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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내가 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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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주간 고난주간 새벽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숨을거두기까지 모든 과정을 묵상을 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주신 일곱마디중에서 제일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입니다. 테텔레스타이라는 말은 지불완료다 작품이 완성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지냈는데 아리마데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의 새 무덤을 빌려서 예수님을 장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이 그것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나서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저 예수님이 생전에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그랬는데 혹시 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 다른곳에 가져다 놓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면 어떻게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로 묘실 입구를 막았습니다. 적어도 20명의 장정이 굴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큰 돌로 막아놨습니다. 거기에다 빌라도 총독의 이름으로 인봉해놨습니다.
 누가 열었다가 닫을 수 없습니다. 인봉자국이 있기 때문에 손댈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철통같이 로마 군병들이 칼과 창을 들고 보초를 섰습니다. 이정도면 누구도 무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는 기회가 된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철통같은 경비속에서도 우리 주님은 그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깨치고 이 새벽에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무덤도 로마 군병도 그의 부활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확실한 사건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왜 로마 군병들이 증인입니다. 그리고 로마 당국의 모든 조치가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부활은 기독교회의 영적 자존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괜히 고생하면서 주일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대로 놀고 먹고 살다 죽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 때문에 부활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주님을 찬양하며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일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이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전도하는 것이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진정한 부활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보상이요 보답이요 영원한 천국의 보장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가을에 첫 곡식이 피면 열매를 맺으면 이어 모든 곡식이 열매를 맺을것을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를 가진 우리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부활은 세상사람과 다른 삶의 근거가 됩니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땅에서 핍박이 와도 고난이 와도 손해가 와도 우리는 부활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겁니다. 왜 우리가 부활해서 주님나라에 들어가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을 날마다 고백합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사도신경을 암송할때마다 이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것과 영원히 사는것을 믿사옵니다. 몸이 다시 삽니다. 우린 죽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다시 살고 우린 영원히 삽니다. 이게 부활의 고백입니다. 부활은 확실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유머도 할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사이가 안좋은 노부부가 살았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돈을 모아가지고 아버님,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성지순례 한번 다녀오리고 해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가서도 계속 싸웠습니다. 이 부인이 심장이 안좋았습니다. 싸우다 혈압이 올랐는지 부인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을 치러야하는데 큰일 났습니다. 장례절차를 알아보니까 예루살렘에서 장례를 치루면 150불이면 된다고 합니다. 성지순례왔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묘지하나 얻어서 150불 우리나라 돈으로 15만원이면 장례 끝난다고 합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런데 고향인 미국으로 옮겨가려면 시신을 방부제 처리해야하고 절차도 복잡하고 또 비행기 값을 내야합니다. 이러면 약 5천불든다고 합니다. 5천불이면 쉽게이야기해서 500만원입니다. 죽은 아내를 미국까지 모셔가 장례를 치루려면 5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더니 할아버지가 몇일동안 고민을 하더니 결심을 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미국으로 데려갈 겁니다.
아니 미국으로 꼭 데려갈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성지순례 왔다가 돌아가셨는데 묻으면 좋죠. 그랬더니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아는데 옛날에 예수라는 분이 여기 묻혔다가 다시 부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인도 다시 부활할까 봐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확실한 겁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아프리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추장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추장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부활이 나와서 부활에 대해 이야기해 주게 되었습니다. 부활이 뭐냐. 우리가 죽지만 다시 살아나는게 부활이다. 그랬더니 추장이 눈이 똥그래져서 큰 일났다는 겁니다. 절대 그러면 안된다고 합니다.
왜냐면 나한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사람들 다 부활하면 자신이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겁니다. 우스개 소립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주일학교에서 그랬답니다. 얘들아 다음주가 부활절인데 플라스틱 계란을 하나씩 나눠주고 여기에다 부활의 증거를 하나씩 담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일주일간 고민했습니다. 뭘 담아갈까. 어떤아이들은 주일에 담아왔는데 꽃을 담아왔습니다. 꽃은 생명이 있는 거니까 좋은 것이구나. 어떤 아이들은 플라스틱 계란에 나비를 담아왔습니다. 나비 살아있는거니 생명체. 어떤 아이는 파릇파릇한 싹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도 돋아나는 생명체지.
그런데 필립이라는 정서가 불안한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조금 아이큐가 모자릅니다. 그래서 너도 뭘 가져왔냐고 물었습니다. 가져왔다고 합니다. 열어보라고 해서 열어봤더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놀립니다. 봐라 저 바보가 뭘가져 오겠어. 너 왜 그냥 가져왔냐고 묻자 필립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필립이 말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부활하셔서 비어있잖아요.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어서 빈계란을 가져왔다는 겁니다. 오늘 주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제일 처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막달라마리아라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처음만나는 영광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오늘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사람입니까.
성경에 보면 일곱귀신 들렸던 여인입니다. 귀신 하나만 들어와도 복잡한데 일곱귀신이 들어왔으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거의 정신이 미쳤습니다. 제정신이 아니게 살았을겁니다. 일설에는 이 여인이 몸을파는 창기의 직업을 가지지않았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그녀의 몸에서 질병을 치유해주셨고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여인이 건강을 회복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그 여인은 누가복음 8장에 보면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평생동안 섬겼습니다. 자신들의 물질과 소유로 예수님의 삶을 돌보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둘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4명의 여인들이 십자가 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3명의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그리고 예수님의 이모가 있었습니다. 4명의 여인중 3명이 마리아인데 그 중에 하나가 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장례를 모두 지켜봤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여인은 안식후 첫날 아직 어둠이 가시지않은 그 무서운 새벽에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제자들도 무서워 찾지 못하는 무덤을 이 여인은 예수님을 너무 사모해서 낼 새기를 기다릴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찾았더니 이미 돌이 굴려져 있고 로마군병들은 다 실신해 버리고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고 거기서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가서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분 마음속에 모시고 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의 세가지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절망하여 울고 있는 마리아입니다. 절망하여 울고 있는 마리아. 성경 11절부터 14절까지 읽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절망하여 울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발라드리려고 무덤에 갔더니 돌은 이미 굴려져있고 예수님은 안계십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갔지 부활하셨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놀라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뛰어가서 그 소식을 알렸더니 베드로와 요한도 와서 봤습니다.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갔습니다.
20장 8절읽습니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갔던 다른 제자도 들어가보고 믿더라. 이게 사실 앞뒤 전후로 읽어보면 이 다른 제자라는 것은 요한을 가르킵니다. 그런데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시신이 없어졌다는 여인의 말을 그때에서야 믿었다는 겁니다. 자다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치니까 돌이 어떤 돌인데 굴려져 있고 믿어지지가 않았던 겁니다. 로마 군병이 철통같이 지키고 인봉이 되어 있는데 말도 안된다하고 믿지를 못한 겁니다. 유대인들은 여자들의 말을 또 잘 안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의 말은 법정에서 증거의 효력이 없답니다. 못믿은 겁니다. 니 말을 어떻게 믿느냐하는 겁니다. 와서 보고서야 그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뾰족한 방법이 없어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갔지 갸우뚱거리며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럴수가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주님이 그 주님의 시신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그냥 있을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무덤밖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9장 9절도 읽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그러니까 제자들은 시신이 없어졌어도 부활은 생각도 못한겁니다. 그들은 이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고로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울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바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예수님없는 인생은 바로 절망하는 인생이요, 좌절과 어둠가운데 있는 인생입니다. 슬픔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에 사도바울은 노래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예수그리스도를 모시지 않는 삶,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삶은 절망과 암흑의 삶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앞에 놓인 절망앞에서 좌절합니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울고울고울고 또 울다가 지쳐서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도움을 청할곳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너무 외로운 겁니다. 그래서 탤런트 최진실씨의 동생 최진영씨가 또 자살한겁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는 절망과 절망을 거듭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절망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없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아무리 고통스럽고 절망의 밤이 깊어간다할지라도 절대로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왜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 생명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한데 함부로 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인되신 예수그리스도안에는 절망이 없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되시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여러분의 삶은 절망에서 희망의 삶으로 바뀌어짐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직 예수님이 옆에 계신것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천사가 여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인들아 어찌하여 우느냐 뒤를 돌아보니 누가 서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이신데 동산지기인줄 알았다는겁니다. 14절에 보니까 이 말을하고 뒤를 돌이켜 예수께서 서있는곳을 보았으나 예수이신줄은 알지 못하더라. 문제가 있습니다. 그분이 예수이신줄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절망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두 번째로 마리아의 모습을 또 보는데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기쁨의 마리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절망하고 울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봤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마리아의 모습을 보십시오.
15절 1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신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묻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당신이 우리 주님이 어디 계신줄 아십니까. 내게 좀 일러주소서. 내가 그 분을 데려가겠나이다하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사모하던 예수님을 왜 몰라봤을까요. 몇가지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마리아의 선입관 때문에 동산지기가 동산에 있다지 그러니 당연히 동산지기인줄 알았습니다. 선입관이라는 것이 때로 신앙의 방해가 됩니다. 또 너무 많이 울면 감정에 복받쳐서 바른 분별력을 잃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겁니다.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못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그 분이 예수님인 줄 몰랐다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십니다. 그 음성이 어떠했을까요 무뚝뚝하게 마리아야 부르겼을까요 아마 가장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을 겁니다. 너무너무 친근한 목소리로 너무너무 개인적인 목소리로 따뜻한 사랑의 목소리로 마리아를 불렀을 겁니다. 그러니 마리아는 평소에 자기를 부르던 주님의 음성이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얼굴보고 몰랐는데 예수님의 몸이 변화되었으니까 얼굴이야 외양보고 모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를 듣고 깨닫습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오늘 주님은 예배가운데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말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 하나만 부르듯이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시는 겁니다. 마리아는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랍오니 이게 그냥 보통 랍오니가 아닙니다. 너무나 반가울 때 어머어머 엄마오셨네, 아빠오셨네 이게 보통 반가운 소리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런 설명이 없지만 이건 보통이 아닙니다. 랍오니는 랍비라는 말의 최고 존경어입니다. 그리고 아마 예수님을 껴 안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아직 나를 만지지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예수님을 껴안고싶은 마리아의 심정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쁨, 그 희열, 그 감격 그 행복 어떠했을까. 그래서 시편은 말합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성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이 절망과 좌절을 슬픔을 던져버리고 예수님앞에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기뻐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사람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명을 받은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 1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여호와 하나님 곧 너희 여호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마리아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곧 여호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이야기해라. 그리고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만난 갈릴리에서 내가 너희를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 전해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주를 만났다. 여러분이 성령의 능력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살아계신여호와 하나님을 체험했다 이 확신이 중요합니다. 이 확신이 있을 때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진정한 부활의 신앙은 이와같은 것입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주를 만났다. 다른 사람이 만나것은 나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만나야 합니다. 내가 기도중에 예배가운데 내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부활하신것을 믿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오늘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죽더라도 다시 살것을 믿는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활신앙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을 가지면 죽음도 세상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한국교회안 크리스챤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직분자들이 진정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입니다. 천국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기 때문에입니다. 천국에 상급을 쌓지않고 땅에만 쌓을려고 하니까말입니다. 진짜 부활신앙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되새겨봐야 합니다.
부활신앙은 현실을 넘어서 영원한 천국을 보는 신앙입니다. 이 땅에서 좀 손해봐도 천국에 가면 여호와 하나님이 다 보상해주신다는 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이 부활신앙이 진정으로 없는 사람은 지금도 갈등하고 분열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오늘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생명의 복음을 만천하에 증거하는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주를 만났다는 이 놀라운 확신을 이웃에게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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