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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본문

벌써 봄이 되어 들판이 온통 파란 새싹으로 물들기 시작 합니다. 조금 있으면 아마 더 파랗게 변할 것입니다. 겨울 내내 땅속에 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고 세상을 향하여 활개를 펴는 계절이 봄입니다. 그러므로 봄은 자연의 부활을 가져오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에서 자연의 부활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만 아닙니다. 하루를 보아도 부활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매일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날들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부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우주만물과 우리의 모든 생활이나 인간의 삶 속에서 이미 주님의 부활은 알게 모르게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천만 년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묵묵히 주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부활을 깨닫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온 세상 만물을 통하여 주님의 부활을 이미 예고하시면서 지금까지도 그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부활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경책에만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봄의 새싹에도 그리하셨다. ” 고 증거 했습니다.
새싹들은 봄의 새 옷을 입고 나오면서 “우리가 죽었었지만 이제 새롭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 라고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죽은 것 같은 것에서 이렇게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죽은 것 같은 씨앗에서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이렇게 부활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이런 원리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죽을 생명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옴으로 인생에게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만민의 죄를 대속하셔서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 사망의 근원이 되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악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모든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새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예수님이 땅으로 가신 것처럼 우리도 땅으로 조금은 긴 잠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금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광명의 새 아침이 밝아 오는 날이 오면 수많은 영혼들은 함성을 지르고 노래하며 새싹처럼 피어오를 것입니다. 어둠이 지나 아침이 오듯이 광명의 새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마음에 영접한 구원을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만 부활의 영광이 찾아올 것입니다.
성경은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살은 사람에게만 부활의 영광은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금천의 모든 성도님들에게 그런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힘 있게 살기 위하여 세 가지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1, 우리의 죽었던 과거를 다시 살리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좋은 것도 있고 생각할수록 나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과거의 나쁜 것들만 기억에 남아서 오늘을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과거의 나쁜 것은 과감하게 떨쳐버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신 것을 내가 왜 갖고 있는가 하면서 부정적인 과거에 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지나날 좋았던 것을 가슴에 떠 올리면서 더 나은 내일을 행하여 힘 있게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나쁜 과거는 좋은 현실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라고하십니다. 죽은 것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미래가 없습니다. 살리는 일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과거에 매이면 앞으로 전진을 못합니다.
자신에게 과거에 잘못한 사람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은 언제나 그 일과 그 사람만을 생각하면서 원수 갚을 일만을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런 사람의 마음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의 인생이 미래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마음에 분노와 불안과 섭섭 귀신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찌 앞길이 열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나쁜 일은 잊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으로 부활시키고, 나쁜 것은 좋은 것으로 부활시켜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이 말은 과거의 부정적인 것을 통하여 오히려 아주 좋은 것으로 부활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는 믿음은 언제나 이런 긍정적인 것을 부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음악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 평가 되는 사람은 바하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바하는 10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는 결혼 한지 13년째 되는 해에 죽었고 그의 자녀 중 한명은 정신박야 이였습니다.
또 그는 노년에 과로로 인해 여러 가지 병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시각장애자가 되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후에는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이 모진 고난과 시련이 거듭되어 와도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성령 충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를 받아 작곡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작곡을 한 음악마다 마지막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글을 꼭 기록했습니다. 바하의 생애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처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난 앞에서도 꿈과 믿음을 잃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미하고 주께 매달렸습니다.
바하에게 고난은 오히려 놀라운 영감을 받는 계기가 되어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받을 때 그 당시에는 고난이 너무나 아프지만 훗날에 보면 그 고난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까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과거의 수많은 고난이 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소리쳤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고난의 현장에 계셔서 그 고난을 변하여 영광으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좋은 것으로 부활시키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으로 부활시키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혹시 과거의 부정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새롭게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새롭게 긍정적으로 부활시키시는 부활의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너의 현재를 새롭게 부활시키라 하십니다.
본문에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뜻은 구원받은 자의 영혼을 살리셨다는 뜻입니다. 또 성도의 영혼 속에 그리스의 생명과 똑같은 영생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셨다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이 순간에 그의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살았으므로 너희가 살리라” 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영원히 다시 사는 은혜를 얻은 사람은 오늘 현재적인 부활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힘 있게 삽니다. 용기 있게 삽니다. 절대적으로 낙심과 좌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우리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믿음이 현재적 부활인 것입니다.
두 친구가 사막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주님을 잘 믿는 사람이고, 한 친구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한없이 내리 쬐입니다. 물이 없어서 고통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에 주님을 믿지 않는 친구는 항상 불만을 말합니다. “죽겠다. 큰일이 났다. ” 하면서 환경도 어려운데 더욱더 마음까지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포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친구는 위로를 하면서 계속 여행을 합니다.
한참 뜨거운 태양 때문에 고통스러워 할 때 앞에 무덤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친구는 하는 말이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이제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곧 죽을 거야”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친구는 “무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 라고 말하면서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계속 전지합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이 나타나서 모두 다 승리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은 오늘 현재적인 어려움을 이기면서 부활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현재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사람의 편이십니다. 그런 부활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아프리카의 개척자이며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오랜만에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글라스고 대학이 수여하는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강당에 나타난 그는 몹시 쇠약해 보였습니다.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사자에게 물린 그 아프리카 특유의 심한 열병으로 스무 번이나 쓰러졌던 것입니다.
이날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 다시 돌아갈 것을 언명하자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극심한 고생과 죽음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리빙스턴의 조용한 연설은 이렇게 맺어졌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걸어가 주시는 부활의 주님이 계시므로 어떤 고독과 고통도 이길 수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은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의 고난을 이기는 것입니다. 죽음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처럼 여러분들에게 있는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현재적인 부활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우리의 미래를 소망으로 꿈을 꾸라 하십니다.
부활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들었던 제자들의 발걸음은 용기와 희망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힘 있게 달렸습니다. 그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용기 있는 사람의 자세는 비록 제자들만의 자세가 아닙니다. 오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의 삶의 자세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용기와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부활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라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하십니다. 유독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희망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향하여 놀라운 비전의 화살을 힘 있게 날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불평과 원망과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 안에 예수님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듯이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어느 날 길거리를 가다가 새장 안에 있는 새를 괴롭히는 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애야 이 새를 어떻게 할 거니” 그 아이가 대답하기를 “조금 가지고 놀다가 죽여 버릴 거예요. ” 그러자 새가 너무 가엾게 여긴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 돈을 주고 그 새를 사게 되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그 새를 샀지만 목사님은 그 새를 새장 밖으로 날려 보내 주었습니다. 새는 자유롭게 하늘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 빈 새장처럼 빈 무덤을 남기신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이 날은 바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축복의 날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죽음의 새장에서 꺼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장을 나온 새처럼 우리의 미래를 향하여 힘 있게 날아올라야 합니다. 오늘 죽음과 같은 어려움과 환경에서 부활을 하여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더불어 미래를 창조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꿈과 믿음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 꿈과 믿음이 그를 이끌어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지금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부활시켜가는 사람이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미래는 우연히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꿈과 믿음으로 잉태하여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민족의 미래는 현재 어떤 믿음에 의한 꿈을 부활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2:28)”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성령이 여러분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믿음으로 미래의 대한 꿈을 품은 사람이 미래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증거를 무엇으로 보여 줄 수 있습니까 한가지입니다. 어떤 어려움과고난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래를 계속적으로 창조해 가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처럼 죽음과 같은 환경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부활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미래는 열려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행하십니다. 그런 삶 자체가 믿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은 것 같은 과거가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과거를 부활시켜서 축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을 부활시켜서 행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과 희망으로 부활시켜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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