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절망의 밤에 다시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
본문
부활의 아침입니다. 우리 주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다같이 한번 외쳐볼까요 “우리 주님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 옆에 계신 분을 향해 “우리 주님 바로 당신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 할렐루야! 부활의 아침! 부활의 영광과 소망이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은 온통 꽃의 향연이지만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힘겹기만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고, 실직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로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통이나 불면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OECD 국가 중 한국이 여성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스런 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도덕성을 내세우며 가장 깨끗한 정부를 표방했던 참여정부의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 그 주변 사람들이 굴비 엮이듯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재임 중 비리나 뇌물에 관련되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공언했기에 오늘의 정치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찹찹하기만 합니다.
이런 마당에 북한 김정일 정권은 위성로켓을 발사하며 세계를 상대로 위험한 도발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수 조원을 들여 건설한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남북간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처럼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들마저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있습니다. 세상의 대안이 되고, 위로와 소망을 주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불신과 배척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어디를 보아도 희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왜 세상은 점점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우상숭배와 탐심과 불의에 빠져 온갖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바벨론 70년이라는 고통의 세월을 보냅니다.
오늘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이 모든 고통들의 이면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맛을 잃은 소금처럼 짓밟히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경제 위기를 불렀습니다. 돈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사고가 맘모니즘의 우상을 낳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쫓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셨지만 감사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쌓아두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 인간의 기술과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교만의 바벨탑이 결국 오늘의 재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이 세상은 점점 어두운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이 없는 어둠의 시대에 우리들이 어떻게 내일을 기대하며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2-13)
선지자는 너희의 패역함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온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다시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의 이 위기와 절망의 상황을 해결하는 키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아픔과 고통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미래에 더 큰 희망을 주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 기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기위해 그의 아들을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자기 아들을 향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저주와 모욕과 희롱마저 참고 기다리신 분이십니다.
그의 아들이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손과 발에 못을 박히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는 그 처절한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켜보신 분입니다.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그 아들의 피맺힌 절규마저 거절하시고 침묵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온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끌어안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그 아들을 3일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은 온 인류를 죄에 빠져 죽게 만들었지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질병에서 치유로, 갈등과 분열에서 화해로, 가난함에서 부요함으로 역전시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든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어둠이요 절망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지난 3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인자는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고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부인하실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말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혼란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요14:1-2)
안심을 시키신 예수님께서는 재차 그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33). 내가 너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롯 유다의 입맞춤과 함께 로마의 군병들에게 체포를 당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십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 몸으로 우리의 저주와 형벌을 속량해 주십니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로 막힌 담을 모두 허물어뜨리시고, 화평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실패라고 여겼습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3일 만에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죄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삼켰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영원한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장차 자신들에게 닥쳐올 불안한 미래 속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실의와 좌절에 빠져서 다시 고향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3년 전 예수님을 만나 처음 부름을 받았던 그 자리입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주님의 초청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만 해도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면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으심과 함께 그들의 모든 꿈도 야망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모습으로 실의와 좌절 속에 헛 그물질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존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패한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 힘과 내 경험으로 야망을 가지고 달려갔지만 지금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은 텅 빈 손입니다. 주님 앞에 나름대로 열심을 내며 섬긴다고 했지만 내 안에는 무언가 공허함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달려간 것 같은데 주어진 것은 면류관이 아닌 비난과 조롱입니다.
이제는 달려갈 힘도, 그물을 던질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사람을 대하는 것조차 두렵기도 합니다. 실의 좌절 속에서 한숨지으며 남모르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는 기도하는 것조차도 힘겹습니다. 우리 안에는 더 이상 미래의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않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아픔과 고통의 자리, 실망과 절망의 자리 그 곳에 우리 부활의 주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은혜요 복음이요 축복입니다.
밤새도록 헛 그물질을 한 제자들은 새벽 무렵에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묻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은 그들의 상태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이 질문은 죄를 짓고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에게 던지신 질문과 흡사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추적 60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서 왜 이탈해 있느냐고 삶의 자리를 확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의 자리, 낙망의 자리, 좌절의 자리에 부활의 주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 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다가 오십니다. 인간의 절망은 주님의 또 다른 희망의 출발점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찾아오셔서 두려워 떨고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인생의 빈 배에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지난 번 WBC 국제야구대회에서 태극 전사들의 선전에 온 국민은 짜릿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대표 타자인 이치로 선수 연봉이 무려 360억인데 우리나라 전체 선수들의 연봉을 다 합쳐도 50억도 안됩니다.
그럼에도 태극 전사들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서 값진 준우승을 했고, 세계에 한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는 김인식 감독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감독들이 고사할 때,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말과 함께 수락을 했습니다.
김인식 감독의 별명은 ‘재활공장장’입니다. 그는 다들 이젠 한 물 갔다고, 재기하기 힘들다고 하는 선수들을 끝까지 믿어 줍니다. 게임에서 실수해도 그 선수를 믿고 다시 출전시킵니다. 가정을 갖고 있는 선수들에겐 더 많은 게임을 뛰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야구의 승부만이 아닌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보여줌으로 서로 하나되게 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졌습니다.
좀 모자라고, 부족한 선수라도 그를 만나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믿음의 야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포기한 사람도 좋은 감독을 만나면 멋진 선수로 다시 태어납니다. 저는 김인식 감독의 믿음의 야구를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서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수와 부족과 허물에도 주님이 믿어 주셨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한번 용서해주면 잘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면 해 내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대신 죽어서라도 살려낼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그 믿음 때문에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때때로 재활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족하고 미련한 모습 뿐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약함을 강함으로, 부족함을 풍성함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의 밤에서 좌절하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영적인 침체, 경제적 위기, 사회적 혼란을 극복해야 합니다. 위기와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이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부활의 희망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바로 그 희망과 위로의 전령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2009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경이로운 성적으로 우승한 김연아 선수가 갈라쇼에서도 관중의 큰 성원으로 앙코르까지 받았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정말 멋지다. 다시 한번 더!” 앙코르를 받는다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일까요
그러나 반대로 원치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프랑스 선수 캔디스 디디에는 22위에 랭크됐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관중들의 호응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부진한 성적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김연아 못지않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디디에는 공중회전을 하고 내려오다 그만 오른쪽 몸이 먼저 빙판에 닿으며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한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녀를 응급요원들이 부축해 간신히 링크 밖으로 나왔습니다. 검진을 받을 때도 신음하여 아파했고, 관객들도 간간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그녀가 무사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 집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링크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아픈 표정이 역력했고, 다친 골반뼈에서 손을 떼지 못했지만 중단된 부분부터 연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전을 하다 또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마쳤습니다. 부상당한 몸으로 끝까지 선수로서의 투지를 보여준 그녀에게 모든 관객들은 감동을 받았고,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위가 아닌 22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노력했지만 우리는 인생의 무대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아파서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야유와 조롱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패했다고, 모든 것은 이미 끝났다고 하는 그 순간에 우리에게 다가와 “괜찮아! 내가 있잖아. 다시 한번 일어나서 도전해봐” 용기와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가 그물질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자들에게 “일어나 나와 함께 다시 가자! 앙코르!” 손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비록 지치고 힘든 몸이지만 주님의 “앙코르”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면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천군 천사들을 동원하여 기립 박수를 쳐주시며 우리를 응원해 주시고 환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절망의 밤에 있는 우리들에게 만선의 희망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식탁의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인생의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좌절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절망의 밤에 우리 부활의 주님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다시 나와 함께 인생의 무대로 나가자! 앙코르!” 이것이 바로 부활의 아침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은 온통 꽃의 향연이지만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힘겹기만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고, 실직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로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통이나 불면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OECD 국가 중 한국이 여성 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스런 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도덕성을 내세우며 가장 깨끗한 정부를 표방했던 참여정부의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 그 주변 사람들이 굴비 엮이듯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재임 중 비리나 뇌물에 관련되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공언했기에 오늘의 정치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찹찹하기만 합니다.
이런 마당에 북한 김정일 정권은 위성로켓을 발사하며 세계를 상대로 위험한 도발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수 조원을 들여 건설한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남북간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처럼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들마저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있습니다. 세상의 대안이 되고, 위로와 소망을 주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불신과 배척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어디를 보아도 희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왜 세상은 점점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우상숭배와 탐심과 불의에 빠져 온갖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바벨론 70년이라는 고통의 세월을 보냅니다.
오늘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이 모든 고통들의 이면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맛을 잃은 소금처럼 짓밟히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경제 위기를 불렀습니다. 돈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 사고가 맘모니즘의 우상을 낳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쫓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셨지만 감사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쌓아두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없이 인간의 기술과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교만의 바벨탑이 결국 오늘의 재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이 세상은 점점 어두운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소망이 없는 어둠의 시대에 우리들이 어떻게 내일을 기대하며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2-13)
선지자는 너희의 패역함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온 마음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다시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의 이 위기와 절망의 상황을 해결하는 키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아픔과 고통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미래에 더 큰 희망을 주시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 기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기위해 그의 아들을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자기 아들을 향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저주와 모욕과 희롱마저 참고 기다리신 분이십니다.
그의 아들이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손과 발에 못을 박히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는 그 처절한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켜보신 분입니다.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여호와 하나님, 나의 여호와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그 아들의 피맺힌 절규마저 거절하시고 침묵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온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끌어안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그 아들을 3일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은 온 인류를 죄에 빠져 죽게 만들었지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심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질병에서 치유로, 갈등과 분열에서 화해로, 가난함에서 부요함으로 역전시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모든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어둠이요 절망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지난 3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인자는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고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부인하실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말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혼란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위로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요14:1-2)
안심을 시키신 예수님께서는 재차 그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33). 내가 너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롯 유다의 입맞춤과 함께 로마의 군병들에게 체포를 당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뿔뿔히 흩어집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십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 몸으로 우리의 저주와 형벌을 속량해 주십니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로 막힌 담을 모두 허물어뜨리시고, 화평케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실패라고 여겼습니다. 모든 것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3일 만에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죄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삼켰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영원한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장차 자신들에게 닥쳐올 불안한 미래 속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실의와 좌절에 빠져서 다시 고향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3년 전 예수님을 만나 처음 부름을 받았던 그 자리입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주님의 초청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들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만 해도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면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으심과 함께 그들의 모든 꿈도 야망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모습으로 실의와 좌절 속에 헛 그물질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존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패한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 힘과 내 경험으로 야망을 가지고 달려갔지만 지금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은 텅 빈 손입니다. 주님 앞에 나름대로 열심을 내며 섬긴다고 했지만 내 안에는 무언가 공허함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달려간 것 같은데 주어진 것은 면류관이 아닌 비난과 조롱입니다.
이제는 달려갈 힘도, 그물을 던질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해 사람을 대하는 것조차 두렵기도 합니다. 실의 좌절 속에서 한숨지으며 남모르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는 기도하는 것조차도 힘겹습니다. 우리 안에는 더 이상 미래의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않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아픔과 고통의 자리, 실망과 절망의 자리 그 곳에 우리 부활의 주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은혜요 복음이요 축복입니다.
밤새도록 헛 그물질을 한 제자들은 새벽 무렵에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묻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은 그들의 상태를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이 질문은 죄를 짓고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에게 던지신 질문과 흡사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추적 60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서 왜 이탈해 있느냐고 삶의 자리를 확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의 자리, 낙망의 자리, 좌절의 자리에 부활의 주님은 다시 찾아오십니다. 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다가 오십니다. 인간의 절망은 주님의 또 다른 희망의 출발점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찾아오셔서 두려워 떨고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인생의 빈 배에 그물이 찢어지지 않을 만큼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변화시켜주십니다.
지난 번 WBC 국제야구대회에서 태극 전사들의 선전에 온 국민은 짜릿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대표 타자인 이치로 선수 연봉이 무려 360억인데 우리나라 전체 선수들의 연봉을 다 합쳐도 50억도 안됩니다.
그럼에도 태극 전사들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서 값진 준우승을 했고, 세계에 한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는 김인식 감독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감독들이 고사할 때,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말과 함께 수락을 했습니다.
김인식 감독의 별명은 ‘재활공장장’입니다. 그는 다들 이젠 한 물 갔다고, 재기하기 힘들다고 하는 선수들을 끝까지 믿어 줍니다. 게임에서 실수해도 그 선수를 믿고 다시 출전시킵니다. 가정을 갖고 있는 선수들에겐 더 많은 게임을 뛰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야구의 승부만이 아닌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보여줌으로 서로 하나되게 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졌습니다.
좀 모자라고, 부족한 선수라도 그를 만나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믿음의 야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포기한 사람도 좋은 감독을 만나면 멋진 선수로 다시 태어납니다. 저는 김인식 감독의 믿음의 야구를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서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수와 부족과 허물에도 주님이 믿어 주셨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한번 용서해주면 잘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면 해 내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대신 죽어서라도 살려낼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그 믿음 때문에 오늘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때때로 재활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족하고 미련한 모습 뿐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약함을 강함으로, 부족함을 풍성함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의 밤에서 좌절하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영적인 침체, 경제적 위기, 사회적 혼란을 극복해야 합니다. 위기와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이 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부활의 희망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바로 그 희망과 위로의 전령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2009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경이로운 성적으로 우승한 김연아 선수가 갈라쇼에서도 관중의 큰 성원으로 앙코르까지 받았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정말 멋지다. 다시 한번 더!” 앙코르를 받는다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일까요
그러나 반대로 원치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프랑스 선수 캔디스 디디에는 22위에 랭크됐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관중들의 호응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부진한 성적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김연아 못지않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디디에는 공중회전을 하고 내려오다 그만 오른쪽 몸이 먼저 빙판에 닿으며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한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녀를 응급요원들이 부축해 간신히 링크 밖으로 나왔습니다. 검진을 받을 때도 신음하여 아파했고, 관객들도 간간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그녀가 무사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 집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링크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아픈 표정이 역력했고, 다친 골반뼈에서 손을 떼지 못했지만 중단된 부분부터 연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회전을 하다 또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마쳤습니다. 부상당한 몸으로 끝까지 선수로서의 투지를 보여준 그녀에게 모든 관객들은 감동을 받았고,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1위가 아닌 22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노력했지만 우리는 인생의 무대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아파서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야유와 조롱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패했다고, 모든 것은 이미 끝났다고 하는 그 순간에 우리에게 다가와 “괜찮아! 내가 있잖아. 다시 한번 일어나서 도전해봐” 용기와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가 그물질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자들에게 “일어나 나와 함께 다시 가자! 앙코르!” 손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비록 지치고 힘든 몸이지만 주님의 “앙코르”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면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천군 천사들을 동원하여 기립 박수를 쳐주시며 우리를 응원해 주시고 환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절망의 밤에 있는 우리들에게 만선의 희망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식탁의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인생의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좌절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절망의 밤에 우리 부활의 주님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다시 나와 함께 인생의 무대로 나가자! 앙코르!” 이것이 바로 부활의 아침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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