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수님 부활의 의의
본문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1-58 요약)
예루살렘의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라틴어로 슬픔의 길 이라는 뜻)라는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 곳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선고를 받은 이후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지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800m 정도 되는 순례 길입니다. 그 길 마지막에 위치한 예수님의 장사지냄을 기념한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알려진 정원무덤 에도 가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곳을 기념하여 세운 승천교회도 가 보았습니다. 정원무덤 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무덤은 영국군의 한 장군이 고고학적 증명을 통해 발견했는데 현재 예수님의 무덤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히브리어로 골고다 라틴어로 갈보리 라고 했는데 그 뜻은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 산의 바위가 해골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옆 벽에는 초기 기도교인들의 표식인 앵크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인데 문에는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 그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라는 뜻임)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비어 있는 무덤이었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본문 3~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당신께서 살아 생전에 예고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7:14, 53:5-6, 10-12, 시16:10, 마16:21, 17:22-23, 막9:9-10, 요2:19-22, 행3:18, 벧전2:24).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가사설(假死說), 도거설(盜去說), 허위설(虛僞說), 환상설(幻象說), 착오설(着誤說)등을 주장하며 부인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육체적 부활입니다.
①빈 무덤이 증거해 줍니다 (눅23:1-3). 안식 후 첫날(주일) 새벽에 마리아를 중심한 여인들이 향품을 발라주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 입구를 막아 두었던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②예수님의 증언이 증거해 줍니다 (마28:8-10, 요20:11-18, 고전15:5-8).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무서움과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빨리 달음질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희에게 나타나 평안하뇨 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 시체를 다른 데로 옮겨 두었거든 그 곳을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신 줄 알고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고 했습니다.
③천사들의 증언이 증거해 줍니다 (눅24:4-8).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시체가 없음으로 인하여 누가 훔쳐 간 줄 알고 근심하며 울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사람 모습)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고 말하고,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고 말하면서 예수께서 갈릴리에 게실 때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④수의(壽衣)의 놓인 위치가 증거해 줍니다 (요20:3-7, 20, 27). 베드로가 여인들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덤 속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이 입었던 수의(세마포)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같이 놓이지 않고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개켜 있더라 는 헬라어로 엔테튀리그메논(εντητυλιγμενον)으로서, 사용하기 전 상태처럼 둥그렇게 말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세마포를 가지런히 개어 놓고 두건도 따로 개어 놓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⑤파수꾼들의 은폐 노력이 증거해 줍니다 (마28:11-15). 여인들이 무덤을 떠난 이후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성 중으로 들어가 대제사장에게 보고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파수꾼들로 무덤을 지키도록 했는데(제자들이 훔쳐 가지 못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무서워 도망해 온 파수꾼들의 보고를 듣고 장로들과 의논하고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파수꾼들에게 돈을 주며 제자들이 밤에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고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말까지 오늘날까지(마태복음을 기록할 시점) 유대인들 사이에 두루 퍼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⑥부활체의 현현(顯現) 사건들이 증거해 줍니다 (고전15:2-8). 예수님은 40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부활체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막16:9), 예루살렘에서 여인들에게 (마28:9),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눅24:34),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막16:12), 예루살렘에서 10사도에게 (눅24:39- 도마 없을 때), 예루살렘에서 11사도에게 (요20:26- 도마 있을 때), 갈릴리 해변에서 7사도에게 (요21:1), 갈릴리 산에서 11사도에게 (마28:16),
갈릴리에서 500여 형제에게 (고전15:7), 예루살렘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게 (고전15:7), 감람산에서 승천할 때 사도들에게 (막16:19),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에게 (행9:3-6)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기에게도 보여 주셨고 예수님을 본 자가 태반이나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때인 주후 55년경 시점).
⑦목격자들의 생활 변화가 증거해 줍니다 (눅24:52-53, 행4:19-20, 9:19-21). 부활한 예수님을 목격한 그들은 큰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고 기도에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생명 내놓고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는 예수 이름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공회원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결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으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를 증거했고 마침내 순교까지 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으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를 증거했고 마침내 순교까지 했습니다 (눅24:52-53, 행4:19-20, 9:19-21).
⑧교회의 확장이 증거해 줍니다 (행2:41-47, 4:33-37). 부활체를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 때에 많은 무리가 은혜를 입어 회개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을 사도들이 정해 준 규례를 생명 내놓고 지켰고 성전에 모여 기도하며 순전함으로 예전을 행했습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도왔기 때문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태동한 교회가 오늘날엔 전 세계에 퍼져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행2:41-47, 4:33- 37).
로마시대 황제들의 박해, 종교개혁기의 구라파에서 교황권의 박해, 영국 국교회 여왕의 박해, 2차 세계대전의 독일 히틀러, 소련 스랄린, 중국의 모택동, 일본의 천황, 6. 25전쟁 김일성 등 수 없는 기독교인을 학살하고 교회를 잔해했습니다. 그래도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고 가장 많은 곳에 전파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를 가도 호텔마다 성경책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영국의 사학자 토마스 아놀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이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고 했습니다. 한때 영국의 무신론 자였던 리틀스톤경과 길버트웨스트는 예수님의 부활과 바울의 변화를 반증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프랑크 모리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할 목적으로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읽다가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오히려 부활의 사실성을 철저히 변호하는 논리를 폈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근거입니다.
본문 20~21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에 그릇된 사람들은 성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육신의 부활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전9:4-5). 특히 유대교 분파인 사두개인들 영혼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행23:8),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도 부활이 없다고 그릇된 교훈을 유포하였습니다 (딤후2:17-18). 헬라인들은 영혼불멸은 믿으면서도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특히 플라톤 철학에서는 이데아(Ιδεα)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원적 이론으로 육체는 악하여 멸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 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여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51-52절).
요한계시록11:11에 삼 일 반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로서 우리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되는 동시에 우리 부활체에 대한 표본이 됩니다.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 했습니다. 첫 열매 는 대표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곡식을 추수한 다음 첫 곡식단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곡식단은 모든 수확물에 대한 대표성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이 범죄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다시 사시므로 인류가 살게 된 것입니다 (롬5:12). 또한 첫 열매 의 대표성은 다음에 수확될 곡식도 동일한 곡식의 형태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그를 믿는 성도들도 그와 같은 부활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곳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42-45절).
13-20, 29-32절에 보면 복음전도자들의 삶이 증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세례(고난)을 받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날마다 죽는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지 않았겠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복음 전도자는 거짓말장이고 사역자들이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성도가 경건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고, 신앙 생활 잘하는 자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삶의 능력입니다.
본문 56~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우리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내세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오늘에 먹고 마시자 하면서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30-33절). 아무 것도 이겨 나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는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권능이 입혀졌기 때문에 죽어도 부활하게 됩니다.
55-57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은 우리가 죽은 후에 부활을 가능케 하는 능력으로만 작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그 능력을 사용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나갑니다. 히브리서11:35-38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한 죄의 욕망을 이겨 나갑니다 (롬7:24-25, 8:1-2). 또한 고난의 환경을 극복해 나갑니다. 또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주의 일에 힘씁니다.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보약도 먹어야 보약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의 부활을 소망하고, 현재에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는 승리적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6:5,8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11에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빌립보서3:10-11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라틴어로 슬픔의 길 이라는 뜻)라는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 곳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선고를 받은 이후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지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800m 정도 되는 순례 길입니다. 그 길 마지막에 위치한 예수님의 장사지냄을 기념한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er)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알려진 정원무덤 에도 가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곳을 기념하여 세운 승천교회도 가 보았습니다. 정원무덤 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무덤은 영국군의 한 장군이 고고학적 증명을 통해 발견했는데 현재 예수님의 무덤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히브리어로 골고다 라틴어로 갈보리 라고 했는데 그 뜻은 해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곳 산의 바위가 해골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옆 벽에는 초기 기도교인들의 표식인 앵크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무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인데 문에는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 그는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라는 뜻임)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비어 있는 무덤이었습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본문 3~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당신께서 살아 생전에 예고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7:14, 53:5-6, 10-12, 시16:10, 마16:21, 17:22-23, 막9:9-10, 요2:19-22, 행3:18, 벧전2:24).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가사설(假死說), 도거설(盜去說), 허위설(虛僞說), 환상설(幻象說), 착오설(着誤說)등을 주장하며 부인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육체적 부활입니다.
①빈 무덤이 증거해 줍니다 (눅23:1-3). 안식 후 첫날(주일) 새벽에 마리아를 중심한 여인들이 향품을 발라주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 입구를 막아 두었던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②예수님의 증언이 증거해 줍니다 (마28:8-10, 요20:11-18, 고전15:5-8).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무서움과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빨리 달음질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희에게 나타나 평안하뇨 라고 했습니다. 여인들은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 시체를 다른 데로 옮겨 두었거든 그 곳을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신 줄 알고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고 했습니다.
③천사들의 증언이 증거해 줍니다 (눅24:4-8).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시체가 없음으로 인하여 누가 훔쳐 간 줄 알고 근심하며 울고 있을 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사람 모습)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고 말하고,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고 말하면서 예수께서 갈릴리에 게실 때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④수의(壽衣)의 놓인 위치가 증거해 줍니다 (요20:3-7, 20, 27). 베드로가 여인들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덤 속에 들어갔을 때 예수님이 입었던 수의(세마포)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같이 놓이지 않고 따로 개켜져 있었습니다.
개켜 있더라 는 헬라어로 엔테튀리그메논(εντητυλιγμενον)으로서, 사용하기 전 상태처럼 둥그렇게 말린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세마포를 가지런히 개어 놓고 두건도 따로 개어 놓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⑤파수꾼들의 은폐 노력이 증거해 줍니다 (마28:11-15). 여인들이 무덤을 떠난 이후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은 성 중으로 들어가 대제사장에게 보고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파수꾼들로 무덤을 지키도록 했는데(제자들이 훔쳐 가지 못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무서워 도망해 온 파수꾼들의 보고를 듣고 장로들과 의논하고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파수꾼들에게 돈을 주며 제자들이 밤에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고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말까지 오늘날까지(마태복음을 기록할 시점) 유대인들 사이에 두루 퍼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⑥부활체의 현현(顯現) 사건들이 증거해 줍니다 (고전15:2-8). 예수님은 40일 동안 12차례에 걸쳐 부활체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막16:9), 예루살렘에서 여인들에게 (마28:9),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눅24:34),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막16:12), 예루살렘에서 10사도에게 (눅24:39- 도마 없을 때), 예루살렘에서 11사도에게 (요20:26- 도마 있을 때), 갈릴리 해변에서 7사도에게 (요21:1), 갈릴리 산에서 11사도에게 (마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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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목격자들의 생활 변화가 증거해 줍니다 (눅24:52-53, 행4:19-20, 9:19-21). 부활한 예수님을 목격한 그들은 큰 기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고 기도에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생명 내놓고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는 예수 이름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공회원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결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으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를 증거했고 마침내 순교까지 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으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예수를 증거했고 마침내 순교까지 했습니다 (눅24:52-53, 행4:19-20, 9:19-21).
⑧교회의 확장이 증거해 줍니다 (행2:41-47, 4:33-37). 부활체를 목격한 사도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할 때에 많은 무리가 은혜를 입어 회개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을 사도들이 정해 준 규례를 생명 내놓고 지켰고 성전에 모여 기도하며 순전함으로 예전을 행했습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도왔기 때문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태동한 교회가 오늘날엔 전 세계에 퍼져 교회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행2:41-47, 4:33- 37).
로마시대 황제들의 박해, 종교개혁기의 구라파에서 교황권의 박해, 영국 국교회 여왕의 박해, 2차 세계대전의 독일 히틀러, 소련 스랄린, 중국의 모택동, 일본의 천황, 6. 25전쟁 김일성 등 수 없는 기독교인을 학살하고 교회를 잔해했습니다. 그래도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고 가장 많은 곳에 전파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종교가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를 가도 호텔마다 성경책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영국의 사학자 토마스 아놀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이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고 했습니다. 한때 영국의 무신론 자였던 리틀스톤경과 길버트웨스트는 예수님의 부활과 바울의 변화를 반증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변호사 프랑크 모리슨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할 목적으로 누가 돌을 움직였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읽다가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오히려 부활의 사실성을 철저히 변호하는 논리를 폈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근거입니다.
본문 20~21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에 그릇된 사람들은 성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육신의 부활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전9:4-5). 특히 유대교 분파인 사두개인들 영혼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행23:8),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도 부활이 없다고 그릇된 교훈을 유포하였습니다 (딤후2:17-18). 헬라인들은 영혼불멸은 믿으면서도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특히 플라톤 철학에서는 이데아(Ιδεα)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원적 이론으로 육체는 악하여 멸절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2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 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여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51-52절).
요한계시록11:11에 삼 일 반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로서 우리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되는 동시에 우리 부활체에 대한 표본이 됩니다.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 했습니다. 첫 열매 는 대표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곡식을 추수한 다음 첫 곡식단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 곡식단은 모든 수확물에 대한 대표성의 의미를 가진 것입니다.
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이 범죄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다시 사시므로 인류가 살게 된 것입니다 (롬5:12). 또한 첫 열매 의 대표성은 다음에 수확될 곡식도 동일한 곡식의 형태를 가졌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그를 믿는 성도들도 그와 같은 부활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욕된 곳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42-45절).
13-20, 29-32절에 보면 복음전도자들의 삶이 증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세례(고난)을 받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날마다 죽는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지 않았겠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복음 전도자는 거짓말장이고 사역자들이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성도가 경건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고, 신앙 생활 잘하는 자가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삶의 능력입니다.
본문 56~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우리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내세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오늘에 먹고 마시자 하면서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30-33절). 아무 것도 이겨 나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는 다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권능이 입혀졌기 때문에 죽어도 부활하게 됩니다.
55-57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은 우리가 죽은 후에 부활을 가능케 하는 능력으로만 작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그 능력을 사용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나갑니다. 히브리서11:35-38절에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한 죄의 욕망을 이겨 나갑니다 (롬7:24-25, 8:1-2). 또한 고난의 환경을 극복해 나갑니다. 또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주의 일에 힘씁니다.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보약도 먹어야 보약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의 부활을 소망하고, 현재에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는 승리적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6:5,8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11에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빌립보서3:10-11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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