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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주님을 모실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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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탄절 전 주일입니다. 네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통보를 받은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모실 준비를 갖출 것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마음에 빈자리를 마련하고
어느날,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순결한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고 예고합니다. 그는 처녀였고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기 때문에 천사가 통보한 일을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간음의 증거가 드러나는 것이요 이는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사실을 쉽게 수긍하고 받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마리아는 천사의 통보를 듣고는 "나는 남자를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고 물었고, 그게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시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천사가 전한 사실이라 해도 마리아의 처지에서 거부하고 항거하고 몸부림을 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체념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 드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고 처음부터 순종하여 겸손하게 그 통보를 받아드렸습니다. 그가 이렇게 순순히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 안에 받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빈자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빈자리란 세상을 향한 욕망이나 세상의 꿈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의 첫 번째 말씀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 안에 받아 드릴 수 있도록 마음에 빈자리를 마련한 사람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천사의 통보로 놀라기는 했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천한 자신을 택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 드렸던 것은 이미 그가 세상을 향한 욕망을 비우고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에 보면 그는 이 일을 큰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혼이 내 구주 여호와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눅 1:46-48)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수치스럽고 비극적일 수 있는 수태사건을 마리아는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신 은총이라고 받아드리면서 행복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시든지 말씀대로 순종할 마음, 여호와 하나님께 내어드릴 자신의 빈자리를 마련하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가 하자고 하시는 대로 따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에 왔을 때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어서 어느 집 마구간에서 해산하여 아기를 구유에 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모셔들일 준비된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세상을 창조하신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모셔들일 빈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왕이 되는 왕국을 건설하기에 바빠서, 정신없이 분주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할 여유가 아무에게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영접은커녕 오히려 그가 오심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에 보면, 헤롯왕이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듣고는 그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에 태어난 두 살 아래 어린이들을 모두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 가운데 모셔들일 마음의 자리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빈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나를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언제라도 순종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주한 삶은 마음에 빈자리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그리 분주한지, 이 땅에서 얻고 이룩하려는 것이 하도 많아서 우리의 삶은 항상 분주하고 쫓기며 한치의 여유도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네 생애를 나를 위해서 살라 고 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습니까 아니 단 일년동안만 나를 위해서 살라고 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는 돈을 따라가느라고, 누구는 주식시세를 추적하느라고, 누구는 골프모임 때문에, 누구는 세상일에 분주해서 주일날 교회에 나올 시간도 내기 힘들며, 교회에 와도 성도끼리 모여서 한주간 지낸 얘기를 나누며 친교 할 시간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에 빈자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모셔들일 자리가 없으며, 그를 생각하며 그 말씀을 묵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베다니의 마르다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일이 성탄절입니다. 잡다한 생각과 욕망들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을 정돈하고 빈자리를 마련해 봅시다. 주님이 들어오실 마음의 자리,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바칠 시간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마리아가 비판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주님을 기다렸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데 머물지 않고 그 시대의 악과 불의를 보면서 그것에 대하여 비판함과 동시에, 자기의 몸을 빌려 오실 메시야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중에 51절 이하에 보면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 1:51-53) 라고 하였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자기의 몸을 빌려 오실 메시야는 세상의 왕들처럼 자기의 권력을 쌓아 가는 왕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자들을 낮추고 교만한 자를 흩으시며 가난한 자들을 높이는 공의로운 통치를 하실거라는 예언입니다. 그 시대 시골 처녀에 불과했던 마리아에게 이런 놀라운 역사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자신의 배 안에 수태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이룰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웅의 출현을 통하여 강한 국가를 이룩하기를 바라는 당시의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 땅의 왕들의 통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만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세상 나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도 갖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나라를 위하여 많이 기도하고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정치가 실현되어 우리 사회가 안정과 평화를 이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참다운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희망하며 이를 위해 투쟁하기도 하였습니다. 정권 교체를 통하여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기대가 헛된 것임을 우리는 계속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땅의 나라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좀더 나은 사회, 발전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10년 뒤에도, 50년 뒤에도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공평과 정의, 안정과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곤두박질치며 부정한 축재자들이 잡혀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면서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가면 경제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무망한 기대입니다. 인간은 결코 정의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계시록18 장에서 바벨론의 붕괴를 말씀하는데, 바벨론이란 세상의 물질문명이며 인간의 정치를 말합니다. 세상의 경제나 정치나 문화가 결국 자기 스스로의 모순과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붕괴되고 말 것을 말씀하셨고, 그것에 줄대던 사람들이 절망할 날이 올 것을 자주 예언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세상의 역사를 바로 보는 역사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58절에 보면 이 일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일이며, 장래 영원토록 이루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노래합니다. 자기에게 잉태된 그분은 과거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며, 장래 인류를 영원히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런 비판적인 역사의식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요 마리아는 성령에 충만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노래한 것입니다. 그는 그 시대의 상황에 불만하며 살기에 바쁜 사람이 아니라 성령에 충만하여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가짐과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2000년 전에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것으로 다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공평과 정의로, 완전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왕 중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의 재림의 날을 바라보는 미래를 향한 눈을 가지고, 영원을 경영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을 가지고 성탄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3. 사랑의 마음으로
마리아는 천사의 통보를 받은 후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의 오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찬가를 지어 부르며 사랑을 품고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릴 때, 우리 속에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캐럴과 성탄 츄리에 반짝이는 등불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웃을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은 지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너무나 여려워지기 때문에 힘든 이웃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따스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모시는 준비입니다. 또한 그들은 내면적으로 신들에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평안할 때는 모르지만 심각한 문제만 생기면 이 일이 어떤 신이 노하셔서 그런가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수많은 신들에게 짓눌려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위협하고 괴롭히는 신은 많은데 정말로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인도하는 강력하고 고마우신 신이 없습니다. 그런 이웃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하며 기도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런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동화 "사랑이 있는 곳" 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마틴 이라는 구두 수선공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성경을 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그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마틴! 내일 창 밖을 내다보아라. 내가 올 것이다. "
이튿날 아침 그는 평소처럼 일을 했습니다. 전날 밤의 일이 생각나서 그는 일보다도 밖을 더 많이 내다보았습니다. 그 때, 이웃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스테파니치라는 노인이 마틴의 창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마틴은 그를 불러 들여 따뜻한 차를 대접하였습니다. 노인은 고마워하면서 차를 두 잔이나 마시고 나갔습니다. 노인이 나간 뒤 마틴은 다시 자리에 앉아서 구두를 꿰맸습니다.
그가 창 밖을 내다보니 남루한 여자가 지나가다가 담벼락 옆에 멈추어 섰습니다. 낡은 옷 한 겹 밖에 걸치지 않은 여자는 바람받이에 등을 돌리고 서서 갓난애를 자기 품안에 감싸고 있었습니다. 마틴은 여자를 불러들여 빵과 수프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외투를 꺼내다 여자에게 주고 돈까지 쥐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여인이 간 후 마틴은 다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사과를 팔고 있는 노파를 보았습니다. 노파가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으려 할 때, 한 소년이 사과 하나를 집어들고 도망가려다 노파에게 잡혔습니다. 노파는 소년의 머리를 움켜쥐고 경찰에게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습니다. 마틴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 소년에게 용서를 빌도록 하고 사과 값을 대신 지불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날이 어두워지자 정리를 하고 선반에서 성경을 꺼내 펼쳤습니다. 그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방의 구석에 스테파니치 노인이 나타났다가 미소짓고는 사라지고, 이어 갓난애를 안은 여인, 사과를 팔던 노파와 소년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미소지으며 사라졌습니다. 그때 마틴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펼쳐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마틴은 그 날 주님께서 정말 자기를 찾아오셨고, 그분을 대접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 때, 정처 없는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여 줄 때 그곳에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잡다하고 분주한 마음을 정리하고 주님을 모실만한 빈자리를 마련합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역사의식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성탄을 맞이합시다. 그리하여 금년 성탄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성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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