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
본문
지난 4월 4일에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만든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7천여년전 국내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옛 식물 뿌리에 새싹이 돋아나 연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발굴기관인 예맥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월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신석기 주거유적 부근의 도로예정터 습지 유적에서 발굴한 수생 식물 뿌리에 최근 2~3㎝ 가량의 푸른 싹 2개가 돋아난 것을 확인했다고 4일 밝혔습니다. 이 식물 뿌리는 현재 농촌진흥청에 맡겨져 싹을 배양중이라고 합니다. 국내 선사 유적에서 나온 식물 유체가 싹을 틔운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식물 뿌리는 지름 2㎝ 안팎의 둥근 알뿌리 3개가 줄기로 이어져 엉겅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종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출토된 곳은 지하 4m 아래의 모래 섞인 펄층으로 같이 나온 융기문 토기 조각 등으로 미뤄 신석기 시대 초기인 기원전 5천년께의 지층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구원 쪽은 “영양분 없는 증류수에 보관했으나, 뿌리 속 영양분이 공기와 만나면서 생장이 재개된 것으로 판단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쨌든 식물이 수천 년 동안 땅속 깊은 곳에 지내다가 다시 공기와 빛과 접촉을 하면서 싹이 돋았다는 것은 그 안에 배아, 즉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각 교회에서는 계란을 많이 나눠줍니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되어 나오는 모습은 마치 부활과도 같은 것을 쉽게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요, 그것은 또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을 생각됩니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나눠주는 계란이 무정란입니다. 그래서 유정란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무정란은 아무리 암탉이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숫컷의 교배가 없이 낳은 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소 비싸더라도 유정란을 사용하자는 제안입니다. 암컷과 숫컷이 교배해서 낳은 알이라야 병아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부활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가지만 부활은 어떻게 해야 가능 합니까
역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부활의 영이 내안에 거하시면 나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초대교회에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던 바울도 그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8장 11절 말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의 죽을 몸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없으면 내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건장한 체력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더라도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식물의 뿌리가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인지, 계란이 병아리를 부화할 수 있는지는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싹을 틔울 조건과 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서 시도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 앞에 서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 부활을 시키시는 생명의 영이 거하시는지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은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부활절을 맞아서 말씀의 제목을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으로 정했습니다. 부활을 위한 부활 신앙은 어떤 신앙인지를 오늘 주신 말씀 6장 전체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신앙은 반드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예수님과 연합된 존재”임이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6장에 보면 ‘합하여’ ‘함께’ ‘연합한 자’ 라는 단어가 아홉 번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선은 이 땅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핍박과 고통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과 거의 같은 대접을 할 것입니다. 적어도 여러분들이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어떤 환란과 핍박속에서도 그것을 기꺼이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탁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셨다면 부활신앙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면 부활의 영이 당신속에 거한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절에 보면 “만약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성도는 주님의 죽음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과 함께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다고 했습니다. 함께 죽는 것이 없으면 함께 사는 일도 없습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십자가에 죽는 삶이 주어질 때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힘들어 지치고 넘어지더라도 그 십자가를 놓고 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함께 죽어야 합니다. 여기서 함께 죽었다는 것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죄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함을 뜻합니다.
6-7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적어도 부활을 위하여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옛 사람은 벗어던져야 합니다.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믿기 전의 잘못된 삶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4장 3절 이하에 보면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4장 17절 이하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면서 22절이하에 보면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썩어져 가는 구습이란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거짓, 분냄, 도둑질, 더러운 말 등입니다. 골로새서3장5절 이하의 말씀에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이것들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노와 악의와 비방하는 것과 더러운 입술, 거짓말 등이 옛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장28절 이하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 비방하는 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런 사람들, 즉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사형에 해당하며,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화가 미친다고 하셨습니다.
적어도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먼저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벗어지지 않았다면 그 안에 생명의 영이 거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6장7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부활과 동시에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영,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시지 않고는 옛 사람을 벗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왕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안에 거하셔야 죄가 왕노릇 못하게 됩니다.
적어도 성령의 임재로 은혜아래 있으면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로마서6장14절에 보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하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쉽게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다짐해보지만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죄의 속성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술 담배를 끊는 것도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도박하는 사람도 자기 안에 다른 세력이 있음을 느낍니다. 왠지 자신의 기본적인 마음은 안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발은 이미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왜 안될까요 죄에도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주하시면, 부활의 영이 함께 하시면 어떤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치면 승리합니다. 예수 믿으면 술맛이 변합니다. 죄를 가지고 노는 것은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사람은 마귀에게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을 할 수 있는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은 이제 죄의 병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병기로 바뀌게 됩니다. 12-14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신속에 어떤 영이 자리잡고 있는 지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의의 병기 아니면 죄의 병기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체를 의의 무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죄의 병기로 사용한다면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자연적으로 악의 영이 지배하고 악의 영이 지배하면 결국 죄를 쉽게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 은혜의 법 아래 있으면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래서 갈라디아서5장16절에 보면 “너희는 성령의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적어도 우리가 부활을 믿고 부활신앙을 가졌다고 고백을 한다면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6장22절에 보면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여호와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마지막은 영생이라” 영생은 열매로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죄에 묶여 있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아직도 내 안에 성령이 온전히 거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 안에 부활의 영,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삶이 되십시오. 지금 여러분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줄 믿습니다. 적어도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당신의 몸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십시오. 술잔을 들던 손에서 이제는 성경을 던 손으로 변화 받으십시오. 음란 방탕으로 질주하던 발에서 이제는 잃은 양을 찾아 심방하는 발걸음으로 바꾸십시오.
유행가를 부르고 욕설을 일삼던 입술에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증거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세우며 생명을 살리는 입이 되십시오. 가슴이 냉냉하였다면 이제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십시오. 당신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다가가십시오. 왜냐하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면 나는 기뻐요, 감사해요. 너무 좋아요.
“이제는 정죄없네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이제는 정죄 없네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없네 /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맘에 /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맘에”
“이제는 해방됐네 예수안에서 예수안에서 예수안에서 이제는 해방됐네 예수안에서 예수안에서 해방 /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
의학자들은 “아이 5명 이상 기르는 주부에게는 정신병에 걸리는 환자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양육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아플 신간이 없어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가 정신병에 걸립니까 한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육이 강건해지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에 정신없이 바쁘면 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자신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함을 느끼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 안에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셔서 어떤 악의 세력도 물리치시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새사람, 즉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삶으로 나아갑시다. 마지막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주님과 함께 부활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믿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식물 뿌리는 지름 2㎝ 안팎의 둥근 알뿌리 3개가 줄기로 이어져 엉겅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종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출토된 곳은 지하 4m 아래의 모래 섞인 펄층으로 같이 나온 융기문 토기 조각 등으로 미뤄 신석기 시대 초기인 기원전 5천년께의 지층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구원 쪽은 “영양분 없는 증류수에 보관했으나, 뿌리 속 영양분이 공기와 만나면서 생장이 재개된 것으로 판단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쨌든 식물이 수천 년 동안 땅속 깊은 곳에 지내다가 다시 공기와 빛과 접촉을 하면서 싹이 돋았다는 것은 그 안에 배아, 즉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되면 각 교회에서는 계란을 많이 나눠줍니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되어 나오는 모습은 마치 부활과도 같은 것을 쉽게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요, 그것은 또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을 생각됩니다. 최근에는 교회에서 나눠주는 계란이 무정란입니다. 그래서 유정란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무정란은 아무리 암탉이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숫컷의 교배가 없이 낳은 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소 비싸더라도 유정란을 사용하자는 제안입니다. 암컷과 숫컷이 교배해서 낳은 알이라야 병아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부활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가지만 부활은 어떻게 해야 가능 합니까
역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부활의 영이 내안에 거하시면 나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초대교회에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던 바울도 그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 8장 11절 말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의 죽을 몸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없으면 내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건장한 체력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더라도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식물의 뿌리가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인지, 계란이 병아리를 부화할 수 있는지는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싹을 틔울 조건과 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서 시도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을 가진 성도들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겉으로 보아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 언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 앞에 서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 부활을 시키시는 생명의 영이 거하시는지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은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부활절을 맞아서 말씀의 제목을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으로 정했습니다. 부활을 위한 부활 신앙은 어떤 신앙인지를 오늘 주신 말씀 6장 전체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신앙은 반드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예수님과 연합된 존재”임이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6장에 보면 ‘합하여’ ‘함께’ ‘연합한 자’ 라는 단어가 아홉 번 등장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선은 이 땅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핍박과 고통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과 거의 같은 대접을 할 것입니다. 적어도 여러분들이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어떤 환란과 핍박속에서도 그것을 기꺼이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탁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셨다면 부활신앙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살고 있다면 부활의 영이 당신속에 거한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절에 보면 “만약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성도는 주님의 죽음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과 함께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다고 했습니다. 함께 죽는 것이 없으면 함께 사는 일도 없습니다. 즉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십자가에 죽는 삶이 주어질 때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힘들어 지치고 넘어지더라도 그 십자가를 놓고 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함께 죽어야 합니다. 여기서 함께 죽었다는 것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죄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함을 뜻합니다.
6-7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적어도 부활을 위하여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옛 사람은 벗어던져야 합니다.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믿기 전의 잘못된 삶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4장 3절 이하에 보면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4장 17절 이하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면서 22절이하에 보면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썩어져 가는 구습이란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거짓, 분냄, 도둑질, 더러운 말 등입니다. 골로새서3장5절 이하의 말씀에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이것들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노와 악의와 비방하는 것과 더러운 입술, 거짓말 등이 옛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로마서1장28절 이하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 비방하는 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런 사람들, 즉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사형에 해당하며,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화가 미친다고 하셨습니다.
적어도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먼저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벗어지지 않았다면 그 안에 생명의 영이 거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6장7절 이하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부활과 동시에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영,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시지 않고는 옛 사람을 벗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왕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안에 거하셔야 죄가 왕노릇 못하게 됩니다.
적어도 성령의 임재로 은혜아래 있으면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로마서6장14절에 보면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하고 말씀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쉽게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다짐해보지만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죄의 속성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술 담배를 끊는 것도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도박하는 사람도 자기 안에 다른 세력이 있음을 느낍니다. 왠지 자신의 기본적인 마음은 안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발은 이미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왜 안될까요 죄에도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내주하시면, 부활의 영이 함께 하시면 어떤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외치면 승리합니다. 예수 믿으면 술맛이 변합니다. 죄를 가지고 노는 것은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집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사람은 마귀에게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을 할 수 있는 부활신앙을 가진 자들은 이제 죄의 병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병기로 바뀌게 됩니다. 12-14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라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신속에 어떤 영이 자리잡고 있는 지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의의 병기 아니면 죄의 병기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체를 의의 무기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죄의 병기로 사용한다면 내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자연적으로 악의 영이 지배하고 악의 영이 지배하면 결국 죄를 쉽게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 은혜의 법 아래 있으면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래서 갈라디아서5장16절에 보면 “너희는 성령의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적어도 우리가 부활을 믿고 부활신앙을 가졌다고 고백을 한다면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6장22절에 보면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여호와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마지막은 영생이라” 영생은 열매로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죄에 묶여 있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아직도 내 안에 성령이 온전히 거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 안에 부활의 영,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삶이 되십시오. 지금 여러분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줄 믿습니다. 적어도 부활신앙을 가졌다면 당신의 몸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십시오. 술잔을 들던 손에서 이제는 성경을 던 손으로 변화 받으십시오. 음란 방탕으로 질주하던 발에서 이제는 잃은 양을 찾아 심방하는 발걸음으로 바꾸십시오.
유행가를 부르고 욕설을 일삼던 입술에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증거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세우며 생명을 살리는 입이 되십시오. 가슴이 냉냉하였다면 이제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십시오. 당신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면 이제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다가가십시오. 왜냐하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면 나는 기뻐요, 감사해요. 너무 좋아요.
“이제는 정죄없네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이제는 정죄 없네 예수 안에서 예수 안에서 없네 /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맘에 /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맘에”
“이제는 해방됐네 예수안에서 예수안에서 예수안에서 이제는 해방됐네 예수안에서 예수안에서 해방 /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
의학자들은 “아이 5명 이상 기르는 주부에게는 정신병에 걸리는 환자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양육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너무 바빠서 아플 신간이 없어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가 정신병에 걸립니까 한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육이 강건해지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일에 정신없이 바쁘면 됩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자신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함을 느끼며 바쁘게 살아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 안에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셔서 어떤 악의 세력도 물리치시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새사람, 즉 부활을 위한 부활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삶으로 나아갑시다. 마지막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주님과 함께 부활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믿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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