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수님의 부활
본문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아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부활이 우리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과일나무의 첫 열매가 중요한 것은…그 다음에 열릴 열매도 그 첫 열매와 같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보면 장차 부활 할 우리들의 몸도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들에게도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놓고…그것이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그렇게 갑론을박하면서 따질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첨단 과학시대입니다.
-이제는 죽은 시체에서 DNA 만 있어도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이 정도라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활은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사건입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
-우리는 이제 부활의 가능성 여부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예수님이 부활을 하셔야만 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초대교회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부활의 소식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신문기사 읽듯이 읽으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받아 드려야 합니다.
-이제는 부활의 신학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활절을 지내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 주장들
-예수님의 부활을 놓고 사람들마다 부활의 의미를 다르게 말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욕정에 사로잡혀 순전한 시골 처녀인 카츄사를 범하고 내버렸던 네흘류도프 공작이 자기가 버린 카츄사가 종신수가 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카츄사를 따라가서 그녀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옥살이를 돌보면서 양심을 되찾는 네흘류도프의 양심회복을 부활이라고 본 것입니다.
“부활은 부패하고 죽은 양심이 깨끗하고 정직한 양심으로 되살아나는 것.. ” 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적인 자아와 이성적인 자아가 있는데... 그 동물적인 자아가 나를 지배할 때에는 결국 죽게 되고... 이성적인 자아가 동물적인 자아를 극복할 때에 그 마음이 정화되고 이성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갱생이며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소설 ‘죄와 벌’ 에서 “부활이란 인간이 이율배반적인 이성의 덮개를 걷어 버리고, 솔직한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세상과 단절된 관계를 바르게 복원시키는 것을 부활.. ”이라고 본 것입니다.
독일의 시성인 괴테,
“실의와 절망에 빠져 사선을 헤매던 사람이 다시 소생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을 부활... ”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단순히 톨스토이가 말하는 양심의 부활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이율배반의 이성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나, 괴테의 말처럼 절망에 빠졌던 사람이 삶의 용기를 회복하는 것... 등 이런 것들을 부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부활을 정신적으로 해석한 것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성서적인 부활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죽음의 극복이고, 사망을 이기고 생명이 승리하는 것이며,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것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죄로 부패하고, 죽었던 육신이 본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지 정신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 육신의 몸과는 전혀 다른 본질로 변화된 몸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신령한 몸이라고 부릅니다.
-부활 후에 10번이나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 이전의 그 몸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몸이셨습니다.
-엠마오 두 제자에게 나타나 같이 식사하시다가 갑자기 살아진 모습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거하던 다락방에 문을 열어 준적도 없는데 갑자기 나타나시고 살아지셨던 그 모습을 보십시오.
-그렇다고 살과 뼈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도 잡수실 수 있는 몸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체를 지니고 계십니다.
-천상의 세계에 살 적합한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부활할 몸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으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신령한 몸을 지니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장차 우리들도 부활하여 오늘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의 그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기를 원합니다.
각자에게 형체를 주신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사도바울이 기독교의 부활교리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한 내용입니다.
-부활절에는 모든 교인들이 꼭 읽으셔야 될 말씀입니다.
-앞부분에서는(1-11절)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성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사도들은 물론이고 당시 500명의 성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중간부부에서는(12-34절) 부활의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성도들의 십자가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바꾸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36-58절) 성도가 장차 어떤 신령한 영체로 부활을 하게 되는지 성도들의 ‘부활의 몸’ 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부활교리이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이 부활주일에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 보셔야 합니다.
-특히 36-58절에 있는 부활의 몸에 대하여 아셔야 합니다.
-바울은 죽었던 우리 성도들의 몸이 부활할 때 입을 신령한 몸을 ‘씨앗 비유’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여러분들은 다 현명하신 분들이므로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읽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고전 15:35-53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여호와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 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이 놀라운 신령한 부활의 몸을 주시려고 오늘 아침에 무덤의 돌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절아침에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아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부활이 우리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과일나무의 첫 열매가 중요한 것은…그 다음에 열릴 열매도 그 첫 열매와 같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보면 장차 부활 할 우리들의 몸도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들에게도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놓고…그것이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그렇게 갑론을박하면서 따질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첨단 과학시대입니다.
-이제는 죽은 시체에서 DNA 만 있어도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이 정도라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활은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사건입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러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
-우리는 이제 부활의 가능성 여부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예수님이 부활을 하셔야만 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성도들의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초대교회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부활의 소식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신문기사 읽듯이 읽으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받아 드려야 합니다.
-이제는 부활의 신학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부활절을 지내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한 부활신앙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 주장들
-예수님의 부활을 놓고 사람들마다 부활의 의미를 다르게 말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욕정에 사로잡혀 순전한 시골 처녀인 카츄사를 범하고 내버렸던 네흘류도프 공작이 자기가 버린 카츄사가 종신수가 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되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카츄사를 따라가서 그녀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옥살이를 돌보면서 양심을 되찾는 네흘류도프의 양심회복을 부활이라고 본 것입니다.
“부활은 부패하고 죽은 양심이 깨끗하고 정직한 양심으로 되살아나는 것.. ” 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적인 자아와 이성적인 자아가 있는데... 그 동물적인 자아가 나를 지배할 때에는 결국 죽게 되고... 이성적인 자아가 동물적인 자아를 극복할 때에 그 마음이 정화되고 이성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갱생이며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소설 ‘죄와 벌’ 에서 “부활이란 인간이 이율배반적인 이성의 덮개를 걷어 버리고, 솔직한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세상과 단절된 관계를 바르게 복원시키는 것을 부활.. ”이라고 본 것입니다.
독일의 시성인 괴테,
“실의와 절망에 빠져 사선을 헤매던 사람이 다시 소생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을 부활... ”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단순히 톨스토이가 말하는 양심의 부활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이율배반의 이성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나, 괴테의 말처럼 절망에 빠졌던 사람이 삶의 용기를 회복하는 것... 등 이런 것들을 부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부활을 정신적으로 해석한 것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성서적인 부활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사는 죽음의 극복이고, 사망을 이기고 생명이 승리하는 것이며,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것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이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활은 죄로 부패하고, 죽었던 육신이 본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지 정신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 육신의 몸과는 전혀 다른 본질로 변화된 몸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신령한 몸이라고 부릅니다.
-부활 후에 10번이나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 이전의 그 몸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몸이셨습니다.
-엠마오 두 제자에게 나타나 같이 식사하시다가 갑자기 살아진 모습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거하던 다락방에 문을 열어 준적도 없는데 갑자기 나타나시고 살아지셨던 그 모습을 보십시오.
-그렇다고 살과 뼈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음식도 잡수실 수 있는 몸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체를 지니고 계십니다.
-천상의 세계에 살 적합한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부활할 몸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으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신령한 몸을 지니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장차 우리들도 부활하여 오늘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의 그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기를 원합니다.
각자에게 형체를 주신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사도바울이 기독교의 부활교리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한 내용입니다.
-부활절에는 모든 교인들이 꼭 읽으셔야 될 말씀입니다.
-앞부분에서는(1-11절) 부활의 역사적인 사실성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사도들은 물론이고 당시 500명의 성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중간부부에서는(12-34절) 부활의 당위성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성도들의 십자가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바꾸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36-58절) 성도가 장차 어떤 신령한 영체로 부활을 하게 되는지 성도들의 ‘부활의 몸’ 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부활교리이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이 부활주일에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 보셔야 합니다.
-특히 36-58절에 있는 부활의 몸에 대하여 아셔야 합니다.
-바울은 죽었던 우리 성도들의 몸이 부활할 때 입을 신령한 몸을 ‘씨앗 비유’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여러분들은 다 현명하신 분들이므로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읽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고전 15:35-53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여호와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 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이 놀라운 신령한 부활의 몸을 주시려고 오늘 아침에 무덤의 돌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절아침에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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