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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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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황제 루이 14세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는 "짐이 곧 국가다" 라고 외치면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 권위를 만방에 널리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성도로서 신교를 방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박해의 손길을 뻗쳐 칙령 거역죄로 세오졸프라는 사람을 체포하여 파리탑의 감옥에 감금했습니다. 때마침 부활절이 되어 루이 14세는 황제의 복장을 갖추고 호화 찬란한 부활절 행렬대를 거느리고 파리 시가를 행진하였습니다. 높은 감옥의 탑 위에서 이 행렬을 바라본 세오졸프는 하늘의 영감을 받아 부활절 찬송을 힘차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천하셨다. 세상 사람 찬양하니 천사 화답하도다. " 이렇게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황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이 찬송 소리는 의기양양하게 행진해 가던 루이 14세의 양심을 때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왕 중 왕"이 되신다는 사실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제는 부활 축제 행렬을 세우고 감옥으로 들어가 세오졸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잘못을 빌고 그를 석방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중요한 두 절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탄절이요, 또 하나는 부활절입니다. 성탄절은 이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난 절기요, 부활절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심으로 사망권세를 깨고 인간의 구속을 완성시킨 절기입니다.
즉, 성탄이 인류 구속의 시작이라면 부활절은 인류구속을 완성한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미를 바로 깨닫고 믿는다면 이 두 절기의 축복과 은혜는 한없이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 두 절기를 개개인에게 적용해본다면 또 다른 의미와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성탄절은 객관적인 주님의 탄생이지만 부활절은 주관적인 주님의 탄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실 때는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지만 실제로 주님은 그 당시 만난 사람들 속에서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 아니 가까이 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절 이후에는 예수님이 부활한 후 성령으로 오시어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어느 때든지 믿을 수도 있고,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성탄절 보다 부활절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나의 부활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님의 수난의 행사 등을 하며 기념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성령으로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런 행사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절은 나의 부활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후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을 찾은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갈릴리 바닷가에 가있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요21:6)고 말씀하셔서 제자들이 그렇게 하니 그물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비로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숯불에 고기와 떡을 구워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그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셨고, 제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500여 명의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고, 40일 동안 계시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또 본문 20- 24절에 보면, 도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왜 도마가 의심 많은 제자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야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자리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 받는 자리에 도마만이 빠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주님을 쫓아다닌다고 해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신앙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흔들리는 의심의 장벽을 넘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는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20:25)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주님은 도마를 사랑하사 도마가 있는 장소에 다시 나타나시고 손을 내밀어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그때 도마에게 부활의 주님이 보이기 사작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의심 많고 피상적인 신앙의 장벽을 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그제서야 예수님은 도마의 주님이 된 것입니다. 즉 도마의 부활절이 온 것입니다. 도마가 그랬듯이 의심 없이 주님을 믿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만 오직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즉 나 자신의 성탄이 되는 부활절이 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 어렵고 힘든 세대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의심은 했지만 도마처럼 자신의 부활절을 맞이하여 주님을 만난 자는 복된 자입니다. 보지 못하고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 차례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에게 미리 말씀하셨고(마12:38-40, 마16:21, 마17:9, 23, 막8:31, 눅9:22, 요2:19-21),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흘 후에 살아나리라 한 말을 기억하고 무덤을 지키기 위해 수직병을 세웠습니다. (마27:63-66) 무덤을 철저히 지키라는 엄격한 명령을 받은 수직병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군인들 중의 일부였으니 그들은 불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큰돌로 단단히 막고 인봉까지 한 무덤이 갈라지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제일 먼저 목격하고 이 사실을 제사장들에게 알리자 제사장들은 수직병들에게 돈을 주며 군인들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는 수직병들의 증거가 너무도 명백하여 어찌할 수 없게되자 제사장들이 간교한 최후 방법을 쓴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 예수가 부활하지도 않았는데 부활하였다고 주장할 때 당시의 권세 가진 제사장, 서기관, 바리세인들이 로마제국 병정을 시켜 예수의 시체를 찾아 보임으로서 제자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체가 없음으로 단지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시체를 훔쳐 갔다고 주장토록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 부활의 사실은 무덤에 장사된 예수를 찾아간 여인들이 무덤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들어가서 예수의 누우셨던 자리를 확인했을 뿐 아니라 수위까지 발견했습니다. 무덤문이 열려서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과 저들의 손으로 지어 예수의 시체를 쌌던 수의를 발견했다는 것은 예수가 무덤가운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밖에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을 뵈었으니 어찌 더 다른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후 한 두 사람이 목격한 바도 아니요, 오백여 사람에게 일시에 보이셨고, 제자들과 함께 떡과 고기도 잡수셨습니다.
제자 중에 믿음이 약한 도마는 그래도 믿기지 않아 예수의 손에 못 박힌 자국과 옆구리에 창에 찔린 흔적까지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각기 고향으로 뿔뿔히 흩어졌던 제자들이 그의 부활하심을 보고, 다시 용기를 얻어 온갖 환란과 시련을 당해도 복음전도에 힘쓰지 않았던가
만일 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거짓증거하고 허위로 선전하였다면 오늘까지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고 가정했을 때 그중 한사람이라도 본심으로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이란 송두리채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하고 사기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분명히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를 위해 거짓을 말하고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돈과 여자와 명예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도 버리고, 돈과 명예도 버렸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구태여 거짓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고 심지어는 생명을 잃는 경우를 수없이 당했는데, 거짓말하면서까지 예수 부활의 사실을 증거하였을까 를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6-20)
즉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주장은 다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모든 외침은 다 쓸데없는 메아리로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가짜 대통령 아들 이강석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결국 사기꾼으로 감옥에서 징역을 살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면 이처럼 큰 거짓말은 이 세상에 다시없을 것입니다.
그의 이 가짜 주장으로 인해 지난 이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고, 속아서 살았던가를 생각해 보세요. 그는 실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꾼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인류는 그를 4대 성인중의 한사람으로 추대한다는 것은 무언가 이치가 맞지 않는 것 아니겠어요 진실로 거짓말로는 굳게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과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거짓이 아닌 엄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지도자들이나 위인들도 죽음 앞에서는 별 수 없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시 기절했다가 회생한 사람은 혹여 있어도 피를 흘리고 사흘이 지난 후에 다시 산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석가도 공자도 진시황제도 천하를 지배하려했던 징기스칸도 천하장사 항우도 결코 죽음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이 부활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며, 부활을 증거하는 교회만이 세계인류에게 참 소망을 줄 수 있는 교회요,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입니다. 예수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는 종교는 거짓된 길이요, 멸망의 길이며, 내세가 없다 주장하는 무리는 어리석은 자들이요,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예수께서는 2천년 전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십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째, 믿어야 합니다. 보고 믿는 것은 사도들에 의해 끝이 났습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믿음이 전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믿음하나만 요구하십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 할 때 “오직 믿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증거해야 합니다.“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내 가족, 부모, 형제를 구원해야 합니다 .북한동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족을 살리는 길입니다.
 셋째,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이후의 여인과 사도들의 삶은 새로운 삶, 변화의 삶이었습니다. 마귀와 사망의 저주 아래 있던 삶이 구원과 생명, 자유와 승리의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끝으로 부활에 대하여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세 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부활은 지금까지 말씀한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무덤을 깨뜨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미래의 부활로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는 성경의 기록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영혼만이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살과 뼈까지도 그리스도의 변화하심 같이 우리도 변화되며 영원한 복락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현재의 부활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은 현재에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은 에스겔이 본 해골 골짜기와 같아서 육신은 살았으나 그 영은 죽은 자가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영은 다 죽은 영입니다. 우리의 영이 다시 살기 위하여는 영혼이 햇빛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아야 하며, 기도의 호흡과 생명의 양식인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진리의 생명수를 항상 마셔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부활의 주님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미 주님이 가셔서 일하고 계신 곳을 따라 한국교회도 일어나야 합니다. 부활의 감격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에 귀의하되,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처럼 전 생애를 걸고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다시 살고, 함께 모여 살아 영원 무궁토록 복락을 누립시다. 그리고 예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 천하에 전하며 참 평화와 기쁨이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무덤문을 여시고 이 아침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오며, 우리 주님을 사망에서 승리케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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