학 및 경제학은 인류를 가난과 불공정한 분배에서 해방시켜 지상낙원을 만든다고 하여 소련이 국력을 기울여 선전하고 전파하며 노력했으나 70년만에 무너지고 그 거짓이 만천하에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진리 위에 터를 두고 전파된 복음은 2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10억이 넘는 인류가 믿고 세계사를 바꿔 놓고 전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실은 이것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함이 만천하에 증명된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눈으로 보고, 그 음성을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지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째 되는 주일 아침,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향유를 뿌리기 위해서 일찍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무덤의 돌은 옮겨졌고, 파수꾼은 도망을 쳐버렸고, 천사만이 빛나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돌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에게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고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 빨리 가서 이 소식을 전하라”는 말을 들은 여인들은 놀라고 기뻐서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 갔습니다.
마태복음 28장 5절로 7절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뛰어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베드로와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뛰어 와서 보니 과연 무덤이 비었고 예수님의 수의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돌아 갔습니다.
그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앞에 앉아서 울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처음에는 동산지기인줄 알고 ‘주여, 우리 주님의 시체를 어디에 갔다 두었습니까 내가 가져 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울부짖었는데 ‘마리아여’ 하시기에 돌아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마리아가 너무 놀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하니 주님이 뒤로 물러서며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라. 아직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느니라. 이제 나의 여호와 하나님,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께 내가 돌아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가던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마태복음 28장 9절로 10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낙심한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도중 한 사람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성경을 펼쳐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설명하는데 이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날이 저물어 함께 머무는 중 그분이 빵을 가지고 축사하는데 눈을 떠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두 제자가 놀랐는데 예수님은 사라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길거리에서 만났다고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2절로 13절에 “그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낮에 슬퍼하는 베드로에게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에 스스로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죄책감으로 몸부림 쳤습니다. 그는 이제 영원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빠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3절에서 35절에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 19절로 20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나중에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못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주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 도마와 함께 열한 제자가 모였는데 그 모임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로 29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제자들은 고향 갈릴리로 내려갔습니다. 갈릴리로 내려간 제자들은 그 곳에서 다시 어부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낡은 배를 꺼내고 그물의 먼지를 털어 씻고서 고기 잡으러 갈릴리 호수로 갔지만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안개낀 해변에 누가 서서 말합니다.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 그때 제자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 보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져보니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주님이시다”고 외쳤습니다. 제자들이 해변가에 배를 대고 난 다음, 예수님께 나아가니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놓고 떡과 고기를 구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세 번 확인시키고 난 다음에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좌절한 베드로를 복구시키신 것입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5백여 명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1장 10절로 11절에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한 그리스도를 천사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 보면 야고보에게도 다시 나타나셨고, 그 다음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셔서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절로 5절에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자리에서 사울은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어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종 바울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람이 조작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을 실제적으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기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된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2.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
오늘날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체험함으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목사님께 찾아와서 “목사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 꾸민 이야기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당신의 목이 굉장히 말라 갈증이 났을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합니까 시원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갈증이 났을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하지요”라고 그 사람이 대답하자 목사님은 “시원한 것을 어떻게 압니까 설명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갈증이 날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함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우리의 모든 영혼속에 시원함과 상쾌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설명을 할 수 없지만 놀라운 부활의 은혜의 역사가 우리 생애 속에 나타납니다. 아무리 잔설이 남아 있고 꽃샘 추위가 몰아쳐도 양지 바른 곳에 쑥이 나고 개나리가 봉우리를 터뜨리면 봄이 이미 다가온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체험하는 부활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은 예수를 모시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속에 들어와서 변화를 일으켜 줍니다.
주님은 죄악의 잔설 속에 용서와 의와 영광의 부활의 꽃이 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면 보혈로써 우리를 씻으시고 죄와 사망을 이기게 하시고 용서와 의로 우리 속에 채워주셔서 죄를 버리고 의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값없이 용서와 의롭다함을 얻은 은혜가 우리 속에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이 가득한 곳에 성령충만과 성결의 부활의 꽃이 핍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마귀와 세상을 이기고 성령 충만과 성결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모시면 마귀가 쫓겨 나가고 세상이 물러가고 성결의 꽃이 우리 생애 속에 피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변화가 다가옵니다. 변화의 역사가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지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말씀을 알게 하고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부활의 꽃을 피워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질병과 고통의 꽃샘 추위 속에서도 치료의 부활 꽃이 핍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질병과 고통의 꽃샘 추위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치료의 부활의 꽃이 피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마음도 고침 받고 육체도 고침을 받습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속에 시작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로써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우리에게 치료의 위대한 힘으로 나타나서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멸하고 치료와 건강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력은 우리들의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을 파괴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그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의 눈밭 속에서도 부활의 열매인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통이 싹이 트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함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주와 가난의 눈발이 아직 날리는데도 불구하고 부활의 열매인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통의 싹이 우리 속에 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죽음의 엄동설한 속에서도 부활의 찬란한 아침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아담이 가져온 죄와 세속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 속에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꽃피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의를 부활시키며, 마귀와 세속을 이기고 성결을 부활시키며, 치료와 고통을 이기고 건강을 부활시키며, 저주와 가난을 이기고 아브라함의 복을 부활시키며, 사망과 음부를 멸하고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부활시키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부활
예수님의 재림의 영원한 부활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인적인 부활을 우리는 체험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로 54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여호와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그 안에서 우리가 부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만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교제하며 영원히 살 것에 대한 확실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후 모습을 보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우리가 변화 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절로 49절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담의 형상을 입어서 육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예수님이 오시는 날에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그리스도 속에 있으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활하신 몸은 육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입니다. 혈과 육은 하늘나라를 그대로 상속받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그날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고 일했는가 그 공로를 따라서 우리의 부활의 모습에 차등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나고 어떤 사람은 달과 같이 밝으며 다른 사람은 별의 영광을 갖게되나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천차 만별로 다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힘써 일하면 그 일한 보람이 부활의 날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에 참여한 성도의 영화로운 삶은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육을 쓰고 흙속에 살며 벌레와 같이 생활하지만 부활의 그날에는 우리가 일제히 그리스도로 인해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 속에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다 사라지고 아버지가 준비한 생명수 샘물에서 생명수를 마시며 주의 영광 가운데서 영원히 찬미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육을 쓰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올라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지은 죄악을 다 청산하시고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장차 얻을 수 있는 희망입니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같지만 깨달으면 천사보다 높아지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원히 우주를 상속받아 다스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한 사람도 낙오함이 없이 참여하여 주님 오시는 그날에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눈으로 보고, 그 음성을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보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지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째 되는 주일 아침,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향유를 뿌리기 위해서 일찍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무덤의 돌은 옮겨졌고, 파수꾼은 도망을 쳐버렸고, 천사만이 빛나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돌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에게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고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이라 빨리 가서 이 소식을 전하라”는 말을 들은 여인들은 놀라고 기뻐서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려 갔습니다.
마태복음 28장 5절로 7절에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뛰어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베드로와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뛰어 와서 보니 과연 무덤이 비었고 예수님의 수의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돌아 갔습니다.
그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앞에 앉아서 울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처음에는 동산지기인줄 알고 ‘주여, 우리 주님의 시체를 어디에 갔다 두었습니까 내가 가져 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울부짖었는데 ‘마리아여’ 하시기에 돌아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마리아가 너무 놀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하니 주님이 뒤로 물러서며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라. 아직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하였느니라. 이제 나의 여호와 하나님,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께 내가 돌아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가던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마태복음 28장 9절로 10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낙심한 제자는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던 도중 한 사람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성경을 펼쳐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설명하는데 이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날이 저물어 함께 머무는 중 그분이 빵을 가지고 축사하는데 눈을 떠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두 제자가 놀랐는데 예수님은 사라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길거리에서 만났다고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2절로 13절에 “그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낮에 슬퍼하는 베드로에게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에 스스로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죄책감으로 몸부림 쳤습니다. 그는 이제 영원히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빠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3절에서 35절에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0장 19절로 20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이 나중에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마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못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주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 도마와 함께 열한 제자가 모였는데 그 모임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로 29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제자들은 고향 갈릴리로 내려갔습니다. 갈릴리로 내려간 제자들은 그 곳에서 다시 어부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낡은 배를 꺼내고 그물의 먼지를 털어 씻고서 고기 잡으러 갈릴리 호수로 갔지만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안개낀 해변에 누가 서서 말합니다.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 그때 제자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 보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져보니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주님이시다”고 외쳤습니다. 제자들이 해변가에 배를 대고 난 다음, 예수님께 나아가니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놓고 떡과 고기를 구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세 번 확인시키고 난 다음에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좌절한 베드로를 복구시키신 것입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5백여 명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사도행전 1장 10절로 11절에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한 그리스도를 천사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 보면 야고보에게도 다시 나타나셨고, 그 다음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셔서 사울을 바울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절로 5절에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자리에서 사울은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어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종 바울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람이 조작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을 실제적으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사망을 이기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된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2.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
오늘날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체험함으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목사님께 찾아와서 “목사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 꾸민 이야기 아닙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당신의 목이 굉장히 말라 갈증이 났을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합니까 시원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갈증이 났을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하지요”라고 그 사람이 대답하자 목사님은 “시원한 것을 어떻게 압니까 설명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갈증이 날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함을 느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우리의 모든 영혼속에 시원함과 상쾌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설명을 할 수 없지만 놀라운 부활의 은혜의 역사가 우리 생애 속에 나타납니다. 아무리 잔설이 남아 있고 꽃샘 추위가 몰아쳐도 양지 바른 곳에 쑥이 나고 개나리가 봉우리를 터뜨리면 봄이 이미 다가온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체험하는 부활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우리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은 예수를 모시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속에 들어와서 변화를 일으켜 줍니다.
주님은 죄악의 잔설 속에 용서와 의와 영광의 부활의 꽃이 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면 보혈로써 우리를 씻으시고 죄와 사망을 이기게 하시고 용서와 의로 우리 속에 채워주셔서 죄를 버리고 의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값없이 용서와 의롭다함을 얻은 은혜가 우리 속에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와 세상이 가득한 곳에 성령충만과 성결의 부활의 꽃이 핍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마귀와 세상을 이기고 성령 충만과 성결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모시면 마귀가 쫓겨 나가고 세상이 물러가고 성결의 꽃이 우리 생애 속에 피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변화가 다가옵니다. 변화의 역사가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지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귀를 열어 주시고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말씀을 알게 하고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 수 있는 부활의 꽃을 피워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질병과 고통의 꽃샘 추위 속에서도 치료의 부활 꽃이 핍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언제나 질병과 고통의 꽃샘 추위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치료의 부활의 꽃이 피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마음도 고침 받고 육체도 고침을 받습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속에 시작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로써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우리에게 치료의 위대한 힘으로 나타나서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멸하고 치료와 건강을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력은 우리들의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을 파괴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그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의 눈밭 속에서도 부활의 열매인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통이 싹이 트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함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주와 가난의 눈발이 아직 날리는데도 불구하고 부활의 열매인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통의 싹이 우리 속에 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죽음의 엄동설한 속에서도 부활의 찬란한 아침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 아담이 가져온 죄와 세속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 속에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꽃피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지낸바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의를 부활시키며, 마귀와 세속을 이기고 성결을 부활시키며, 치료와 고통을 이기고 건강을 부활시키며, 저주와 가난을 이기고 아브라함의 복을 부활시키며, 사망과 음부를 멸하고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부활시키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부활
예수님의 재림의 영원한 부활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인적인 부활을 우리는 체험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로 54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로 18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여호와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그 안에서 우리가 부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만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교제하며 영원히 살 것에 대한 확실한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후 모습을 보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우리가 변화 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절로 49절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담의 형상을 입어서 육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예수님이 오시는 날에는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그리스도 속에 있으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활하신 몸은 육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입니다. 혈과 육은 하늘나라를 그대로 상속받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그날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고 일했는가 그 공로를 따라서 우리의 부활의 모습에 차등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나고 어떤 사람은 달과 같이 밝으며 다른 사람은 별의 영광을 갖게되나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천차 만별로 다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힘써 일하면 그 일한 보람이 부활의 날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에 참여한 성도의 영화로운 삶은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육을 쓰고 흙속에 살며 벌레와 같이 생활하지만 부활의 그날에는 우리가 일제히 그리스도로 인해 영광의 모습으로 변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 속에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다 사라지고 아버지가 준비한 생명수 샘물에서 생명수를 마시며 주의 영광 가운데서 영원히 찬미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육을 쓰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올라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지은 죄악을 다 청산하시고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장차 얻을 수 있는 희망입니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같지만 깨달으면 천사보다 높아지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원히 우주를 상속받아 다스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한 사람도 낙오함이 없이 참여하여 주님 오시는 그날에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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