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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내 눈이 주를 보았사오니!

본문

유명한 데일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 커다란 거룻배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배는 무척이나 낡은 모습을 하고 있고 노는 모래 위에 놓여있습니다.
썰물로 물이 빠져나간 모래 언덕 위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배를 그린 그림입니다.
최고의 갑부였던 그가 사무실에서 바라보앗던 그림 치고는 참 썰렁한 그림이지요.
마치 버려진 것 같은 배 그림 하나가 철강 왕 카네기의 사무실 정면에 왜 걸려있었을까요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
때를 기다리는 이 낡은 배 한 척, 이 그림을 그 사무실에 늘 걸어놓은 카네기는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지금은 썰물이 돼서 물이 다 빠져나가 이 배가 이렇게 모래 언덕에 덩그러미 썰렁하게 걸쳐져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필요없는 배가 아니다. 이제 곧 밀물 때가 오면 이 배는 다시 물위로 떠오르는 쓸모있는 배가 될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도 썰물처럼 황량한 때가 잇는 가하면, 또 밀물처럼 풍요로울 때가 반드시 있다. “ 이런 생각을 하지 않었겟습니까
어두움만, 밤만 계속되고 새벽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두움을 참고 견디며 인내해 나갈수 있겟습니까
그러나 밤이 깊어가면 갈수록 새벽이 한걸음 더 가까이 점점 다가오리라는 믿음이 어두움을 이겨 나갈수 잇는 소망이기에 우리는 참고 견디며 인내할수 있습니다.
카네기가 이렇게 늘 밀물의 때를 기다리듯, 새벽을 기다리듯, 기다림의 세월을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1 기다림 끝에의 만남과 기쁨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이라고 불리우는 노인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으니라고 되어있는데 이 있으니라는 동사(엔)은 멈뭄없이 계속을 나타내는 미완료 동사입니다.
이렇게 미완료 동사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일부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므온은 평생을 “네가 죽기전에 메시야를 보게 될거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소망중에 기다렸기 때문에 고지식하리만치 평생을 예루살렘에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이런 그의 간절한 열망이 잇었기 때문에,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 안고 축복의 노래를 부르게 되습니다.
시므온은 이렇게 “내가 반드시 죽기 전에 예수를 만나리라! 메시야를 만나리라!”라는 간절한 기다림과 소망 끝에 주님을 만낫습니다.
썰물의 끝에 밀물의 때를 만난것이지요.
본문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 다 해보셨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어떻게 합니까
하루종일 앉아서 얼굴을 수없이 두드리며 화장하고 머리하고,
맘에 안들면 그얼굴이 그얼굴인데 지우고 또하고 다시 머리 감고 또 만지고,
옷도 이것저것 꺼내서 대보고 그옷이 그옷인데도 다 침대에 내팽게치고,
향수를 이리저리 뿌리고 한껏 멋을 냅니다.
그래도 만족하지 못해 내가 멋있게 예쁘게 보일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커피솦이나 레스토랑에 앉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아무리 예쁜 여자들이 멋있는 남자들이 그 곁을 지나가도 그냥 지나칠 따름입니다.
그 미남, 미녀가 눈에 들어오면 이상한게에요.
수많은 사람 가운데 저 멀리 걸어오는 한사람 바로 사랑하는 그사람만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그 사랑하는 한사람을 기다릴때 얼마나 마음이 두근두근거리고 설레입니까.
그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 다가올 때 그 마음의 설레임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셀레임만 있나요
얼마나 기쁜지 아무것도 안먹어도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지요
이렇게 기다림은 언제나 간절한 설레임이 있고 기다림 끝에의 만남은 기쁨과 감사가 잇습니다.
시므온의 만남이 이런 만남이었습니다.
시므온이 어느날 우연히 성전에 갔다가 예수님을 우연히 만났습니까
아닙니다.
시므온의 만남은,
메시야를 보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평생을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설레이는 마음을 가슴 가득 안고 소망중에 간절히 기다린 그런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나와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 구원자되신 예수와의 만남이었기에 기쁨이 잇고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나를 구원하실, 이 세상을 치유하실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평생 소원하며 기다렸던 시므온의 그 간절한 설레이는 마음을 갖고 예수님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시므온처럼 그 예수가 나의 구원자 되심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디음주일 성탄절 에배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그냥 매해마다 찾아오고 지나가는 그런 연례행사인 성탄절이 아니라,
시므온처럼 나와 내 가정과 세상을 구원하시고,
위로와 평화와 새힘과 용기와 소망으로 치료하시고 붙잡아 일으키셔서 내 인생을 힘있게 이끌어가시는,
나의 구원자, 나의 치료자, 나의 인도자 되시는 에수!
내가 그 예수를 이번 성탄절에는 반드시 만나리라!
간절히 소망하는 오늘, 이순간의 시므온이 바로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내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오늘 본문에서 시므온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도다. ” - 30절의 말씀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예수라는 말은 “예쉬아“ 구약성서에 여호수아와 같이 쓰이는 말로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십니다.
누가 나와 이웃과 세상의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문제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땅에 오신 사건이 성탄절 사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책망하는 것은 책망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책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과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로와 평강을 얻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세상을 사랑합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나의 치료자!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소망! 임을 믿고
다가오는 성탄절에는 시므온처럼 그 예수를 “내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도다!“고 고백하는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렇게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입니다.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어느 마을에 성탄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마을 한복판에 베들레험 말구유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안에는 마리아,요셉, 동방박사 3명,각종 예물들,천사들이 합창하는 모습등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한복판에 모여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갖습니다..
번쩍이는 불빛 아래에서 연극도 하고 캐롤도 부르고 축제의 분위기가 한참이엇습니다.
그때 어느 소년 하나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없어요”
깜짝 놀란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보니다른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는데 분명 말구유간 풀섶위에 있어야할 아기 예수가 없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없는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을 경험한 마을사람들 마음에는 예수 없는 성탄절에 대한 말없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새벽 예도회때 김상우 전도사님이 뉴욕 타임즈에 난 재미있는 기사를 전해 주셔서 제가 다시한번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이번 2005년도 성탄절이 주일이라 미국의 대부분의 큰 대형교회들은 주일날 에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나 성탄절에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여행도 가고, 신나게 놀거나 등등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이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고 있습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가족도, 친구도 아닙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산타나 루돌프 사슴도 아닙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 바로 그 분이 성탄절의 주인입니다.
그러기에 시므온은 에수를 만나 “내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라고 기뻐 찬양했습니다.
다음주일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성탄절의 주인인 예수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탄절의 주인은 가족도, 친구도, 여행도, 세상의 노는 것도 아니고
성탄절의 주인은 예수이심을 분명히 깨달고
동방박사 3사람처럼, 시므온처럼 성탄절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만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절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4우리는 베드레헴 말 구유간으로 겸손히 내려 와야합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메시야가 나심을 보고 동방의 3박사들은 메시야를 찾으러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어디입니까
헤롯의 궁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세상을 구원하실 그 엄청난 메시야가 탄생하신다면 바로 왕궁에서 태어나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헤롯의 권력의 왕궁이 아니라, 으리으리한 호텔도 아니고, 시설좋은 산부인과도 아니고, 그냥 방이 없어서 사람이 자는 것도 아니고 말들이 잠자는 베들레헴의 말 구유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그 의미는 “겸손“이였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면서 베들레헴에 가면 그리스도의 탄생하신 곳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은 “구유교회”입니다.
구유교회의 특징은 들어가는 문에 있습니다.
문이 너무 작아서 한사람씩 한사람씩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문이 너무 낮아서 똑바로 서서는 못들어갑니다.
반드시 허리를 굽혀서 들어가야만 합니다.
구유교회가 뜻하는 것은
말 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허리를 굽혀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잇습니다.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살아게신 예수 바로 그분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베들레헴 말 구유간으로 가야 하는데 그길의 이름이 바로 “겸손이라는 길”입니다.
겸손이란 말은 라틴어로 humilitas 인데 어원은 humus 즉 '땅'입니다.
하늘은 높은 곳이지만 땅은 가장 낮은 곳입니다.
“겸손”은 “내려옴”입니다.
내려와야 나의 생명되신 예수를 만납니다.
힘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은 그 권좌(權座)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부자는 금고에서 나와야 합니다.
학자들은 지식의 꼭대기에서 내려 와야 합니다.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내가”라는 자랑거리가 남아 있습니까
아직도 예수님 앞에서 “내가“라는 교만이 남아 있습니까
바울은 빌 3:8 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훌륭한 예술품이라고 알려진 그림인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 그림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자, 그림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코펜하겐은 늘 붐비게 되었습니다.
한 유명한 화가도 그 초상화를 보기 위해 코펜하겐을 방문했습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그는 그 그림을 면밀히 조사해보았으나 그림의 기법이나 색채감이 별로 특별하지도 않아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함께 온 친구에게 느낀 소감을 이야기하자,
친구는 "여보게, 그것은 자네가 잘못 본 걸세. 그 그림은 마주 서서 보는 것이 아닐세. 어떻게 우리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겠나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시 보게. 그러면 그 작품의 가치를 알게 될 걸세. "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화가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그 그림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자비와 사랑의 모습이 그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그레이스교회 성도 여러분들!
다음 주일은 성탄절입니다.
이번 2005년도 성탄절에 진정 예수님이 여러분들의 마음안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들의 손안에 “겸손이라는 빗자루”를 드십시오.
그리고 내 마음안에 남아있는 “내가” 라는 교만과 자랑 그리고 남아있는 미움, 질투, 증오, 욕심, 불평, 원망 등등 세상의 찌꺼기들을 다 깨끗하게 쓸어 비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 주님이시여! 이제 내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비워 드리오니 들어오소서! 좌정 하소서! 머무르소서!” 하고 간절히 구하셔서,
이번 성탄절은
나의 생명 되신 예수! 나의 구원자 되신 예수! 나의 치료자 되신 예수!
세상의 소망되신 에수를 만나시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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