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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부활의 진리를 믿고 삽시다

본문

승리의 그리스도, 우리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며 마지막 승리를 거두시고 죽으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주님께서 직접 이루신 일이요 승리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이루신 일이 있습니다. 죽기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여 자기 생명을 바치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대속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신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입니다(행 4:10).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승리를 선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을 듣는가 하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에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사 예수님의 궁극적 승리를 확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선언을 듣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둘이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 2:13-15에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말씀했고, 롬 7:4에는 예수님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된 것을 없애기 위해 온전한 화목제물로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제물과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복음을 안겨줍니다. 첫째로, 예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다 사해주셨다는 확증입니다.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는데 죄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볼 때 우리 죄가 다 도말된 것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흑인 그룹 Jubilee Singers가 노래합니다. “나의 죄들이 없어졌음을 나는 아네. 그것들은 깊은 바다의 심연 속에 빠져버렸네. 죄인들이여,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사죄의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입니다. “말을 믿어 죄 사함을 받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1-23). 여기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그 직장에, 그 학교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죄사함을 받은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을 그 가정에, 그 교회에 보내신 이가 바로 주님이십니다.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요 16:33에 예수님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이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마귀의 훼방으로 조금 늦어질 수는 있지만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단 10:12-14을 보세요.
“다니엘아 네가 기도한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왔노라”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마세요. 여호와 하나님은 풍랑이 인다고 배 안에 숨어 있는 것보다 용감하게 물 위로 걷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인격의 성령님을 내 실존 속에 모시면 인생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무슨 일이든 담대한 마음으로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셋째, 복음을 증거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내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요 17:4)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내 삶에 떨어지는 부스러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은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나답게 사는 것입니다(selfhood and wholeness en Imitatio Christi). 꿈과 야망은 다릅니다. 그리스도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은 꿈이요 그리스도가 역동적으로 함께하지 않는 것은 야망입니다. 꿈이 선명한 사람은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고 사랑할 때, 섬김과 나눔을 실행할 때, 받은 은혜의 말씀을 나눌 때, 내게 주신 달란트를 사용할 때,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 권세있는 복음이 증거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막 16:16).
 둘째로, 예수 부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는 확증입니다. 의라고 하는 것은 죄가 없는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자격입니다. 예수님의 대속 사건은 사죄 이상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속죄제물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속죄를 포함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화해하는 화목제물로 받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성경 롬 4:25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죽음이 단순히 무죄한 죽음일 뿐만 아니라 의로운 죽음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죽기까지 온전히 복종하셨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셨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심으로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부활을 볼 때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로우시며, 예수 믿는 나도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된 것을 봅니다(롬 4:26).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장 모든 일을 그치고 쉽니다.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예수 믿음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칭의 속에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칭의의 안식이 있을찌어다” 주님의 음성입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34). 성령님의 음성입니다.
 셋째로, 예수 부활은 이제 우리에게 새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확증입니다. 고후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말씀합니다. 이전 것이 지나갔다는 말은 과거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영향이 현재에 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압박에서 해방되었고, 과거의 상처가 치료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과거에 매여 삽니다.
과거의 실패와 범죄에 대하여 전전긍긍하고 두려워합니다. 사도 바울이 딤후 1:7에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사도 요한도 요일 4:18에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 8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대답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를 고발하고 정죄하는 자들이 없는 데도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은 생각의 최후 확증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자신을 계속 정죄하지 맙시다.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을 마음을 다해 신뢰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시간부터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에서 해방되었고 범죄의 기억에서 놓여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육신의 연약과 죄성으로 늘 죄짓고 실수하던 우리가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극복하고 마귀와 정욕과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로 살 수 있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출발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옛 사람이 연약하여 할 수 없던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성령으로 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자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 기회와 자유란 말의 중요성을 놓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잘 선택하지 못하면 기회는 놓쳐버리고, 자유는 어지럽게 맴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의 출발도 중요하지만 그 진행은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삶의 선언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은 더 중요합니다.
예수 부활 안에서 시작된 더욱 풍성한 새로운 삶의 내용을 위하여 먼저 여러분과 저는 날마다 자기를 주님 앞에서 부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롬 6:10-11에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고 했고,
고후 4:10-11에는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밤이 오고 아침이 오듯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죽음이 온 뒤에 생명이 옵니다. 예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없어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질병과 노화는 사라지고 건강과 청춘이 다가옵니다. 예수 죽음을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예수 생명의 현상과 열매들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새생명으로 거듭났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승리는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삶 가운데, 일과 사건 속에 늘 나를 부인하고 주님께 순종해야합니다. 나는 종이 되고 주님은 주인이 되고, 나는 신하가 되고 주님은 왕이 되어야 합니다. 한 훌륭한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든 마귀를 대적하며 승리하였습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나는 승리를 소유하지 않고 승리자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서는 늘 패배했지만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과 함께할 때 나는 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부인하십시오. 살아 계신 주님께서 크신 왕으로 임재하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랑과 권능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고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와 기회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부활의 진리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면 반드시 다시 얻고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구원과 삶의 근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그 죽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희생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30, 60,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신 부활의 진리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증명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으심으로 천천만만의 성도를 얻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 사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희생한 것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는 성도들도 신앙 때문에 세상에서 따돌림을 받을 때 “이거 이렇게 손해 보고 마는 게 아닌가”하는 피해의식을 종종 가집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를 위하여 희생하고 양보하면 부활하신 주님께로부터 반드시 다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본문 눅 9:24을 보세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전엔 “죽으면 살리라”는 부활의 진리가 희미했기 때문에 나의 생명을 아꼈습니다. 그러나 죽음 뒤에 부활이 있고, 이 세상 후에 영생이 있는 것을 안 다음에 우리는 기꺼이 주를 위해 이 세상에서 나를 부인하고 주의 뜻을 따라 희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세요.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은 자기변명에 빨랐습니다.
자기만족이 삶의 목표였기 때문에 주인의 존재가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주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자기 입지만 세웠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도 주인이 명하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지만 그는 종으로서 무책임했고, 도무지 주인에 대한 봉사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주인이 믿음이 없어 불순종한 종을 엄하게 책망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청개구리 같은 인생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6-30절). 스스로 자기 입지를 좁게 만든 종은 마침내 주인의 나라에서 쫓겨납니다. 늘 거꾸로 가는 청개구리 같은 인생이 되지 맙시다.
 둘째 본문 요 11:16에서 회의주의자 도마가 문득 한소리 합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사도 도마가 일시적인 사랑의 충동으로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의 입술에서 나온 진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 부활의 진리를 믿는 성도의 삶을 대변해 줍니다. 사도 바울이 딤후 2:11-12에서 말씀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자꾸 죽는다고 하는데 정말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즉각 낙원에 들어갑니다. 강도도 회개한 날 낙원에 들어갔는데 믿는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죽어서 들어갈 낙원은 이 세상 삶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눅 16:23-25을 보세요.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숨겨진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은 부자는 음부에서 괴로움을 받고, 세상에서 고난을 받은 나사로는 낙원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이 땅에서 주와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죽으셨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죽으면 산다는 부활의 진리 때문에 그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죄의 평안을 주시고, 칭의의 안식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주셨습니다.
이 새로운 삶이 승리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크신 왕으로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새로운 삶이 풍성한 삶이 되려면 나를 희생하고 주님과 함께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신 여러분이시여, 예수님처럼 죽으면 산다는 부활의 진리를 따라 사십시오. 분명코 여러분은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 부활의 열매가 30, 60, 100배 아름드리 맺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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