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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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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후 첫날 주일 새벽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세 여인이 걸음을 재촉하면서 어디론가 항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인지라 어두 움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이 가져다주는 무게보다 더 그녀들을 어 둡게 만든 것은 몇 일 전에 있었던 갈보리 언덕 위에서의 사건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토록 믿고 따르던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도 그리고 야유와 회유 속에서도 굳건하게 주님을 따르려고 애썼는데 결국 그들 이 따르던 스승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도 힘없이 십자가 위에서 죄인으로 죽으셨던 것입니다.
"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런 버림받은 한 인간의 고뇌와 고통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과 희망도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버려졌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 "
"다 이루었다. "고 고백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과 희망도 이제는 모두 저 십자가 위에서 끝이 났다. "
절망과 상처와 허탈함만이 이 세 여인의 가슴과 영혼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아직 살아있지만, 그들의 희망과 기쁨과 기대는 모두 십자가 위의 예수그리 스도와 함께 마지막 운명을 같이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주일 새벽에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그들 로 하여금 이 이른 새벽시간에 그 무거운 마음을 갖고 일어나도록 했을까요 그녀들을 일으켜 새운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었습니다. 스승의 죽은 시신이지만, 마지막 장사를 위해서 준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제 죽어 장사지내게 될 스승에 대한 마 지막 사랑을 보여 드리고자 했습니다. 베드로도, 야고보도, 요한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 리아와 요안나만이 끝가지 스승의 장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지난 3년간동안 예수님을 통해 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기쁜 소식 때문에 기뻤습 니다. 소외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 잊혀진 사람들, 그리고 사회에서 손가락질 당하던 사람 들에 대한 예수님의 편견 없는 사랑과 관심에 한없는 위로와 희망을 느꼈었습니다. 그녀들 은 그런 예수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사랑의 정성을 표시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향유와 기름, 세마포와 모든 것들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들은 걸음을 재촉해서 무덤을 향 해 갔습니다.
그들은 무덤에 이르자 한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그런 걱정을 가진 채 무덤 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무덤에서 굴려 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막 무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데, "그 때 갑자가 큰 지 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 개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는 자들이 천사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 었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 느냐, 무서워 말라, 나는 그대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그는 여기 계 시지 않는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 나셨다. 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 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 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
천사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그들의 눈은 무덤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예수님의 시 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덤이 비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대로 그들은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만나고자 했던 예수님은 죽은 시체로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셨 기에 그 분은 반드시 이곳 무덤에 계셨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 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죽은 자로 계시지 않 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토록 강조 하셨듯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생전에 그토록 자주 주님의 부활을 말씀하셨건만 어떻게 그들은 그것을 잊을 수 있었을까 요
이 여인들은 당황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죽은 예수님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 수님이 계실 수 없는 장소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었던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엉뚱한 곳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여인들처럼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다윗의 보좌에 다시 앉아서 유대의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여 헤롯의 보좌 위에 앉아서 왕이 되실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과 제자들이 이 여인을 포함해서 이 엉뚱한 곳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복음 안에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이란 말을 하면서 "사업이 잘되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 결혼 생활이 원만해지고, 가족이 건강해지고,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물의 복을 받게 됩니다. " 예수님에게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오라. 고통과 시련과 불행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
그러나 이런 것은 세상적인 복음이며, 이런 것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엉뚱한 곳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우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생명과 능력과 관심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용서와 거룩함과 존귀와 영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능곡교회 안에서 이 살아 계신 예 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서, 기도와 찬송 속에서 그리고 간증 속에서 살아 계신 예 수 그리스도는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는 분반 공부시간에 우리는 살아 계 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손에 물을 묻히고 땀을 흘리며 음식을 준비하는 교회 주방 속에서,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면서 무릎을 꿇고 손으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감옥, 병원, 고아원, 양로원 등, 누군가의 도 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영적, 정신적, 그리고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능곡교회를 섬기는 목사로서, 우리 교회의 여러 교우들과 기관이 능곡 지역과 주민들 을 사람으로 섬기는 일들- 사랑의 예방주사 접종, 사랑의 김장 나누기, 사랑의 쌀 나누기, 사랑의 헌혈 나누기, 사람의 무료 건강 검진 - 등을 통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섬기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섬김의 모습 속에서 저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우리의 삶과 영혼의 주님이 되셨기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믿음과 신뢰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여인들은 놀라면서 당황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엉뚱한 곳 -죽은 자들이 묻힌 무덤 속에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았 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평상시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부활에 대해 하셨던 말씀에 대한 어떤 믿음이나 신뢰를 갖지 않았 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 동안에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과 말씀들 모두를 아무런 의미 없는 쓰레기로 만들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와 무덤이 모든 것을 실패의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온 결과는 의심과 불신이었습니다. 만일 우 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여인들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우리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신과 의심의 결과는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들의 자리, 패배한 자리, 의미 없는 자리, 좌절의 자리, 불신과 불평의 자리에서 찾게 됩니다. 이런 찾음은 물론 허무만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부활주일 새벽 시간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속에서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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