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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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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문난 음식점에 갔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이 하는 말이 "손님 한 1-20분만 기다려주시면 자리가 나는데요"
같이 동행한 사람끼리 서로 상의한다. 어떻게 할까 다른 음식점으로 갈까
아니! 이왕 왔는데 좀 기다렸다가 먹읍시다! - 20여분을 불평 한마디 없이 기다린다.
우리는 소문난 음식점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기꺼이 기다리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제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탄절을 앞두고 아기 예수님을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전혀 기다림도 없이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은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지 않는 사람과는 나중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지만, 기다리지 않는 사람은 무의미한 성탄절을 보내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시므온이라는 사람이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다.
이스라엘의 위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소망하던 메시야를 통한 위로를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창자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영원히 다스릴 평화의 왕, 메시야에 대해서 약속을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께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64:2)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미가 선지자는 말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나오리라"(미5;2)
이사야와 미가가 주전 750년경에 예언하신 말씀이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도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데 어떻게 하였기에 그 많은 사람 중에 시므온만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시므온은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은 마리아와 요셉이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기 위하여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왔을 때, 성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전에서 기다리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만나 품에 안는 최고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것은 시므온 일생에 있어서 최대의 사건이었다.
어떻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만날 수가 있었는가
26절 -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시므온은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5절 하반절을 보세요. -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신 사람이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다.
평상시에도 항상 성령과 교제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었다.
성령님으로 부터 "네가 메시야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받은 시므온은 내 생전에 아기 예수를 볼 수 있을 것을 확실히 믿었다.
그러기에, 그는 다 늙어 기력이 쇠해져 가도, 포기하지 아니하였다.
날마다 빠짐없이 성전에 올라가서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던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로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이 다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아기 예수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아기 예수를 만나는 영광과 기쁨을 맛보는 것은 아니다.
누가 아기 예수를 만나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아기 예수를 만날 수가 없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주관대로 사는 사람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을 수가 없다.
성령의 지시를 받는 사람만이 아기 예수를 만나고 품에 안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우리 모두 성령의 역사에 영적으로 민감한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성령의 그 위에 계시므로, 성령의 지시와 인도하심을 받아,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영광과 기쁨을 우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어떻게 알아 볼 수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성전에는 마리아와 요셉만 온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부들이 아기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왔을 것이다.
어쩌면, 수십명, 수백명의 아기들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한 눈에 메시야를 알아 보았을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에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빛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노래할 때, 그 누구도 그 아기를 메시야로 믿고 경배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전 안에는 수많은 백성들도 있었고, 제사장들도 있었고, 바리새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누구하나, 하던 일을 멈추고 아기 예수 앞에 와서 경배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상, 마리아와 요셉마저, 그 아기에 대한 말을 기이히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메시야를 기다려왔던 시므온만이, 그의 팔에 안았던 아기 예수 안에서 신성을 인식할 수가 있었다.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인식하고 믿은 시므온의 믿음은 정말 위대한 믿음이었다.
성경에 보면,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니고데모 - 예수님께로 나아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서야 그 분이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온 선생이라고 믿었다.
베드로 - 예수님의 사역이 거의 끝날 때쯤에서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에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로마의 백부장 -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야 "이는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시므온은 오병이어의 기적도 보지 못하였다. 나사로는 살리시는 기적도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치신 말씀과 교훈을 들어보지도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기 예수를 보자마자, 그 아기를 메시야 - 구원자, 이방을 비추는 빛,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고백하며 찬양하였다.
시므온이 어떻게 이런 위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가 있었는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27절 -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
성령의 감동된 시므온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말씀과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고백을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시므온만이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알고, 메시야를 찬양하였는가
시므온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찌하여, 모든 면에서 둔해진 늙은 노인이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보는 영적 통찰력을 가질 수가 있었겠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그 어떤 위대한 믿음의 행동도 할 수가 없다.
성도 여러분!
누가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믿고 고백할 수가 있는가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 사람 -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이다.
마22:43 -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다윗 - 성령의 감동 - 그리스도를 주리고 고백
역대하30:12 - "여호와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성령의 감동 -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 일심으로 준행
출35:21 -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성령의 감동 - 성막을 짓는데 - 자원해서 은, 금, 동, 패물을 다 드림 - 차고 넘침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시므온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가 되자.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일도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일심으로 준행하는 일도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일도 여호와 하나님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앞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내 위에 성령이 계시느냐
나는 과연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성령의 감동되어 아기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며, 온 인류의 구원과 이 땅에 평화를 주시는 아기 예수님께 보배합을 열어 경배하며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 성령의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받는 성도가 될 수가 있는가
25절 -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의롬고 경건한 사람이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기에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
성령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고,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성도는 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면, 여러분은 다 성령받은 성도들이다.
문제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령이 함께 하고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역사하는가 누구에게 지시하고 감동하는가
성령은 불의한 사람에게 절대로 역사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빗나간 삶을 사는 사람에게 지시하거나 감동하지 않는다.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채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는다.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여기 의롭고 경건하다는 말이 무엇인가
'의롭고'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스'는 '디케'에서 유래 - 옳은, 공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의로운' 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경건하다'는 말은 "율라베스"는 '유' - 좋은, 잘 이란 말과 '람바노' - 취하다, 꽉잡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경건한 사람은 좋은 것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꽉잡고 살아가는 믿음을 의미한다.
누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인가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꽉잡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시므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꽉잡고 산 사람이기에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메세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시므온은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기에 성령이 그 위에 계셨고, 성령의 지시와 감동으로 아기 예수를 만나고 품을 안는 영광과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성도 여러분!
지금 나의 모습이 어떤가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꽉잡고 살아왔는가
성령충만은 자기의 모든 죄악을 철처하게 회개할 때 주어진다.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온 죄를 회개하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순종한 죄악을 회개하자.
진심으로 회개하여, 의롭고 경건한 성도가 되자.
성령충만한 성도 - 성령이 그 위에 머무는 성도가 되자.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받는 성도가 되자.
그러므로, 이번 성탄절이 하나의 전례 행사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므온처럼 성령의 지시와 감동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품에 안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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