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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다시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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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후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여인은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서 청년에게 별을 따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별을 따다 주었습니다.
다시 여인은 청년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을 따다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고민하다가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심장을 꺼냈습니다.
여인과 행복하게 살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심장을 들고뛰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심장이 저만치 굴러 떨어졌습니다.
언덕 밑에서 심장을 다시 주웠을 때 흙투성이가 된 심장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많이 다치지 않았니"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이기적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들의 심장까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아들을 향해 온갖 모욕과 조롱과 저주를 퍼붓는 그들을 향해서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들이 하는 것을 몰라서 그렀습니다. ”
용서를 선포하시고, 여전히 사랑으로 대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주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어리석음 가운데 있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을 품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눕시다.
“우리 주님 바로 당신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
“부활은 당신의 소망이요 능력입니다. ”
부활은 모든 인류의 영원한 소망이자 능력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지 못했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전15:14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실패한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믿음도 모두 헛됩니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부활(resurrection)은 ‘소생(revival)’과 ‘회복(restoration)입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생명의 기운이 움터 오듯이,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흐르는 곳에는 생명이 소생합니다.
겨우내 말라 죽었던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에 봄이 되면 생명의 기운이 움트고 꽃이 만발하듯이, 주님의 보혈의 능력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소생시킵니다.
주님의 부활은 잘못된 관계를 바르게 회복시킵니다.
비틀어지고 왜곡된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시킵니다.
불순종의 자녀를 순종의 자녀로, 저주의 자녀를 축복의 자녀로, 가난한 자를 부요한 자로, 죽었던 자를 생명의 삶으로 회복시킵니다.
부활은 우리의 모든 삶을 새롭게 역전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요 신앙의 궁극적 목표점입니다.
부활주일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주신 날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 중에 한 가지는 한번 선수를 믿으면 끝까지 믿어 준다는 점이랍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안정환이 페널티 킥을 실축 했습니다.
그런데도 히딩크 감독은 그를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믿고 끝까지 뛰게 해서 골든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안정환 선수가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만약 그때 감독님이 저를 교체했더라면 저는 평생동안 그 실수를 잊지 못하며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골든 골을 넣게 해준 것에 대해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들이 읽은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 기록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원래 마가복음은 16장 8절에서 끝이 납니다.
그런데 9절부터는 누군가 후에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보면 가로로 묶여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목적으로 이 부분을 추가했을까요
본문을 연구해보면 확실하게 드러나는 한가지 메시지가 보입니다.
이 말씀을 읽다보면 우리는 많은 위로와 소망을 발견합니다.
만약, 마가복음이 16장 8절까지로 끝나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이 힘들 때 위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치 안정환 선수에게 골든 골을 넣을 기회를 박탈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생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문제 투성이, 실수 투성이인 제자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심으로 신앙의 골든 골을 넣도록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제자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끝없이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먼저는 막달라 마리아를 제자들에게 보내셔서 저들의 신앙을 회복시켜주시려 했습니다.
9절에 보면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기독교는 죽음이 아닌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출발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보이셨습니다.
여기서 '보이셨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만 의도를 가지고 보여준 것'을 말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 맘이 아니고, 보여주는 사람 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을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구원받은 창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여주셨을까요
귀신이 일곱이 들린 여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런 삶이었을까요
예수님은 그녀의 귀신을 쫓으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은혜를 입은 여인입니다.
그 사랑의 은혜를 갚고자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 무덤을 주일 아침 찾았습니다.
바로 은혜를 입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해 있던 마리아에게 주님은 나타나십니다.
그 후에 부활하신 주님은 엠마오 향하는 두 제자에게 찾아가십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고향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는 제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열한 명의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고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부활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았던 사람들,
심지어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했던 제자들, 수차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똑똑하고 잘난 사람만 찾아오셨다면, 믿음 좋은 사람만 찾아오셨다면 우리는 주님을 만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고통 받는 여인, 비천한 여인을 먼저 만나주십니다.
믿음 없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 낙심한 자들을 만나주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답답한 제자들처럼 믿음이 부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좀 다르게 살아봐야지 수없이 작정하고 결단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세상 것이 더 좋아 보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좀 변화 받는가 하면 다시 옛날에 즐겼던 일들이 더 좋아집니다.
때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이 듭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 15: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저희는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그리고 7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아멘!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끝까지 붙어 있으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끌어올리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여러분을 향해 가졌던 목표를 이루시고야 맙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영적으로 침체해 있습니까
믿음 없어서 방황할 때도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성령으로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믿는 사람들을 보내셔서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설교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십니다.
다양한 환경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부활의 주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의 평강으로 충만하게 채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혼자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시139:9-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잠 못 이루고, 홀로 눈물 흘리는 그 자리에도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실패의 자리, 낙심의 자리에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복음의 증인의 자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20:21)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을 향해 부활의 증인으로 파송하십니다.
비록 제자들이 믿음이 부족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비록 실패한 모습으로 두려워 떨고 있지만 주님은 그들을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다시한번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주십니다.
성령을 부으셔서 다시 회복시키시고 제자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생명을 걸고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로 세우십니다.
주님은 부활의 아침 우리에게 다시한번 찾아오셔서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기름부으셔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누리에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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