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이른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본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의 약속을 성경책 속에만 기록해놓은 것이 아니라, 봄날의 잎사귀들 마 다에도 쓰셨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만물이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새봄이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비 단,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들뿐만 아니라 부활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새봄이 움트는 이때쯤이면 새로운 인생을 새롭게 사는 듯한 기분, 곧 부활의 감동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 옛날 유대 땅에서, 예수님이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 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날, 새벽어둠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 에,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가 몇몇의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하여 미리 준비한 향품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무덤으로 향하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을 막아놓은 돌을 굴려줄 수 있을까’하 고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돌은 여자들의 힘만으로는 굴 릴 수가 없을 정도로 아주 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건만, 그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주 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서는 그 돌 위 에 앉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급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이 소 식을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가져갔습니 다. 주님을 어디에다 모셔두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발걸음이 빠른 요한이 먼저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했습 니다. 무덤 안에는 고운 베만 놓여 있고, 주님의 시신은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뒤따라 온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 니다. 요한이 본 대로 고운 베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예 수님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 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고, 예수님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건만, 제자들은 그 말씀 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 이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는 빈 무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도 그 냥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 는 집으로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무덤 밖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물론, 막달라 마리아도 주님께서 부 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울다가 지친 나머지 무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무덤 안에는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 었습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을 모셨던 자리의 머리맡에 있었 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천사들이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마 리아는 “누가 우리 주님을 모셔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어 디에다가 모셔두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 아다보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마리 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너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동산을 지키 는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만일 당신이 예수님의 시신을 모 셔갔다면, 그곳이 어딘지 알려주십시오. ”하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습 니다. 그제야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선 생님!”하고 소리치면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아직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 지 않았다. 이제 너는 내 형제들을 찾아가서, 내가 내 아버지 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로,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 을 만나 뵌 일과, 주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인 스펄젼목사님이 하루는 길을 가다 가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고 있는 불량소년을 목도하게 되었 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소년에게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이렇게 계 속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하고 당돌하게 대답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그 새가 하도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그 소 년에게 2파운드를 주고 그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새를 멀 리 날려 보냈습니다.
이틀 후, 마침 부활주일이었습니다. 이 날,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악한 마귀는 모든 인간들을 끝까지 괴롭히다가 마지막에는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그의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 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 건이요, 부활의 역사인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옳은 일 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욱 선하고 옳은 일이 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더 선하고 옳은 일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자 신 안에서 부활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역설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주님 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중심으로 살아가 던 과거의 그릇된 인생을 깨끗이 청산하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새롭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거듭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이 있기 전에는, 그야말로 세상중심으로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에, 그처럼 허무하 고도 비굴하게 모두 다 도망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 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는, 그들의 모든 것이 완전히 다 바 뀌게 되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열심히 증거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 며 살 수 있을까요
1. 우선,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죽은 사람이 다 시 살아나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 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묻히셨던 그 빈 무덤을 분명히 보고서 도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누굽니까 12제자 중에서도 가장 믿음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부 활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미리 마르다에게 “나 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 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뒷받침하는 뜻에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예수께서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 계신다면, 우리가 전한 것은 다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의 믿 음도 헛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고전15:14)’라 고 설파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다시 한 번 강조하기 를‘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의 믿 음은 헛된 것이 되고,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고전15:17)’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올바른 믿음을 갖고서 바 르게살기를 원한다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 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라고, 바울선생이 단정 지어 말한 것을 보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살아야, 믿음생활 을 헛되이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부활에 대한 믿음도 없이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된다면, 부활이전의 주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아주 비겁하고 불쌍한 모 습을 보여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영국에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젊은 변호사가 있었 습니다. 이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라 생각하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그 반대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송두리째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이 바로 ‘누가 돌을 옮겼는가(Who moved the stone)’라고 하는 유명한 책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이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 겉 사람은 시들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고후4:16)’고 고백한 말씀을 분명하게 믿고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 부활을 경험할 수 있겠 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인류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뵐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항 상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렇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변함없어야 합니다. 그리 고 또한 부지런히 주님을 섬겨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평소에 아주 큰소리치던 모든 남자들은 비겁하게도 어디론지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러 나 막달라 마리아는 몇몇의 여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 던 여자였습니다. 그야말로 정말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세상 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개처럼 여길 때 에, 예수님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고쳐주셨을 뿐만 아 니라, 그를 가까이하여 사람대접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으 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산다 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대부분의 사 람들이 다 주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살기 를 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해 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 채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자칫 잘못될 경우, 예수님의 반대자들에게 붙잡혀서 곤욕을 치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서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정성 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그때 상황으로서는, 주님께 정성을 쏟는다고 해서 별 유익을 볼 수 없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괜히 주님께서 묻히신 무덤 근처를 얼쩡거렸다가는 오히려 아 주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주님께로부터 입은 은혜를 생각할 때, 도저히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처럼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께 마음 과 정성을 다했던 것이고, 그 결과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으로 만나 뵙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도록 합시다. 언제나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켜 살아감으로써 부 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뵙는 영광을 누리도록 합시다. 그래 서 우리 몸은 비록 날이 갈수록 더욱 볼품없이 낡아지고 일그 러져 가겠지만, 우리의 믿음과 마음과 영혼은 날이 갈수록 더 욱 새롭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도록 합시다. 아무쪼록,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가득히 누리시는 저와 여 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만물이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새봄이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비 단,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들뿐만 아니라 부활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새봄이 움트는 이때쯤이면 새로운 인생을 새롭게 사는 듯한 기분, 곧 부활의 감동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 옛날 유대 땅에서, 예수님이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 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날, 새벽어둠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 에,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가 몇몇의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하여 미리 준비한 향품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무덤으로 향하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을 막아놓은 돌을 굴려줄 수 있을까’하 고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돌은 여자들의 힘만으로는 굴 릴 수가 없을 정도로 아주 큰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건만, 그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주 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서는 그 돌 위 에 앉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급히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이 소 식을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가져갔습니 다. 주님을 어디에다 모셔두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발걸음이 빠른 요한이 먼저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했습 니다. 무덤 안에는 고운 베만 놓여 있고, 주님의 시신은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뒤따라 온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 니다. 요한이 본 대로 고운 베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예 수님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이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 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고, 예수님도 여러 차례 말씀하셨건만, 제자들은 그 말씀 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 이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는 빈 무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서도 그 냥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 는 집으로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무덤 밖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물론, 막달라 마리아도 주님께서 부 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울다가 지친 나머지 무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무덤 안에는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 었습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을 모셨던 자리의 머리맡에 있었 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천사들이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마 리아는 “누가 우리 주님을 모셔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어 디에다가 모셔두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 아다보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지만, 마리 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 너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동산을 지키 는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만일 당신이 예수님의 시신을 모 셔갔다면, 그곳이 어딘지 알려주십시오. ”하고 간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습 니다. 그제야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선 생님!”하고 소리치면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를 만지지 말라. 아직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 지 않았다. 이제 너는 내 형제들을 찾아가서, 내가 내 아버지 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신 그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즉시로,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 을 만나 뵌 일과, 주님이 일러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인 스펄젼목사님이 하루는 길을 가다 가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고 있는 불량소년을 목도하게 되었 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소년에게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은 “이렇게 계 속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하고 당돌하게 대답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그 새가 하도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그 소 년에게 2파운드를 주고 그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새를 멀 리 날려 보냈습니다.
이틀 후, 마침 부활주일이었습니다. 이 날,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악한 마귀는 모든 인간들을 끝까지 괴롭히다가 마지막에는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그의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 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 건이요, 부활의 역사인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옳은 일 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욱 선하고 옳은 일이 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더 선하고 옳은 일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자 신 안에서 부활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라고 역설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주님 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중심으로 살아가 던 과거의 그릇된 인생을 깨끗이 청산하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새롭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거듭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이 있기 전에는, 그야말로 세상중심으로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에, 그처럼 허무하 고도 비굴하게 모두 다 도망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 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는, 그들의 모든 것이 완전히 다 바 뀌게 되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그들이,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열심히 증거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 며 살 수 있을까요
1. 우선,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죽은 사람이 다 시 살아나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 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묻히셨던 그 빈 무덤을 분명히 보고서 도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누굽니까 12제자 중에서도 가장 믿음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부 활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미리 마르다에게 “나 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 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뒷받침하는 뜻에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예수께서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 계신다면, 우리가 전한 것은 다 허상에 불과하며, 우리의 믿 음도 헛되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고전15:14)’라 고 설파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다시 한 번 강조하기 를‘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의 믿 음은 헛된 것이 되고,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고전15:17)’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올바른 믿음을 갖고서 바 르게살기를 원한다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 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라고, 바울선생이 단정 지어 말한 것을 보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살아야, 믿음생활 을 헛되이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부활에 대한 믿음도 없이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된다면, 부활이전의 주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또한 아주 비겁하고 불쌍한 모 습을 보여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영국에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젊은 변호사가 있었 습니다. 이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라 생각하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그 반대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송두리째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이 바로 ‘누가 돌을 옮겼는가(Who moved the stone)’라고 하는 유명한 책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이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 겉 사람은 시들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다(고후4:16)’고 고백한 말씀을 분명하게 믿고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 부활을 경험할 수 있겠 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인류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뵐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항 상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렇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변함없어야 합니다. 그리 고 또한 부지런히 주님을 섬겨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평소에 아주 큰소리치던 모든 남자들은 비겁하게도 어디론지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러 나 막달라 마리아는 몇몇의 여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 던 여자였습니다. 그야말로 정말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세상 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개처럼 여길 때 에, 예수님은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고쳐주셨을 뿐만 아 니라, 그를 가까이하여 사람대접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으 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산다 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대부분의 사 람들이 다 주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살기 를 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해 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 채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자칫 잘못될 경우, 예수님의 반대자들에게 붙잡혀서 곤욕을 치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서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정성 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그때 상황으로서는, 주님께 정성을 쏟는다고 해서 별 유익을 볼 수 없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괜히 주님께서 묻히신 무덤 근처를 얼쩡거렸다가는 오히려 아 주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가 주님께로부터 입은 은혜를 생각할 때, 도저히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처럼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주님께 마음 과 정성을 다했던 것이고, 그 결과 그녀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으로 만나 뵙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도록 합시다. 언제나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켜 살아감으로써 부 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뵙는 영광을 누리도록 합시다. 그래 서 우리 몸은 비록 날이 갈수록 더욱 볼품없이 낡아지고 일그 러져 가겠지만, 우리의 믿음과 마음과 영혼은 날이 갈수록 더 욱 새롭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도록 합시다. 아무쪼록, 부활의 기쁨과 평화를 가득히 누리시는 저와 여 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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