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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 신앙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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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필근 목사가 어릴 때, 한동네 사는 김씨 부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 준비가 잘 안되어서 사흘 만에 재목을 구하여 관을 짰습니다. 다음날 옷을 입히고 입관을 하려 하는데, 죽었던 김씨 부인이 일어나더니 물을 찾았습니다. 고양이가 시체를 뛰어넘으면 시체가 일어선다고 해서 야단이 났습니다. 그러나 김씨 부인이 정말 살아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큰 강물이 있어 다리를 건너는데 좌우에 흰 옷 입은 사자가 잘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 중 한 사자가 '너는 아직 올 때가 못 되었으니 가서 예수 잘 믿고 잘 준비해 가지고 오너라' 라고 말했다" 합니다. 이 소문이 퍼져서 백 리 밖에서까지 김씨 부인을 구경하러 와서 30명 모이던 교회가 100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예수님께서는 “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활할 수 있다”(요한복음 11:25-26)고 약속하셨습니다.이 말씀을 믿는 신앙생활을 부활신앙이라고 합니다.부활신앙이란 환상의 세계를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사랑과 선한 뜻을 나타내는 생활을 말합니다.
특히 부활신앙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어떤 일이든 100% 해낼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단 0. 5%라도 의심한다면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10%도 되지 못합니다.즉 부활신앙은 패배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총리 네루는 “수천년 동안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예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입니다.십자가에서 희생함으로써 부활의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희생의 삶을 통해 승리의 기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 신앙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매년 부활절을 맞이하며 거창하게 행사를 치르기는 하지만, 실상 진정으로 자신이 죽었다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하며 그러한 부활 신앙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올바로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 주위에서 뜨거운 부활 신앙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생활을 비교해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오늘은 이에 대해 다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들은 예수님의 도덕적 교훈들은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장사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사실(고전 15:3,4절)은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지 않고 믿기를 꺼려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 정활히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이 사실은 기독교의 모든 진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행4: 33, 행5:30- 32)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믿는 성도도 주 안에서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내세(來世)가 있으며 영적 세계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永生)을 주시겠다 하신 그 약속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믿는 자는 모두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사망에 처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바로 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 신앙을 올바로 가진 자를 참 성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바로 기독교의 진리 전부를 믿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초가 되고 복음의 핵심 진리이기 때문에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성도의 신앙은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5: 14- 17)
기독교에 있어서 부활신앙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주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고전15:17)’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만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지금 이 세상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존재일 것이다(고전15:19)’라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활은 기독교 그 자체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예수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 기독교는 불교나 유교처럼 한낱 윤리적인 종교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부활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만 필요한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영원한 진리’인 것입니다.
3. 성도의 신앙 생활에 활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적으로 볼 때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을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다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에게 부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3:8) 또한 사도 바울이 그토록 많은 박해를 견디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 전파에 전력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부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고전15: 29- 34) 이처럼 부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그의 소망을 이 세상에 두지 않고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고 이 세상의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그의 소망을 이 세상에 두고 있기 때문에 죄악된 세상과 타협하거나 환난이 있을 때 곧 넘어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혹자들은 부활 신앙이 현재의 생활에 충실치 못하게 하고 내세 지향적으로 살게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재 생활에 충실치 못하게 하는 것은 부활 신앙 자체가 아니라 현세 도피적인 잘못된 신앙관입니다.
부활 신앙은 결코 현재 생활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현재의 신앙 생활에 따라 부활의 때에 얻게 될 영광이 결정되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부활 신앙은 현재 생활에 확실한 목표를 가지게 하며 신앙 생활에 가장 힘있는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4. 믿는 자를 구원하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다보면 참 딱한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들도 여호와 하나님과 성경을 믿고 싶은데 자꾸 의심이 생기고 안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문제에 가서는 이런 갈등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중의 핵심인데 세상에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내 눈으로 보지 않은 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부활이야기는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활사건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지만 맥없이 십자가에 달려 숨이 끊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았
는데, 싸늘한 시체가 되어 무덤에 장사지낸지가 바로 엊그제인데 부활이라니...
그래서 예수님의 사신 것을 보았다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도 허탄한 듯 뵈어 믿지 않았고 엠마오로 가던 다른 제자들의 증언도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셧을 때 믿지 않는 완악함을 책망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삼년 육개월을 주님과 함께 먹고 자던 사람들도 믿을 수 없었던 사건을 이천년이 넘어 세월의 때가 겹겹이 쌓인 오늘 날 믿으라 하니 오히려 믿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럴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시인할 수 없으며 진리의 영이 오셔야만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을 믿는가 아닌가는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그까짓() 부활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의심하는 도마를 향해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십니까 당신은 크게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안 믿어지십니까
그러면 부활에 관심 갖지 말고 예수님을 다시 보십시오.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아니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 9,10)
5. 성도의 부활의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15: 20- 23)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부활절이 우리에게 가장 기쁘고 소중한 축하의 날이 된 것은 온 인류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 권세, 마귀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는 무덤을 자랑하고 무덤 앞에서 슬퍼하며 울고 괴로워하고 허무해 합니다. 세계의 위대한 인물도 모두 무덤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덤이 없습니다. 무덤에 들어가셨던 주님이 지금 살아계셔서 이천년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다스리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과 저주와 죽음을 넘어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의 큰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셨고,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 우리가 다음 차례인 것의 보증이 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26:23)
6. 성도의 미래 유업의 기초가 됩니다. (벧전1: 3,4)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을 완성으로 이끄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무의미할 뿐입니다. 그 역사적 사건이란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결국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없는 셈입니다. 언젠가 키에르케고르는 그와 같은 생각을 부드럽고 편편한 돌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편편한 돌을 연못의 수면 위로 던지게 되면 춤을 추듯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더니 물 속으로 쑥 가라앉아 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면이 잔잔해집니다. 마치 이것은 사후의 소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호흡'이라는 희곡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막이 오르면 쓰레기가 잔뜩 어질러져 있는 무대가 등장합니다.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아기의 첫 울음 소리로 시작한 연극은 한 노인의 임종의 헐떡거림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막이 내려옵니다. 여기서 베케트가 말하고자 한 요지는 인생은 허무하고, 존재는 덧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벧전 1:3, 4). 이것은 한 마디로 소망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언약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 생명의 빛을 성도들에게도 비춰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여호와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흠이 없는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 부활 신앙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혹 부활에 대한 소망은 없이 지나치게 현재의 삶에 얼매여 세상과 타협하고 죄와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부활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 당하는 환난으로 인해 마치 그것이 영원한 멸망인 것처럼 좌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부활 신앙을 회복합시다. 그래서 더욱 활기있고 힘있는 신앙 생활로 매진합시다. 오직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갑시다. (빌3:14)
부활은 성도의 참 소망이며, 그 소망을 바라는 성도는 경건하고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참 소망을 모르는 세상에 대하여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최후의 심판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음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의의 부활과 악의 부활은 영원히 존재할 것임을 확신하며 증거할 때 결실은 풍성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하여 승리의 기쁨 속에 살아가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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