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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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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바티칸 궁정에는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cta)라는 조각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성모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이탈리아의 어떤 정신병자가 그 조각을 파손시켰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경비를 들여서 보수하였고 지금은 유리상자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조각품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이틀 전까지 조각했다는 걸작품입니다.
이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데,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그 앞에 꿇어 앉아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작품의 모습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일생이 끝났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슬픔의 종교요 무덤으로 끝나야만 하는 종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 구원의 종교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부활에 대한 기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부활의 진리를 기독교의 중심되는 내용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람세이(A. M. Ramsay) 교수는 말하기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 (Thomas Anold)가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있는 사실을 인류 역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Girbert West)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도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 밖에 없네"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입니다.
부활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던 무신론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부활을 부정하는 세력은 다 망했으나 부활의 진리를 증거하는 교회는 언제나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증거를 성경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천사들의 증거
부활에 대한 증거는 ‘천사의 나타남’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는 한결같이 이 천사의 나타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28:2~7, 막 16:5~7, 눅 24:4~7, 요 20:12~13). 복음서 중 한두 개에 공통으로 나온 내용은 많지만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데 사복음서가 모두 예수님의 부활 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부활했음을 직접 증거한 사실을 기록한 것을 볼 때 이 천사의 나타남과 증언은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 당시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도 여호와 하나님은 교회의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마28:5-7)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2.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 차례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에게 미리 말씀하셨고(마12:38-40, 마16:21, 마17:9, 23, 막8:31, 눅9:22, 요2:19-21),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흘 후에 살아나리라 한 말을 기억하고 무덤을 지키기 위해 수직병을 세웠습니다. (마27:63-66) 무덤을 철저히 지키라는 엄격한 명령을 받은 수직병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군인들 중의 일부였으니 그들은 불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큰돌로 단단히 막고 인봉까지 한 무덤이 갈라지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제일 먼저 목격하고 이 사실을 제사장들에게 알렸습니다.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마28:11)
3. 원수들의 의논과 거래
파수꾼들의 증언에 제사장들은 수직병들에게 돈을 주며 군인들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는 수직병들의 증거가 너무도 명백하여 어찌할 수 없게되자 제사장들이 간교한 최후 방법을 쓴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 예수가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부활하였다고 주장할 때 당시의 권세 가진 제사장, 서기관, 바리세인들이 로마제국 병정을 시켜 예수의 시체를 찾아 보임으로서 제자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체가 없음으로 단지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시체를 훔쳐 갔다고 주장토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28:12-15)
4. 빈 무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바로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무덤이 부활절 아침에 비어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 시체가 뉘어있어야 할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별도로 다른 곳에 곱게 개어져 있었습니다(요 20:5~7). 누가 이 세마포와 수건을 이렇게 개두었을까요
또한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엄청나게 무거운 돌문이 굴려져 열려 있었습니다(막 16:4). 누가 이 무거운 돌문을 옮겨 놓았을까요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나 직접 세마포와 수건을 갰다든지, 때마침 지진이 나서 무거운 돌문이 열렸느니 하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면서 세마포와 수건을 개고 돌문을 열었다거나 무덤이 뒤바뀐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지진이 났지만 주의 천사가 직접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냈다고 증거합니다(마 28:2). 세마포와 수건은 누가 개놓았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면서 직접 하셨을까요 아니면 천사들이 뒷정리를 한 것일까요 성경은 누가 한 것인지 분명히 기록하지 않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옮겨진 돌문과 남겨진 세마포, 수건이 바로 빈 무덤과 더불어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증거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스탠리 존스 목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 종교사상 그 종교의 창시자가 죽었다가 부활한 예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복음도 구원도 다 헛된 거짓이 되고 맙니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었습니다. 석가모니의 이 유명한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부복한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작이 나고 말 것이다. " 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그들처럼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요 산 자를 믿는 종교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예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을 찾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나"라고 하는 천사들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볼 것이요, 책 한 권 쓰시지 않으셨고, 번듯한 집 한 채 없어 머리 둘 곳도 없으시면서도 세상의 부의 주인이 되시며, 군사 한 명 없으셨으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1-9)
5. 사도들의 증거
주님은 야고보와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40일 후 감람산 베다니 근처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축복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0절로 51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았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들 옆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이 왜 하늘을 처다 보느냐 하늘로 들리운 이 예수님 네가 본대로 오시리라”고 말한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순교할 때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주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끌려 나가서 돌로 얻어맞고 죽을 때 예수님을 보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로 56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죽기전에 하늘문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서서 스데반의 영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교회를 열렬히 대적하던 사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났습니다. 사울은 열렬한 바리새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열렬히 핍박을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지휘를 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이웃나라 수리아의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와서 투옥하고 죽이려고 살기등등하여 가는데 다메섹이 눈 앞에 보이는 그 근처에 왔을 때 대낮에 갑자기 하늘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거꾸러졌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놀라운 체험을 하고 그는 열렬한 그리스도의 대적자에서 변화되어 뜨거운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변화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절로 5절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4:33)
6.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
부활에 대한 증거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500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셨기에 ‘직접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야고보, 사도들을 포함해 500명도 더 넘는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들이 그 거짓말을 위하여, 있지도 않았던 부활신앙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 순교하면서까지 십자가와 부활을 전한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500명의 제자들을 불러 놓아 놓으시고 예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고친 사람도 오라고 하셨을 것이고 중풍병자로서 나은 사람도 오라고 하셨을 것이고 장님에서 나은 사람도 오라고 하셨을 것이고 혈루병으로 나은 여자도 오라고 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그 많은 사람들 500여 명이 예수님 앞에 모여 섰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선생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본 500여 명 중에 태반이나 살아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 두사람이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500명이 동시에 보았으니 500명이 동시에 다 최면술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고전14: 4-6)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
7. 부활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겁쟁이요 십자가 처형 후 두려워 각기 제 갈 길로 도망한 제자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같은 제자들이 부활 후 용감한 순교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요 바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 부활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확신이 그들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8.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입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모든 증거는 다 남의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부활하셔서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이 직접 증거하고 계시니 이 증거 외에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반대로 부활이 분명히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부활은 분명히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을 믿고 또한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가장 행복한 절기입니다. 부활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일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절기입니다.
다 한 번 외쳐봅시다. “예수 부활하셨다!” 믿으십니까 아무쪼록 분명한 부활신앙 속에서 여러분도 예수님을 통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바라며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정말 별 볼일 없고 믿음도 없던 제자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무기력한 제자들이 부활신앙을 통해 변화되어 생명을 주님 위해 바친 것처럼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 부활절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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