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최후의 원수인 죽음을 이기시고
본문
1885년 4월 5일, 부활절인 이 날에, 비바람과 거센 풍랑을 뚫고 머나먼 길을 달려온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 습니다. 그 배에는 언더우드 목사님과 아펜젤러 목사님이 타고 있었습니다. 아펜젤러 목사님은, 본국에 보낸 첫 번째 선교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격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날 이곳에 왔다. 그날 우리는, 죽음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부활하신 주님 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기를, 그리고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분들이 우리나라 조선 땅에 들어옴으로써, 이 한반도에는 여러 분야에서 부활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분들에 의 하여 처음으로 학교가 세워졌고 병원도 건립되었습니다. 이분 들이 복음을 전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하는 한글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고, 안방에 갇혀 지내던 여성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분들이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나 라에서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차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백 정 출신이 장로가 되고 의사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 었습니다.
이처럼, 어둡던 이 땅에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부활의 능력이 죽은 자 같 았던 제자들을 일으켜 세웠고, 그들이 일어나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급기야는 동방의 작은 나라인 이 땅에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펜젤러 목사님과 언더우드 목사님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 은,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 그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교육과 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과 미술, 그리고 체육까지, 기독교 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 도로, 그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각 개인에게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모릅니다.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노라고 간증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예수를 몰랐더라면 참으로 무익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살다가 한 많은 한 평생을 마치고 말았을 텐데, 예수를 믿은 덕분에 진정 보람과 기쁨을 누리면 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죽 은 것 같이,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리라(고전 15:22)’고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아담이 지었던 그 죄를 물려받게 되었고, 그 결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 담의 죄를 물려받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적인 일이었습 니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든지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 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간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그 생명의 길 을 선택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에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승만 서재필 안창호를 비롯하여 김구 선생과 김규식 박사들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살 다가 가신 분들입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은 ‘파출소 열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 회 하나를 세우는 편이 낫다’고 말했을 정도로, 철저한 기독 교 신앙인이었습니다. 백범선생은 동학접주를 지내다가 공주 마곡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선 택하고 믿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 기독교의 능력을 확신한 까닭에 그렇게 말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예수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 불쌍한 사람들(고전15:19)’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능력은 바로 부활의 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인류 최고의 적인 죽음의 세력 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 활의 능력을 믿을 때, 우리 인생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 지 않으리라(요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컨대, 부활의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부활에 대한 성경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잘 받아들 여야 합니다.
‘부활’이라는 책을 쓴 톨스토이는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 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 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 니다. 이전에는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 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그 인생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 다. 가치관도 바뀌고 생활도 바뀌게 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기 전까지는 세상 중심으로 살았습 니다. 입으로는‘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 ’고 장담했지만, 실 상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붙잡히시자, 그들은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를 뵙고 난 후에는 그들의 태도가 완 전히 바뀌었습니다.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 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 께 있겠다(마28:19-20)”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정말 그대로 실 천했던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생활의 변화가 오게 되거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멸 망 받을 최후의 원수는 죽음(고전15:26)’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상, 죽음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다른 것은 별로 걱정할 필 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문제를, 주님이 부활하심으 로써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갔던 것도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자, 제자들은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비겁하게도 예 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십자가를 거 꾸로 지고 순교할 때까지 용감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진리를 온전히 지 켜 살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진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지켜 살아갈 때, 그런 사람은 예수 안에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그 진리를 생활로 보여주어 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날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막 달라 마리아가 주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 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 아는 급히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하자, 베드로와 요한 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과연, 무덤에는 수의만 있고, 예수 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간 줄로 알고서 마냥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울다가 지쳐서 얼핏 무덤 안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그때, 천사 하나가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마리아 는“누가 주님을 모셔갔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다시금 “왜 울고 있 느냐”고 묻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로 알았습니다. 그가 다시 “마리아야!”하고 부르시니, 그제서 야 마리아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천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 그런 그녀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으로 뵙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물론, 참으로 훌륭하고 잘난 사람 이 많았을 텐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필이면 가장 못나고 천 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으로 나타나셨을까요 막달라 마리아가 새벽 동트기 전에 무덤을 찾아갔던 것은, 비 단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건만, 예수 님은 그녀를 가까이 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만 해 도 참으로 고마운 일인데, 주님께서는 그녀를 가까이 하셨으니, 그녀로서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리아는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이미 부활체험 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죽지 못해 억지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어서, 죽은 사람처럼 살던 무익한 인생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런 그 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시고 인간 취급을 해주셨으니, 그야 말로,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를 백골난망(白骨難忘)의 은혜로 여 기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지은 죄로 인하 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되었으니,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물 론,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되면, 그제서야 깨달을 수가 있게 되겠지요. 그러나 인생을 참 으로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그 은혜와 진리를 미리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말이 나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며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다 받아주신다. ”고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며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하 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일곱 살 먹은 조니 에릭슨이라는 소녀가 다이빙 연습을 하 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목 아래 부분부터 전신 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과 좌절, 원망과 분노, 심지어 자살하 고 싶은 충동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재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 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 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부활의 진리였습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 몸이 하 늘에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했다. 그때에는, 내 발로 춤을 출 수 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 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 런 감각이 없지만, 언젠가는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는 새로 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새로운 몸과 정신을 약속하지 않았 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만, 갖가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도록 하십 시오. 그래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 다. 진실한 마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살 아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 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 우리 모두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부활의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분들이 우리나라 조선 땅에 들어옴으로써, 이 한반도에는 여러 분야에서 부활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분들에 의 하여 처음으로 학교가 세워졌고 병원도 건립되었습니다. 이분 들이 복음을 전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하는 한글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고, 안방에 갇혀 지내던 여성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분들이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나 라에서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차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백 정 출신이 장로가 되고 의사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 었습니다.
이처럼, 어둡던 이 땅에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된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부활의 능력이 죽은 자 같 았던 제자들을 일으켜 세웠고, 그들이 일어나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함으로써 급기야는 동방의 작은 나라인 이 땅에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펜젤러 목사님과 언더우드 목사님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 은, 우리나라의 각 분야에서 그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교육과 의술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과 미술, 그리고 체육까지, 기독교 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 도로, 그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각 개인에게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모릅니다. 예수님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노라고 간증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예수를 몰랐더라면 참으로 무익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살다가 한 많은 한 평생을 마치고 말았을 텐데, 예수를 믿은 덕분에 진정 보람과 기쁨을 누리면 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죽 은 것 같이,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시 살게 되리라(고전 15:22)’고 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아담이 지었던 그 죄를 물려받게 되었고, 그 결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 담의 죄를 물려받게 된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적인 일이었습 니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든지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 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다가 간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그 생명의 길 을 선택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에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승만 서재필 안창호를 비롯하여 김구 선생과 김규식 박사들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살 다가 가신 분들입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은 ‘파출소 열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 회 하나를 세우는 편이 낫다’고 말했을 정도로, 철저한 기독 교 신앙인이었습니다. 백범선생은 동학접주를 지내다가 공주 마곡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선 택하고 믿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 기독교의 능력을 확신한 까닭에 그렇게 말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예수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보다 불쌍한 사람들(고전15:19)’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능력은 바로 부활의 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인류 최고의 적인 죽음의 세력 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 활의 능력을 믿을 때, 우리 인생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 지 않으리라(요11:25-26)’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컨대, 부활의 예수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부활에 대한 성경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잘 받아들 여야 합니다.
‘부활’이라는 책을 쓴 톨스토이는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 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 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 니다. 이전에는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 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그 인생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 다. 가치관도 바뀌고 생활도 바뀌게 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기 전까지는 세상 중심으로 살았습 니다. 입으로는‘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 ’고 장담했지만, 실 상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붙잡히시자, 그들은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를 뵙고 난 후에는 그들의 태도가 완 전히 바뀌었습니다.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 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 께 있겠다(마28:19-20)”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정말 그대로 실 천했던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생활의 변화가 오게 되거니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멸 망 받을 최후의 원수는 죽음(고전15:26)’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상, 죽음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다른 것은 별로 걱정할 필 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문제를, 주님이 부활하심으 로써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갔던 것도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자, 제자들은 물 불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비겁하게도 예 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십자가를 거 꾸로 지고 순교할 때까지 용감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진리를 온전히 지 켜 살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진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지켜 살아갈 때, 그런 사람은 예수 안에서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그 진리를 생활로 보여주어 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날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막 달라 마리아가 주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 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 아는 급히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하자, 베드로와 요한 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과연, 무덤에는 수의만 있고, 예수 님의 시신은 없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간 줄로 알고서 마냥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울다가 지쳐서 얼핏 무덤 안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그때, 천사 하나가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마리아 는“누가 주님을 모셔갔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다시금 “왜 울고 있 느냐”고 묻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로 알았습니다. 그가 다시 “마리아야!”하고 부르시니, 그제서 야 마리아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천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 그런 그녀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으로 뵙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물론, 참으로 훌륭하고 잘난 사람 이 많았을 텐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필이면 가장 못나고 천 한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처음으로 나타나셨을까요 막달라 마리아가 새벽 동트기 전에 무덤을 찾아갔던 것은, 비 단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자 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건만, 예수 님은 그녀를 가까이 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만 해 도 참으로 고마운 일인데, 주님께서는 그녀를 가까이 하셨으니, 그녀로서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리아는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에 이미 부활체험 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죽지 못해 억지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어서, 죽은 사람처럼 살던 무익한 인생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런 그 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시고 인간 취급을 해주셨으니, 그야 말로,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를 백골난망(白骨難忘)의 은혜로 여 기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지은 죄로 인하 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되었으니,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물 론,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은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되면, 그제서야 깨달을 수가 있게 되겠지요. 그러나 인생을 참 으로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그 은혜와 진리를 미리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말이 나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며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다 받아주신다. ”고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며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를 위하 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일곱 살 먹은 조니 에릭슨이라는 소녀가 다이빙 연습을 하 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목 아래 부분부터 전신 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과 좌절, 원망과 분노, 심지어 자살하 고 싶은 충동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재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 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 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부활의 진리였습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 몸이 하 늘에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했다. 그때에는, 내 발로 춤을 출 수 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 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 런 감각이 없지만, 언젠가는 자유자재로 활동할 수 있는 새로 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새로운 몸과 정신을 약속하지 않았 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만, 갖가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도록 하십 시오. 그래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 다. 진실한 마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살 아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 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 우리 모두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부활의 진리를 몸으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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