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TOP
DOWN

[부활절] 부활절

본문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해마다 말씀드립니다만,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만월(보름)이 지나고, 오는 주일입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21일이 춘분이고, 24일이 만월(보름)입니다. 그래서 24일이 지나고 오는 주일이 오늘이지요. 만월(보름)이 주일이면, 만월(보름)이 지나야 하니까 그 다음 주일이 부활절이 됩니다.
부활절이 이렇게 되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이 태음력인 유대력으로 1월 14일입니다. 15일(만월/보름)에는 무덤 속에 계셨고, 16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이 12일 수요일이다, 13일 목요일이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월절이 무엇인지, 무교절이 무엇인지, 요제일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구별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사실입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가 바보들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닙니다. 이런 소리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유월절은 애굽에서 장자재앙으로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 백성을 치실 때에 양을 잡아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고 여호와께서 그 집은 넘어가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고 했습니다(출12:29-30).
이 애굽의 큰 호곡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좇아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마치 도망할 사람들처럼 채비를 차리고, 그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로 식사를 했습니다. 유월절은 바로 이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식사를 기념하여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온 애굽의 장자를 치시는 정자재앙에서 구원된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저녁 식사가,
해지기 전(일몰 전)에 준비되어 해 진 후(일몰 후)에 식사를 했습니다. 이 식사시간이 유대인에게는 유월절이요, 애굽인에게는 장자재앙이 내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날짜는 저녁(일몰)에서 저녁(일몰)까지가 하루입니다. 곧 14일은 13일 일몰에서 14일 일몰까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14일 일몰 후이면 15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 저녁까지라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날이 바로 15일입니다.
정리하면,
유월절은 14일 저녁(일몰)부터 15일 아침(일출)까지입니다. 그러니 15일 밤이지요. 유대인의 하루는 낮→ 밤이 아니라, 밤→ 낮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유월절은 14일, 무교절은 15일이라고 다른 날로 이틀인 것처럼 큰소리치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무교병을 먹는 덜기입니다.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7일간 먹으라고 했습니다(출12:18). 요제일은 무교절 이튿날(16일)로, 첫 곡식 한 단을 여호와께 흔들어 바칩니다(레23:11). 바로 부활의 첫 열매로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지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부활을 뜻합니다(고전15:20).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 무교절 안식일에 무덤에서 안식하시고, 안식 후 첫날 요제일에 부활의 첫 열매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엉뚱한 사람들이 많아서….
엉뚱한데 미혹되지 아니하도록 간추려 살펴보았습니다. 엉뚱한 소리에 귀가 솔깃한 것은 사탄의 장난입니다. 밤낮 사흘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인 냥, 밤낮 사흘 곧 72시간에 짜맞추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밤낮 사흘과 우리가 생각하는 밤낮 사흘은 다릅니다. 부활을 말씀하시며 밤낮 사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삼일만에, 제3일에, 사흘 후에, 등이 있습니다. 모두가 3일과 관계가 되지요. 모두가 밤낮 사흘과 똑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밤낮 사흘은 3일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정작 예수를 부인하는 유대인에게서도 이런 것이 시비거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엉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곧 죽어도 자기가 바로 믿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자주(自主)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어린 아이의 때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고전13:11). 언제까지 어린 아이들처럼 어른의 손에 이끌려 다닐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어린 아이처럼 하나 하나 일러주는 말대로 할 수 없습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 곧 자주자(自主者)가 되어 스스로 다닐 수 있고, 스스로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지난 몇 주일에 걸쳐 자주자(自主者)란 무엇인가 모든 얽매이는 것을 벗어버린 자가 자주자(自主者)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이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가 자주자(自主者)라는 것을 살펴보고져 합니다.
1 자주자(自主者)란 무엇인가
2 모든 얽매이는 것을 벗어버린 자주자(自主者)
3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
4.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가 자주자(自主者)
본문 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여기의 "부활아나스타시(ajnavstasi")"은.... "세움, 일어남, 봉기, 위로 오름, 부활"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2:34절의 "흥함" 외에는 모두 "부활"로 사용되었습니다. 곧 죽은 자가 살아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가 단순히 되살아나는 재생(再生)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 명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나사로(요11:43), 회당장 야이로의 딸(막5:41),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입니다(눅7:14). 이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영생의 부활입니다.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바로 예수 부활, 내 부활이란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서 그의 죽으심과 함께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곧 죽었으면, 또 예수 안에서 그의 부활하심과 함께 연합한 자가 되어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의 "되었으면"은 완료형으로 죽음이 끝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의 "되리라"는 미래형으로 부활은 미래의 사건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고, 우리 성도들은 차례대로 부활한다고 했습니다(고전15:23-24).
예수 부활, 내 부활....
이 소망은 주님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집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살전4:16-17).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바로 예수 부활의 생명이 내 생명이란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서 연합한 자는 한 생명입니다. 여기의 "연합한 자쉼휘토스(suvmfuto")"는.... "같이 자람, 접붙임"을 뜻합니다. 예수 안에 연합했다는 말은 접붙여진 것을 말합니다. 예수 생명 따로, 내 생명 따로가 아닙니다. 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예수님처럼 얽매임이 없고 자유로운 자주자(自主者)입니다.
1. 죄를 이긴 자입니다.
본문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여기의 "예수와 함께 못 박힌 것은쉬스타우로오(sustaurovw)"은.... "함께"+"못 박다"의 합성어로, 수동태가 되어 "함께 못 박히다"는 뜻이 됩니다. 사형수의 몸을 못 박고, 야망과 욕심을 소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형으로 이미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옛 사람이 못 박혀 죽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갈5:24).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옛 사람 곧 "자아(自我)"가 죽어버린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알거니와기노스코(ginwvskw)"는....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적으로나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예수 안에서 "내"가 곧 "자아(自我)"가 죽어버린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버린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죄의 몸"이 죽어버렸습니다. 죄의 권세는 죽은 자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시체가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죽은 자는 죄의 종에서 풀려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밖에서 죽은 자는 그의 죄책(罪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지옥의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본문 7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내 모든 죄가 다 사함 받았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모든 죄가 다 사함 받았다고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곧 예수 부활의 생명이 내 생명이 된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어도 부활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곧 예수 십자가를 넘어, 예수 부활의 영광에 함께 하는 자가 죄를 이긴 승리자이요, 자주자(自主者)입니다.
2. 죽음을 이긴 자입니다.
본문 9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여기의 "죽지아포드네스코(ajpoqnhvskw)"는.... "죽다"로 사람과 동식물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곧 호흡이 끝나는 것입니다. 또 "죽은 자네크로스(nekrov")"는.... "죽은, 시체"를 뜻합니다. 곧 뒤로 이어지는 "죽지 아니하시고"의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부활은 죽은 시체가 살아난 것이지만, 다시 죽지 아니하는 부활 곧 죽음을 이긴 부활입니다. 죽음을 이겼기에 다시 죽지 아니합니다. 곧 영생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시체에서 살아난 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다시 죽었지만, 예수 부활은 다시 죽지 아니하는 죽음을 이긴 부활입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성자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대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의롭다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롬4:25). 곧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안에서 연합하여 그의 죽으심과 함께 죽은 자들을 위한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죽음을 이긴 자입니다. 이제 죽음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죽음을 이긴 자이요, 죽음에서 자유한 자입니다. 곧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인간사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죽음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히9:27). 이 한번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 내 인생사는 끝이 납니다. 그 후에는 심판에 따라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결정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기에 사람이라면 다 똑같이 죽음의 굴레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긴 자는,
죽음의 굴레에 마냥 묶여 있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한다고 했습니다. 죽음도 무덤도 더 이상 묶어둘 수 없고, 내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합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죽음을 인긴 자가 바로 자주자(自主者)입니다.
3. 사망을 이긴 자입니다.
본문 9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주님, 다시 죽지 아니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사망이 다시 주장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곧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사망을 향해 호통을 칩니다. 여기의 "사망다나토스(qavnato")"은.... "죽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호흡이 끊어지는 "죽음아포드네스코(ajpoqnhvskw)"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의 "사망다나토스(qavnato")"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속한 초자연적 "생명조에(zwhv)"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안에서 연합한 자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고, 그의 살으심과 합하여 살아 이 "생명조에(zwhv)"을 가진 자입니다(본문4절).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모든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인, 단순한 육체의 호흡이 끊어지는 "죽음아포드네스코(ajpoqnhvskw)"이 아닌 이 "사망다나토스(qavnato")"을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라고 했습니다(고전15:26). 더욱이 계시록에서는 첫째 부활에 참예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가는 둘째 사망이 있는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이라고 했습니다(계21:18). 곧 지옥입니다.
요한복음 5: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곧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다릅니다. 같은 내용의 말씀인 요일 3:14절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 곧 믿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계속 거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계속 거하다 둘째 사망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곧바로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집니다. 이것이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망을 이긴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예수 안에서 연합한 자 되어 그의 죽으심과 함께 죽고, 그의 부활과 함께 부활한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된 성도는 부활의 새 생명을 가졌습니다(본문4절). 이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죄를 이기고 죄에서 자유한 자주자(自主者)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죽음을 이기고 죽음에서 자유한 자주자(自主者)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사망을 이기고 사망에서 사망에서 자유한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며,
예수 부활, 내 부활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다시 한번 더 묵상하게 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기에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우리 육신은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무덤이 얽어맬 수 없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살전4:16). 그때에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을 향해 호령하는 승리자요, 자유자요, 자주자(自主者)가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에서 자주자(自主者)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남의 손에 이끌려 다닐 수는 없습니다. 어린 아이의 일을 벗어버리고 장성한 자가 되어....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걸어가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주자(自主者)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육의 나라를 위해서도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육의 나라가 아닌 영의 나라, 저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저 천성을 향해 달려가는 신앙생활의 자주자(自主者)가 되어야 합니다.
자주자(自主者)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입니다(갈3:27절).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갈3:29절). 몽학선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받은 자입니다(갈3:24절). 다시 말해서 종이 아닌 자유자입니다(요8:33). 종에서 속량된 자입니다(미6:4). 법/의무에서 면제/해방된 자입니다(롬7:3).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가 어떤 자입니까
모든 얽매이는 것을 벗어버린 자입니다(히12:1).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린 자입니다(히12:1).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린 자입니다(히12:1).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벗어버린 자입니다(히12:2). 믿음의 경주장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달리는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벗어버리는 자입니다. 돈이 내 앞길을 막을 수도 있고, 명예가 가로막을 수도 있고, 자존심이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리기 선수처럼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는 것이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가 어떤 자입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마(16:24). 주님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마16:21) 내 몫에 테인 십자가를 져야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이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갈5:17). 신앙은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줄서기"가 아닙니다. 주님 뒤에 "줄서기" 했다고 다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오직 믿음"은 구원의 근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근거가 행위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여 구원얻은 자의 삶을 부정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잘 아는 "양과 염소의 비유"는 영생과 영벌의 심판입니다(마25:46). 그 심판의 척도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느냐, 아니냐의 믿음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영접하고 사랑했느냐, 아니냐의 삶(행위)입니다. 염소의 사랑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은 줄서기가 아니라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3. 1절, 선열들의 독립운동을 되새겨 보는 달입니다. 육신적인 세상의 나라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고 자주자(自主者)가 되려고 투쟁했습니다. 하물며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그 천국을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나의 신앙생활에서 자주자(自主者)가 되기를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첫 주에 자주자(自主者)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며 자주자(自主者)가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둘째 주에 모든 얽매이는 것을 벗어버린 자가 자주자(自主者)임을 살펴보며 자주자(自主者)가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셋째 주에 자기 몫에 테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자주자(自主者)임을 살펴보며 자주자(自主者)가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마지막 주인 오늘 부활절에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가 자주자(自主者)임을 살펴보며 자주자(自主者)가 되기를 다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자주자(自主者)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가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된 자가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승리자요, 자주자(自主者)입니다. 예수 부활, 내 부활이 없으면 여전히 죄에 얽매여 있습니다(고전15:17).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저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부활, 내 부활의 부활의 새 생명을 가지시고, 죄/죽음/사망을 이기는 자주자(自主者)로 저 영원한 천국의 영생복락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