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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신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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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성공의 비결은 어떤 자세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토즈라는 신학자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 가지 요소를 이렇게 말합니다. 첫 번째는 ‘재능’입니다. 각자가 가진 달란트입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재능이 없으면 그 일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자에게 각기 다른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을 살려 일할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윤형주 장로를 아시지요. 이분이 본래는 의사였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분인데 자시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노래하는 재능을 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의사의 일을 던져버린 것입니다. 자신도 즐겁고 남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지식입니다. 재능이 있더라도 공부해야 합니다. 머리는 좋지만 배운 것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겸비할 때 재능의 가치가 발휘됩니다. 아무리 좋은 원목이 있어도 그것을 가공하지 않으면 쓸모없습니다.
세 번째, 자세입니다. 어떤 자세를 지니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능과 지식이 결정하는 것은 겨우 7%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자세가 결정하는 것이 무려 93%나 된다고 합니다. 결국 일의 성공 여부는 자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영국의 와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36세때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이집트의 거부였던 도디 파예드와 함께 벤츠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지하차도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벤츠 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길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차를 몰고 가던 운전기사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운전기사의 운전기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운전기사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랍 부호의 벤츠승용차의 운전수라면 베테랑 운전수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날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지점은 평범한 지하도였고, 운전이 어려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음주운전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의 성패는 자세가 결정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는 아주 소중합니다. 환경과 여건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내가 어떤 자세를 지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을 탓할 때가 많습니다. 환경이 어려워 공부를 하지 못해서 출세를 못했다고 합니다. 부모를 잘 못 만나서 삶이 어려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닙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을 부각시키어 자신의 삶을 합리하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약점이 얼마나 많으냐, 얼마나 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약점을 선용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약점은 연약함을 의미합니다. 약점은 부족한 점을 의미합니다. 약점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수치스런 면을 의미합니다.
약점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았을 때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약점이 성공에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점이 좋은 만남의 기회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약점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약점은 우리 존재의 한 부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약점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약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약점을 선용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약점을 선용하는 지혜란 약점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약점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안목으로 약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약점을 보는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약점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약점을 성공의 재료로 삼는 것입니다. 약점을 복의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약점을 가진 자의 자세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약점도 관점을 바꾸면 새롭게 태어납니다. 삭개오의 약점은 키가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약점 때문에 뽕나무에 올라갔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키가 작은 그의 약점이 구원의 복이 된 것입니다. 그의 약점 속에 보화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약점이 문제가 아니라 약점을 선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앨버트 허바드는 “실패자는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약점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약점 위에 복을 듬뿍 부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내 생각과 내 방법은 너희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이사야55:9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강점만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고전1:27-28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여호와 하나님은 불완전하고 평범한 사람들, 약점이 많은 사람들을 엄청난 일에 사용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던 것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여호와 하나님이 완벽한 사람을 사용하셨더라면 아무 것도 이루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약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보면 약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약점은 여전히 많습니다. 신체의 약점만 약점이 아닙니다. 정신적 약점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약점인 경우도 있습니다. 비극적인 상처나 나쁜 기억이나 인격적인 결함 유전적인 성격과 같은 감정적인 약점도 많습니다. 재능이나 지적인 면에서도 한계상황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명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점만 살피다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 절대로 쓰임 받을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은 보통의 그릇에 당신의 위대한 능력을 담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4:7-9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도자기처럼 약하게 만드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약하여 무너지고 싸여서 잡아먹힐 것 같지만, 핍박을 받아 넘어지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 낙심할 것 같이 연약하지만 결단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능력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예수님을 다시살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봅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잘한 것이지만 오늘 말씀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힘도 없이 박히셨습니다. 아무런 대항도 해보지 못한 채 박히셨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의 약함이 없었다면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약점이 많이 발견되면 될수록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병은 자랑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약점을 인정하고 오히려 드러내십시오. 모두 갖추고 있는 듯하게 감추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시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 드러내십시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자신의 상처와 약점을 꺼내어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관계야 말로 아름다운 벗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은 혹시라도 당신이 약점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고 덮어주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다 알고 게시면서도 우리의 약점을 들추어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잘 선용하여 강점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세상 사람들, 사단은 항상 우리의 약점을 들추어내어서 흠을 잡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요즘 우리 정치사회를 보면 약점을 폭로하는 것을 무슨 보물이나 발견했듯이 이야기 합니다.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고 하면서 고작 발표한 내용을 보면 남의 허물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들추어 내어서 남을 넘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분 남을 넘어지게 만들어놓고 1등을 하면 1등의 가치가 있습니까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서 승리해야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바울의 경우를 보면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기뻐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12: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우리가 약함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점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철저하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약함을 기뻐한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약할 때 강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점을 갖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보다 앞서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경우를 보면 육체에 아픔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은 아무 냉정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네게 족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의 약함을 이용하시어 당신을 밝히 드러내시고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족속들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모집했을 때 처음 모인 사람이 3만2천명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수가 많다고 하려 가려내라고 했습니다. 1만 명을 가려내었습니다. 그것도 많다고 하시면서 다시 가려내니까 30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군은 13만5천명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후에 싸우게 하시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미디안 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이 이스라엘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강점은 독립적인 정신을 만들어 내지만, 우리의 약점은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약점을 잘 엮으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십니까 밴스 하브너는 우스운 진리를 말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눈송이 같아서 각각은 약하지만 뭉치면 교통도 마비시킬 수 있다”자신이 스스로 약점이 많고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압니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잘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실수를 쉽게 용납할 줄 압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가 약점 투성이었습니다. 모세의 약점은 성질이었습니다. 이집트사람을 살해했습니다. 말로 명령해야 할 것을 지팡이로 쳤습니다. 십계명이 쓰여 진 돌판을 깨트렸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추켜세우십니다.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민12:3)이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약하여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두 번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를 동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충동적이고 의지가 약한 베드로를 반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천둥의 아들이라 불리던 요한을 사랑의 사도가 되도록 했습니다.
세상에도 많이 있습니다. 선천성 뇌성마비 송명희 자매가 뇌성마비의 약함이 없었더라면 영혼의 시를 어떻게 쓸 수가 있었겠습니까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조진호군이 만약에 자폐의 약점이 없었다면 수영선수가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약점이 역시 오늘의 진호로 만들었고 자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건강한 자들에게도 소망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위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진호의 이야기를 엄마가 진호야 사랑해라는 책으로 엮어내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첫장의 주제를 “세상에 가장 약한 것들을 택하사”입니다. 이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인용한 말씀이 고린도후서1:27-2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이는 아무 육체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럼으로 우리도 우리의 약점을 솔직하게 틀어놓음이 필요합니다. 진호의 어머니가 진호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위대한 인물로 탄생된 것입니다. 송명희 자매가 그동안 숨겨진 삶으로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 가장 위대한 삶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바울을 꼽을 것입니다. 위대한 바울이라고 약점이 없습니까 인생의 약점과 신앙의 약점 등 많았습니다.
로마서7:19에 고백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바울에게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용기 있는 신앙으로서 절대불굴의 사나이로 여겨지지만 때로는 그에게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2:3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할 정도로 넘어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은수라는 어머니가 다섯 살밖에 안된 아들이 스케이트장에서 일어난 일을 적어놓은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어어어어... " (콰당!) "은수야, 괜찮니" "헤헤헤"
"은수야, 아프지 않아" "안 아파요, 엄마. 난 괜찮아요. "
"자, 몸을 약간 숙이고 한 발씩 앞으로... 어, 어어... " (또 콰당!)
"헤헤헤. 재밌다. 엄마, 나 지금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에요. 내 걱정 하지 말고 저쪽에 가서 타세요. "
"알았어. 엄마랑 다시 해 보자. "
두 시간을 그렇게 넘어지고 기어가며 씨름을 하더니 결국 아들은 실내스케이트장 한 바퀴를 기어이 돌았습니다. 빌린 스케이트 중 가장 작은 사이즈를 신고서 벽을 붙잡고 제일 큰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은수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안타까움보다는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운 웃음이 자꾸 지어졌다고 합니다. 엄마는 은수가 그렇게 넘어지면서도 배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계속된 엉덩방아도 은수의 배우는 즐거움을, 잘 탈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다섯 살 박이 은수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희망을 떠올려 보았다고 합니다. 열 번을 넘어져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쓰임 받는 순간임을 알면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날 안아 일으키실 주님 앞에서 은수처럼 "난 괜찮아요. 주님"하고 대견하게 웃어 보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 곁에 주님이 계신다면 잠시 넘어지는 아픔은 오히려 견고히 서기 위한 연습이 아닐까요. 여호와 하나님도 나의 넘어짐을 보시고도 그냥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그보다 우리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나 괜찮아요. 이러면서 내가 인생을 배웁니다. 성공하는 방법도 배웁니다’라고 하면서 그뜬히 설 수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예수 믿으세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세요. 일곱 번, 아니 일흔 번을 넘어져도 웃으며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넘어짐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약점이 여러분을 주저앉게 만들고, 여러분의 실패함이 여러분의 인생을 실패하게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국 존 슈나이더 교수가 있었습니다. 훌륭한 교수로 연봉도 많고 연구실적을 남보다 못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재임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되겠지 라고 했으나 임용이 되지 않고 다른 대학에도 이력서를 넣었는데 안되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2년동안 무려 101곳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결국 교수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이 다 떨어져서 이제는 아내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노동자로 일하러 갈 것이니 정부의 보조금을 타서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페인트 공으로, 골프장 인부로, 다른 건축현장으로 다니다가 자기 적성에 페인트공이 맞는 것같아서 그 일을 하였습니다. 이을 하다 보니 교수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삶의 애환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글로 적어서 책으로 냈는데 책 이름이 “절벽산책”입니다. 이 책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92년에 미국에서는 대량실직사태가 있었는데 실직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으로 판매되면서 인세를 받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회사에 강연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슈나이더 교수가 자신의 자존심만 앞세우고 있었더라면 그런 유명한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인정하고 나아갔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넘어진 자들을 향하여, 자신은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낙심하는 자들을 향하여,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당신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의 약점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이 모든 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은 부활의 신앙밖에 없습니다. 약하여 넘어진 것같이 느껴지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셨습니다.
당신의 약점도 넘어짐도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사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장점은 경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우리의 약점은 공동체를 만들어 줍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회에 보면 약자들이 잘 뭉칩니다. 약소국가들이 잘 뭉칩니다. 근로자들이 잘 뭉칩니다.
오늘은 특별히 장애인주일입니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할 때 물론 불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파멸을 가져오는 장애는 아닙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장애는 아닙니다. 오히려 장애가 강점으로 만들어져서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영적 장애 등 장애로 말하면 우리 모두는 장애인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이런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시고 그것을 장점으로 바꾸어 인생을 바꾸어갈 수 있는 능력은 부활신앙에서 비롯됩니다.
혹시 힘겹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 처해 있습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지금 보내고 있는 고통의 시간이 성공을 향한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을 의심치 마십시오. 매순간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오른손을 잡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우리를 부활시키실 부활의 신앙을 믿는 성도 여러분, 어떤 약점이 있더라도, 어떤 연약함이 있더라도 부활의 신앙으로 당신의 약점이 성공의 장점으로 바꾸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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