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찢어야 산다
본문
부활절은 제일 행복해야 할 시간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부활절. 추수 감사절 성탄절에는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큰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여러 사람이 많은 스승을 두고 행하나 너희 스승은 나 하나뿐이라고 하십니다.
그 스승이 너무 많이 울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찢어야 산다. 입니다.
지나 주간에 너무 많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해야 할 사명을 돌아보게 하시고 주님을 돌아보게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막 15: 3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그러나 죽지 않으면 밀알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부활은 죽어야 다시 살 수 있고 죽어야 다시 삽니다. 우리는 과연 죽었습니까 (요한복음 12:24 )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의미와 교훈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주심)
예수님이 십자가의 완전히 못 박혀 달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돌아가셨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경에 레위기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 여호와 하나님의 지성소는 주님
이 임재하신 곳이며, 언약 법궤가 있는 곳입니다. 그다음 성소가 있고 그 전에는 성소 마당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당만 밞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회개를 하고 , 성령을 받고 성소로 들어가서 성소에서 지성소로 나가는 절차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소의 휘장을 찢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달려 돌아가셨고, 우리 죄를 한 번에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가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은 철저히 찢기셨고 십자가의 못 박히셨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아래로 찢어져야 합니다.
너희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우리가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지고 돌아가셨으니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시지는 않으셨어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주여 부르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1)
너희가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철저하게 주님의 믿음가운데 확실히 죽은 다음에 부르는 것입니다. 그냥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는 신앙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신앙을 고백하는 자가 합당한자인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찢어졌습니까.
아침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다.
밖에서 엄청난 소리란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전쟁이 났는지 죽어 가는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어다가 못을 박는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데모 하는 소리. 잔인한 소리 무언가 너무 너무 밖을 나가려고 하는데 소리가 들렸습니다.
“밖에 나가지 말고 너 집안 청소하라”는 소리였습니다.
이런 세상이 복잡하여 나가서 무슨 일인가 가봐야 하는데, 거기 관심 갖지 말고 너 집안 청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무슨 집안 청소인가. 그래서 주님 시키는 대로 집안 청소하는데 집안이 아니라 교회였습니다.
교회인데 제가 빗자루 가지고 끝에서 끝으로 청소를 하는데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에
못이 하나도 박여 있지 않고 못이 다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갈라디아 5:4절 말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의 못을 박았느니라. 육체는 무엇입니까. 그대로 육체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육체. 정. 욕심까지 십자가의 못 박아야 합니다.
육체의 원어는 -육신의 육체도 육체이지만 짐승의 육체도 육체로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없으면 짐승의 육체나 우리 육체나 하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나마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성전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에 거룩한 육체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고깃덩어리와 다를 것이 없어요.
“그래서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시편 49:20)
우리 육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정 -혼적인 마음에 있는 것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아닌 인간적인 것. 마음에서 나오는 정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정. 혼적인 것을 십자가의 못 박으라고 하십니다.
욕심을 못 박으라-탐욕. 정욕 이 세상에서 나오는 우리를 모두 위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 박으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를 박고 ,우리 감정이나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혼적인 것을 박고,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모든 인간적 탐욕을 못을 박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사실 수 있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가 사는 겁니다.
그런데 아침에 은혜를 주시는데 여러분이 앉은 자리에 못이 아주 전혀 박혀진 흔적도 없는 새 못들이 그냥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손발이 떨려서 과연 설교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마음도 심장도 떨려서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눈물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적인 것. 내 육체적인 것 내 감정적인 것 다 박으라는데 도대체 못이 박혀진 것도 걷어 내는데 보니까 못이 다 새 못 그대로입니다.
어떤 것은 박히려고 한 흔적도 뒤에가 꼬부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못이 여러 가지에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약간 큰 것까지입니다. 심지어 어떤 것이 있냐 하면 호치켓을 찍는 그런 것도 스텐플러라는 것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못으로 박으라고 하니 그런 것으로 박고 그것이 붙어 있겠어요
조금만 걱정이 되고 근심이 되면 그냥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그냥 박히다가
꾸부러진 상태로 떨어져 있는 겁니다.
십자가에 박혀야 우리가 죽는 것이고 죽어야 사는 건데 그냥 밀알 그대로 있는 거예요.
여러분! 열심히 나름대로 열심히 박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 아닐까요
아니면 내가 어느 부분 박았다고 생각하고 어느 부분은 박혀 있을 수 있지만 그 못이 다시 떨어진 것은 아닌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대못으로 박았습니다. 정말 죽으셨고 그분은 죽으실 분이 아닌데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위에서 찢어졌으면 밑에도 찢어야 살잖아요.
주님께서 반석을 쳐서 깨뜨려야 물이 나온다.
찬송가의 가사 중에 “ 물가지고 씻기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반석도 물이 계속 씻기면 부딪치면 깎여요.
아니면 “불가지고 태우든지. 물가지고 씻기든지 방방이로 부수든지. ” 우리가 깨져야
거기서 물이 나오고 생수가 나오는데 깨지지가 않았어요.
오늘 육체와 함께 정도 욕심도 다 십자가에 박혀야 합니다.
물론 어느 부분은 박히신 분이 있겠지요. 그러나 철저하게 다 박히시기 바랍니다.
나의 흔적이 없도록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기에 너무너무 편안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죽지 않는데 어떻게 부활이 있습니까
많은 교회들은 부활의 대해서 반겨하고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그게 다른 사람의 축제만 되면 됩니까. 그게 내 축제도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감사가 되고 나의 생명의 부활이 되고 나의 관계된 부활이 되고 주님 부활하셨으니 나도 부활할 수 있는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철저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온전한 믿음 온전한 주님 바라시는 신앙의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쩌라고요. 여러분!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는 않는다면 그 말씀이 우리를 심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과 주의 잔과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주의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1:27)
우리는 지금 너무나 편안한 삶속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 무슬림이나 중국 북한, 인도, 어떤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이제 전파되는 곳에서 받는 핍박. 그 순교를 당하면서 피를 뿌리는 그 사람들의 비해서 우리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정말 죽고 나와 함께 부활하고 나와 함께 합당한 삶을 살고, 네가 내 안에
내 안에 네가 있으면 이것은 정말 네가 외치는 감사가 되고 네가 부르짖는 기쁨이 되고
네가 천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너희가 그런 평안함 속에서도 이 신앙을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늘 말씀대로 철저하게 찢어지지 않고 깨지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아벨의 피를 흘린 피부터 시작해서 사가랴의 흘린 피까지 이 시대가 다 담당해야 된다고,
오늘날 내 피를 마시고 내 떡을 먹는 자를 그 피가 그 살이 정말 주님 살이 되지 않고 주님의 피가 되지 않는다면, 너희가 지금까지 먹은 잔과 그 떡이 너를 심판할 것이다.
“천육백 스타디온의 그 피가 퍼졌는데 높이가 말굴레 까지 닿았더라. ”(요한계시록14:20)
무슨 말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부으시면서 우리가 변화되어서 들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이 흘리신 피. 선지자들이 흘린 피 우리의 선조들이 흘린 순교의 피를 우리가 다 감당하고 우리가 흘려야 된다는 거예요
결코 편하고 안전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결코 지금 다했다고 우리가 착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쩌면 옛날 시대의 살던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살던 사람이 차라리 복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잘 믿든지 거듭 날 수 있는 어떤 입술로 부르짖고 조금 거듭나던지 많이 거듭나던지
어쨌든 나머지는 주의 이름을 부르다가 심판에 설지, 버림을 당할지 인정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입술로 부르든 마음으로 믿든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수님 재림의 상관없이 들어간 사람들은 주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요.
편안하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편안 하지 않고, 지금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 시대 사람들, 차라리 지금이라도 주님 오시기 전에 차라리 죽으면 자금이래로 주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환란에 넘겨지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손에 빠지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죽은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겠지요. 물론 천국은 가야 하겠지요.
지옥 간 사람은 어쨌든 불쌍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 생각할 게 아니라 이시대의 우리가 들림 받지 못하면 적그리스도의 붙여져서 결국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큰 환란가운데 빠져서, 모든 선지자들이 흘렸던 피를 남은 사람들이 대신해야 된단 말이에요.
지금이 얼마나 더 주님 앞에 더 경성할 때요 .
근신하며 회개할 때요. 얼마나 깨지고 부서질 때요 우리가 찢어야 할 때요.
지금이 주님 앞에 녹아져야 할 때 인줄 믿습니다.
철저하게 우리를 돌아보세요. 한번 돌아보세요.
한번 어떤 모습이 못 박혀 지지 않았나.
옛날에는 박았는데 지금은 또 어떤 부분이 못이 빠져서 다시 인간의 근성이 역사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25)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행한다면 인간의 본성의
격동하는 것. 분내고. 흥분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남은 다 우습게 보이고. 그러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제가 쓴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시.
날마다 죽어라. 내 마음이 섭섭한 것은 내가 아직 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화가 나는 것은 내 혈기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은 내 지식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가 인정받기 원하는 것은
내 속에 교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바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죽지 못했습니다.
죽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도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나는 육신의 옷을 벗은 후에 온전히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으로 영광스로운 부활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내가 죽기를 소망합니다.
남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내 집안 청소를 하세요.
다른 것 필요 없어요. 그냥 죽어요.
매일 죽으세요. 날마다 죽으세요. 사도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 했듯이 바울이 그 정도로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면 우리는 정말 시간시간 마다 분초마다 죽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격동하지 마세요. 혈기부리지 마시라고요.
분내지 마세요.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제발 좀
인간의 육신의 생각을 나타내지 마세요.
투기하지 마세요. 투기라는 것은 무업입니까. 질투하고 시기 하는 것.
미워하는 것. 다투고
자기 아니면 마치 안 되는 것처럼 판단하고 우리 모습을 돌아보세요.
지금 이 말 가운데 아 ! 나는 아직 이것을 못을 박지 못했구나. 아 나는 이 부분을 십자가의 못 박으려고 생각도 못했구나. 이제야 못을 박아야 되겠구나. 무언가 주님 앞에 자기를 살피면서 계속 못을 박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보다도 우리가 심판을 먼저 여기서부터 먼저 시작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큽니다.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맞을 일을 행했어도 적게 맏는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이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율법에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율법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회개하면 성령으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어요. 그러나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을 가지고, 성령을 범하는 죄를 짓고 성령의 맛을 보고 성령의 참여한바 되고 여러 가지 경험과 이적과 이적을 맛보고,그리고 나서 돌이키는 자는 사함이 없다고 그러셔요.
더 많이 맞을 것이라고 말씀 하세요
물론 우리 교회 오시면 많은 영혼이 회복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은 아직 영이 미치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육신의 죄를 회개하고( 육신의 죄는 몸밖에서 드리는 것) 그러나
성령의 죄는 (몸 안에서 드리는 것) 우리는 지금 성령의 간음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여기는 영적인 교회라고. 여기서 많은 영이 회복이 됩니다. 눈물이 회복이 되고 많은 그런 소리를 하세요.
회개가 회복이 되고 꿈이 회복이 되고 어떤 주님과 그런 은혜가 회복이 됩니다.
여기서 죄짓는 것은 율법 밖에서 죄짓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귀신 하나가 떠나가니까 나중에는 귀신 하나가 떠나서 가서 물 있는 곳을 구하다가 없으니까 다시 돌아와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 형편이 더 어려운 것처럼
영적인 삶속에서 살던 사람은 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더 많이 죽어야 되고,
날마다 죽어야 되고 ,더 깨져야 되고 찢어야 되고, 더 많이 우리가 주님 앞에 거듭나고 변화가 되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격동하고 투기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투기하고 격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격동하고 투기하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거듭나고 변화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못 박아서 날마다 죽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합당한 그런 삶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사람을 보면서 자기가 더 성찰하고 자기를 더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감사해야 되요. 예를 들어 보면 죄가 하나도 없고 완전한 사람만 있다면 한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괜찮은 것을 보면서 자기는 더러운데도 자기 모습을 못 보니까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깨끗한 줄 압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때는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 모습일 수가 있겠구나, 나는 저러면 안 되겠구나, 하며 자기가 그 속에서 경성하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자기가 더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자기가 이겨서 다스려서 이겨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봅니다.
모든 만물을 통하여서 항상 주님과 연결을 해서 더 주님 앞에 나은 사람이 되려고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론 다 죽을 수는 없어요.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예수님께서 근본적인 원죄는 해결해 주셨잖아요.
그래도 나의 모든 것이라도 마음을 찢을 수 있고 내 생각들이 격동하는 것들이 내 미움 시기 질투 다툼 욕심 .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런 육신적인 것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날마다 또 못을 박고 또 못을 박고 , 그것을 위해 온전하기 위해 주님 앞에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 기도드리고 또 기도드리고 하면서, 지금 내 집안 청소할 때지 남 지금 나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십자가 끌려가서 달리고 난리를 치고 전쟁이 나서 나라가 두 쪽이 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짚고 너머 가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내가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지상명령, 이게 몸 된 교회 나 자신 아니겠어요. 할렐루야!
나를 돌아볼 그런 상황이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를 가득 맺어 드리는 거예요.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사랑도 거룩하고 아름답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아름답고.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희락도 좋고, 내 마음이 주님 때문에 평안한 것도 좋지만
나는 오래 참는 것도 그것도 인격이고 신의 성품의 참여 하는 거고 이것도 아름다운 고귀한 우리의 신앙 모습인 것 같아요
오래 참을 수 있는 것, 그다음 남도 불쌍히 여기고 긍휼이 여기고 자비가 있고 양선이 있고 충성이 있고 온유가 있고 마지막이 절제가 아니겠어요.
오래 참음과 절제도 비슷한 말씀인데 절제할 줄 알아야 되요
이것 아니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못 박은 사람은 절대로 주님의 은혜로만 만족해야 하고
주님의 사랑가지고 사랑하고,
주님의 기쁨으로 기쁨을 삼고,
주님의 소망으로 소망을 삼고,
주님의 마음이 슬플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고,
주님께서 기쁠 때 같이 웃을 수 있고.
주님과 늘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생각이 주님한테 있는 사람은
이 것 아니면 안 돼. 이사람 아니면 안 돼. 이 직장 아니면 안 돼. 이 학교 아니면 안 돼. 이것 아니면 안 돼. 자기의 욕심이 없는 사람은 못을 박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이 우상이 되고 공부. 재물, 명예, 직장 ,집이 우상이 되면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것들이 우상이 되어가지고
내가 살아야 될 나는 살리지 못합니다. 이런 속에서 이것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주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내어 드려야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자기가 꼭 틀어쥐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셔도 믿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먹으면 주님이 그 심령가운데 들어가셔서 역사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없을 때 간청의 기도하기
내가 마음을 드리고 여호와 하나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저 주님 믿고 싶습니다.
근데 안 믿어지는 거예요. 주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그 때부터 주님께서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시고 환경을 열어주시고 사람을 붙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인도하시는 건데 내 마음이 절대 믿을 마음이 없는데
주님이 어떻게 그 속에 들어가셔서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마음이 변화 되려는 마음이 없는데 찢으려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죽으려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깨질려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거듭나려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주님이 그 속에 들어가셔서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요.
못 박았다가도 주님 잠깐만이요. 다시 주세요. 하며 다시 뜯어가지고 자기 식대로 하고
또 때 되면 이건 안 되겠는데 기도하며, 이거 걸리는 것 같아. 그러면 다시 박았다가 못자국도 뺏다 박았다 하면 구멍이 커져서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주님이 이 말씀을 왜 주시느냐 하면 이 마지막 때 엄청난 큰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많은 책을 보고 많은 소리를 듣고 많은 좋은 설교를 듣고 인터넷에서
T. V 에서 어마어마한 설교를 들어요. 듣고 나니까
여러분이 아는 게 너무 많다보니까 자기가 아는 것이 많아서 믿음이 많은 줄 아는데 가슴은 하나도 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가슴은 하나도 찢지를 않은 거예요. 찢으려고 생각조차도 안하는 거예요.
죽지 않는데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죽어야 부활을 하는 거지. 아침에는 저를 돌아보았어요. 주님 사실 저에요.
여러분 !지금까지 주님의 성찬에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셨습니다.
주의 몸과 주님의 피를 우리가 지금까지 먹었습니다. 그만큼 먹었으면
그러면 주님의 살로 주님의 피로 변화가 되었으면 뭔가 주님과 함께 죽으심으로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다시 주님과 함께 부활로 연합한 자가 된다고 다시 살리심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 속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죽어야 연합해서 죽어야 연합해서 다시 부활 때 다시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나이다.
이제 믿음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여러분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은 더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고 기도하면서 얼마든지 날마다 죽을 수 있어요
죽으려고 하는 모양이라도 내던지, 찢으려는 모양이라도 내던지 무언가 깨뜨리려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라도 있던가, 철저히 우리를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듣고 변화되지 못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심판을 시작하시는데 먼저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시는 것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성전에서도 목사부터 시작해서 제일 오래 믿고 중역들이 심판을 받는 거예요. 거기부터 심판이 시작 되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를 물으실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찾을 실 때 우리가 썩지 못한 밀알로 내어드리는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아니라 하다못해 썩는 시늉이라도, 죽어가는 시늉이라도 주님 앞에 보여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내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내어 드리는 거예요
지금까지 주님과 같이 살았던 주님 때문에 어떻게 기뻐했고,
주님 때문에 얼마나 사랑을 알았고 주님 때문에 세상의 기쁨이 아닌 이 육체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아닌 주님 기쁨 때문에 살았고, 나중에 결산할 때 내가 주님과 동행해서 주님 것으로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드립니다. 라고
주님이 주신 주님의 이익을 남긴 달란트를 주님께 내여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영혼이 죽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를 내 영혼을 받으시겠고
내 영혼이 주님 앞에 받아지지 않는데 내 찬양이 올라가겠고 내 예배가 올라가겠고
내 기도가 올라가겠고, 내가 드려지지 않았는데 헌금이 올라가겠습니까. 나도 드리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나를 받으셔야 찬양도 받으시는 건데 오늘은 양심이 찔리니까 찬양도 드릴 수가 없드라구요
정말 내가 받아져야 찬양도 받아지는데-찬양도 계속 받으시다 보면 주님이 받으시겠지만
어떤 것을 먼저 드려야 된다는 순서는 없지만 어쨌든 뭔가를 주님께 끈임 없이 드리고
우리가 계속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우리가 변화되는 모습 우리가 없어지고 주님의 것이 채워지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물론 믿는 사람들이 가고 변화된 사람들이 가는 건데
,천국은 선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할렐루야!
선하고 아름다운 변화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주안에서 주님 오시기 전에 죽는다면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가지고 가서 위로를 받으시겠지만, 그러나 이쪽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주님의 모습을 닮지 않고, 주님의 선한 모습을 입지 않고 어떻게 세마포를 입지 않고, 우리가 주님으로 입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어요. 옷을 입지 않고 오면 쫓겨나잖아요.
선한 사람들이 그 곳에 가는 거예요. 거기는 악한 사람은 있을 수 없잖아요
선한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인데 내가 여기서 변화가 안 되었는데 올라가다 변화되나요.
올라가서 변화 되나요. 아니잖아요.
여기서 변화된 사람이 가는 거잖아요
그곳에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만 있는 곳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격동하고 투기하고, 십자가의 자기 정과 욕심과 자기 육체를 십자가의 못 박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갈 수가 없는 곳이에요.
그 다음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이에요. 거기 가면 슬픔과 눈물이 왜 없을까요.
거기는 주님께서 위로 해 주시고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 되시기 때문에, 슬픔과 눈물이 없어요. 그곳에는 -주님이 항상 거기서 위로해 주시니까 눈물을 흘릴 일이 없죠.
그러니까 이곳에서 위로를 받는 자가 그곳에 가서도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고 슬픔이나 아픔이나 고통스러운 것이 다시없는 거예요
여기서 위로를 주님 앞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거기 가서 받죠.
여기서 성령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찬양의 노래를 배운 사람들이 거기 가서 찬양을 부를 수 있는 거예요. 갑자기 여기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거기 가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요.
여기서 144000의 수가 새 노래로 찬양을 드리는데 주님께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배우지 않으면 거기 가서 배울 수 없고 거기서도 부를 수가 없어요.
여기서 배운 사람들이 거기 가서도 부르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여기 있는 믿음을 보세요. 육체로 있을 때 이 믿음을 보는 거예요.
그곳에는 우리 주님이 기업이시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요.
주님께서 제게 이런 감동을 주셨어요.
네가 나를 위해 울어주면 너의 삶에 눈물이 없게 할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해주면 너의 삶에 모든 멍에를 쉽게 하고 너의 짐을 가볍게 할 것이다.
너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자
성령 받아 놓고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아직 영을 알지 못하는 육체 가운데 사는 서머나 교회는 육체는 열심히 일하는데 성령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사단의 깊은 곳도 알지 못해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굉장히 상이 많아요.
물론 성령으로 우리가 나서 성령을 따라 행하면서 성령으로 승리해가지고, 이제 성령 안에서 인정받고 성령 안에서 축복받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제일 상급이 크죠.
그런데 성령 받고 감당 못하는 버가모 교회보다도 차라리 율법으로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
정적이고 ,인간적이고 양심적이고 성령으로는 거듭나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육신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령 받고 감당 못하는 버가모 교회보다 훨씬 낫다는 예기에요.
우리가 준비할 것
여러분 우리가 특별히 다른 교회보다 더 정신 차리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마지막 때 엄청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지식이 있지만 여러분이 그 지식 때문에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많은 스승을 두고 일하지만
그러나 우리심령이 변화도 되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고 계속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정말 여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변화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성하는 것. 내가 변화되고
주님이 주시는 사명들을 오늘 가장 거룩한 선한 영혼을 살리고,
마지막 때 주님의 이 땅에 지상명령하신, 주님의 오시는 길을 우리가 더 예비하고 주님의 오시는 길을 더 평탄케 해드리고, 주님의 오시는 길을 더 만들어 드리는 우리가 마지막 말세에 지점에 우리가 지금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오죽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2010년도에 주시는 말씀이, 왕 앞으로 나가는 에스더 같이 너희는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이 부활절에 주님이 여느 때 처럼 보내실 리가 없어요.
2010년도부터는 인사도 “마라나타라”고 말씀하시고 표어를 주시는데
입술의 문을 지키라고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많이 알고 어쩌면 그렇게 잘 알고, 어쩌면 그렇게 똑똑하고 어쩜 그렇게 욥이 한 말처럼 네가 죽으면 의인이 다 죽겠구나. 과연 의인은 너 하나로구나.
여러분! 차라리 그냥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을 걱정하는 게 어떻게 보면 순수해 보여요. 영까지 거듭났다는 사람들이 그 못도 제대로 박지 못하고 마치 박은 줄 착각하고 자기만 의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앉아가지고 교회 판단하고 믿는 사람 판단하고 격동하고 , 투기 하고 헛된 영광구하고,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서 몇 가지는 있는지 몰라도 하나 맺는 사람이 9가지 다 맺는 거예요
한 가지 두 가지 서너 가지 있다고 착각하지만 9가지 다 맺지 못하면 없는 거예요
오늘 저는 이렇게 설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더 감사하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부활이 복음을 증명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바로 알자 부활의 감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하심 죽으심. 부활이라는 것은 죽음에서 무덤에서 다시 일으키다라는 뜻이라는데 이 말씀을 어제 저녁까지 준비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제 말이 쓸데없는 말이 될 뻔 할 거예요.
죽어야 무덤에서 일으키지. 죽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일으켜요.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그 길은 십자가의 못 박히기 위해 가는 길,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죽어라. 죽어라.
말라기 2장 1절에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진리의 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리의 법이 있어요.
그리고 입술에는 우리의 불의함이 없습니다. 맞습니까. 입술의 불의함이 없어요.
혹시라도 있다면 불의함이 없어야 될 줄 믿습니다.
진리라는 것이 예수님이잖아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생명이 뭐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 뭐고 우리가 구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법아래 있습니다. 알았으면 행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듣는 자도 복있고 읽는 자도 복 있지만 행하는 자가 더 복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켜 행한다는 것은 : 완전히 붙잡다. 꽉 붙잡아서 그것을 우리가 행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진리의 법이 있어요. 우리가 있어야 될 것은 입술의 불의함이 없어야 되요
불평과 원망과 격동과 어떤 그런 투기가 없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속에서 선한 것이 있으면 그 선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선한 것이 있으면 입으로 선한 것을 말하게 되어 잇습니다.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했다고 그랬어요. 화평과 정직함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시고 ,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는 일을 했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마지막에 지금쯤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 하면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전 것은 다 되어 있어야 되요.
온전하진 않지만 적어도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어느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겨자씨가 더 큰 나무가 만들어 지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새들이 공중에 깃들고 가지가 만들어 지고 공중에 새들이 깃드는 건데, 결국은 이것이 다 되어 있어야 되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게 해야 될 지금 시점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큰비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내가 변화가 돼야 우리가 전하는 모든 것들이 열매를 맺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물론 월요일 날 주신 은혜도 너만 잘하면 돼. 너만 잘하면 많은 면류관을 얻을 수 있어. 여러분! 우리만 잘하면 돼요.
⅓내가 죽어지면 내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죽어지는 그런 천국에서 소문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하나하나 보아도 어느 영혼하나가 예쁘지 않은 영혼이 없을 정도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록될 만한 교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데, 우리 교회 ⅓ 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영혼만 있어도 우리교회 전체가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 물어 보세요.
옆에다 많은 스승을 두지 마세요. 많은 소리를 듣지 마세요.
오직 주님의 소리만 들으시기 바래요. 우리는 너무 많은 곳을 물어 보려고 그래요. 여기 가서 물어 보고 저기 가서 물어 보고 심지어는 결혼하는 것도 물어 보고 직장 가는 것. 집사는 것도 물어 보고 어디 가서 자기 인생도 물어 보고 다 물어 봅니다. 제 인생 제 것인데 제가 책임져야 되는데 이거 해야 되요. 말아야 되요. 이 사람과 결혼해야 되요 말아야 되요. 자기가 살 건데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왜! 어려서부터 교육이 안 된 거예요. 어려서부터 너무 부모가 치마 속에다 가두고 무엇은 어떻고 심지어는 “엄마 나 화장실 가도 돼” 별걸 물어 보게 가르쳤어요.
어느 것 하나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해가지고 하는 것이 없어요. 독립심이나 자립심을 키워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예수님도 절대로 성경에서도 다른 곳에 가서 물어 보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물어 보면 되요
여기 가서 물어 보고 저기 가서 물어 보고 여러 스승을 두고, 그리고 행하나 우리는
예수님 하나 스승이 있으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계속 물어 보세요.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줄 아세요. 안 물어 보니까 말씀하지 않는 거예요. 구하지 않으니까 안주시는 거예요. 찾지 않으니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거예요.
제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곳에 여러분이 소리 안 지르면 주님께서는 돌들을 통해서도 소리를 지르게 하시거든요. 근데 왜 돌들 가지고 소리를 지르게 하겠어요. 여러분을 통해서 하게 하시지. 여러분뿐 아니라 이 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이 주님과 완전히 섞여지고 하나가 되고 연합하고 완전히 죽으심을 본받아서, 우리가 다시 살으신 부활의 예수님을 우리가 본 받는 자 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큰 경사스러운 날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여러 사람이 많은 스승을 두고 행하나 너희 스승은 나 하나뿐이라고 하십니다.
그 스승이 너무 많이 울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찢어야 산다. 입니다.
지나 주간에 너무 많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해야 할 사명을 돌아보게 하시고 주님을 돌아보게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막 15: 3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그러나 죽지 않으면 밀알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부활은 죽어야 다시 살 수 있고 죽어야 다시 삽니다. 우리는 과연 죽었습니까 (요한복음 12:24 )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의미와 교훈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주심)
예수님이 십자가의 완전히 못 박혀 달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돌아가셨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경에 레위기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 여호와 하나님의 지성소는 주님
이 임재하신 곳이며, 언약 법궤가 있는 곳입니다. 그다음 성소가 있고 그 전에는 성소 마당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마당만 밞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당에서 회개를 하고 , 성령을 받고 성소로 들어가서 성소에서 지성소로 나가는 절차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성소의 휘장을 찢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직접 여호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달려 돌아가셨고, 우리 죄를 한 번에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가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은 철저히 찢기셨고 십자가의 못 박히셨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아래로 찢어져야 합니다.
너희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우리가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 주님께서 우리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지고 돌아가셨으니 맘대로 살아도 된다고 하시지는 않으셨어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주여 부르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1)
너희가 거듭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철저하게 주님의 믿음가운데 확실히 죽은 다음에 부르는 것입니다. 그냥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는 신앙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신앙을 고백하는 자가 합당한자인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찢어졌습니까.
아침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다.
밖에서 엄청난 소리란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전쟁이 났는지 죽어 가는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어다가 못을 박는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데모 하는 소리. 잔인한 소리 무언가 너무 너무 밖을 나가려고 하는데 소리가 들렸습니다.
“밖에 나가지 말고 너 집안 청소하라”는 소리였습니다.
이런 세상이 복잡하여 나가서 무슨 일인가 가봐야 하는데, 거기 관심 갖지 말고 너 집안 청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무슨 집안 청소인가. 그래서 주님 시키는 대로 집안 청소하는데 집안이 아니라 교회였습니다.
교회인데 제가 빗자루 가지고 끝에서 끝으로 청소를 하는데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에
못이 하나도 박여 있지 않고 못이 다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갈라디아 5:4절 말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의 못을 박았느니라. 육체는 무엇입니까. 그대로 육체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육체. 정. 욕심까지 십자가의 못 박아야 합니다.
육체의 원어는 -육신의 육체도 육체이지만 짐승의 육체도 육체로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없으면 짐승의 육체나 우리 육체나 하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나마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성전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에 거룩한 육체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고깃덩어리와 다를 것이 없어요.
“그래서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시편 49:20)
우리 육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정 -혼적인 마음에 있는 것으로서 여호와 하나님 아닌 인간적인 것. 마음에서 나오는 정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정. 혼적인 것을 십자가의 못 박으라고 하십니다.
욕심을 못 박으라-탐욕. 정욕 이 세상에서 나오는 우리를 모두 위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 박으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를 박고 ,우리 감정이나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혼적인 것을 박고,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 모든 인간적 탐욕을 못을 박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사실 수 있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가 사는 겁니다.
그런데 아침에 은혜를 주시는데 여러분이 앉은 자리에 못이 아주 전혀 박혀진 흔적도 없는 새 못들이 그냥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손발이 떨려서 과연 설교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마음도 심장도 떨려서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눈물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적인 것. 내 육체적인 것 내 감정적인 것 다 박으라는데 도대체 못이 박혀진 것도 걷어 내는데 보니까 못이 다 새 못 그대로입니다.
어떤 것은 박히려고 한 흔적도 뒤에가 꼬부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못이 여러 가지에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약간 큰 것까지입니다. 심지어 어떤 것이 있냐 하면 호치켓을 찍는 그런 것도 스텐플러라는 것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못으로 박으라고 하니 그런 것으로 박고 그것이 붙어 있겠어요
조금만 걱정이 되고 근심이 되면 그냥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그냥 박히다가
꾸부러진 상태로 떨어져 있는 겁니다.
십자가에 박혀야 우리가 죽는 것이고 죽어야 사는 건데 그냥 밀알 그대로 있는 거예요.
여러분! 열심히 나름대로 열심히 박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 아닐까요
아니면 내가 어느 부분 박았다고 생각하고 어느 부분은 박혀 있을 수 있지만 그 못이 다시 떨어진 것은 아닌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대못으로 박았습니다. 정말 죽으셨고 그분은 죽으실 분이 아닌데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위에서 찢어졌으면 밑에도 찢어야 살잖아요.
주님께서 반석을 쳐서 깨뜨려야 물이 나온다.
찬송가의 가사 중에 “ 물가지고 씻기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반석도 물이 계속 씻기면 부딪치면 깎여요.
아니면 “불가지고 태우든지. 물가지고 씻기든지 방방이로 부수든지. ” 우리가 깨져야
거기서 물이 나오고 생수가 나오는데 깨지지가 않았어요.
오늘 육체와 함께 정도 욕심도 다 십자가에 박혀야 합니다.
물론 어느 부분은 박히신 분이 있겠지요. 그러나 철저하게 다 박히시기 바랍니다.
나의 흔적이 없도록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기에 너무너무 편안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죽지 않는데 어떻게 부활이 있습니까
많은 교회들은 부활의 대해서 반겨하고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그게 다른 사람의 축제만 되면 됩니까. 그게 내 축제도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감사가 되고 나의 생명의 부활이 되고 나의 관계된 부활이 되고 주님 부활하셨으니 나도 부활할 수 있는 그런 여호와 하나님의 철저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온전한 믿음 온전한 주님 바라시는 신앙의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주님 제가 어쩌라고요. 여러분!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는 않는다면 그 말씀이 우리를 심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과 주의 잔과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주의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1:27)
우리는 지금 너무나 편안한 삶속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 무슬림이나 중국 북한, 인도, 어떤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고 이제 전파되는 곳에서 받는 핍박. 그 순교를 당하면서 피를 뿌리는 그 사람들의 비해서 우리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정말 죽고 나와 함께 부활하고 나와 함께 합당한 삶을 살고, 네가 내 안에
내 안에 네가 있으면 이것은 정말 네가 외치는 감사가 되고 네가 부르짖는 기쁨이 되고
네가 천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너희가 그런 평안함 속에서도 이 신앙을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늘 말씀대로 철저하게 찢어지지 않고 깨지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아벨의 피를 흘린 피부터 시작해서 사가랴의 흘린 피까지 이 시대가 다 담당해야 된다고,
오늘날 내 피를 마시고 내 떡을 먹는 자를 그 피가 그 살이 정말 주님 살이 되지 않고 주님의 피가 되지 않는다면, 너희가 지금까지 먹은 잔과 그 떡이 너를 심판할 것이다.
“천육백 스타디온의 그 피가 퍼졌는데 높이가 말굴레 까지 닿았더라. ”(요한계시록14:20)
무슨 말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부으시면서 우리가 변화되어서 들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이 흘리신 피. 선지자들이 흘린 피 우리의 선조들이 흘린 순교의 피를 우리가 다 감당하고 우리가 흘려야 된다는 거예요
결코 편하고 안전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결코 지금 다했다고 우리가 착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쩌면 옛날 시대의 살던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살던 사람이 차라리 복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잘 믿든지 거듭 날 수 있는 어떤 입술로 부르짖고 조금 거듭나던지 많이 거듭나던지
어쨌든 나머지는 주의 이름을 부르다가 심판에 설지, 버림을 당할지 인정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입술로 부르든 마음으로 믿든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수님 재림의 상관없이 들어간 사람들은 주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요.
편안하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편안 하지 않고, 지금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은 이 시대 사람들, 차라리 지금이라도 주님 오시기 전에 차라리 죽으면 자금이래로 주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환란에 넘겨지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손에 빠지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죽은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가겠지요. 물론 천국은 가야 하겠지요.
지옥 간 사람은 어쨌든 불쌍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 생각할 게 아니라 이시대의 우리가 들림 받지 못하면 적그리스도의 붙여져서 결국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큰 환란가운데 빠져서, 모든 선지자들이 흘렸던 피를 남은 사람들이 대신해야 된단 말이에요.
지금이 얼마나 더 주님 앞에 더 경성할 때요 .
근신하며 회개할 때요. 얼마나 깨지고 부서질 때요 우리가 찢어야 할 때요.
지금이 주님 앞에 녹아져야 할 때 인줄 믿습니다.
철저하게 우리를 돌아보세요. 한번 돌아보세요.
한번 어떤 모습이 못 박혀 지지 않았나.
옛날에는 박았는데 지금은 또 어떤 부분이 못이 빠져서 다시 인간의 근성이 역사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25)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행한다면 인간의 본성의
격동하는 것. 분내고. 흥분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남은 다 우습게 보이고. 그러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제가 쓴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시.
날마다 죽어라. 내 마음이 섭섭한 것은 내가 아직 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직 화가 나는 것은 내 혈기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은 내 지식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가 인정받기 원하는 것은
내 속에 교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바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죽지 못했습니다.
죽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도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나는 육신의 옷을 벗은 후에 온전히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광으로 영광스로운 부활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내가 죽기를 소망합니다.
남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내 집안 청소를 하세요.
다른 것 필요 없어요. 그냥 죽어요.
매일 죽으세요. 날마다 죽으세요. 사도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 했듯이 바울이 그 정도로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면 우리는 정말 시간시간 마다 분초마다 죽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격동하지 마세요. 혈기부리지 마시라고요.
분내지 마세요.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제발 좀
인간의 육신의 생각을 나타내지 마세요.
투기하지 마세요. 투기라는 것은 무업입니까. 질투하고 시기 하는 것.
미워하는 것. 다투고
자기 아니면 마치 안 되는 것처럼 판단하고 우리 모습을 돌아보세요.
지금 이 말 가운데 아 ! 나는 아직 이것을 못을 박지 못했구나. 아 나는 이 부분을 십자가의 못 박으려고 생각도 못했구나. 이제야 못을 박아야 되겠구나. 무언가 주님 앞에 자기를 살피면서 계속 못을 박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보다도 우리가 심판을 먼저 여기서부터 먼저 시작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큽니다.
이방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맞을 일을 행했어도 적게 맏는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이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율법에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율법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회개하면 성령으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어요. 그러나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을 가지고, 성령을 범하는 죄를 짓고 성령의 맛을 보고 성령의 참여한바 되고 여러 가지 경험과 이적과 이적을 맛보고,그리고 나서 돌이키는 자는 사함이 없다고 그러셔요.
더 많이 맞을 것이라고 말씀 하세요
물론 우리 교회 오시면 많은 영혼이 회복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은 아직 영이 미치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육신의 죄를 회개하고( 육신의 죄는 몸밖에서 드리는 것) 그러나
성령의 죄는 (몸 안에서 드리는 것) 우리는 지금 성령의 간음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여기는 영적인 교회라고. 여기서 많은 영이 회복이 됩니다. 눈물이 회복이 되고 많은 그런 소리를 하세요.
회개가 회복이 되고 꿈이 회복이 되고 어떤 주님과 그런 은혜가 회복이 됩니다.
여기서 죄짓는 것은 율법 밖에서 죄짓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귀신 하나가 떠나가니까 나중에는 귀신 하나가 떠나서 가서 물 있는 곳을 구하다가 없으니까 다시 돌아와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 형편이 더 어려운 것처럼
영적인 삶속에서 살던 사람은 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더 많이 죽어야 되고,
날마다 죽어야 되고 ,더 깨져야 되고 찢어야 되고, 더 많이 우리가 주님 앞에 거듭나고 변화가 되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격동하고 투기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투기하고 격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격동하고 투기하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거듭나고 변화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못 박아서 날마다 죽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합당한 그런 삶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사람을 보면서 자기가 더 성찰하고 자기를 더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감사해야 되요. 예를 들어 보면 죄가 하나도 없고 완전한 사람만 있다면 한사람이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괜찮은 것을 보면서 자기는 더러운데도 자기 모습을 못 보니까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깨끗한 줄 압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때는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 모습일 수가 있겠구나, 나는 저러면 안 되겠구나, 하며 자기가 그 속에서 경성하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자기가 더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자기가 이겨서 다스려서 이겨야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봅니다.
모든 만물을 통하여서 항상 주님과 연결을 해서 더 주님 앞에 나은 사람이 되려고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을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론 다 죽을 수는 없어요.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가 죽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예수님께서 근본적인 원죄는 해결해 주셨잖아요.
그래도 나의 모든 것이라도 마음을 찢을 수 있고 내 생각들이 격동하는 것들이 내 미움 시기 질투 다툼 욕심 .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런 육신적인 것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날마다 또 못을 박고 또 못을 박고 , 그것을 위해 온전하기 위해 주님 앞에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 기도드리고 또 기도드리고 하면서, 지금 내 집안 청소할 때지 남 지금 나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십자가 끌려가서 달리고 난리를 치고 전쟁이 나서 나라가 두 쪽이 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짚고 너머 가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내가 사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지상명령, 이게 몸 된 교회 나 자신 아니겠어요. 할렐루야!
나를 돌아볼 그런 상황이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를 가득 맺어 드리는 거예요.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사랑도 거룩하고 아름답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아름답고.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희락도 좋고, 내 마음이 주님 때문에 평안한 것도 좋지만
나는 오래 참는 것도 그것도 인격이고 신의 성품의 참여 하는 거고 이것도 아름다운 고귀한 우리의 신앙 모습인 것 같아요
오래 참을 수 있는 것, 그다음 남도 불쌍히 여기고 긍휼이 여기고 자비가 있고 양선이 있고 충성이 있고 온유가 있고 마지막이 절제가 아니겠어요.
오래 참음과 절제도 비슷한 말씀인데 절제할 줄 알아야 되요
이것 아니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못 박은 사람은 절대로 주님의 은혜로만 만족해야 하고
주님의 사랑가지고 사랑하고,
주님의 기쁨으로 기쁨을 삼고,
주님의 소망으로 소망을 삼고,
주님의 마음이 슬플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고,
주님께서 기쁠 때 같이 웃을 수 있고.
주님과 늘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생각이 주님한테 있는 사람은
이 것 아니면 안 돼. 이사람 아니면 안 돼. 이 직장 아니면 안 돼. 이 학교 아니면 안 돼. 이것 아니면 안 돼. 자기의 욕심이 없는 사람은 못을 박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자식이 우상이 되고 공부. 재물, 명예, 직장 ,집이 우상이 되면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것들이 우상이 되어가지고
내가 살아야 될 나는 살리지 못합니다. 이런 속에서 이것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주님이 하십니다.
그러나 내어 드려야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자기가 꼭 틀어쥐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셔도 믿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먹으면 주님이 그 심령가운데 들어가셔서 역사할 수 없는 거예요.
내가 할 수 없을 때 간청의 기도하기
내가 마음을 드리고 여호와 하나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저 주님 믿고 싶습니다.
근데 안 믿어지는 거예요. 주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그 때부터 주님께서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시고 환경을 열어주시고 사람을 붙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인도하시는 건데 내 마음이 절대 믿을 마음이 없는데
주님이 어떻게 그 속에 들어가셔서 역사하실 수 있겠습니까.
내 마음이 변화 되려는 마음이 없는데 찢으려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죽으려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깨질려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거듭나려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주님이 그 속에 들어가셔서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요.
못 박았다가도 주님 잠깐만이요. 다시 주세요. 하며 다시 뜯어가지고 자기 식대로 하고
또 때 되면 이건 안 되겠는데 기도하며, 이거 걸리는 것 같아. 그러면 다시 박았다가 못자국도 뺏다 박았다 하면 구멍이 커져서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주님이 이 말씀을 왜 주시느냐 하면 이 마지막 때 엄청난 큰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많은 책을 보고 많은 소리를 듣고 많은 좋은 설교를 듣고 인터넷에서
T. V 에서 어마어마한 설교를 들어요. 듣고 나니까
여러분이 아는 게 너무 많다보니까 자기가 아는 것이 많아서 믿음이 많은 줄 아는데 가슴은 하나도 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가슴은 하나도 찢지를 않은 거예요. 찢으려고 생각조차도 안하는 거예요.
죽지 않는데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죽어야 부활을 하는 거지. 아침에는 저를 돌아보았어요. 주님 사실 저에요.
여러분 !지금까지 주님의 성찬에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셨습니다.
주의 몸과 주님의 피를 우리가 지금까지 먹었습니다. 그만큼 먹었으면
그러면 주님의 살로 주님의 피로 변화가 되었으면 뭔가 주님과 함께 죽으심으로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다시 주님과 함께 부활로 연합한 자가 된다고 다시 살리심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말씀 속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죽어야 연합해서 죽어야 연합해서 다시 부활 때 다시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나이다.
이제 믿음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여러분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은 더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고 기도하면서 얼마든지 날마다 죽을 수 있어요
죽으려고 하는 모양이라도 내던지, 찢으려는 모양이라도 내던지 무언가 깨뜨리려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라도 있던가, 철저히 우리를 돌아보는 여러분이 되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듣고 변화되지 못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심판을 시작하시는데 먼저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시는 것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성전에서도 목사부터 시작해서 제일 오래 믿고 중역들이 심판을 받는 거예요. 거기부터 심판이 시작 되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피를 물으실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을 찾을 실 때 우리가 썩지 못한 밀알로 내어드리는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아니라 하다못해 썩는 시늉이라도, 죽어가는 시늉이라도 주님 앞에 보여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를 내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내어 드리는 거예요
지금까지 주님과 같이 살았던 주님 때문에 어떻게 기뻐했고,
주님 때문에 얼마나 사랑을 알았고 주님 때문에 세상의 기쁨이 아닌 이 육체에서 얻어지는 기쁨이 아닌 주님 기쁨 때문에 살았고, 나중에 결산할 때 내가 주님과 동행해서 주님 것으로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 드립니다. 라고
주님이 주신 주님의 이익을 남긴 달란트를 주님께 내여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영혼이 죽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를 내 영혼을 받으시겠고
내 영혼이 주님 앞에 받아지지 않는데 내 찬양이 올라가겠고 내 예배가 올라가겠고
내 기도가 올라가겠고, 내가 드려지지 않았는데 헌금이 올라가겠습니까. 나도 드리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나를 받으셔야 찬양도 받으시는 건데 오늘은 양심이 찔리니까 찬양도 드릴 수가 없드라구요
정말 내가 받아져야 찬양도 받아지는데-찬양도 계속 받으시다 보면 주님이 받으시겠지만
어떤 것을 먼저 드려야 된다는 순서는 없지만 어쨌든 뭔가를 주님께 끈임 없이 드리고
우리가 계속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우리가 변화되는 모습 우리가 없어지고 주님의 것이 채워지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물론 믿는 사람들이 가고 변화된 사람들이 가는 건데
,천국은 선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할렐루야!
선하고 아름다운 변화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주안에서 주님 오시기 전에 죽는다면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가지고 가서 위로를 받으시겠지만, 그러나 이쪽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주님의 모습을 닮지 않고, 주님의 선한 모습을 입지 않고 어떻게 세마포를 입지 않고, 우리가 주님으로 입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어요. 옷을 입지 않고 오면 쫓겨나잖아요.
선한 사람들이 그 곳에 가는 거예요. 거기는 악한 사람은 있을 수 없잖아요
선한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인데 내가 여기서 변화가 안 되었는데 올라가다 변화되나요.
올라가서 변화 되나요. 아니잖아요.
여기서 변화된 사람이 가는 거잖아요
그곳에는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만 있는 곳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격동하고 투기하고, 십자가의 자기 정과 욕심과 자기 육체를 십자가의 못 박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갈 수가 없는 곳이에요.
그 다음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이에요. 거기 가면 슬픔과 눈물이 왜 없을까요.
거기는 주님께서 위로 해 주시고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 되시기 때문에, 슬픔과 눈물이 없어요. 그곳에는 -주님이 항상 거기서 위로해 주시니까 눈물을 흘릴 일이 없죠.
그러니까 이곳에서 위로를 받는 자가 그곳에 가서도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고 슬픔이나 아픔이나 고통스러운 것이 다시없는 거예요
여기서 위로를 주님 앞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거기 가서 받죠.
여기서 성령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찬양의 노래를 배운 사람들이 거기 가서 찬양을 부를 수 있는 거예요. 갑자기 여기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거기 가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요.
여기서 144000의 수가 새 노래로 찬양을 드리는데 주님께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배우지 않으면 거기 가서 배울 수 없고 거기서도 부를 수가 없어요.
여기서 배운 사람들이 거기 가서도 부르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여기 있는 믿음을 보세요. 육체로 있을 때 이 믿음을 보는 거예요.
그곳에는 우리 주님이 기업이시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요.
주님께서 제게 이런 감동을 주셨어요.
네가 나를 위해 울어주면 너의 삶에 눈물이 없게 할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해주면 너의 삶에 모든 멍에를 쉽게 하고 너의 짐을 가볍게 할 것이다.
너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자
성령 받아 놓고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아직 영을 알지 못하는 육체 가운데 사는 서머나 교회는 육체는 열심히 일하는데 성령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사단의 깊은 곳도 알지 못해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굉장히 상이 많아요.
물론 성령으로 우리가 나서 성령을 따라 행하면서 성령으로 승리해가지고, 이제 성령 안에서 인정받고 성령 안에서 축복받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제일 상급이 크죠.
그런데 성령 받고 감당 못하는 버가모 교회보다도 차라리 율법으로라도 열심히 하는 사람
정적이고 ,인간적이고 양심적이고 성령으로는 거듭나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육신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령 받고 감당 못하는 버가모 교회보다 훨씬 낫다는 예기에요.
우리가 준비할 것
여러분 우리가 특별히 다른 교회보다 더 정신 차리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마지막 때 엄청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지식이 있지만 여러분이 그 지식 때문에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많은 스승을 두고 일하지만
그러나 우리심령이 변화도 되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고 계속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정말 여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변화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장성하는 것. 내가 변화되고
주님이 주시는 사명들을 오늘 가장 거룩한 선한 영혼을 살리고,
마지막 때 주님의 이 땅에 지상명령하신, 주님의 오시는 길을 우리가 더 예비하고 주님의 오시는 길을 더 평탄케 해드리고, 주님의 오시는 길을 더 만들어 드리는 우리가 마지막 말세에 지점에 우리가 지금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오죽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2010년도에 주시는 말씀이, 왕 앞으로 나가는 에스더 같이 너희는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이 부활절에 주님이 여느 때 처럼 보내실 리가 없어요.
2010년도부터는 인사도 “마라나타라”고 말씀하시고 표어를 주시는데
입술의 문을 지키라고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많이 알고 어쩌면 그렇게 잘 알고, 어쩌면 그렇게 똑똑하고 어쩜 그렇게 욥이 한 말처럼 네가 죽으면 의인이 다 죽겠구나. 과연 의인은 너 하나로구나.
여러분! 차라리 그냥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을 걱정하는 게 어떻게 보면 순수해 보여요. 영까지 거듭났다는 사람들이 그 못도 제대로 박지 못하고 마치 박은 줄 착각하고 자기만 의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앉아가지고 교회 판단하고 믿는 사람 판단하고 격동하고 , 투기 하고 헛된 영광구하고,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서 몇 가지는 있는지 몰라도 하나 맺는 사람이 9가지 다 맺는 거예요
한 가지 두 가지 서너 가지 있다고 착각하지만 9가지 다 맺지 못하면 없는 거예요
오늘 저는 이렇게 설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더 감사하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부활이 복음을 증명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바로 알자 부활의 감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하심 죽으심. 부활이라는 것은 죽음에서 무덤에서 다시 일으키다라는 뜻이라는데 이 말씀을 어제 저녁까지 준비했는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제 말이 쓸데없는 말이 될 뻔 할 거예요.
죽어야 무덤에서 일으키지. 죽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일으켜요.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그 길은 십자가의 못 박히기 위해 가는 길,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죽어라. 죽어라.
말라기 2장 1절에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진리의 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리의 법이 있어요.
그리고 입술에는 우리의 불의함이 없습니다. 맞습니까. 입술의 불의함이 없어요.
혹시라도 있다면 불의함이 없어야 될 줄 믿습니다.
진리라는 것이 예수님이잖아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생명이 뭐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 뭐고 우리가 구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법아래 있습니다. 알았으면 행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듣는 자도 복있고 읽는 자도 복 있지만 행하는 자가 더 복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켜 행한다는 것은 : 완전히 붙잡다. 꽉 붙잡아서 그것을 우리가 행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미 진리의 법이 있어요. 우리가 있어야 될 것은 입술의 불의함이 없어야 되요
불평과 원망과 격동과 어떤 그런 투기가 없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속에서 선한 것이 있으면 그 선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선한 것이 있으면 입으로 선한 것을 말하게 되어 잇습니다.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했다고 그랬어요. 화평과 정직함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시고 ,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는 일을 했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마지막에 지금쯤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 하면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전 것은 다 되어 있어야 되요.
온전하진 않지만 적어도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어느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겨자씨가 더 큰 나무가 만들어 지고, 거기에 어마어마한 새들이 공중에 깃들고 가지가 만들어 지고 공중에 새들이 깃드는 건데, 결국은 이것이 다 되어 있어야 되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죄악에서 떠나게 해야 될 지금 시점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큰비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내가 변화가 돼야 우리가 전하는 모든 것들이 열매를 맺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물론 월요일 날 주신 은혜도 너만 잘하면 돼. 너만 잘하면 많은 면류관을 얻을 수 있어. 여러분! 우리만 잘하면 돼요.
⅓내가 죽어지면 내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죽어지는 그런 천국에서 소문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하나하나 보아도 어느 영혼하나가 예쁘지 않은 영혼이 없을 정도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록될 만한 교회.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데, 우리 교회 ⅓ 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영혼만 있어도 우리교회 전체가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의 스승 예수님께 물어 보세요.
옆에다 많은 스승을 두지 마세요. 많은 소리를 듣지 마세요.
오직 주님의 소리만 들으시기 바래요. 우리는 너무 많은 곳을 물어 보려고 그래요. 여기 가서 물어 보고 저기 가서 물어 보고 심지어는 결혼하는 것도 물어 보고 직장 가는 것. 집사는 것도 물어 보고 어디 가서 자기 인생도 물어 보고 다 물어 봅니다. 제 인생 제 것인데 제가 책임져야 되는데 이거 해야 되요. 말아야 되요. 이 사람과 결혼해야 되요 말아야 되요. 자기가 살 건데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왜! 어려서부터 교육이 안 된 거예요. 어려서부터 너무 부모가 치마 속에다 가두고 무엇은 어떻고 심지어는 “엄마 나 화장실 가도 돼” 별걸 물어 보게 가르쳤어요.
어느 것 하나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해가지고 하는 것이 없어요. 독립심이나 자립심을 키워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예수님도 절대로 성경에서도 다른 곳에 가서 물어 보다가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물어 보면 되요
여기 가서 물어 보고 저기 가서 물어 보고 여러 스승을 두고, 그리고 행하나 우리는
예수님 하나 스승이 있으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계속 물어 보세요.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줄 아세요. 안 물어 보니까 말씀하지 않는 거예요. 구하지 않으니까 안주시는 거예요. 찾지 않으니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거예요.
제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곳에 여러분이 소리 안 지르면 주님께서는 돌들을 통해서도 소리를 지르게 하시거든요. 근데 왜 돌들 가지고 소리를 지르게 하겠어요. 여러분을 통해서 하게 하시지. 여러분뿐 아니라 이 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이 주님과 완전히 섞여지고 하나가 되고 연합하고 완전히 죽으심을 본받아서, 우리가 다시 살으신 부활의 예수님을 우리가 본 받는 자 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