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두려워 말라, 가서 전하라
본문
오늘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주일을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부활주일 다음 주일에도 계속해서 교회에 출석하 지 않습니다.
지난 1997년 미국의 Barna Researh Group이라는 곳에서 통계를 낸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그중 74% - 교회에 정기적을 참석할 만한 가치가 없다 81% - 교회가 너무 문제 투성이다 48% - 시간이 없다 42% - 교회에 단지 흥미가 없다 38% - 교회의 가르침이 내 삶과 관련성이 없다(irrelevant)
위의 통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해 보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 회와 그 메시지가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거나 삶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여기 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어떤 연관성을 갖고 계십니까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우리는 우리의 삶과 가장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는 중요한 주제를 만나게 됩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한가지 이상씩의 두려움을 갖고 삽니다. 새로 시작한 사업에 대한 두려움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정년 퇴임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노후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 사랑하는 배우자가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곁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가에 대한 두려움 혹시 내 몸 안에도 암 덩어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거의 경력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두려움이 개인마다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인간의 삶에는 안전지대(Comfort Zone, Safety Zone)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가 이런 두려움에 쌓이게 되면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식욕부진, 기력 감퇴, 불면증, 자신감 저하, 불안한 정서 노출, 노여움과 의심, 폭음, 폭식 등 이 나타나 결국에는 우리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조금씩 마비시킵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두려움 보다 실질적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있는 두려움은 다름이 아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우리 인간을 control합니다. 즉 우리의 의식주나 생각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을 먹을까 어떤 약을 먹을까 어떤 운동을 할까 하는 이런 모든 인간의 노력은 결국에는 더 오래 건강하게 살자고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진나라의 시황제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는 불로장생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마술사와 연금술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그것도 모자라서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와 불 사약을 먹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시도하도록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까 오늘 부활 주일을 맞아 교우 여러분과 함께 읽은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죽음 저편 에 있는 다른 생명이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는 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한정된 인간의 생명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죽음 이후의 생명이 우리들 모두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하 나의 통과지점(Transition Point)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고민하던 문제가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죽음 이후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확 신 있다면 그의 삶은 이 땅에서 매사에 자신이 있을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 려움이 없이 사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저는 농구 경기 등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너무 시소 게임이 되면 가슴이 두근 두근 거려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그 경기의 결과를 미리 알고 난 다음에 그 경기의 재방송을 관람하면 아무런 두려움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의 '결혼합시다'라는 Video를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남녀의 신청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작진이 상대방에게 대강의 인적 사항만을 알려준 후 어느 약속 장소에서 첫 번 만남을 주선합니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두 사람 중 한 사람 이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으면 한강에 가서 유람선을 탑니다. 다른 상대방은 다른 사람이 마 음에 들면 한강 유람선 중 다른 것을 타고 가서 만나고, 마음에 안 들면 타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사람은 이쪽 배에서 기다립니다. 카메라는 기다리는 사람의 초조한 모습을 계속 비춰줍니다. 공개적으로 누군가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고 발표했는데 만 약 상대방이 싫다고 해서 그 유람선을 타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커다란 상처가 되겠 습니까 어는 출연자는 "만약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강물에 뛰어 들겠다. "라고 까지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자신도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 혹시 잘 안되면 어떻게 될까 결과를 모르고 볼 때는 이처럼 불안 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이 확실하게 잘 될 것이며, 천국에서의 새 생명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안다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우리의 불안과 초조를 없애 준 완벽한 승리 사건입니다. 부활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패배가 아니고 승리임을 보여 줍니다. 부활 사건을 예수를 믿고 따르는 Home Team의 승리를 미리 보여준 사건입니다.
무덤에 계시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부으려고 찾아갔던 여인들에게 천사는 "두려워 말 라, 무서워 말라. "고 하였습니다. 왜 천사와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여인들을 만나자마자 "두려워하지 말아라. "고 했을까요 이 여인들을 지배했던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녀들의 두려움의 근원은 귀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의 두려움의 근원은 근본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에 저 편 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그것이 가져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죽으니 별 수 없구나. " "부활하시리라고 말씀하셨던 주님도 이렇게 죽어서 무덤에 있으니 참으로 죽음의 힘이 위대 하구나. " 죽음의 능력이 가져오는 힘의 위력, 죽음의 후의 허망함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휩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여인들의 두려움 때문에 천사와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나자마자 "두려워하지 말아라.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 뒤에는 부활이 있으니, 미래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 할 것 없다. "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 필요 없음을 선언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불행했던 과거 사건이 종종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혹시 사람들이 여러분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까봐 두려우십니까 ·혹시 사람들이 여러분의 과거 행적과 말들을 발견 할까봐 두려우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과거 결정들이 잘 못 되어서 지금의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과거 경력들이 여러분이 천국에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기기에 두려워하 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마음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과거의 허물과 행적과 죄악 모두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두 용 서하신 후 무덤 속에서 모두 장사 지내 버리셨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 가와 무덤 속에서 여러분 모두의 죄 값을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구원 과 용서를 바뀌었습니다. 사도행전 10:43에서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하였습니다. 때로 우리의 과거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 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계시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의 그 힘든 과거의 모든 죄악을 지워 버리셨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가서 말하라.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와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은 "가서 제자들에게 말하 라"는 것이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가서 말하는 믿음"(Go & Tell Faith)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 저편에 있는 새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새 생명의 신비 를 체험한 사람들인 여러분이 가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새 생명의 신비를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뿐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의 끝은 바로 절망이고 죽음뿐입니다. 무덤 저편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두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심 무덤 저편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은 내가 그것을 누리고 기뻐하는 것 보다 그것을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생명의 주님을 증언할 때 그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죽음 저편의 세계가 보장되어 있다 는 확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사는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우리가 어떻게 침묵을 지 킬 수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믿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고 계십니까
부활의 사건은 2000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주님의 사건 을 대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 온 그 변 화들이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된다면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1997년 미국의 Barna Researh Group이라는 곳에서 통계를 낸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왜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그중 74% - 교회에 정기적을 참석할 만한 가치가 없다 81% - 교회가 너무 문제 투성이다 48% - 시간이 없다 42% - 교회에 단지 흥미가 없다 38% - 교회의 가르침이 내 삶과 관련성이 없다(irrelevant)
위의 통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해 보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 회와 그 메시지가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거나 삶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여기 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어떤 연관성을 갖고 계십니까
오늘, 부활주일을 맞아 우리는 우리의 삶과 가장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는 중요한 주제를 만나게 됩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한가지 이상씩의 두려움을 갖고 삽니다. 새로 시작한 사업에 대한 두려움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정년 퇴임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노후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 사랑하는 배우자가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곁을 떠나게 되면 어떻게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가에 대한 두려움 혹시 내 몸 안에도 암 덩어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과거의 경력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두려움이 개인마다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인간의 삶에는 안전지대(Comfort Zone, Safety Zone)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가 이런 두려움에 쌓이게 되면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식욕부진, 기력 감퇴, 불면증, 자신감 저하, 불안한 정서 노출, 노여움과 의심, 폭음, 폭식 등 이 나타나 결국에는 우리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조금씩 마비시킵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두려움 보다 실질적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있는 두려움은 다름이 아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우리 인간을 control합니다. 즉 우리의 의식주나 생각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무엇을 먹을까 어떤 약을 먹을까 어떤 운동을 할까 하는 이런 모든 인간의 노력은 결국에는 더 오래 건강하게 살자고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진나라의 시황제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는 불로장생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마술사와 연금술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그것도 모자라서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와 불 사약을 먹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시도하도록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까 오늘 부활 주일을 맞아 교우 여러분과 함께 읽은 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죽음 저편 에 있는 다른 생명이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지 않는 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한정된 인간의 생명 이후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죽음 이후의 생명이 우리들 모두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하 나의 통과지점(Transition Point)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토록 괴로워하고 고민하던 문제가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죽음 이후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확 신 있다면 그의 삶은 이 땅에서 매사에 자신이 있을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 려움이 없이 사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저는 농구 경기 등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너무 시소 게임이 되면 가슴이 두근 두근 거려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그 경기의 결과를 미리 알고 난 다음에 그 경기의 재방송을 관람하면 아무런 두려움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의 '결혼합시다'라는 Video를 시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남녀의 신청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작진이 상대방에게 대강의 인적 사항만을 알려준 후 어느 약속 장소에서 첫 번 만남을 주선합니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두 사람 중 한 사람 이 상대방에게 호감이 있으면 한강에 가서 유람선을 탑니다. 다른 상대방은 다른 사람이 마 음에 들면 한강 유람선 중 다른 것을 타고 가서 만나고, 마음에 안 들면 타지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호감을 갖는 사람은 이쪽 배에서 기다립니다. 카메라는 기다리는 사람의 초조한 모습을 계속 비춰줍니다. 공개적으로 누군가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고 발표했는데 만 약 상대방이 싫다고 해서 그 유람선을 타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커다란 상처가 되겠 습니까 어는 출연자는 "만약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강물에 뛰어 들겠다. "라고 까지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자신도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 혹시 잘 안되면 어떻게 될까 결과를 모르고 볼 때는 이처럼 불안 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이 확실하게 잘 될 것이며, 천국에서의 새 생명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안다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우리의 불안과 초조를 없애 준 완벽한 승리 사건입니다. 부활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패배가 아니고 승리임을 보여 줍니다. 부활 사건을 예수를 믿고 따르는 Home Team의 승리를 미리 보여준 사건입니다.
무덤에 계시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부으려고 찾아갔던 여인들에게 천사는 "두려워 말 라, 무서워 말라. "고 하였습니다. 왜 천사와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여인들을 만나자마자 "두려워하지 말아라. "고 했을까요 이 여인들을 지배했던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녀들의 두려움의 근원은 귀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의 두려움의 근원은 근본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죽음에 저 편 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그것이 가져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죽으니 별 수 없구나. " "부활하시리라고 말씀하셨던 주님도 이렇게 죽어서 무덤에 있으니 참으로 죽음의 힘이 위대 하구나. " 죽음의 능력이 가져오는 힘의 위력, 죽음의 후의 허망함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휩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여인들의 두려움 때문에 천사와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나자마자 "두려워하지 말아라.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 뒤에는 부활이 있으니, 미래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 할 것 없다. "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과거에 대한 두려움이 필요 없음을 선언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불행했던 과거 사건이 종종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까 ·혹시 사람들이 여러분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까봐 두려우십니까 ·혹시 사람들이 여러분의 과거 행적과 말들을 발견 할까봐 두려우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과거 결정들이 잘 못 되어서 지금의 여러분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과거 경력들이 여러분이 천국에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여기기에 두려워하 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마음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과거의 허물과 행적과 죄악 모두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두 용 서하신 후 무덤 속에서 모두 장사 지내 버리셨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 가와 무덤 속에서 여러분 모두의 죄 값을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구원 과 용서를 바뀌었습니다. 사도행전 10:43에서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하였습니다. 때로 우리의 과거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 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계시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의 그 힘든 과거의 모든 죄악을 지워 버리셨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가서 말하라.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와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말씀은 "가서 제자들에게 말하 라"는 것이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가서 말하는 믿음"(Go & Tell Faith)의 가르침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 저편에 있는 새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새 생명의 신비 를 체험한 사람들인 여러분이 가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새 생명의 신비를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 있는 것들 뿐 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의 끝은 바로 절망이고 죽음뿐입니다. 무덤 저편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두가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심 무덤 저편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은 내가 그것을 누리고 기뻐하는 것 보다 그것을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생명의 주님을 증언할 때 그 기쁨은 더욱 커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죽음 저편의 세계가 보장되어 있다 는 확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사는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우리가 어떻게 침묵을 지 킬 수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믿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고 계십니까
부활의 사건은 2000년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주님의 사건 을 대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 온 그 변 화들이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된다면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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