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사건의 목격자 증인
본문
오늘은 전 세계 교회가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기념하는 성탄절 못지않은 축제의 주일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증인들이 있지만 본문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의 증인을 소개하면서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분문 9절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하셨다.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알게 된다.
O. 하나의 사건은 주님이 일곱 귀신이 들려 폐인이 되어 망하여 가는 그녀에게서 귀신을 다 쫓아내어 그녀를 치료하시고 해방하셨다는 것이고,
o. 또 하나는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를 먼저 만나 주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처음 목격하는 특권을 받은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요 女性이 지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제일먼저 증거 하는 축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부활에 관한 최초의 증언자요,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활의 주님을 제일먼저 전파하한 명예가 바로 이 女人에게 주어진 것이다.
진정 이 女人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1.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눅8:1 “이후에 예수께서 각성과 촌에 두루 다니며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했는데
주님께서 그때 12제자를 통해서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제자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주님의 본격적인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였다.
그때 맨 처음 은혜를 입은 사람이 나오는데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치심을 받은 어떤 女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고 했다.
우리가 보통 “막달라 마리아”고 말하니까 막달라는 성이고 마리아는 이름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은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막달라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룟 유다”를 가룟은 성이고 유다가 이름인 것처럼 착각하는데 마찬가지로 가룟은 지방이름 곧 동네이름이고 거기에 사는 유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버린 유다를 반드시 “가룟 유다”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유다”라는 이름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순자, 명자, 경자, 복동, 만석이란 이름이 많았던 것은 순자, 명자, 경자 다음에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이요.
복동이, 만석이는 복이 많은 아이가 되라는 좋은 뜻이나 지금 아이들 이름은 눈을 닦고 찾아봐도 순자, 명자, 복동이, 만석이 이름은 없어요.
유다라는 이름도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인기 있는 이름 중에 하나였다.
왜냐면 구약에 나타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나고, 메시야 되신 주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지파의 이름입니까 또한 “유다”라는 이름이 “찬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사내아이만 나면 “유다”라고 지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등장한 이후에 지구상에서 자기 자녀의 이름을 유다로 짓는 사람이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배신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그 유다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가룟인 유다 혹은 가룟 유다라고 일컬었다.
이처럼 마리아도 좋은 이름이다.
그러나 성경 상에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가 때때로 혼동을 일으킨다.
그 혼동을 막기 위해 막달라 지역에 살았던 마리아라고 구별하여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일컫는다.
우리가 이 女人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신분은 이것이 전부이다.
이 女人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 관해서 성경은 침묵한다.
그러므로 부질없는 상상은 금해야 하겠다.
그녀가 독신이었는지, 기혼이었는지, 혹은 이혼녀인지, 혹은 홀로된 女人인지 알 수 없다.
성경은 이것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으며 문제도 나타나지않는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녀가 일곱 귀신이 들려 사람 구실 못하다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 주님의 사랑을 입어 그 귀신들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치료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은혜 입은 女人이라는 것이다
“일곱 귀신이 그에게서 나간지라”
생각해 보세요.
귀신 하나만 들려도 괴로운데, 일곱 귀신을 몸이 지니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보통 큰 고통이 아니다.
최악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일곱”이라는 숫자를 썼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최악의 상태 속에서 이 女人이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깨끗이 치료함을 받은 女人으로 성경의 무대에 등장한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육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부분, 정신적인 것이나 심적인 부분의 최악의 상태를 치유하시고 고쳐주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증인이 된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를 입어 귀신에게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귀신에게서 해방됨으로 그 女人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주님을 통해서 죄사함 받았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중생했습니다. 나는 성령받았습니다. ” 하는 감격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눅8: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눅8:2절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몇 명의 女人들과 함께 자기들의 귀중한 소유로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을 사심 없이 섬겼다.
그녀는 구원받고, 병고침 받고 능력받고 체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병고침을 베풀어주신 주님을 증거 하는 일에와 그와 함께 사역하는 제자들을 섬기는 일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로 섬겼다.
얼마나 아름다운 女人입니까
얼마나 염치가 있는 女人입니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십자가의 산증인이 됩니다.
막15:39-40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로마군인들을 이끌고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책임자이다)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멀리서 바라보는 女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으니”라고 한다.
여기서 암시하는 바가 무엇이며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있던 이 女人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던 순간 막달라 마리아는 거기에 있었다.
주님이 돌아가시던 그 순간에 주님을 버리고 멀리 떠나갔던 다른 많은 남정네들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여기에 우리 남성들을 무척이나 부끄럽게 만드는 사건이 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주님이 죽으시던 그 장소에 남아서, 주께서 숨을 거두시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한편 남자 제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요6장에 보면 예수께서 디베랴바다 건너편 언덕에 오르시어 말씀을 전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5천명이 실컷 먹고도 12광주리를 거두는 능력을 나타내셨다.
그때 모든 사람들과 제자들이 야심을 가지고 주님을 더 많이 따랐다.
그리고 이 기적이 있은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그때 주님은 요6:15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하셨다.
이 때문에 주님에 대하여 실망한 제자들이 많았다. (출세길이 자기맘 같지 않음을 알고)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 했다.
이것이 그때 남자 제자들이 행했던 부끄러운 태도였다.
그래서 주님은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라고 하셨다.
기대를 가지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양육했던 제자들은 하나둘 떠나가더니,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마저도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간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한없이 고독하시고 아프셨을 것이다.
사랑했던 제자들, 기대했던 제자들은 아무도 거기에 함께 있지 않았다.
적어도 12제자에 관해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 女人들이 있었다.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녀는 거기서 주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고통하시며, 고독한 아픔의 절규 소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음성을 들었다.
사람들의 비웃는 모습도 보았다.
거기서 “내가 목마르다”하는 그 음성도 들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왔다.
주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왔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산증인이 되었다.
거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15: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고 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곳까지, 하관식이 이루어진 곳까지 와서 주님의 마지막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3.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된다.
요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운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라고 했다.
이 여종은 어디까지 좇아갔습니까
은혜입고 자기의 모든 것으로 섬기며 → 십자가까지 따르며 → 무덤에 까지 가며 → 부활의 주님을 만나며 → 그를 증거 하는데 까지 完成 시켜가고 있다.
빈 무덤을 다시 찾아왔다.
안식 후 첫날 주일(오늘)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빈 무덤에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아마도 무덤에 예수님이 안치된 그 다음 날(토요일) 온종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날 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을지 모른다.
은혜를 입었던 주님, 신뢰했던 주님, 삶의 변화를 주셨던 주님, 자신의 인생에 참 자유와 의미를 주셨던 주님,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Vision을 주셨던 주님, 이 주님이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 한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아침 캄캄한 어두움이 물러가자 주님이 묻혀 있는 그 무덤을 다시 찾아옵니다.
은혜를 입었던 주님을 향한 끈질긴 애정을 보십시오.
다시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가 손에 가지고 온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향품을 가지고 왔다.
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 고 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 살로메, 이 세 女人은 그때 벌써 3×3기도팀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삼총사처럼 언제나 팀을 이루어서 사역하며, 주님을 섬기며 또 서로를 섬기며 위로하고 기도하고 축복하며 격려했던 것이다.
비싼 값을 주고 사두었던 향유를 예수님의 시신에 한번더 부어 드리려고 무덤에 또 찾아간다.
요20:2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온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니” 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가신 빈 무덤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증거 했던 최초의 女人이 또한 막달라 마리아이다.
이 두 제자는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빈 무덤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또 요20:13에 보면 이 마리아의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 빈 무덤가에서 주저앉아 향유를 옆에 두고 사라진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하염없이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을 연상해 보십시오.
이분의 가슴속에서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고, 꺾어버릴 수 없는 주님을 향한 애정을 가지고, 섬기고 따르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그의 곁에 찾아와 “어찌하여 우느냐”고 위로해 주신다.
요20:15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시신일망정 주님 모시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사랑과 애정과 신앙이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것으로 이 시간 되살아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라고 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요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I have seen the Lord)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누구에게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주를 보았다!”(I have seen the Lord)
“내가 다시 사신 주님을 보았습니다!”(I have seen the resurrection of Lord)
“주님은 다시 사셨습니다!”고 외치고 전했다.
(Raised from the dead of Jesus)
이 소식을 전할 때마다 가슴이 터지도록 기뻤으며 영광스러웠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절을 맞아 이 시대와 지금의 환경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자로! 증인으로!
가슴이 시리고 터지도록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는 성령의 능력이 소멸되지 않기를 살아계신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많은 증인들이 있지만 본문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의 증인을 소개하면서 부활신앙에 대한 확신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분문 9절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하셨다.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알게 된다.
O. 하나의 사건은 주님이 일곱 귀신이 들려 폐인이 되어 망하여 가는 그녀에게서 귀신을 다 쫓아내어 그녀를 치료하시고 해방하셨다는 것이고,
o. 또 하나는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를 먼저 만나 주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처음 목격하는 특권을 받은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요 女性이 지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제일먼저 증거 하는 축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부활에 관한 최초의 증언자요,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활의 주님을 제일먼저 전파하한 명예가 바로 이 女人에게 주어진 것이다.
진정 이 女人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1.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눅8:1 “이후에 예수께서 각성과 촌에 두루 다니며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했는데
주님께서 그때 12제자를 통해서 그리고 그 외에도 많은 제자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주님의 본격적인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였다.
그때 맨 처음 은혜를 입은 사람이 나오는데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치심을 받은 어떤 女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고 했다.
우리가 보통 “막달라 마리아”고 말하니까 막달라는 성이고 마리아는 이름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라는 이름은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막달라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룟 유다”를 가룟은 성이고 유다가 이름인 것처럼 착각하는데 마찬가지로 가룟은 지방이름 곧 동네이름이고 거기에 사는 유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버린 유다를 반드시 “가룟 유다”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유다”라는 이름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순자, 명자, 경자, 복동, 만석이란 이름이 많았던 것은 순자, 명자, 경자 다음에는 아들을 낳으리라는 것이요.
복동이, 만석이는 복이 많은 아이가 되라는 좋은 뜻이나 지금 아이들 이름은 눈을 닦고 찾아봐도 순자, 명자, 복동이, 만석이 이름은 없어요.
유다라는 이름도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인기 있는 이름 중에 하나였다.
왜냐면 구약에 나타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이 나고, 메시야 되신 주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지파의 이름입니까 또한 “유다”라는 이름이 “찬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사내아이만 나면 “유다”라고 지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등장한 이후에 지구상에서 자기 자녀의 이름을 유다로 짓는 사람이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배신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그 유다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사람을 가룟인 유다 혹은 가룟 유다라고 일컬었다.
이처럼 마리아도 좋은 이름이다.
그러나 성경 상에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가 때때로 혼동을 일으킨다.
그 혼동을 막기 위해 막달라 지역에 살았던 마리아라고 구별하여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일컫는다.
우리가 이 女人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신분은 이것이 전부이다.
이 女人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 관해서 성경은 침묵한다.
그러므로 부질없는 상상은 금해야 하겠다.
그녀가 독신이었는지, 기혼이었는지, 혹은 이혼녀인지, 혹은 홀로된 女人인지 알 수 없다.
성경은 이것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으며 문제도 나타나지않는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녀가 일곱 귀신이 들려 사람 구실 못하다가 예수님을 만났고, 그 주님의 사랑을 입어 그 귀신들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치료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은혜 입은 女人이라는 것이다
“일곱 귀신이 그에게서 나간지라”
생각해 보세요.
귀신 하나만 들려도 괴로운데, 일곱 귀신을 몸이 지니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보통 큰 고통이 아니다.
최악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일곱”이라는 숫자를 썼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최악의 상태 속에서 이 女人이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깨끗이 치료함을 받은 女人으로 성경의 무대에 등장한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육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부분, 정신적인 것이나 심적인 부분의 최악의 상태를 치유하시고 고쳐주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2.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증인이 된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를 입어 귀신에게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귀신에게서 해방됨으로 그 女人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주님을 통해서 죄사함 받았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중생했습니다. 나는 성령받았습니다. ” 하는 감격에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눅8: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눅8:2절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몇 명의 女人들과 함께 자기들의 귀중한 소유로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을 사심 없이 섬겼다.
그녀는 구원받고, 병고침 받고 능력받고 체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병고침을 베풀어주신 주님을 증거 하는 일에와 그와 함께 사역하는 제자들을 섬기는 일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로 섬겼다.
얼마나 아름다운 女人입니까
얼마나 염치가 있는 女人입니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십자가의 산증인이 됩니다.
막15:39-40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로마군인들을 이끌고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책임자이다)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멀리서 바라보는 女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으니”라고 한다.
여기서 암시하는 바가 무엇이며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있던 이 女人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던 순간 막달라 마리아는 거기에 있었다.
주님이 돌아가시던 그 순간에 주님을 버리고 멀리 떠나갔던 다른 많은 남정네들의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여기에 우리 남성들을 무척이나 부끄럽게 만드는 사건이 있다.
예수님의 12제자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주님이 죽으시던 그 장소에 남아서, 주께서 숨을 거두시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한편 남자 제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요6장에 보면 예수께서 디베랴바다 건너편 언덕에 오르시어 말씀을 전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 5천명이 실컷 먹고도 12광주리를 거두는 능력을 나타내셨다.
그때 모든 사람들과 제자들이 야심을 가지고 주님을 더 많이 따랐다.
그리고 이 기적이 있은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그때 주님은 요6:15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고 하셨다.
이 때문에 주님에 대하여 실망한 제자들이 많았다. (출세길이 자기맘 같지 않음을 알고)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 했다.
이것이 그때 남자 제자들이 행했던 부끄러운 태도였다.
그래서 주님은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라고 하셨다.
기대를 가지고 사랑하고, 축복하고 양육했던 제자들은 하나둘 떠나가더니,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마저도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간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한없이 고독하시고 아프셨을 것이다.
사랑했던 제자들, 기대했던 제자들은 아무도 거기에 함께 있지 않았다.
적어도 12제자에 관해서는 그러했다.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 女人들이 있었다.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녀는 거기서 주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고통하시며, 고독한 아픔의 절규 소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음성을 들었다.
사람들의 비웃는 모습도 보았다.
거기서 “내가 목마르다”하는 그 음성도 들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왔다.
주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왔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산증인이 되었다.
거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15:47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고 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곳까지, 하관식이 이루어진 곳까지 와서 주님의 마지막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3.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된다.
요20: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운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라고 했다.
이 여종은 어디까지 좇아갔습니까
은혜입고 자기의 모든 것으로 섬기며 → 십자가까지 따르며 → 무덤에 까지 가며 → 부활의 주님을 만나며 → 그를 증거 하는데 까지 完成 시켜가고 있다.
빈 무덤을 다시 찾아왔다.
안식 후 첫날 주일(오늘)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빈 무덤에 다시 찾아왔다.
그녀는 아마도 무덤에 예수님이 안치된 그 다음 날(토요일) 온종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날 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을지 모른다.
은혜를 입었던 주님, 신뢰했던 주님, 삶의 변화를 주셨던 주님, 자신의 인생에 참 자유와 의미를 주셨던 주님,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Vision을 주셨던 주님, 이 주님이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 한밤을 뜬 눈으로 지새웠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아침 캄캄한 어두움이 물러가자 주님이 묻혀 있는 그 무덤을 다시 찾아옵니다.
은혜를 입었던 주님을 향한 끈질긴 애정을 보십시오.
다시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가 손에 가지고 온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향품을 가지고 왔다.
막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 고 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 살로메, 이 세 女人은 그때 벌써 3×3기도팀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삼총사처럼 언제나 팀을 이루어서 사역하며, 주님을 섬기며 또 서로를 섬기며 위로하고 기도하고 축복하며 격려했던 것이다.
비싼 값을 주고 사두었던 향유를 예수님의 시신에 한번더 부어 드리려고 무덤에 또 찾아간다.
요20:2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찾아온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하니” 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가신 빈 무덤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이 사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증거 했던 최초의 女人이 또한 막달라 마리아이다.
이 두 제자는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빈 무덤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또 요20:13에 보면 이 마리아의 다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 빈 무덤가에서 주저앉아 향유를 옆에 두고 사라진 예수님의 모습에 대하여 하염없이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을 연상해 보십시오.
이분의 가슴속에서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고, 꺾어버릴 수 없는 주님을 향한 애정을 가지고, 섬기고 따르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그의 곁에 찾아와 “어찌하여 우느냐”고 위로해 주신다.
요20:15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시신일망정 주님 모시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마리아의 사랑과 애정과 신앙이 주님을 향한 여러분의 것으로 이 시간 되살아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라고 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요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I have seen the Lord)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누구에게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주를 보았다!”(I have seen the Lord)
“내가 다시 사신 주님을 보았습니다!”(I have seen the resurrection of Lord)
“주님은 다시 사셨습니다!”고 외치고 전했다.
(Raised from the dead of Jesus)
이 소식을 전할 때마다 가슴이 터지도록 기뻤으며 영광스러웠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절을 맞아 이 시대와 지금의 환경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자로! 증인으로!
가슴이 시리고 터지도록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는 성령의 능력이 소멸되지 않기를 살아계신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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