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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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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갑자기 많은 포로들이 죽어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원인을 조사했더니 포로들이 크리스마스에는 석방을 해 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고통을 참고 살았는데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석방을 하지 않자 그들은 희망을 잃게 되었고 곧 희망을 포기함으로 인해 죽어갔던 것입니다.
Fromm, Erich(1900.
3. 23~80.
3. 18, 사회 심리학자)은 우리 인간을 가리켜 희망의 사람, 위를 바라보며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자라는 의미에서 Homo Esperans라고 불렀습니다.
꿈과 희망은 인간의 의지요 용기이며 모든 불행을 치료할 수 있는 명약이기도 하나 만일 그 꿈이 무너지면 키엘케골이 말한 것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을 낳고야 말 것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꿈과 희망 그리고 기다림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가치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며 더 좋은 날, 더 기쁜 날, 더 성공적인 날, 더 건강한 날, 더 행복한 날, 더 보람된 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만 있으면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 할 지라도 능히 감당하며 이겨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꿈은 한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한 민족 공동체에도 있는 법인데 특별히 인류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일찍부터 민족 공동체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민족적 수난에서 그들을 결속시켜주고, 그들의 민족적 동질성을 상실하지 않게 하며, 민족적 수난을 인내로 견뎌오게 한 근본 원동력이 바로 메시야를 대망하는 꿈입니다.
오늘의 말씀도 그 꿈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한 노인의 이야기로서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우리는 목도하게 되는데 그 현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1. 조용히 메시야를 기다리는 시므온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메시아에 대한 꿈은 그들 자신의 생의 목적이며, 그들의 존재 의미며, 그들의 운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야에 대한 꿈은 그들이 살아야 할 이유 그 자체로서 이러한 민족 공동체의 꿈이 한 개인의 생애에서 실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으로서 얻다는 의미가 들어있으며 그는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특별히 의롭다고 했는데 의롭고 라는 말의 의미는 공정한, 정의로운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여호와 하나님과 신정사회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의로운 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인데 이어서 나오는 말이 바로 경건 아닙니까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경건이란 신중함, 경계하다 등을 뜻함과 함께 율법의 요구를 면밀하고 세심하게 충족시키고자 행동거지를 주의하는 독실한 유대인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렇다면 시므온이 얼마나 믿음으로 율법을 공경하며 준수했는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받는 위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에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 동안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시므온은 이러한 오랜 영적 암흑과 침묵의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끈기 있게 경건한 자세로 기다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시므온은 그의 삶의 의미와 삶의 목적이 모두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에 집약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그가 노년을 맞이해서도 건강을 유지해 가면서 살았던 것도 그러한 간절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건강한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그것의 실현 방법을 알려주는 때가 종종 있는데 바로 시므온이 그런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리는 그 메시야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는데 26절을 한 번 볼까요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여호와 하나님께 꿈(Vision)이 있는 사람은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고, 성령님의 세미(細微)한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며, 또한 이 세상의 일들을 바라볼 때 분명하게 그 일을 이끌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시므온이 가진 이 꿈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꿈은 절대로 흐지부지 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창 06장에 나오는 노아를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장차 세상을 물로 심판할 때 생명을 보호받으라는 것이지요.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방주의 꿈 때문에 또 방주를 건립하기 위한 열정 때문에 수많은 조롱과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아는 그가 품은 방주의 설계도와 장차 있을 심판 때문에 그 일을 진행 할 수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섬김을 시작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꿈이 있었기에 그 오랜 세월을 성전에서 기다릴 수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시므온의 나이가 얼마인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동안 성전에서 기다렸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다만 추측하기는 그의 나이가 결코 작은 나이가 아니었을 것이며, 그가 기다린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 콤비를 이루며 성전에서 함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렸던 또 한 사람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안나라는 여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눅 0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 지 팔십 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안나가 결혼을 한지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살아간지 84년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딸을 결혼시킨 나이가 보통 14세 전후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가 14살에 결혼을 하였다고 해도 그의 나이가 105세가 되지 않습니까
안나의 나이가 이렇게 많음을 볼 때 시므온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라고 우리는 추측을 할 수가 있는데 그는 그렇게 긴긴 세월을 메시야를 대망하면서 살아간 사람입니다.
2. 마침내 시므온은 성령님의 인도로 꿈이 이루어집니다.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성령의 감동으로: 26절에 이어 시므온이 계속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말로서 결국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즉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키신 분이 바로 성령이셨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성령님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여 오랜 세월을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으로 지낸 시므온에게 메시야를 만나는 극적인 순간을 맞게 합니다
27.....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지라.
전통적인 이스라엘 법에 의하면 모든 남자아이는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그 아이가 장자일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예식으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야 했는데 요셉과 마리아도 그 규례대로 행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들어 왔을 때 시므온은 성령님의 지시로 마리아의 품에 있는 아기가 그때까지 기다려 오던 바로 그 메시야임을 단 번에 알고 만나는 복을 누립니다. 시편과 예레미야 애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 40: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렘애 03: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 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은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를 기다리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기 때문이지요. 특히 인간의 기다림 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도 복된 일이 없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온전케 하척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기다림은 잠간의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줄 뿐訣嗤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대망하는 그 기다림은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오늘의 말씀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룬 사람시므온에 대하여 한 마디로 "기다리는 자" 로 묘사하고 있습니다(25). 물론 구세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시므온뿐만이 아니라 구약 예언서의 말씀을 믿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막상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 오셨을 때에는 그 분을 알아보는 사람이나 영접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동방의 박사들과 양치는 목자들 몇 사람 정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초라하게 탄생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영접했을 뿐입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구세주를 배척하고 대적하다가 급기야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구세주의 오심을 진정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은 구세주를 만나 기뻐하며 영접한 시므온이야말로 진정 복된 자가 아니겠습니까
3. 메시야를 만난 시므온은 영적 기쁨을 누립니다.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지금 시므온은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대단히 큰 기쁨과 즐거움의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므온이 안고 있는 아기가 누구입니까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 수십 년 간이나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려 온 메시야입니다. 이제 그 메시야를 바라보니 절로 힘이 납니다. 영적 즐거움과 환희가 막 솟아납니다.
안고 있는 예수님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습니까 너무나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그래서 넘치는 기쁨으로 예수님의 장래의 사역에 대하여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예언을 합니다.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시므온은 구원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지금까지는 메시야를 대망하느라 죽을 수가 없었고 성령님께서 메시야를 만나기 전까지는 건강을 지켜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피곤한 노구를 이끌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육신의 수고를 그칠 수가 있다는 고백을 함으로서 피곤한 생을 기쁨으로 마감하겠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살이 자체만 보면 사실 얼마나 피곤합니까 대단히 고달픕니다만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고 그 안에 거함으로서 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지요.
세례 요한의 사역들을 보십시오. 광야의 생활이 얼마나 삭막한 곳입니까 음식이며 의복이 대단히 고달픈 삶의 인생에 해당하는 것들이지만(막 01:06) 그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사로서의 영적 기쁨과 즐거움을 누린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요 0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이런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세례 요한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메시야를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말하였을 것이고 자신은 그 소망을 위하여 메시지를 증거한다고 강조를 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시므온도 메시야의 오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보고 난 후 찬송으로 예언하기를,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고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29~32) 라고 하였습니다.
구세주의 오심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시므온은 마침내 그분을 만나 뵙는 영광을 입었으니 그 기다림이야말로 정말 복된 기다림 아닙니까 영적 즐거움이요 환희입니다. 이제 지금은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영적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야 할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메시야를 만나기 위한 시므온의 기다림의 특징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리해 봄으로서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우리도 도전을 받아야겠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깨끗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5).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반듯하고 건강한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②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오래 참음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26).
어떤 어려움과 환경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는 자,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참고 견뎌내는 자가 메시야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③날마다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27, 37).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야의 오심을 성전에서 기다렸고 성전에서 만났듯이 오늘 우리들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릴 장소도 역시 성전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의 장소를 계시 받았다고 하여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광야로 나가는 이도 있으며,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나 그 기다림의 장소는 성전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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