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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본문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것이든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 없는 줄 압니다.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으라고 한다고 믿어집니까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을 자꾸 믿으면 된다고 믿어라. 믿어라 한다고 해서 믿어지는가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다 믿어지지 않는데 나는 믿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서 믿음으로 일어나는 기적을 보지 못하는데 나는 믿어져서 믿음 속에서 역사하는 기적을 볼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오늘 아침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트려 버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믿어지는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맹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 그것도 장사되어 무덤에서 썩어가는 사람이 다시 살아나왔다 과연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여러분들 가운데 사람이 죽었다가 몇 일 만에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사실 어떤 면으로 보면 기독교의 진리처럼 어리석고 허황되고 미련한 종교는 세상에 없을 줄 압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전부 이성과 지성으로 과학으로 세상 그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남자 없이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세상에 와서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더불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다니고 이야기하고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야 믿어지니까 믿는 것이지 믿어지지 않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으라 하는 것처럼 또한 어리석은 것이 없고 또 믿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믿으라 믿으면 된다고 믿는 것처럼 맹목적인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5:13절 이하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어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고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 안에서 무엇이든지 믿어질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보면 믿는 자 가운데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르다였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다니란 마을에 나사로라는 사람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두 누이동생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마 누이동생들에게는 나사로가 오빠이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 같이 믿고 의지하던 오라비 나사로가 병이 들어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한 일은 그들이 생명이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일찍이 믿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부랴 부랴 사람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사정을 아뢰고 빨리 와주시길 청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예수님은 그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데도 빨리 오시지 않고 지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애타게 예수님만 기다리다가 그만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고 말았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무릅쓰고 죽은 오라비의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리고 나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르다는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그동안 참고 견디던 슬픔이 다시 북 바쳐 오른 것입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원망의 탄식을 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여호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라운 소리입니까 죽었던 오라비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그 소리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실상이 아니라 먼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믿음이 없어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안타가운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믿어져야 되는데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믿는데 나는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면 이는 참으로 불행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빨리 불신을 버리고 믿음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옆에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겠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신앙안에서는 믿는 자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으시고 부활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이 서지 않는 마르다를 향해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2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때야 마르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27절 말씀입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때 예수님은 또 한번의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4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할렐루야
오늘 주님의 부활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들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놀라운 축복 자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예수님은 부활의 실체가 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그분의 선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할렐루야 예수님은 부활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의 부활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이시라는 사실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첫째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예컨대 요2:19에서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님 자신의 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금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살아나실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말씀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둘째로, 기적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리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기 시작한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물론 이런 부활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다시금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서 우리의 부활이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금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서, 기적을 통해서, 자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부활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이신 예수님은 그들이 죽어도 얼마든지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에 대하여 "I am the life. " 나는 생명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그렇기에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여기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육이 산 사람이 아니고, 영이 산 사람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사람, 곧 영원히 산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육신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Moody가 임종할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때 무디는 감격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외쳤답니다. “보라 영화스럽도다!"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임하는구나!"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여러분,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났다 할지라도 믿지 마십시오! 무디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늘로 올려 가지 않습니까" 그는 환희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의 예수님을 내 몸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가정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의 손을 꼭 쥐고서 마지막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두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큰 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믿지 않는 큰 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Good bye!(잘 있거라!)" 그리고 이어 작은 아들에게는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또 다시 만나자! " See you again! 왜 서로 다른 작별인사를 했을까요 큰 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까 그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영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큰 아들은 어머니가 있는 천국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예수님을 잘 믿으니까 어머니가 가 계신 천국으로 언젠가는 오게 될 것입니다. 다시 주 안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Good bye"와 "See you again"의 의미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부자가 있었다. 불치의 병으로 죽는다면 돈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던 어느 날 부자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침입한 도둑이 주인을 협박했다. - “조용해! "있는 것 다 내놔!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지만 안 그러면 확 찔러 죽여 버릴 거야! 라고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때 부자가 볼멘소리로 이렇게 외쳤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이놈아, 의사도 나를 살릴 수 없다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살린다는 거야”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시고 부활하셔서 그 영원한 생명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그 생명이며 부활로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늘 던지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르다에게 하신 질문입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그때 마르다는 분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나의 주님은 나의 부활이시요, 나의 생명이신 것을 내가 믿습니다. " 그리할 때 마르다의 가정에 놀라운 부활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부활의 축복이 나타나서 죽었던 나사로가 나흘 만에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 꽃을 파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의 생활은 가난하셨습니다. 그래서 입고 계신 옷도 늘 허름했습니다. 또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손마디도 굵고 거칠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만큼은 늘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보고서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행복한 할머니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좋은 일이 그렇게 많으시기에 늘 싱글벙글하십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 이 나이에 어찌 늘 좋은 일만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내게는 행복을 지키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답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금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인답니다. '사흘만 기다리자! 믿음으로 삼일만 참고 견디자!' 그러면 내 마음이 한결 평안해 진답니다. " 십자가 뒤에는 부활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사흘 뒤에는 우리가 부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조바심 내지 말고, 사흘 동안 믿음으로 잘 견뎌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는 생명과 죽음의 차이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를 믿느냐 아니면 산자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죽어버린 자를 믿는 죽은 신앙입니까 아니면 살아있는 신을 믿은 살아있는 신앙의 소유자들입니까 죽어 버린 사람을 믿는다는 것처럼 허무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죽어있는 사람을 믿는 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분명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리석게도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날 수 없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은 모든 것이 끝이다 는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 분을 따르던 제자들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 시신이 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고는 모든 것이 끝이 났구나 하고는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한 사람인들 주님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주님이 묻히신 무덤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주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따랐던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친까지도 죽은 예수님의 시신이 썩지 않토록 하기 위하여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3일째 되는 날 무덤을 찾아오면서 하는 말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문을 굴려 주리요 하고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손과 옆구리를 보라 내가 살아났느니라. 할렐루야!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값은 치루신 후에는 다시 살아있는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존재하셔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의 진리가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이 아니고는 사망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약에 부활의 생명이 되지 못했다면 사망은 여전히 우리 인간을 정복하고 생명은 죽음으로서 끝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죽은 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서 산자로 믿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망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죽음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만을 보지 마십시오. 죽음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생명으로 잇는 부활의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사건 속에 들어있는 의미와 축복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에게 그 어떤 처지에서도 소망을 주시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믿는 자에게 승리를 보장한 약속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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