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신앙의 성도(聖徒)
본문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해마다 다가오는 부활절에 부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일 년 한 번씩 부활절 감사예배를 드리지만 실제적으로는 부활 속에 살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일념에 한번이 아니라 날마다 아니 시간마다 해도 너무한 감이 없는 부활절입니다.
바울이 한 말을 보면
(고전15:13-19)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부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활 신앙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 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부활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으며 목격한 사 람들이 `우리가 그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류역사상 예수님 부활사건처럼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일이 없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와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인 부활 능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볼 때 예수의 부활능력 안에서 보므로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며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결코 초조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높은 망대위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큰 유혹도 `별것 아니다`며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의 생명도 그를 따라 부활하게 되는 사실이 믿는 자의 소망이며, 신앙의 뿌리입니다
부활의 사건을 믿을 수 없는 사건
주님이 죽은 후에 아리마대 요셉을 통하여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는 10~20명 되는 장정들이 매달려야 겨우 굴릴 수 있는 큰 돌로 동굴 무덤 아귀를 막았습니다.
예수님을 장례 한 사람들은 무덤을 막은 돌을 굴리고 다시 살 아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례와 함께 예수님의 시대는 끝났고 종말을 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되던 날 아침,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살리셨습니다. 새벽에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천사들을 통해 이 사실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제자들이 무덤으로 급히 와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시체는 온데간데없고 비어있는 무덤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수위와 두건만이 고스란히 누웠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 부활하신 주께서 자신을 핍박하는 사울이라는 청년을 다메섹에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20여 년이 지난 후 베드로에게 야고보에게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등, 전부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한 번에 500 여명이 될 때도 있었는데, 아직 그들 가운데서 반이나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안 믿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쓴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이야기가 제각기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의 이름을 보면 사복음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시간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떤 곳은 새벽 일찍이 갔다고 하고, 어떤 곳은 해가 돋아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만났다는 천사의 숫자도 틀립니다.
어떤 기록에는 천사 한 명을 만났다고 하고, 어떤 기록에는 두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천사가 있던 위치도 다릅니다. 어떤 기록은 천사가 무덤 안에 있었다고 하고, 어떤 기록에는 천사가 굴러낸 돌 위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도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을 날조하려고 조작했다면 이렇게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날조하여 만들었다면 완벽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 있음으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은 보고 들은 대로 적어 놓았습니다. 하나도 꾸밈없이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렇듯 서로의 말들은 좀 틀려도 확실한 결론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처형당한 예루살렘 현장에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이 말을 겁 없이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직도 형장에는 핏자국이 낭자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고 소리치던 폭도들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빌라도와 대제사장이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무덤가에는 병정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살아 나셨다는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만약 누구인지 발각되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제자들은 두려운 나머지 방안에 틀어 앉아 자기들도 잘못하면 예수님처럼 끌려가지 않을까 하여 밥도 제대로 못 먹는 판국입니다. 생명 걸고 담대하게 부활을 전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진실이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이 그런 소문을 듣고도 대 제사장 이하 모든 관원들이 조용했다는 것은 변명을 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은 날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교회가 세월과 함께 만들어낸 신앙이 아닙니다.
C. H. 도드(dodd)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깊이 연구하면서 유명한 말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부활신앙은 교회 안에서 막연히 생긴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환상 중에 보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부활신앙은 교회를 존재케 만든 믿음이다. "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 신앙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교회에는 이 지상에 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부활을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⑴ 그리스도의 죽음을 승리로 보아야 한다.
⑵ 그리스도의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⑶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 가운데 부활사건을 믿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은 인간능력 밖의 일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종교입니다. 부활 신앙이 육신의 쾌락과 향락문화에 점점 퇴색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는 부활 신앙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이 부활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는 부활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2-3)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여 여러 차례 여러 제자들에게와 500여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고(이사야 7:14),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 받고 죽으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 5)"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1절)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부활에 대해 예언된 것을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편 16: 10- 11)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 살리라"(호세아 6:2)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만에 살아나온 기적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표였습니다(마태복음 12: 38). 이와 같은 성경의 예언과 예표대로 과연 주님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비한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변호사였던 Gilbert West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부인하기 위해 논문을 쓰기로 하고 Lord Lyttleton은 바울의 회개 사건이 거짓이라고 증거하려는 논문을 쓰기 위해 성경을 깊이 연구하던 중 두 사람이 다같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도리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성경대로 부활신앙을 가지고 예수부활의 증인들이 됩시다.
인간이 생각할 때 마지막으로 생각하였던 모든 것들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는 메시지가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인간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이 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부활의 신앙을 요구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이제는 끝장이야 마지막이야 모든 것이 이제는 그만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여 일어설 수 없는 가운데서도 신앙을 통하여 재기하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주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면 부활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 인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이 필요로 하는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어야만 죄에서 구원받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선진들이 연구도하고 실험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악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하루 하루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양잿물로도 닦아도 되지 않고, 고행으로도 되지 않고, 보상심리를 가지고 많은 돈으로 구제와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쇠되지 않음이 인간의 죄악입니다. 죄는 오염되고 확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악은 고난을 가져오고 불행으로 인도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외쳐 부르짖어도 고함을 쳐도 여기에 응답하는 자가 없습니다. 여기에 응답할 수있는 분이 바로 한분이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였고 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11:25-2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브라함의 경우
일찍이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의 몸이 말라 생식능력이 죽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이삭을 생산하였으며(롬 4:18-22), 그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릴 때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줄 믿었기에 순종 했고 그것을 의로 인정받았습니다(창 22장, 히 11: 17- 19).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어 죄의 용서와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롬4:2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함을 위하여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뺀다면 타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생명력과 소망이 있는 것은 예수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처럼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3 세상이 요구하는 부활신앙입니다.
성경을 바라보면 세상의 주관자는 어둠의 아들 사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의하여 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밖에 살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우리 인간의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단의 미끼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단의 수하로 소속하게 하는 원인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을 원하여 얻은 것 같지만 여전히 불행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어찌 얻었는데 행복해야할 터인데 여전히 갈증을 느끼면서 부족을 느끼며 불행 속에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는 사단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단을 벗어나기 이전에는 항상 불행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에덴동산에 침투했던 마귀사단은 인간들이 범죄하게 만들어 죄의 족쇄를 채워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영원히 무거운 바위를 들고 언덕을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프스 왕처럼 인생은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같은 모양으로 오시어 친히 십자가 짐을 지시고 거기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결박했던 죄악의 족쇄를 풀고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을 주셨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5: 54- 5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가 불의를 이겼다는 승리의 개가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죄악을 정복했다는 이김의 증표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마귀 권세를 꺾어버린 승리의 기념비입니다.
4. 인간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세상으로 만족하지 않음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래 살고 오래 쓰고 오래 존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서 사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하루 쓰다가 버리는 물건들을 오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값비싼 물건들은 쓰고 수명이 깁니다. 인간의 수명도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만족을 주기 위해서 인간에게 영원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영원한 세계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된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6:5). 주님께서 장차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가올 미래의 한 날을 기대하십시오! 그 날은 영광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며, 모든 죽었던 육체가 부활하는 새 시대의 동이 트는 날이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과 상급을 얻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에 처해지는 날입니다(요한복음 5: 29).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15:58).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시록 2:10)
맺는 말
부활절을 맞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나의 신앙이 부활신앙인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끔 드라마에서도 아니면 가정에서 결혼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한다. 초장에 잡아야 한다. 처음서부터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잡힌다.
처음이다. 초장이다. 완벽하게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야 산다는 원리를 모른다. 두 내외가 똑같이 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갈라서야 한다. 죽어야 산다는 부활의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한 말을 보면
(고전15:13-19)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에 부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활 신앙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 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부활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으며 목격한 사 람들이 `우리가 그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류역사상 예수님 부활사건처럼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일이 없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와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인 부활 능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볼 때 예수의 부활능력 안에서 보므로 이 세상이 마지막이 아니며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결코 초조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높은 망대위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큰 유혹도 `별것 아니다`며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우리의 생명도 그를 따라 부활하게 되는 사실이 믿는 자의 소망이며, 신앙의 뿌리입니다
부활의 사건을 믿을 수 없는 사건
주님이 죽은 후에 아리마대 요셉을 통하여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는 10~20명 되는 장정들이 매달려야 겨우 굴릴 수 있는 큰 돌로 동굴 무덤 아귀를 막았습니다.
예수님을 장례 한 사람들은 무덤을 막은 돌을 굴리고 다시 살 아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례와 함께 예수님의 시대는 끝났고 종말을 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되던 날 아침,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성령으로 살리셨습니다. 새벽에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천사들을 통해 이 사실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제자들이 무덤으로 급히 와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시체는 온데간데없고 비어있는 무덤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수위와 두건만이 고스란히 누웠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나 부활하신 주께서 자신을 핍박하는 사울이라는 청년을 다메섹에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20여 년이 지난 후 베드로에게 야고보에게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등, 전부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한 번에 500 여명이 될 때도 있었는데, 아직 그들 가운데서 반이나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안 믿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쓴 복음서를 읽다 보면 이야기가 제각기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의 이름을 보면 사복음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시간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떤 곳은 새벽 일찍이 갔다고 하고, 어떤 곳은 해가 돋아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인들이 무덤에 가서 만났다는 천사의 숫자도 틀립니다.
어떤 기록에는 천사 한 명을 만났다고 하고, 어떤 기록에는 두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천사가 있던 위치도 다릅니다. 어떤 기록은 천사가 무덤 안에 있었다고 하고, 어떤 기록에는 천사가 굴러낸 돌 위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도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을 날조하려고 조작했다면 이렇게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날조하여 만들었다면 완벽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 있음으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은 보고 들은 대로 적어 놓았습니다. 하나도 꾸밈없이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렇듯 서로의 말들은 좀 틀려도 확실한 결론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처형당한 예루살렘 현장에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이 말을 겁 없이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직도 형장에는 핏자국이 낭자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고 소리치던 폭도들의 눈에는 광기가 서려있습니다. 빌라도와 대제사장이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의 무덤가에는 병정들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살아 나셨다는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만약 누구인지 발각되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제자들은 두려운 나머지 방안에 틀어 앉아 자기들도 잘못하면 예수님처럼 끌려가지 않을까 하여 밥도 제대로 못 먹는 판국입니다. 생명 걸고 담대하게 부활을 전하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진실이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이 그런 소문을 듣고도 대 제사장 이하 모든 관원들이 조용했다는 것은 변명을 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것은 날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교회가 세월과 함께 만들어낸 신앙이 아닙니다.
C. H. 도드(dodd)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깊이 연구하면서 유명한 말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부활신앙은 교회 안에서 막연히 생긴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환상 중에 보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부활신앙은 교회를 존재케 만든 믿음이다. "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부활 신앙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교회에는 이 지상에 등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부활을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⑴ 그리스도의 죽음을 승리로 보아야 한다.
⑵ 그리스도의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⑶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생으로 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많은 종교들 가운데 부활사건을 믿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은 인간능력 밖의 일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종교입니다. 부활 신앙이 육신의 쾌락과 향락문화에 점점 퇴색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는 부활 신앙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이 부활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이 요구하는 부활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2-3)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여 여러 차례 여러 제자들에게와 500여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고(이사야 7:14),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 받고 죽으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 5)"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11절)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부활에 대해 예언된 것을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편 16: 10- 11)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 살리라"(호세아 6:2)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만에 살아나온 기적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표였습니다(마태복음 12: 38). 이와 같은 성경의 예언과 예표대로 과연 주님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비한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변호사였던 Gilbert West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부인하기 위해 논문을 쓰기로 하고 Lord Lyttleton은 바울의 회개 사건이 거짓이라고 증거하려는 논문을 쓰기 위해 성경을 깊이 연구하던 중 두 사람이 다같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도리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성경대로 부활신앙을 가지고 예수부활의 증인들이 됩시다.
인간이 생각할 때 마지막으로 생각하였던 모든 것들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는 메시지가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인간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이 할 수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부활의 신앙을 요구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이제는 끝장이야 마지막이야 모든 것이 이제는 그만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여 일어설 수 없는 가운데서도 신앙을 통하여 재기하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주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면 부활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 인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인간이 필요로 하는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어야만 죄에서 구원받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선진들이 연구도하고 실험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악을 해결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하루 하루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양잿물로도 닦아도 되지 않고, 고행으로도 되지 않고, 보상심리를 가지고 많은 돈으로 구제와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쇠되지 않음이 인간의 죄악입니다. 죄는 오염되고 확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악은 고난을 가져오고 불행으로 인도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외쳐 부르짖어도 고함을 쳐도 여기에 응답하는 자가 없습니다. 여기에 응답할 수있는 분이 바로 한분이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였고 하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11:25-2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브라함의 경우
일찍이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의 몸이 말라 생식능력이 죽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이삭을 생산하였으며(롬 4:18-22), 그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릴 때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줄 믿었기에 순종 했고 그것을 의로 인정받았습니다(창 22장, 히 11: 17- 19).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어 죄의 용서와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롬4:2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함을 위하여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뺀다면 타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가 생명력과 소망이 있는 것은 예수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처럼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3 세상이 요구하는 부활신앙입니다.
성경을 바라보면 세상의 주관자는 어둠의 아들 사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의하여 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밖에 살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우리 인간의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단의 미끼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단의 수하로 소속하게 하는 원인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을 원하여 얻은 것 같지만 여전히 불행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어찌 얻었는데 행복해야할 터인데 여전히 갈증을 느끼면서 부족을 느끼며 불행 속에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는 사단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단을 벗어나기 이전에는 항상 불행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에덴동산에 침투했던 마귀사단은 인간들이 범죄하게 만들어 죄의 족쇄를 채워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영원히 무거운 바위를 들고 언덕을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프스 왕처럼 인생은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같은 모양으로 오시어 친히 십자가 짐을 지시고 거기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결박했던 죄악의 족쇄를 풀고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을 주셨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5: 54- 5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가 불의를 이겼다는 승리의 개가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죄악을 정복했다는 이김의 증표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마귀 권세를 꺾어버린 승리의 기념비입니다.
4. 인간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세상으로 만족하지 않음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래 살고 오래 쓰고 오래 존재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서 사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하루 쓰다가 버리는 물건들을 오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값비싼 물건들은 쓰고 수명이 깁니다. 인간의 수명도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만족을 주기 위해서 인간에게 영원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영원한 세계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된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6:5). 주님께서 장차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가올 미래의 한 날을 기대하십시오! 그 날은 영광의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며, 모든 죽었던 육체가 부활하는 새 시대의 동이 트는 날이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과 상급을 얻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에 처해지는 날입니다(요한복음 5: 29).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15:58).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시록 2:10)
맺는 말
부활절을 맞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나의 신앙이 부활신앙인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끔 드라마에서도 아니면 가정에서 결혼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한다. 초장에 잡아야 한다. 처음서부터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잡힌다.
처음이다. 초장이다. 완벽하게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죽어야 산다는 원리를 모른다. 두 내외가 똑같이 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갈라서야 한다. 죽어야 산다는 부활의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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